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경험...스포츠가 분단극복의 촉매였다
2018년 02월 14일 20시 46분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대다수 한국인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이른바 ‘매력 공세’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시도가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됐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전례없이 열린 자세를 보이면서, 남북은 이제 ‘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다가선 상태다. 이같은 진전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둘러싼 북미 간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모든 일본 정치인들이 아베 총리가 강력하게 미는 미국의 ‘대북 최대압박 전략’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총리를 역임한 진보적 정치인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강경노선을 채택한 점, 그리고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지지하는 점을 들며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북한 모니터링을 위해 미군과 협력하고 있다는 최근 보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또 기자가 최근에 발견한, 지난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일본이 한국의 해안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미국 정부 문서에 대해서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D.C. 시내에 위치한 리츠칼튼 호텔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결국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며 “그들[남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에 대해 상당한 이질감을 느끼고, 과거에 우리로부터 침략을 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일본과의 “군사 동맹을 그다지 희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경제 제재와 군사행동 위협을 토대로 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최대압박’ 전략에 대해 하토야마 전 총리는 본질적으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일본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킬 것이 아니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 협력해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중국이 보증하는 제안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는 대가로, 현재 3월 말에 시행될 예정인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아무런 위협도 없기 때문에 [북한 측이]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며 “북한 입장에서도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 동결이 충분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와의 인터뷰는 지난 2월 6일, 그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와 관련된 민감한 문제에 대해 미국 정치인들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그의 아베 총리 비판은 시의적절했다. 바로 같은 주에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입장을 놓고 아베 총리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0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한미 군사훈련을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이 자국에 대한 도발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을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이슈는 우리 주권에 관한 문제고, 내정 간섭의 문제"라며 아베 총리의 요구를 차갑게 일축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올림픽 이후 일시적인 군사훈련 연기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오랫동안 일본 정계에서 활동한 인물로, 그의 할아버지 역시 1950년대에 일본 총리를 지냈다. 하토야마 총리의 경험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진보적 정치인으로서 그는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 안보 문제에 있어 미국 정부와 입장 차이를 보였을 때 겪은 것과 비슷한 정치적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북 포용정책과 관련하여 이와 유사한 압박을 받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그가 이끄는 구(舊)민주당이 2009년 8월 일본 총선 당시 집권당인 아베의 자민당을 누르고 압승을 거두면서부터 시작됐다.
민주당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자민당의 맹목적인 헌신과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당과 자민당 출신 의원들이 모여 결성한 정당이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많은 일본 국민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한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 해병대의 철수를 협상함으로써 냉전기 미-일 관계 재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민주당은 또한 미국 핵잠수함이 아무런 제한 없이 일본의 항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미국 정부와 자민당 간 합의를 포함한 기타 다른 비밀 합의를 조사하고 공개하겠다고 공약했다. 국제적으로 민주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지역에 가는 미국 함선에 연료를 보급해주는 일본의 역할을 종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당시 오바마 정부에서 외교 정책을 책임지고 있던 미국 정부관료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거의 즉각적으로 하토야마 전 총리와 민주당이 공약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토야마 정부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미국이 노무현 정부 당시 한국에 가했던 압력과 거의 판박이였다.
기자는 지난 2016년 출간된,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미국 외교전문을 바탕으로 한 책인 “위키리크스 파일 (The Wikileaks Files: The World According to US Empire)”의 동아시아 관련 장에 미국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가한 정치적 압력에 대해 기록했다. 이 장의 첫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미국 측이 가한 압력과, 새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한미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미국 측에 약속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한 외교전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위 참모가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한미관계를 훨씬 잘 다룰 것이며, 한국은 ‘완전히 다른 국가가 될 것'”이라는 약속한 사실을 인용하고 있다. 해당 외교전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은 ‘단순 유화정책'에 불과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이 참모는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장을 역임한 김우상 연세대 교수다.
미국 정부는 하토야마 전 총리를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은 하토야마가 총리로 선출되기 3개월 전인 2009년 6월부터 이미 미국 정부가 커트 캠벨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와 미셸 플로니 전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을 앞세워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를 변경하는 것을 방지하는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하토야마가 이끄는 일본 민주당은 수년 전 집권 자민당이 일본 자위대를 미국의 해외 군사작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 국방부의 지원군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시행한 일본 내 미군기지 시설의 대대적 재배치를 무효화하고자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미국은 이런 계획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한 미국의 반응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 상세히 나와 있다.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플로니 당시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에게 전달한 메모에서 “자민당의 총선 참패로 인해 우리와 일본과의 동맹관계에 불확실성의 요소가 등장할 것"이라고 적었다. 해당 고위 관계자는 플로니 차관에게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일본 자위대 역할의] 탈바꿈과 재배치 계획 시행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할 것"을 지시했다.
이 기간 동안 캠벨 전 차관보는 일본에 자주 방문하였는데, 이는 주로 하토야마 정부가 자민당 정권 시절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주둔한 미 해병대 병력을 줄이는 대신 오키나와 북부에 위치한 헤노코에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게 해준다는 내용의 합의를 번복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수년 간 미군이 자행한 범죄와 성폭행 사건, 그리고 미군 항공기 추락사건을 겪으면서 후텐마 기지 폐쇄를 요구해왔다.
미국 측의 압력은 먹혀들었다. 이듬해인 2010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관한 합의를 변경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하토야마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막강한 관료들이 미일 동맹을 재정립하고자 했던 자신의 노력을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상 자민당 정권을 움직인 것은 실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이었으며, “관료들은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려고 애쓰고, 미국이 원하는 것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등 항상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다시 총리로 선출된 후 현재까지 일본을 이끌어 왔다. 그의 지도 하에 일본은 해외 군사행동에 대한 일부 제한을 풀고, 북한을 감시하기 위해 미군과 매우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아사히 신문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2016년부터 “북한이 국제 제재를 우회하려는 시도를 좌절시키기 위해" 한반도 근처 공해상을 순찰해 왔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북한에 관한 정보를 미군과 공유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일본해에서 해상자위대는 미군과 함께 각자 책임지역을 순찰한다.”
그러나 한반도 근처에서 이루어지는 미-일 간 군사협력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나는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밀해제 문서를 정리하던 중, 1980년 5월 일본 해상자위대가 한국군을 대신하여 한국 해안을 감시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CIA 문서를 발견했다. 이는 아마도 광주항쟁 중 북한의 침투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가 미태평양 합동정보본부로부터 입수한 이 문서는 미국 정보요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1980년 5월 23일자로 되어 있다. 이 문서는 “현재 남한에 대한 북한 정규군에 의한 침투 위협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전두환의 군대가 광주항쟁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정규군이 해상을 통해 남한에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서는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 해상자위대가 한국의 남서쪽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만약 침투가 발생한다면 “감시가 삼엄한 비무장지대보다는 아마도 해상을 통한 침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문서는 또 해안경비대에 해당하는 일본 해상보안청이 “향후 감시 태세 강화를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적고 있다. 더 나아가 5월 23일부터 “일본 해상자위대가 일본해 상공을 지나는 정찰비행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문서들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에 항복한 이후 한반도와 관련된 군사 활동을 수행했다는 가장 초기의 증거에 해당한다. 나는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이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나는 한국인들 입장에서 일본 해상자위대가 자신들의 영해 또는 영공에 들어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인들은 북한보다도 일본의 해상자위대에 더 큰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한국에서 미군과의 협력에 열의를 보이는 것도 일본을 군사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그의 꿈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는 ‘내가 강국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터무니없는 야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일본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참여를 제약하는 일본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물론, 아베는 과거 누구도 일본을 강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강국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강한 정치인이란 군사강국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 국가들과 함께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에 대해 그는 “그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취재: 팀 셔록
번역: 임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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