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드릴 이것은 증상이 전혀 없습니다. 또 돌연사의 80~90%는 대부분 이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혈관 여드름입니다.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아침 8시 55분. JTBC의 아침방송 ‘TV정보쇼 알짜왕’에서 건강 정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패널로 나온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병에 대해 설명하자 연예인 출연진들은 웅성대며 무서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흐르고, ‘혈관 여드름’의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했다. 바로 아보카도 오일이다.
교양프로그램에 나온 아보카도 오일, 옆 채널 홈쇼핑에서 동시에 팔았다
식품영양학 교수 등 전문가 패널들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영양의 왕”, “착한 지방 불포화지방산이 87.9%나 함유됐다”는 등 찬사를 늘어놨다.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식물성 기름의 등급을 소개하며 ‘엑스트라 버진 등급’을 강조해 줬다. “아보카도 오일 엑스트라 버진은 생으로 먹어도 좋고, 가열해서 먹어도 좋아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패널의 설명.
▲JTBC 아침방송 ‘TV정보쇼 알짜왕’ 195회(2020년 11월 12일 방송)
방송이 끝나갈 무렵인 9시 25분. NS홈쇼핑에서는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인 종근당건강의 아보카도 오일 판매 방송이 시작됐다. JTBC 건강 교양 프로그램에서 강조했던 ‘엑스트라 버진’ 등급이 방송 제목에도 박혀 있었다. 판매되는 제품은 JTBC 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혈관 질환 환자가 치료를 위해 다양한 형태로 복용하고 있다는 제품과 같았다.
▲NS홈쇼핑 편성표. JTBC 알짜왕 방송이 끝나는 9시 25분부터 종근당건강의 엑스트라버진 아보카도오일을 팔기 시작했다.
이런 편성은 우연이 아니다. JTBC의 채널번호는 상당수 지역에서 15번. NS홈쇼핑은 12, 13, 14번 정도에 포진해 있다. 아보카도 오일의 효과를 홍보하는 교양 프로그램을 본 다음에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가 바로 앞 뒤에 있는 홈쇼핑 채널에서 똑같은 제품을 만나도록 사전에 설계된 것이다.
이른바 방송-홈쇼핑 연계편성이다. 아보카도 오일 사례는 전형적인 건강식품 연계편성 사례다.
방송사는 아보카도 오일 제조업체로부터 협찬을 받아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이때 방송에서는 제품의 로고나 제조업체 이름 등의 정보를 밝히지 않는다. 아보카도 오일 방송에서도 종근당건강의 제품 로고는 희미하게 모자이크 처리돼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이 ‘협찬’을 받은 업체나 제품에 대해 광고 효과를 주는 것이 방송법에 따라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연계편성’ 형태로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주와 방송사는 이러한 규제를 홈쇼핑을 통해서 피해 간다. 옆 채널 홈쇼핑에서 같은 시간에 교양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상품을 파는 방법으로 사실상 광고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방송에서는 명시적으로 ‘광고’라고 밝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홈쇼핑 연계편성은 시청자를 기만하는 방송사의 이른바 ‘뒷광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JTBC가 홈쇼핑과 연계편성한 상품… 방송 사흘 전에는 중앙일보에 기사형 광고 게재
물론 소비자도 바보는 아니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지갑을 열기 전에 검색은 필수. 그러나 광고주도 만만치 않다. 이날 홈쇼핑을 보고 상품을 살까 말까 고민하던 시청자가 포털 사이트에서 ‘아보카도 오일’을 검색했다면, 아마도 한 기사를 마주쳤을 것이다.
방송 사흘 전인 11월 9일 나온 이 기사는 ‘착한 지방’, ‘불포화지방산’, ‘오메가3’, ‘샐러드와 곁들여’, ‘발연점이 높다’ 등 JTBC 알짜왕이 홍보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사가 실린 매체는 JTBC의 모기업인 중앙일보다. 중앙일보의 ‘아보카도 오일’ 기사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로부터 사실상 광고인데도, 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고 기사인 것처럼 포장한 ‘기사형 광고’로 적발돼 경고처분을 받았다.
바야흐로 ‘뒷광고’의 시대다. JTBC 알짜왕처럼 겉으로는 시청자를 위한 건강 교양 프로그램인 것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협찬을 받은 건강기능식품을 홍보할 의도가 담긴 가짜 교양 프로그램이 많다. 독자에게 유용한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광고비를 받는 게 주 목적인 기사형 광고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기만적인 ‘뒷광고’들은 아보카도 오일 사례에서 봤듯 채널 간, 또는 매체 간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소비자의 무의식을 사로잡으려 노력한다.
뉴스타파는 시민언론단체인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2020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 기사 등을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해왔다. 기만적인 방송-홈쇼핑 연계편성, 협찬 광고 등으로 인해 위협받는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프로젝트 제목은 ‘광고의 그물망’이다.
뉴스타파-언론인권센터 ‘광고의 그물망’ 프로젝트
광고의 그물망 프로젝트 팀은 모니터링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범위를 미리 좁히지 않고, 다양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건강 정보,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경제 정보 프로그램 등을 모니터했다.
먼저 건강 교양 분야에서는 다양한 채널의 프로그램 10개를 선정해서 홈쇼핑 연계편성 여부를 살펴봤다.
모니터링 기간 동안 가장 홈쇼핑 연계편성 횟수가 많은 프로그램은 채널A의 ‘나는 몸신이다’였다. 나는 몸신이다는 2020년 10월부터 11월까지 약 4주 동안 ‘여주’, ‘아르간 오일’, ‘시서스’ 등의 제품을 대상으로 17번이나 홈쇼핑과 연계편성됐다.
프로젝트팀은 모니터링 과정에서 7개 홈쇼핑 업체가 아닌 티커머스 홈쇼핑 채널이 연계편성에 활용되는 사례도 발견했다.
예능 분야에서는 건강 교양 프로그램에서와 같은 연계편성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퓨리케어 정수기’, ‘연기가 나지 않는 안방 그릴’ 등의 상품이 간접광고나 협찬의 형태로 자주 등장했다. 이 상품들은 수시로 홈쇼핑에서 판매되며, 예능프로그램과 하루 정도 시차를 두고 방송되는 등 ‘징검다리’ 편성의 모습을 보였다.
씨스팡 사 ‘혈관팔팔 피부팔팔’도 홈쇼핑 연계편성과 기사형 광고 동시 활용
취재진은 방송통신위원회가 펴낸 연계 편성 보고서 등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는 중에 낯익은 사례를 발견했다. 바로 씨스팡 사의 ‘혈관팔팔 피부팔팔’이다. 이 제품은 뉴스타파가 기사형 광고 문제를 연속 보도할 때, 가장 기만적인 기사형 광고 사례로 언급한 제품이다.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씨스팡의 '혈관팔팔 피부팔팔' 기사형 광고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는 조선일보에 실린 이 기사들이 씨스팡의 ‘혈관팔팔 피부팔팔’ 제품을 홍보하는 기만적인 기사형 광고라고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 중 하나는 비슷한 내용의 홍보 기사가 한 달에 평균 한 건씩 꾸준히 나왔다는 점이다.
‘혈관팔팔 피부팔팔’ 기사형 광고는 구성과 내용 면에서 대체로 비슷했다. 앞 부분에서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을 소개하고, 뒷부분에는 “특허받은 칸탈로프 멜론” 성분으로 만든 이 제품을 복용하면 심혈관계 질환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이다.
이 제품도 2018년 7월 건강 교양프로그램과 홈쇼핑에 연계 편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사는 기사형 광고를 실어준 조선일보 계열사인 TV조선. TV조선 '내 몸 사용 설명서' 197회에 방영된 칸탈로프 멜론에 관한 광고성 멘트들은 조선일보 기사형 광고에 실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허받은 칸탈로프 멜론 추출물의 효과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특히 의학전문기자 패널의 입을 빌려 “혈관벽 두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됐다”는 의학상식과 배치되는 내용을 내보내기도 했다.
혈관팔팔 피부팔팔 제품의 기사형 광고, 건강 교양 협찬 방송의 공통점이 바로 ‘혈관벽 두께를 줄여준다’는 식의 허위과장 표현이다. 건강기능식품을 '정식'으로 광고할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내용을 과장 없이 광고해야 한다. 씨스팡 사는 기사형 광고와 협찬을 통해 이러한 규제를 피해 나갔다.
건강기능식품을 홍보하는 기사형 광고나 방송-홈쇼핑 연계편성 모두 일종의 ‘뒷광고’다. 그리고 아보카도 오일이나 혈관팔팔 피부팔팔 사례와 같이 뒷광고를 선호하는 광고주는 기사형 광고와 방송 협찬-연계편성을 동시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TV조선-조선일보나 JTBC-중앙일보가 보여준 ‘뒷광고 패키지 판매’는 언론사들이 이런 돈벌이에 편승한 결과다.
뉴스타파는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모니터링하고 분석한 ‘광고의 그물망’ 프로젝트 결과물을 3월부터 보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