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정부의 고질적 턴키거래...감춰진 기사형 광고
2019년 11월 01일 17시 30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 -편집자 주 |
지난 10월 22일자 조선일보 건강 관련 섹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기사가 실렸다.
'혈관팔팔피부팔팔'은 경동맥 혈관벽 두께를 감소시켜 근본적인 혈관 관리에 도움을 준다...
특허 받은 칸탈로프 멜론추출물은 SCI급 논문 수십 편과 수백 편에 달하는 해외 임상 연구에서 뇌졸중, 뇌출혈, 고혈압, 동맥경화, 뇌경색, 급성 심근경색, 협심증, 관상동맥 질환, 치매, 우울증 등의 효과를 입증 받았다.
한 건강기능식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내용이다. 혈관벽 두께를 감소시켜 준다는 이 획기적인 제품은 (주)씨스팡사가 팔고 있는 ‘혈관팔팔 피부팔팔’. 기사에 담긴 효능만 보면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다.
취재진은 의약 분야 전문가들에게 이 기사를 보여주고 이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이 사실인지 물었다. 전문가들은 황당해 했다.
대사질환을 개선했더니 혈관벽이 줄어들었다는 등 간접적인 효과로 혈관벽이 조절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혈관벽에 직접 작용해서 혈관벽을 얇게 하는 그런 작용은 제가 아는 의약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건강기능식품으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부적절합니다.
한마디로, 건강기능식품은 물론 의약품 중에서도 ‘혈관벽 두께를 직접 감소시키는 약’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조선일보 기사가 허위 과장광고에 해당한다는 설명. 이 기사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 결과, ‘기사형 광고’로 분류돼 경고처분을 받았다.
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 식품을 광고하려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하 식품표시광고법)’에 명시된 규제를 따라야 한다. 광고 게재 전에 ‘자율심의기구’에서 사전심의도 받도록 돼 있다. 허위·과장 광고 등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국민 건강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식품표시광고법(8조)은 ‘부당 광고’ 사례를 이렇게 정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주)씨스팡사의 건강기능식품 ‘혈관팔팔피부팔팔’ 광고기사는 ‘자율심의기구’의 심사를 피했다. 광고가 아닌 기사형태로 제작, 유포됐기 때문. 허위·과장 광고를 못하게 하는 식품표시광고법을 기사라는 이유로 피한 것이다.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의료기기 등의 안전을 감시 감독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관계자는 “만약 이 기사 내용이 광고로 나갔다면, 식품표시광고법에 저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다든지, 질병을 치료한다든지 하는 등의 표현은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에 쓸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안 됩니다. 따라서 ‘혈관팔팔피부팔팔’ 광고기사 내용이 만약 일반광고에 들어 있었다면, 당연히 심의를 통과할 수 없는 거죠.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공개하는 ‘기사형 광고 심의결정 내역’에는 이런 식의 ‘부당 광고기사’가 여러 건 들어 있다. 조선일보에 실린 (주)씨스팡사의 또 다른 건강기능식품 ‘관절팔팔’ 광고기사도 그 중 하나다. 기사에는 이 제품이 “천연재료로 만들어져 관절염 의약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위장장애가 없어 속이 편한 제품”이라고 소개돼 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심의관계자는 이 기사내용에 대해 “자세한 건 심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문구만 보면 부당 비교 판정을 받을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인 목원대학교 권혜영 교수의 의견도 비슷했다.
위장장애가 없다는 부분도 문제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은 엄격한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위장장애가 없는지는 검증된 적이 없습니다.
뉴스타파 집계 결과,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2019년 상반기 6개월 동안 주의나 경고 처분을 내린 식품 관련 ‘기사형 광고’는 모두 529건, 이 중 건강기능식품을 홍보한 ‘기사형 광고’는 147건에 달했다.
언론사별로 보면 조선일보가 69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앙일보가 40건으로 2위, 매일경제가 21건으로 3위였다. 광고주별로는 종근당건강이 59건으로 가장 많았고, CJ제일제당(22건)과 씨스팡(19건)이 뒤를 이었다.
건강기능식품 관련 ‘기사형 광고’가 한 매체에 반복해서 실리고, 심의에도 매번 적발된 사례도 흔하게 발견됐다. 건강기능식품 ‘기사형 광고’ 1위인 조선일보의 경우, 2019년 상반기에만 (주)씨스팡의 혈관팔팔피부팔팔(11건), CJ제일제당의 아이시안 루테인골드(8건),
(주)씨스팡의 또 다른 제품 관절팔팔(7건)을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또 적발돼 주의나 경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건강기능식품 광고 관련 관계자나 식약처는 “기사형 광고를 규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광고가 아닌 기사를 규제할 장치가 마땅히 없다는 이유다. 실제로 ‘기사형 광고’는 2018년 식약처가 시작한 사이버 조사단의 조사 범위에도 들어 있지 않고 있다. 광고가 아닌 기사이기 때문이다.
신문사에서는 광고가 아니라고 할 것이기 때문에, 심의대상으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협회의 심의기준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막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반복적으로 식약처의 인정 범위를 벗어난 광고를 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한 일입니다. 하지만 ‘기사형 광고’ 방식으로 광고하는 것은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사형 광고’는 겉으로는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식품표시광고법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사형 광고’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사이버 조사단의 조사도 피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관계당국이 법의 맹점을 핑계삼아 손을 놓고 있고, 언론사와 기업이 이 틈을 노려 기사 형식으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허위 과장 광고를 일삼는 사이, 언론보도를 믿고 이들 제품을 사서 쓰는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촬영기자 | 이상찬, 오준식, 정형민 |
편집 | 정지성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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