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우크라이나 지원 의혹' 한국산 포탄 독일 도착 확인

2023년 06월 22일 20시 00분

미국 기밀문서에 담긴 한국산 155mm 포탄 운송 계획

2023년 4월,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유출됐다. 여기엔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한국 대통령실을 도·감청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록과 함께 한국산 155mm 포탄을 유럽으로 운반하는 일정을 상세하게 담은 문서도 있었다.
제목은 ‘ROK 155 Delivery Timeline(330K)’이다. 한국산 155mm 포탄 33만발 운송 일정표라는 뜻이다.
한국의 155mm 포탄 33만발 운송 일정표.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 중 하나다.
문서 제목 바로 위에는 ‘비밀(SECRET)’, 즉 ‘2급 비밀’이라는 붉은 글씨가 적혀 있다. 올해 2월 27일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는 한국의 155mm 포탄 33만 발을 한국에서 언제 어떻게 어디로 운송할지를 상세하게 도표로 정리하고 있다.

뉴스타파, 4월부터 155mm 포탄 운송 선박 추적 시작

뉴스타파는 155mm 포탄 비밀 운송 계획이 실행될 것으로 보고, 지난 4월부터 포탄 운송 가능성이 높은 선박 추적에 나섰다. 
기밀문서에 따르면 포탄 운송은 항공과 선박, 두 가지 운송 수단으로 진행한다고 돼 있다. 항공 편으로 모두 97회에 걸쳐 153,648발, 선박 편으로는 2척의 배(기밀문서에는 vessel 1과 vessel 2로 표기)로 각각 129,000발과 47,352발이다. 합하면 모두 330,000발이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미국 기밀문서 한국산 155mm 포탄 운송 계획
취재진은 일단 출발지와 도착지 정보 등 최소한의 단서가 있는 선박 운송에 주목했다. 한국 진해(Jinhae)항을 출발해 독일 노르덴함(Nordenham)항에 도착하는 경로다. 노르덴함항은 유럽·아프리카 관할 미 육군(United States Army Europe and Africa)이 포탄과 군 장비 등의 군수 물자를 운송하는 항구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미군의 중요 병참 기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해항 출항한 선박 전수조사

뉴스타파는 우선, 포탄 운송 선박을 찾기 위해 가능성이 있는 선박들을 모두 조사했다. 문서 작성일로 추정되는 2월 27일 다음날에 시행명령이 발동됐다면 첫 번째 선박(First Vessel)은 D+27, 즉 3월 27일에 출발한다. 이를 토대로 진해항에서 3월 27일 이후 출항한 선박을 모두 찾아 분석했다.
취재진은 해양수산부 출항 선박 목록에서 4월 29일 진해항 군용물량장을 떠난 것으로 나오는 ‘케이프 녹스(CAPE KNOX)’호 등 몇 척의 배를 추적 대상으로 압축했다. 케이프 녹스호는 미국 국방예비함대 소속으로 전쟁이나 긴급사태 시 군대와 군수물자를 신속하게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 화물적재 기준으로 3만DWT급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배였다.
케이프 녹스호의 출항정보 (출처: 해양수산부 PORT-MIS의 선박입출항현황)
하지만 해수부 정보에는 이 배의 다음 목적지(차항지)가 ‘공해상(OCEAN DISTRICT)’으로만 기재돼 있어 더 이상의 정보를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케이프 녹스호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로 했다.

미국 선박 ‘케이프 녹스(CAPE KNOX)’호 항로 추적

AIS 신호에 따르면 케이프 녹스호는 한국 시각으로 4월 29일 오후 3시 진해항을 출발하여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5월 1일 오전 10시 20분쯤(2023-05-01 01:16:39 UTC) 대만 동쪽 해역을 지나던 중, AIS 신호가 사라졌다.
닷새 뒤인 5월 5일 오후 9시(2023-05-05 09:58:59 UTC) 말레이시아 부근에서 다시 AIS 신호가 포착됐다. 이후 케이프 녹스호는 인도양과 아덴만을 지나 5월 22일 수에즈 운하에 도착했다. 
지중해에 접어든 배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5월 24일부터 며칠 머물다 5월 29일 오전 0시(2023-05-28 15:01:45 UTC) 항해를 재개했다. 그리고 진해항에서 출발한 지 39일만인 6월 6일, 독일 노르덴함 앞 바다에 다다랐다.
케이프 녹스호는 4월 29일 한국의 진해항을 출발해 39일간의 항해 끝에 6월 6일 독일 노르덴함항 앞바다까지 이동했다.
뉴스타파는 진해항 군용물량장에서 155mm 포탄을 선적한 것으로 보이는 선박 중 하나인 케이프 녹스호가 실제 독일 노르덴함항 인근까지 간 사실을 확인하고, 이 배가 접안할 것으로 보이는 부두를 관련 자료 분석을 통해 특정했다. 그리고 취재진을 노르덴함항 남쪽에 있는 이 부두로 보냈다. 
노르덴함은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500km 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이동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취재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케이프 녹스호는 아직 노르덴함 앞바다에 정박 중이었다. 그런데 케이프 녹스호가 들어올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부두에는 이미 다른 배가 한 척 접안해 있었다. 배 이름은 ‘젬 스테이트(GEM STATE)’.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이 선박도 케이프 녹스호와 마찬가지로 미군이 비상시에 군수 물자 등을 수송하는 미국 국방예비함대 소속으로 드러났다. 화물적재 기준으로 1.7만톤(DWT)급이다.

미국의 또다른 국방예비선박, ‘젬 스테이트(GEM STATE)’호

이 젬 스테이트호가 미국 기밀문서에 나와있는 ‘vesel 1’, 즉 1번 선박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당초 뉴스타파가 해양수산부 선박입출항 정보를 전수 조사했을 때 젬 스테이트호는 어떤 이유에선지 진해항 출항 선박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  
취재진은 해외 해운정보 시스템으로 젬 스테이트호의 운항 정보를 확인했다. 그 결과 젬 스테이트호는 지난 4월 19일 오후 1시쯤(2023-04-19 04:07 UTC) 진해항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케이프 녹스호보다 열흘 앞서 진해항에서 출항한 것이다. 
출항 뒤 곧 사라졌던 젬 스테이트호의 AIS 신호는 말레이시아와 수에즈 운하 부근에서 다시 잡혔다. 지브롤터 해협부터는 AIS 신호가 끊김없이 전송됐다. 그리고 6월 3일 오후 6시쯤(2023-06-03 08:54 UTC)에 노르덴함항의 남쪽 부두에 도착했다.
젬 스테이트호의 운항 경로. 이 배는 4월 19일 한국의 진해항을 출발해 6월 3일 독일 노르덴함항 남쪽 부두에 도착했다.
지난 6월 6일 케이프 녹스호의 노르덴함항 입항을 확인하기 위해 현지로 간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배에 앞서 이 항구도시 남쪽 부두에 접안해 하역 작업을 하고 있는 젬 스테이트호를 포착했다. 배에서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내리고 있었고, 뭍에는 컨테이너가 줄지어 쌓여 있었다. 컨테이너 대부분은 부두에 연결된 철도를 통해 어디론가 실려갔고, 일부는 트럭으로 운송되고 있었다. 부두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은 취재진과 만나 노르덴함이 일종의 미군 병참기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르덴함항에는) 탄약이랑 무기가 항상 들어옵니다. 미군은 여기 정착했을 때부터 (물러난) 지금까지도 탄약이랑 무기를 들여옵니다. (중략) 지금은 한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배들이 들어와요. 우크라이나에 운반할 탄약들을 기차에 실어서 폴란드를 통해서 보내죠.”

노르덴함 주민, 마리오 슈뢰더(Mario Schröder)
컨테이너 하역작업 중인 '젬 스테이트'호
진해항에서 싣고 온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끝낸 젬 스테이트호는 6월 8일 오전 2시 19분쯤(2023-06-07 17:19:00 UTC), 노르덴함항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9일 오후 6시 30분(2023-06-09 09:30:00 UTC), 젬 스테이트호가 접안했던 바로 그 자리에 케이프 녹스호가 들어왔다. 1번 선박 젬 스테이트가 한국에서 싣고 온 컨테이너를 다 내리고 부두를 비울 때까지 케이프 녹스호가 노르덴함 앞바다에서 며칠간 닻을 내리고 대기하다가 입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젬 스테이트'호가 접안했던 바로 그 자리에 입항한 '케이프 녹스'호

진해항에서 온 컨테이너엔 ‘폭발물’ 표식

뉴스타파가 확인한 미국 국방예비함대 소속의 두 선박에는 동일한 컨테이너가 가득 실려있었다. 컨테이너에는 폭발물(Explosive)를 의미하는 ‘Explosive 1.3 C 1’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1.3C 1’은 미국 연방 운송규정의 화물 분류 기호로 ‘추진성 폭발물, 또는 기타 폭연 폭발물이나 그런 폭발물을 함유한 물품’을 의미한다. 
지난 4월 18일, MBC는 국내의 한 군 탄약창에서 진해항으로 155mm 포탄이 운송된 사실과 함께 행선지가 독일 노르덴함이라는 화물의 ‘위험물 신고’ 서류를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뉴스타파가 독일 노르덴함항에서 포착한 젬 스테이트호 하역 컨테이너의 외관과 위험물 표식도 이와 동일했다.
‘젬 스테이트’호에서 하역한 컨테이너의 외관(오른쪽)과 표식이 MBC가 보도한 포탄 운송 컨테이너(왼쪽)와 일치한다.
종합하면 뉴스타파가 확인한 미국 국방예비함대 소속 두 선박의 이동 일정은 미국의 기밀문서 ‘한국 155mm 포탄 운송 일정표(33만)(ROK 155 Delivery Timeline(330K))’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지난 5월 24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밀 협정에 따라 한국은 미국으로 포탄을 이전하고, 미국은 이를 차례로 우크라이나로 전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기밀문서 내용과 젬 스테이트호, 케이프 녹스호의 이동 일정이 대부분 일치한다.

윤석열 정부, “위조다, 확인해 줄 수 없다” 일관

뉴스타파는 미국 기밀문서 내용대로 한국의 155mm 포탄이 독일 노르덴함항으로 간 것에 대해 국방부에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 문건이 사실이라는 것이 미국에서 확인이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중략) 그러니까 그런 문서에 대해서 우리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고, 뉴스타파에서 취재한 것은 저희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저희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국방부 대변인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태도는 앞서 언급한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24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33만 발 유럽으로 수송 중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수송이 완료되었냐”는 질의에 “팩트가 좀 틀립니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국방부도 정례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관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고, 또 5월 24일 자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말씀하시는데 그 보도 내용에 정확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로 확인되거나 공개된 사안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은 지난 4월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가 유출되었을 때부터 계속돼 왔다. 유출 기밀문서에서 한국의 155mm 포탄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김성한과 외교비서관 이문희의 대화록 및 포탄 운송 일정표 등이 나오자 국가안보실 1차장 김태효는 위조 문건이라고 주장했다.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되었다. 거기에 대해서 평가가 일치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4월 11일)
윤석열 대통령도 여기에 가세했다.
(“워싱턴과 서울은 이 테이프(대화록)가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이 한국을 염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설명이 있을까요?”)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친구를 염탐(spying on)하나요?”) 
“일반적으로는 친구끼리 그럴 수는 없지만, 국가 간 관계에서는… (잠시 침묵)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가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NBC 인터뷰, 4월 25일)
미국 NBC 앵커가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 의혹에 대해 질문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는 취지로 답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해외 언론 인터뷰에서 기밀문서 내용을 부인했지만, 미국에서는 연방수사국(FBI)이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미군 사병을 체포까지 한 상황이다. 기밀문서 유출 당시에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문서의 진본 여부에 대해 “모든 문서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면서도 “(유출된 문서가) 가짜 문서(spurious documents)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밀실 속 국가안보

“대규모 민간인 공격,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 등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로이터 인터뷰, 4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무기 공급의 시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라고 말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무기 공급을 출처에 관계없이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반러시아 행위로 간주”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안보 정책을 윤석열 정부의 통제 속에서 국회에서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김병주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국방 핵심 전력 중 하나인 155mm 포탄의 우리 군 비축량이 비축 기준인 2개월치에 못 미치는 상황인데도, 국내 155mm 포탄의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폴란드 우회 수출 등과 관련한 정보를 국방위와 전혀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를 일체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에서 강하게 통제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부 실무자들이나 고위급들은 위에서 아주 강하게 통제를 하고 있다는 답변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당연히 국방부가 국방위에 보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병주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커져가는 우크라이나 155mm 포탄 지원 의혹

지난 4월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는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김성한과 외교비서관 이문희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155mm 포탄 33만 발을 어떻게 지원할지 논의하는 대화록 문서가 포함돼 있었다. 미국 CIA가 도청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대화록에서 두 사람은 미국의 요구에 따르되, 살상무기 직접 지원이라는 부담을 피하기 위해 폴란드를 경유해 보내는 방법을 검토한다.
러시아 군사전문매체 ‘Rybar’는 독일로 들어온 군수물자가 폴란드 접경까지 수송되는 철도 경로를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 군사전문매체 'Rybar'는 독일에서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군수 물자가 지원되는 경로를 보도했다. 독일 북부의 노르덴함항과 남부의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로 들어온 무기와 포탄 등을 폴란드 접경 지역인 호르카까지 수송하는 철도 경로를 공개한 것이다.  'Rybar'는 CNN 등 서방언론도 종종 인용하는 매체다.
여론을 의식해 한국산 155mm 포탄 33만발을 폴란드를 경유해 우크라이나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국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대화 내용을 떠올리면 시사하는 점이 크다.
제작진
취재오나영
촬영최형석
독일현지 취재김복중
독일현지 촬영김찬, 김에녹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