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유행 이후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업종 가운데 하나가 택배업이다. 이른바 ‘언택트’ 추세에 따라 택배 물량이 크게 늘면서 CJ 대한통운과 롯데택배, 한진택배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가 있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 벌써 3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 의심 증상으로 숨졌다. 뉴스타파가 만난 택배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코로나 감염보다 더 걱정되는 건 물량 급증에 따른 과로”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숨진 택배 노동자들의 사례를 추적해 이들이 얼마나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같은 과로가 왜 방치되고 있는지를 취재했다.

건강했던 42살 택배 노동자의 죽음

지난 5월 4일 새벽 광주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정 모 씨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숨졌다. 정 씨가 숨진 당일 아침 정 씨의 자택으로 찾아가 정 씨의 시신을 확인한 동료 택배 노동자 김성순 씨의 말에 따르면, 정 씨는 밤중에 잠을 자다 악 소리를 질렀는데 그게 그대로 유언이 되고 말았다.

▲ 지난 5월 4일 새벽 택배 노동자 정 모씨가 숨진 채 발견된 광주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

“아침에 일 하려고 딱 나가는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그날. 돌아간, 죽은 날. ‘00이 죽었단다.’
집으로 올라갔는데 경찰관들 형사들 와 있고 부검하는 사람들 와 있고... 그 시신을 제가 처음 봤어요. 혼자 유일하게 봤는데.. 그냥 누워있더라고요, 그냥.
잠을 자는데 새벽에 갑자기 악 소리를 내니까 와이프는 ‘아 꿈꾸나 보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꿈 꿨는지 물어봐야겠다’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악 소리 한 마디.”
- 숨진 정 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김성순 씨

▲ 오른쪽이 숨진 택배 노동자 정 모 씨, 왼쪽이 그와 가깝게 지냈던 동료 김성순 씨다. 2018년 말 고 김용균씨 추모 촛불 집회에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정 씨는 한진택배에서 1년, CJ 대한통운에서 7년을 일한 베테랑 택배 노동자였다. 키 186cm, 체중 85kg이 넘는 건장한 체격에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평소 아픈 곳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평소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120명이 일하던 CJ 대한통운 북광주지사 장수터미널에서 정 씨의 배송 물량은 손에 꼽힐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저는 하루에 3~400개 하면 다리가 후달리고 몸에 힘이 없는데 얘는 어떻게 4~500개를 했을까? 지금도 그게 아이러니해요. 얼마나 막말로 강철체력이야. 사람이잖아요. 분명히 어딘가, 지금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장나거든요. 그런데 그거 고장이 나버린 거예요. 제가 생각했을 때.
- 숨진 정 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김성순 씨

숨진 정 씨의 배송 물량은 평소에도 많았지만 코로나 19 유행 이후 크게 늘어났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인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정 씨가 배송한 물량을 확인해보니 아래와 같았다.

▲ 숨진 택배 노동자 정 모 씨의 3개월 간 배송 물량. 120명이 근무하는 CJ 대한통운 북광주지사 장수 터미널에서 그의 배송 물량은 손꼽힐 정도였다.

택배 노동자들은 토요일에도 쉬지 않는다. 일요일과 공휴일, 문자 그대로 ‘빨간 날’만 쉰다. 따라서 2월에 정 씨가 일한 날은 25일이고 2월 배송 물량 9,960개를 25일로 나누어보면 하루 평균 398개가 된다.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8시간 동안 배송을 했다고 가정하면 1분 12초에 택배 1개를 배송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같은 방식으로 3월에는 1분 6초 당 1개, 4월에는 1분 7초당 1개를 배송해야 했다.

더군다나 정 씨의 배송 구역은 무척 넓었다. 행정구역상으로 광주시 광산구 도산동, 지죽동, 장록동, 송촌동, 용동, 옥동 등 무려 6개 동이 정 씨의 배송구역이었다. 정 씨가 숨진 뒤 정 씨의 배송 구역은 4명의 택배 노동자가 나누어 맡았다. 정 씨의 업무가 그만큼 과중했다는 방증이다.

▲ 숨진 택배 노동자 정 씨가 맡았던 배송 구역. 그가 숨진 뒤 이 구역은 4명의 택배 노동자가 나누어 맡고 있다.

주당 최대 90시간 노동… 근로기준법 해당 안돼

정 씨는 매일 새벽 6시에서 6시 반에 출근해 이르면 저녁 8시, 늦으면 저녁 9시를 넘겨서 퇴근했다. 하루 14시간에서 15시간 씩 주 6일을 근무한 것이다. 주당 노동 시간으로 환산하면 78시간에서 90시간, 근로기준법상 법정 노동 시간인 주 52시간을 크게 초과하는 수치다.

과중한 노동은 정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택배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2.7시간, 월평균 근무일은 25.6일이었다. 이렇게 일해서 가져가는 순수입은 평균 302만 원으로 조사됐다. (출처: 한국교통연구원 <택배서비스 산업 일자리 실태 조사분석> )

정 씨나 다른 택배 노동자들이 이렇게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택배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 때문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 되어있다. 이른바 특수 고용직 노동자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정 근로 시간을 초과해서 일해도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개인 사업자로 되어있는 택배 노동자들은 중간 단계인 영업소와 배송 계약을 맺고, 이 영업소가 CJ 대한통운같은 택배회사들과 다시 계약을 맺는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따라서 원청인 택배 회사들은 택배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 책임을 갖지 않는다.

▲ 원청인 택배 회사와 영업소, 택배 노동자들로 이어지는 이중적 하청 구조. 이러한 하청 구조 덕분에 택배 회사는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노동 시간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고 택배 노동자의 죽음에도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예전에 봉건 시대처럼, 자기들(택배 회사)이 지주고 그 마름들이 소장이잖아요. 우리는 그 마름들 밑에서 일을 하고, 관계는 마름들하고 관계만 가져라,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왜 우리들한테 차에다 도색하라고 하고 CJ 옷 입고 일하라 하고, CJ에서 준 프로그램 갖고 일해라, CJ가 만든 터미널에서 일하고, CJ가 받은 제품만 배달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 숨진 정 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정찬관 씨

무급 분류 노동의 부담

정 씨를 포함한 택배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분류 노동이다. 분류 노동이란 택배 노동자들이 밤 사이 터미널로 온 짐들을 분류해 자기 차에 싣는 과정까지 발생하는 노동을 말한다. 숨진 정 씨의 경우 새벽 6시부터 오후 12시나 1시까지 분류 노동에 매달렸다고 한다. 택배 노동자의 주 업무는 배송인데도 정작 배송을 시작하는 시간은 분류 노동이 다 끝난 이후, 즉 오후 12시나 1시부터다. 정 씨의 노동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길어진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분류 노동이다.

▲ 무급 분류 노동을 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 무급 분류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택배 노동자들의 숙원이다.

그런데 택배 회사는 분류 노동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들과의 계약 자체가 배송 1건당 일정한 계약비를 지급하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류 노동에 대해서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든지, 아니면 분류 노동은 사측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 택배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 사항이다. 현장에서는 이 분류 노동을 마치는 시간을 두고 사측과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정 씨가 숨진 CJ 대한통운 북광주지사 장수 터미널의 경우, 택배 노조에 소속된 조합원들은 무조건 10시 반까지만 분류 노동을 하고 곧바로 배송을 나가는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조합원들의 경우 여전히 오후 12시나 1시까지 무급 분류 노동을 하고 있다.

8년 만의 첫 휴가… 가족 여행 직전 숨져

택배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휴가가 없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꼭 쉬어야 하는 날이면 보통 동료들에게 자기 구역의 배송을 부탁한다. 자신이 맡은 구역의 배송 물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 배송’하도록 계약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도와줄 동료가 마땅치 않으면 자기 돈을 써서 용달차와 기사를 고용해야 한다. 따라서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싶으면 비교적 일이 일찍 끝나는 토요일 오후나 저녁에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1박 2일 일정을 잡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 씨가 숨진 5월 4일은 공교롭게도 8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가는 날이었다. 당연히 공식적인 휴가는 아니다. 5월 4일은 월요일이었고 다음 날인 5월 5일 화요일이 어린이날,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정 씨는 2박 3일의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자기 구역의 월요일 배송 물량을 동료들에게 부탁했다. 정 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었다. 정 씨의 자녀들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애들은 티없이 맑더라고요. 애들이다 보니까 아빠 죽은 것도 모르고.. 마지막에 화장장 가서야 큰 딸이 울더라고요. 그런데 아들은, 8살 아들은 그 때까지도 안 울어요.”
- 숨진 정 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정찬관 씨

“화장 다 끝나고 유골함 담아가지고 봉안하는데 ‘아빠 마지막 담긴 거니까 한 번 만져봐라’. 그런데 이게 뜨겁잖아요. 와서 만지더니 ‘아빠 너무 뜨거워’ 하면서 울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 숨진 정 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박재균 씨

하루 2만 4천보 걷고 180층 오르내린다.. 무급 분류 노동이 40%

뉴스타파는 숨진 정 씨의 노동량을 가늠해보기 위해 지난 6월 30일 서울에서 일하는 택배 노동자 김도균 씨와 하루 종일 동행 취재를 했다. 김 씨에게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밴드를 착용시킨 뒤 그 기록을 살펴보기로 했다. 측정에는 스포츠 전문 스마트 워치 회사에서 출시한 스마트 밴드를 사용했다.

▲ 숨진 정 씨의 노동량을 가늠하기 위해 택배 노동자 김도균 씨의 하루 운동량을 측정했다.

김 씨 역시 숨진 정 씨처럼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1시까지 무급 분류 노동을 했다. 무급 분류 노동을 하고 나온 김 씨의 운동량을 확인해보니 이미 9천 6백 32보를 걸은 것으로 나왔다. 이날 김 씨의 전체 걸음 수가 2만 4천보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노동량의 40%가 무급 분류 노동에서 비롯됐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일반적인 스마트 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측정이 완벽하게 정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택배노동자의 노동량에서 무급 분류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근사치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다.

오후 2시쯤 시작된 배송 업무는 밤 9시 44분에 끝났다. 배송을 마치고 스마트 밴드에 기록된 걸음 수는 2만 4천 6백 78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성인이 하루 6천보를 걷는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많았다. 김 씨가 하루 종일 오르내린 계단을 층수로 환산하면 올라간 계단이 107층, 내려간 층이 70층에 해당됐다.

▲ 스마트 밴드 전용 어플리케이션에 표시된 택배 노동자 김도균씨의 하루 운동량

김도균 씨의 이날 배송량은 360개였다. 숨진 정 씨의 하루 평균 배송량이 400개 정도로 10%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숨진 정 씨는 하루 2만 7천보 이상을 걷고 200층 가량의 계단을 오르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 김도균 씨의 운동량을 토대로 추정해 본 숨진 정 모씨의 하루 운동량

하루 일과를 마친 택배 노동자 김도균 씨는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중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그 고통 때문에 몇 시간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 ‘책임 배송’ 계약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운 택배 노동자 김도균 씨는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자는 것이 유일한 자구책이다.

김 씨는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이 코로나 19 유행 이후 폭증하는 물량 때문에 ‘언제 아플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며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일단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진짜 겁이 나죠. 사실은 저도 겁이 나고. 제 주변에도, 제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일단은 걱정이에요. 제 주변의 동료도 오늘 그 얘기를 했는데. 요즘 배송량이 많기 때문에 내가 언제 아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럴 경우 앞으로의 생활이 불확실해지니까..”
- 택배 노동자 김도균 씨

코로나 19 이후 택배 노동자 3명 사망..회사는 천문학적 이익

뉴스타파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던 시기, 또 한 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졌다. CJ 대한통운 김해터미널에서 7년 동안 일했던 47살 서형욱 씨는 6월 27일 가슴 통증을 느꼈지만 조퇴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배송물량을 동료들과 나누어 모두 배송했다. 이튿날인 28일 그는 스스로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에 이동했다. 진단명은 급성 심근경색, 병원에서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7월 5일 사망했다.

▲ 지난 7월 5일 숨진 택배 노동자 서형욱 씨의 빈소. 서 씨가 생전에 몰던 택배 차량을 이용해 CJ 대한통운 본사 앞에 차려졌다.

숨진 서 씨의 누나 서형주 씨는 지난 7월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생 휴대전화의 어플리케이션을 보니 동생이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 반까지 근무한 날도 있었다”면서 “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었다면 동생이 조금 아팠을 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지난 7월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故서형욱 택배 노동자의 누나 서형주 씨

코로나 19 유행 이후 택배 노동자가 숨진 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3월 쿠팡의 물류 노동자 46살 김 모 씨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숨졌고, 5월에는 위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CJ 대한통운 북광주지사의 택배 노동자 정 씨가 숨졌다. 그리고 7월, 역시 CJ 대한통운 김해터미널에서 일하던 서형욱 씨가 숨졌다. 세 사람 죽음 모두 과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코로나 19 유행 이후 크게 늘어난 배송 물량은, 택배 회사에는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올해 1분기 CJ 대한통운의 택배 부문 매출은 7,279억 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보다 27% 늘었고, 영업이익은 354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CJ 대한통운 전체 매출에서 택배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지만 60%의 영업 이익이 택배 부문에서 나온 것이다.

▲ 택배업계 점유율 1위인 CJ 대한통운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택배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

다른 택배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한진택배의 영업이익은 25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8.5% 늘었고, 롯데택배 역시 지난해보다 268% 증가한 5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CJ 대한통운에 이어 택배업계 점유율 2,3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진택배와 롯데택배 역시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택배 노동자 보호하는 <생활물류법>, 미래통합당 반대로 좌초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 법안>이 발의됐다. 택배 산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택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사업자 또는 영업점은) 종사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휴식 시간 및 휴식 공간을 제공 (해야 한다.)
-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 법안 제45조 1항

이 법안에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 방지 뿐 아니라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운송 계약을 최소 6년 동안 보장하고, 운전 노동자와 분류 노동자를 구분해 무급 분류 노동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결국 상임위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2019년 11월 13일, 법안 심사를 위한 국토교통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미래 통합당의원들은 “이해 관계자와 업계의 요구가 충분히 조율되지 않았다”면서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 제정법의 경우에는 공청회를 가지는 관례에 따라서 소위 회부 전에 다양한 이해관계인과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상임위 차원의 공청회를 한 번 개최하고 소위에서 심사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김상훈 미래통합당 의원

“이 법안이 과연 업계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입안된 것인지 좀 의문이 듭니다. 작년 9월부터 현재까지 수십 차례 회의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이 법안에 대해서 관련 단체들이 서로 동의가 잘 안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이헌승 미래통합당 의원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이해 관계자와 업계를 두루 만나 의견을 조율해서 그 결과를 내놓은 것”이라며 “부족한 부분은 정부나 국회가 추가로 심사과정에서 반영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맞섰다. 또 과거 다른 법안을 처리할 때도 전체회의가 아니라 법안심사소위에서 공청회를 열었던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며 결국 법안 처리를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떠나 버렸다. 이에 대해 박홍근 의원은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당의 지침과 지시에 의해 행동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며 “국회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미래통합당 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 지난 2019년 11월 1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 회의. <생활물류서비스 발전 법안>의 처리를 두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회의를 사실상 보이콧하면서 오른쪽 줄의 자리들이 텅 비어있다.

“사람답게 살겠다는 의지와 이익의 싸움”

지난 6월 28일. 전국택배연대노조는 ‘전국 택배 노동자 대회’를 열었다. 주최측 추산 천 5백여 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모여 20대 국회가 통과시키지 못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 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 지난 6월 28일 열린 ‘전국 택배 노동자 대회’에서 한 택배 노동자가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펼쳐보이고 있다.

광주에서 숨진 정 모 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정찬관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국택배노조(전국택배연대노조와는 다른 조직이다)의 조직국장이기도 하다.

▲ 지난 5월 숨진 택배기사 정 모 씨의 동료 정찬관씨. 전국택배노조의 조직국장을 맡고 있다.

“우리도 안 되면 투쟁을 해야죠. 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죠. 그때까지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서로 논리의 차이, 서로의 생각의 차이고, 이익과 사람답게 살겠다는 그 의지의 싸움이다 보니까, 그 싸움은 끝이 있겠습니까? 계속 가야죠. 가다 보면 법도 제정되는 날이 있고 노동자로 인정되는 날이 올 거고, 사측 관계자들하고 마주보고 교섭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신합니다. 그날까지 계속 싸워야죠.”
- 숨 진 정씨의 동료 택배 노동자 정찬관 씨 (전국택배노조 조직국장)

20대 국회에서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 법안>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정부 및 이해 관계자와 계속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다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