코로나19의 위세가 한풀 꺾여가던 2022년 5월 어느 날, 서울아산병원 신관 96병동 2인실. 양복 입은 사내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식물인간 장경복은 초점 흐린 눈으로 천장만 응시했다. 그들은 장경복의 머리맡에 문서 한 장을 붙이고 떠났다. 법원 집행관들이었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식물인간 장경복 씨 병상 머리맡에 병실퇴거 강제집행 예고문이 붙어있다.
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병실퇴거 강제집행 신청이 있으니, 2022년 6월 10일까지 자진하여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예고 없이 강제로 집행이 되고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 병원은 이 환자의 퇴원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또 다시 찾아온 법원 집행관들은 “강제집행 예고문을 붙이고 갔는데 왜 액션이 없냐”며 장경복의 아내를 재촉했다. 시한은 이미 지났다. 시간은 장경복을 점점 조여오고 있다. 그는 가족이 병원 등과 벌이는 싸움을 알지도 못한 채 병실에서 조금씩 세상을 놓고 있다.
2015년, 잔혹했던 토요일
7년 전 그날 이후 모든 것이 엉켜버렸다. 2015년 11월 28일 토요일, 충북 청주의 한 식당. 손님 발길이 뜸했다. “제 기억으로는 토요일 점심 장사가 되게 안 됐어요.” 식당 주인 장경복 부부의 아들 원재 씨는 부모 대신 식당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목 디스크 악화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1, 2차 수술을 마친 참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엄마가 좀 심각하게 받았죠. 그때 상황이 터졌던 거예요, 점심시간에.” “왜 그러냐”고 묻고 또 물었다.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은 그길로 택시를 잡아 서울로 달렸다.
일주일 전, 장경복은 아내와 함께 서울아산병원에 유유히 걸어들어갔다. 평소 탁구 같은 운동을 즐겼고, 병원에 오기 전날까지 아내와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었다. 다만, 한 달 전 개천 언덕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목 부위 통증이 심해졌다. 아산병원은 장경복이 경추 척수증과 후종 인대 골화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복잡한 병명을 알게 됐다. 동네병원에서는 “뼈가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었다.
▲장경복 씨가 의료사고를 겪기 며칠 전 아내와 여행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아산병원은 장경복의 아내가 믿고 예약한 병원이었다. 예전에도 진료를 받고 크게 만족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산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더 애착이 갔어요.” 아산병원 의료진은 일주일 사이 두 번에 걸친 경추부 수술을 계획했다. 장경복은 첫 수술을 마친 뒤 아들과 딸을 안심시키려 사진을 찍어보냈다. 아내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탄 채 병원을 끼고 흐르는 한강도 눈에 담았다.
낮 12시 45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불과 10분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바로 전날 8시간에 걸친 2차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장경복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며 숨쉬고 있었다. 잠시 후면 장경복은 일반병실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의식도 또렷했다. 이제 자가호흡이 가능해졌다. 코를 통해 기관에 삽입했던 호흡관(튜브)을 제거할 차례였다. 주치의인 정형외과 전공의와 간호사가 찾아와 사전 검사를 시작했다.
“원재 아빠, 이제 일반병실로 올라간대.” 장경복의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안심시켰다. 상황은 묘하게 돌아갔다. 간호사가 장경복의 가래를 뽑아내며 나직이 되뇌었다. “아직 이른 것 같은데, 아직 이른 것 같은데…” 장경복의 아내는 불안해졌다. “선생님, 오후에 하면 안 돼요?” 대답이 없었다. 장경복의 아내가 재촉하자 전공의는 볼펜으로 책상을 탁탁 치며 대꾸했다. “지금 테스트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전공의가 튜브를 당기는 순간, 장경복은 온몸을 뒤틀었다.
“(의사가) 콧줄(기관 튜브)을 이렇게 쭉 빼는 거예요. 제 앞에서 빼니까 아빠(남편)가 공중으로 탁 튀어올라와요. 기도가 막혔나 봐요. 공중으로 막 다 튀어 올라가더라고요.” 장경복의 아내 고정순은 남편의 몸부림에 소리를 질러댔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인터폰을 쥐어들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주말 점심시간, 국내 최대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 병동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그때가 점심시간이라 다 밥 먹으러 갔잖아요. 제가 막 벌벌벌 뛰면서 ‘어떡해, 어떡해, 엄마’ 소리를 지르고 방송을 하라고 그러니까 이제 그때 방송을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시간이 계속 흘러가잖아요.” (장경복 아내 고정순)
장경복은 급격하게 호흡곤란에 빠졌다. 훗날 “기도부종 내지 기도경련에 따른 기도폐색”으로 판단된 의료사고의 시작이다. 기록상 사고 발생 3분 뒤, 12시 45분 구내방송을 들은 의료비상팀이 달려왔다. 기관 튜브를 빼내던 정형외과 전공의는 응급 시술(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시도했다. 같은 과 선배 전공의가 달려와 손을 보탰다.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은 기도 확보에 실패한 상황에서 목 부위 갑상연골과 윤상연골 사이에 있는 윤상갑상막을 절개해 호흡관을 삽입하는 응급 시술을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기관 내 삽관에 실패해 이 응급 시술을 받는 환자는 1% 정도에 불과하다. 응급의료센터 내에서도 시행 빈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윤상갑상막의 위치를 정확히, 신속하게 찾는 게 가장 어렵다. 이 점이 성패를 가른다.
전공의들은 교과서대로 판단했지만 응급 시술은 실패하고 말았다.
장경복은 의식을 잃어갔다. 동공이 풀렸다. 체내 산소포화도는 20%까지 떨어졌다. 심장 마사지와 심폐소생술이 끊어진 맥박을 겨우 잡았다. 뒤늦게 도착한 이비인후과 의사가 기관을 절개하고 튜브를 삽입해 호흡을 확보했다.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는 장경복이 호흡곤란에 빠진 지 약 17분이 지난 뒤였다.
아들이 택시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모두 끝나 있었다.
▲장경복 씨의 아내 고정순 씨가 의료사고 당시 상황을 취재팀에 설명하고 있다.
식물인간 아버지, 장기입원의 시작
보통 산소 공급이 중단되고 5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시작된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사고 발생 초기만 해도 의료진은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그 당시에도 병원 측에서는 경미한 증상이라고 해서 저는 그걸 그냥 믿고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가) 또 일어나서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어요. 그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저희를 안정시키기 위한 말이었구나 하고 느껴지죠.” 아들의 기억이다. 이 사고로 ‘저산소성 뇌손상’ 진단을 받은 장경복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아산병원을 떠난 적도 없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그는 상급종합병원의 고민거리인 ‘장기입원환자’ 중 한 명이다.
장경복은 뇌손상 당시 갓 50대에 접어든 평범한 ‘아저씨’였다. 지금은 “지속적 식물인간과 뇌사의 중간 상태”에서 헤매고 있다. 스스로 숨을 쉬고, 눈을 뜨고 감으며, 잠을 자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의식을 상실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는 가정 경제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현재는 “노동능력상실률 100%의 영구장애” 처지다. 24시간 성인 남성 3명의 돌봄이 필요한 몸이다. 합병증 등을 막기 위해 계속 약물·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이른바 ‘보존적 치료’가 여명기간 내내 필요하지만 증상이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경복 씨가 서울아산병원 병상에 누워 있다.
2015년 12월 불의의 사고가 터지고, 한 달 동안 장경복의 아내는 아들과 함께 중환자실 바닥과 대기실에서 잠을 설쳤다. “12월 겨울인데 바닥에다가 그냥 얇은 거 깔고서는 이렇게 쭈그리고 자고 막 울다가 자다가... 아들이랑 얼마나 그런 시간을 보냈나 몰라.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제일 무섭고 두려워요.” 어느날, 장경복의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산병원 법무팀 직원이었다. 법무팀 직원은 장경복의 아들에게 ‘아버지 간병을 위해 간병인비와 물품(기저귀 등) 구입 비용은 지원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로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제안이었다.
같은 시기, 장경복의 아내는 남편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인 1인실로 옮기자는 병원 측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환자가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병실을 옮겨야 하냐”며 항의했다. 병실을 옮기더라도 다인실을 놔두고 입원비가 가장 비싼 1인실로 옮겨야 하는 이유도 따져 물었다. 그렇지만 병원 측의 설득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 가야 (환자가) 안정된다고, 일단은 거기에서 재활치료도 받고 해야지, 여기(중환자실) 있으면 재활치료도 못 받으니까 옮기자,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는 잘 모르잖아요. 거기 가야 재활치료도 받고 잘 치료가 된다는 줄로만 알았죠.” (장경복 아내 고정순)
병원 법무팀의 초기 대응과 약속은 가족들을 진정시키는 데 분명 효과가 있었다. 장경복이 1인실로 옮겨간 직후인 2016년 1월, 총 1천만 원 가량의 진료비 청구서가 아내에게 전달됐다. 병원 법무팀은 원무팀과 의사소통 착오가 있었다며 청구서를 회수해갔다고 한다. 그 이후 진료비는 단 한 번도 청구되지 않았다.
병원의 안내를 받고 간병인을 구했다. 하지만 매달 200만~300만 원의 간병인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이 역시 병원에서 매달 빠짐없이 장경복의 아내 계좌로 송금해줬다. 그때만 해도 훗날 병원이 진료비를 모두 내놓으라고, 간병비를 다시 돌려달라고 소송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늦은 밤 서울아산병원 병동에 불이 켜져 있다.
의료사고 책임을 병원에 묻다
장경복 가족은 의료진의 부주의 때문에 의료사고가 났다고 믿었다. 이들은 병원 측도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원만한 합의와 조정은 무산됐다. 사고 발생 반년이 지난 2016년 7월, 가족은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을 주장하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같은 해 9월, 의료사건 전담 재판부인 서울동부지법 민사13부의 심리로 1심 소송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그때만 해도 장경복의 가족들은 실감하지 못했다. 시간은 환자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장경복 측은 2차 수술 다음날, 당시 주치의였던 아산병원 전공의가 기관지 튜브를 빼낸 것은 의료진의 과실(주의의무 위반)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호흡 곤란 발생 이후 응급조치 과정에서도 과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의료진의 잘못 때문에 장경복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아산병원 측은 의료진의 과실이 아니라는 점을 집요하게 반박했다. 사전 검사를 문제 없이 마친 뒤 기관지 튜브를 뽑았고, 갑자기 기도폐색이 일어날 것을 의료진이 예상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특히 장경복이 기도가 막혀 호흡곤란에 빠진 직후, 전공의가 다시 기도를 확보하려 시도한 응급 시술의 실패 원인을 사실상, 장경복 탓으로 돌렸다.
아산병원은 환자 장경복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건 환자는 2015년 11월 28일 삽관된 튜브 제거 조치를 시행받을 당시 만 51세의 남성, 키 180cm, 체중 100kg, 신체질량지수(BMI) 30.86인 고도비만, 혈압 140/97mmHg인 고혈압 상태였고, 외래 초진을 기준으로 30년 동안 하루에 담배 1갑 이상을 흡연하고, 일주일에 소주 2병 이상을 음주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산병원 측 소송 대리인)
즉, 기도가 막혀 호흡곤란에 빠진 이유도, 뇌손상을 막을 수도 있었던 최초의 응급시술이 실패한 원인도 장경복의 신체 상태와 생활 습관 탓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의료진이 이 사건 환자의 기도확보를 위한 우선적인 응급조치법으로서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시행하였음에도, 이 사건 환자는 비만지수(BMI) 30.86의 고도비만에 30년 이상의 흡연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로 윤상갑상막을 용이하게 발견하기 힘든 신체상태에 있었으며 이런 이유 등으로 … 그 성공 가능성이 명확하지 아니하였으며” (아산병원 측 대리인)
다만, 관련 연구에 따르면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이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은 비만환자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갑상연골의 돌출 정도가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정확한 절개 위치를 찾기 어렵다는 복수의 연구 결과들도 있다. 그렇다면 만약 여성 환자가 장경복과 같은 응급 상황에서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을 받고 실패했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자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초음파 사용 여부가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의 성공 여부를 크게 가르기도 한다. 해부용 시신을 사용한 해외 연구에서 초음파로 윤상갑상막을 찾는데 걸린 시간의 중간값은 3.6초, 윤상갑상막 절개술에 걸린 시간의 중간값은 26.2초이며, 성공률은 95%였다.
“이 연구에서 체질량지수(BMI)와 걸린 시간 간의 관계는 없으며, 이것은 어려운 기도를 가진 환자도 보통의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사람과 비슷한 시간에 시술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햇빛 외, 2015)
연구들은 장경복이 처했던 촉박한 응급 상황에서는 초음파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의료진의 대비 방법 역시 연구돼 있다. 커티스(Curtis), 말린(Mallin) 등의 해외 연구 결과는 높은 BMI 지수를 보이는 사람 등에게 초음파를 이용해 미리 정확한 윤상갑상막의 위치를 표시해두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즉, 연구대로라면 장경복처럼 BMI 지수가 높은 환자, 비만인 환자도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의료사건 전문인 이인재 변호사가 장경복 씨 사건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기관 튜브 발관, 응급처치 성공에 불리한 고도비만 등의 건강 상태는 오히려 아산병원 의료진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변) 대표를 지낸 이인재 변호사의 견해다. 그는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법률자문을 맡은 경험이 있고, 현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 감정위원 등을 맡고 있다. 그는 판결서 등 사건 내용을 검토한 뒤 뉴스타파 취재팀에 답했다.
이 변호사는 "좀 더 들어가 보면 이 환자는 목이 두텁고 비만이라서 기관 발관이 실패하기 쉬운 환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점을 고려했다면 그 경험이 부족한 의사 한 명만 보낼 게 아니라 좀 경험이 많은 의사가 백업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기관 호흡 튜브 발관을 하고 응급 처치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환자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점이 있다고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당시 홀로 장경복의 기관 튜브를 빼다가 응급상황에 직면한 의사는 불과 1년차 전공의였다. 그런 그를 지휘·감독해야 할 1, 2차 수술 집도의 교수는 휴무 중이었다.
“예견할 수 없었던 일”
이렇듯 법정 밖에서는 장경복에게 유리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실제 법정 안 상황은 달랐다. 재판은 장경복과 가족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재판부는 튜브 발관 후 호흡곤란을 일으킨 원인 증상은 의료진이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고 발생 직전, 튜브를 뺄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려 실시한 통상적인 검사 결과가 양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아산병원 측 주장을 들여다보면, 거꾸로 의료진이 응급상황 발생 가능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인지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이 사건 환자에게 발생한 기도폐색의 원인은 기도부종(기도가 붓는 것을 말합니다) 내지 기도경련(spasm. 기도의 경련으로 기도가 막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말합니다)으로서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급성기로 발현되어…” (아산병원 측 소송 대리인, 괄호 안의 설명도 원문 그대로 옮김)
병원 측은 장경복에게 발생한 호흡곤란 원인 두 가지 중 하나로 ‘기도경련(spasm)’을 직접 지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도경련은 바로 전날 2차 수술 중에도 의심되는 증상 중 하나였다. 장경복의 2차 수술 다음날 작성된 진료기록에는 ‘수술 중 기도 분비물(secretion) 또는 기도경련(spasm) 때문에 기도 개방성이 좋지 않았다’(2015.11.27 intra op에서 마취과 의견에 따르면, Airway patency가 좋지 않았었음. d/t secretion or d/t spasm)는 마취과 전문의 의견이 실려 있다.
장경복을 담당한 의료진이 그러한 마취과 의견을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치의였던 전공의는 해당 진료기록에 서명을 남겼다. 그럼에도 전공의 등 의료진이 기관 튜브를 빼내기 전, 장경복에게 기도경련이 발생하거나 재발해 호흡 곤란에 빠질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통상적인 환자와 달리 응급상황 대비가 필요 없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재판에서는 중요한 쟁점이 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이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재판부는 또 장경복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한 직후, 전공의가 첫 응급 시술을 시도한 판단과 그 과정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장경복에게는 둘도 없는 참사였지만, 통계적으로는 열 명 중 한 명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의 경우 최근 연구들을 통해 해당 술기 자체의 실패율이 10% 가량임이 보고되므로, 술기의 성공 여부만으로 행위 자체의 적절 여부를 따질 수는 없다.”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서울아산병원의 응급조치 과정이 모두 적절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장경복이 살아남고 말았기 때문이다.
“역으로 갑작스런 기도폐쇄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높던 환자가 피고 병원 의료진의 적절한 응급조치를 통하여 뇌손상은 동반되었지만 생존한 것으로 예후가 호전되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1심 재판부 판결)
1심 소송에서 아산병원의 의료과실은 무엇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로써 병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됐다. 법원은 대신 병원이 위자료는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료진이 장경복에게 문제의 기관 튜브를 뽑기 전 “발관 후 후두부종을 포함한 기도수축에 의한 호흡곤란과 저산소성 뇌손상과 같은 발관 과정의 위험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었다. 장경복과 가족들은 조금 이기고 크게 졌다. 남은 가족은 이것을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병원의 잘못이 아니라면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1심 소송에만 3년이 흘렀다. 판결 선고가 있기까지 재판부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이들은 사고 발생 7년이 지난 지금도 아산병원의 잘못이라고 믿고 있다.
무너진 삶, 간병비가 끊기다
장경복의 아내와 자녀들은 항소했다. 병원과의 소송이 늘어지면서 가족들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장경복 부부가 입원 전 아들에게 맡기고 간 식당은 결국 문을 닫았다. 아들은 꿈이었던 대학로 연극 무대를 떠났다. “아버지 사고가 났을 때가 25살이었어요. 사고가 터지고 너무 힘들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식당 보조일을 하면서 생활비와 아버지 간병비를 보태고 있다. 그는 “어머니는 더 심한 정신적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장경복 씨의 아들이 뉴스타파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경복의 아내는 한 달에 보름 가까이 병실에 머물며 남편을 돌보고 있다. 틈틈이 공부해 요양보호사, 간병사 자격을 땄다. 자격증이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남편 곁을 지키느라 정시 출근과 근무를 요하는 직장은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소심 소송 기간은 1심 때보다는 짧아졌다. 이번에는 서울고등법원의 의료사건 전담 재판부(민사17-1부)가 판단을 맡았다. 항소한 지 정확히 2년을 채운 날,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했다. 결과는 한층 나빠졌다.
아산병원의 의료과실은 1심과 마찬가지로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반대로 장경복과 가족이 받아야 할 위자료가 무려 4분의 1로 삭감됐다. 1심에서 아산병원이 장경복 본인과 아내, 아들과 딸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인정된 위자료는 모두 8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아내와 아들, 딸에게는 위자료를 지급할 이유가 없다며 장경복 본인에 대한 위자료 2천만 원만 인정했다. 의료진의 설명을 듣지 못해 선택의 기회를 잃은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장경복 본인뿐이라는 논리였다. 장경복이 사고 직전까지 의식이 또렷했다는 사실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항소심에 이르자 아산병원 측이 반격에 나섰다. 1심 소송에서 우선 의료과실 책임을 벗은 것에 힘을 받았다. 병원은 이제 장경복을 상대로 반대 소송, 즉 반소를 제기했다. 병원 측은 5년 넘게 청구하지 않았던 진료비와 매달 보호자에게 지급했던 간병인비를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병비는 병원이 대신 내주고 있었을 뿐이며, 환자 측이 부당이득을 거둔 것이라고 했다. 병원 측 주장에 따르면 미납 진료비는 1억 4천3백만 원, 돌려받아야 할 간병비는 2억 5백만 원으로 합해서 3억 4천만 원에 이른다. 2015년 12월, 사고 발생 직후 보인 병원의 호의적인 대응과 약속은 장경복 가족만 기억하는 게 됐다.
재판부는 병원이 지급한 간병비는 장경복 측에 “착오 송금된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며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진료비에 대해서는 장경복 측이 진료비 전액을 면제받기로 합의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3년 치 진료비 6천8백만 원은 병원에 납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장경복 가족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병원에서 받아야 할 위자료보다, 내야 할 진료비가 더 커졌다. 위자료를 빼면 5천만 원에 가까운 빚만 떠안게 된 것이다. 아산병원은 올해 1월부터 장경복의 아내에게 간병비도 송금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는 기대를 걸었다.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기각됐다. 대법원은 아예 이 사건을 대법관들이 직접 심리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라고 결정했다. 이른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열 건 중 여덟 건(2018년 기준 76.6%)이 이렇게 처리된다. 더욱이 의료소송 상고 사건은 대부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결론난다는 게 의료사건 전문 변호사들의 중론이다.
“윤상갑상연골절개술이 성공하였더라면 저산소성 뇌손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항소심 소송에서 의료기록을 검토한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이다. 올해 초, 서울아산병원은 윤상갑상연골절개술 교육 영상을 제작해 이렇게 당부한다. “실제로 만져보면 (윤상갑상막의) 크기가 1cm 정도로 매우 작기 때문에 응급 상황에서 이 부분을 빠른 시간 내에 찾기 위해서는 자주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신속한 시술을 대비한 장비도 경험 없이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아산병원은 교육 영상을 제작한 이유가 “(전용 키트가) 응급기도 확보를 위해 원내에 구비되어 있지만 실제 사용해 볼 일이 거의 없어서 숙련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그 전공의도 많이 배웠겠죠. 목 수술을 한 다음에 기관지 튜브를 함부로 뽑으면 안 되는구나, 그 다음에 응급 상황, 호흡 곤란이 생길 수 있고 즉각적인 응급 처치를 해야 되는구나, 하는 걸 배웠겠죠. 아산병원 의료진으로서는 이런 희생되는 환자를 통해서 이렇게 위험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교육을 한 거죠. 이 환자의 희생을 통해서 더 조심할 수는 있었겠죠. 그런데 이 환자한테 감내하라는 희생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한 거죠.” (박호균 변호사/ 장경복 측 소송 대리인)
▲식물인간이 된 장경복 씨가 병상에 누워 있다.
병원을 떠날 의무
지난해 말 끝난 항소심 소송에서 아산병원은 단지 진료비와 간병비만 받을 생각이 아니었다. 병원은 장경복을 퇴원시키기 위해 ‘병실 퇴거’를 청구했다. 장기 입원 중인 환자에 대한 진료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법원의 판결을 요청한 것이다. 의료소송 사건에서도 흔치 않은, 대형병원으로서도 최후의 소송 전략이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병원 측 주장을 적극 받아들이고 이렇게 판결했다. “장경복은 이 사건 병상에서 퇴거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재판부가 인정한 진료비 미납 채무는 병원 측이 퇴원을 압박하는 구실이 됐다. 장경복의 아내는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두렵다. “병원에서 전화만 오면 막 심장이 오그라들고 어쩔 때는 막 휴대폰을 밀어버려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아산병원 법무팀 담당자는 장경복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희는 비용적인 측면도 다 받아야죠. 그래서 집이든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다 조회해가지고요. 가압류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항소심 재판부는 왜 식물인간 장경복이 아산병원을 떠나야 한다고 판결했을까.
장경복의 아들은 최근 뉴스타파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 한 단락을 새로 읽게 됐다. 아들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폭력적인 말이죠.”
장경복 사건에서 서울고법 재판부는 역대 병실 퇴거 청구 소송 판결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