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회] 박근혜, 바꾸네

2012년 11월 16일 08시 10분

야구선수가 감독의 사인 없이 멋대로 달리다가 아웃이 되었다면 그 선수는 팀의 공적입니다. 그러나 감독의 사인을 받고 달린 선수는 성공여부를 떠나 충실한 팀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벌였던 MBC 사태를 두고 새누리당의 감독격인 박근혜 후보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수차례 사인을 통해 사실상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추진하라는 뜻으로 이해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누리당은 박 후보가 그런 사인을 내린 게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냥 손을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뻔하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 정치인 박근혜 화법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때로 소신과 원칙의 정치인이란 말로 미화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컨텐츠가 없는 정치인으로 평가절하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MBC 사태에 대해 어떤 사인을 내렸다는 것인지 그 전말을 재구성했습니다.

<기자>

지난 1월 이후, 공영방송 MBC의 파업사태가 계속 되던 6월 중순. 당시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 없이는 파업을 풀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무렵, 그동안 MBC 파업 사태에 침묵하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첫 공개발언이 나옵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파업이 좀 너무 장기화되고 있는데... 노사가 서로 대화로써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사가 대화로써 슬기롭게 풀었으면 좋겠다. 빨리 파업을 풀고 정상화되길 바란다는 내용까지 평소 단답이나 외마디 식의 화법과는 달리 이날 발언은 상당히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당시 MBC 파업은 150일을 넘기며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정치권 역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치며 19대 국회 원구성도 하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포함해 MBC의 정상화를 위한 박근혜 후보 측과 MBC 노조 간이 접촉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MBC 파업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후보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MBC 노조는 판단한 것입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새누리당 캠프의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저희 노조와의 소통을 통해서 박근혜 후보가 MBC 사태에 대해서 안타까워한다. 이 문제를 풀고 싶어 한다. 자신이 메신저이자 해결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하셨고요.”

당시 박근혜 후보와 MBC 노조 간의 가교 역할을 맡았던 이사는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 특위 위원이었습니다. 이상돈 위원은 지난 4월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했고 박근혜 후보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된 측근인사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이러다가 MBC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이제는 좀 일단 파업을 풀고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단초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후보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해서 그래서 그걸 그런 뜻을 한 번 타진해보는 창구로 저를 찾은 거고 제가 전달해드린 거죠.”

이렇게 MBC 노조와 이상돈 위원 간의 접촉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이상돈 위원은 박근혜 후보로부터 직접 의견을 구했고 그 입장을 노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MBC 노조는 밝혔습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박근혜 후보) 내가 MBC 노조를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 노조 주장에 공감하는 점이 있다. 노조가 먼저 파업을 풀고 당면한 올림픽 방송 준비에 매진하고 또한 모든 프로그램에 정상화에 돌입한다면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복귀하고 나면 모든 문제는 순리대로 풀려야겠다, 라는 게 박근혜 후보의 생각이시다. 이건 자기(이상돈 위원)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이런 식의 대화 끝에 6월 22일. 박근혜 후보의 공개 발언이 나온 것입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노사가 서로 대화로써 슬기롭게 잘...”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그날 MBC에 대해) 언급을 하신 것 자체가 MBC 노조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라고 얘기를 하던데요?) “네. 그 부분도 말하자면은 제가 뭐 어떻게 나를 믿고 무조건 파업을 풀라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어떤 MBC 해결을 위한 단초를 제공하는 한 번 말씀을 해주십사(했던 건) 그건 제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낮에 무슨 배식행사를 박근혜 후보가 가셨다가 언급을 하셨어요. 기자들에게. 장소하고 행사도 성격이 안 맞는 건데, 그날 그렇게 박근혜 후보께서 MBC 사태를 언급하실 거다, 라는 의견을 저희가 미리 들었고. 저희 쪽으로 얘기를 해준 겁니다. 그러니까 요구를 했기 때문에 그 요구에 대한 화답으로.”

이 같은 공개 발언 직후 박근혜 후보는 이상돈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노조가 명분을 걸고 들어오면 제가 책임지고 하겠다. 그렇게 하면 당을 움직일 수 있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고. 이상돈 의원은 이런 내용을 노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 “이제 노조가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이 의지는 충분히 보였으니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했으면 좋겠다, 라는 의견을 전달을 하셨고요. 그게 박근혜 후보의 마음이다. 그러면서 저희한테 2차 메시지를 주셨어요. 노조에 전달하라고 주신 메시지가 있다. 그게 이제 노조가 명분을 걸고 들어오면 나중 일은 제(박근혜 후보)가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제가 당을 설득하겠습니다.”

이상돈 의원은 특히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MBC 파업과 김재철 사장의 거취 문제를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 평화방송 6월 25일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박근혜 전 위원장은 지난 금요일 날에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간단하게 발언을 했는데요. MBC 노사 양측에 대해서 양보를 주문했음에도 징계사태가 안타깝다, 라는 표현으로, 김재철 사장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는 8월 중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 이슈 털어주는 남자 6월 27일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김재철 사장이) 용퇴를 안 하면 그때는요?) “안 하면 그때 가면 진짜로 뭐.” (해임 의결에 들어가는 겁니까?) “그럴 때는 (8월에) 새로 뽑히는 새로운 방문진 이사들이 판단을 하겠지만은, 거기서 누가 보더라도 그쯤 되면 3명의 (여당) 이사진이, 이사가 이 문제를 독자적으로 판단하지 않겠느냐. 제 취지가 바로 그겁니다.” (그러면 새누리당에서 추천하는 3명의 이사가 김재철 사장 해임의결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시는 겁니까?) “그럴 상황이 되면 (김재철 사장 해임의결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상돈 위원은 이 같은 일련의 인터뷰 과정이 박근혜 후보의 의중을 담은 일종의 주석을 달아서 말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평화 방송에서 그 방문진 이사 구성에서 하게 되면 재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제가 한 번 주석을 달아서 얘기한 적 있죠.”

이렇게 양측 간의 접촉이 진행되고 8월 이후 새로 구성되는 방송문화 진흥회 이사회에서 경영평가 형식으로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키는 방안까지 나오게 됩니다. 대신 MBC 노조는 파업을 풀고 복귀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그때 그러면 명확하게 박근혜 후보의 의중은, 뜻은 어떤 거였나요?) “뜻은 좌우간에 방문진 이사진이 경영 평가 경영 정상화 할 것이니까 그때까지도 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과거 선례에도 경영 평가하고 사장이 사표 낸 적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포함해서 생각을 하셨을 것으로 생각을 했죠.”

이에 따라 7월 18일. MBC 노조는 마침내 170일 간의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합니다.

[김소영 MBC 아나운서] “저희는 오늘 170일이라는 방송사 최장 기간의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방문진 이사들이 결국에는 특히 이게 여권에서 새로 들어간 이사들, 중립적인 이사들이 그런 판단을 했던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그런 판단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마 박근혜 당시 후보의 뜻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외압이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박근혜 후보 측의 개입 없이 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상돈 위원의 바람과는 달리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은 부결됐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 선대본부장과 하금열 대통령 실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김충일 방문진 이사가 김재철 사장과 노조의 동반 퇴진을 담은 결의문을 작성해 방문진 이사들의 서명을 받던 중 김무성 본부장과 하금열 실장으로부터 압력성 전화를 받고 포기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최강욱 MBC 방문진 이사(변호사)] “어떤 불이익을 걱정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거냐, 라고 당연히 물었을 것이고, 물었던 것이고. 그러니까 (김재철) 사장이 관두게 되면 청와대 대통령 실장도 물러나게 될 것 같고, 그러면은 나(김충일 이사)와 하선배(하금열 실장)와의 인간관계가, 30년이 넘는 인간관계가 깨진다. 그게 나한테는 너무나 큰 부담이다. 그런 얘기를 하신 거죠.”

외압에 직접 당사자로 지목받는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 선대본부장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그러나 하금열 실장을 전화를 받지 않고 있고 김무성 본부장은 청음에는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엔 개인적인 전화였다고 말을 바꿉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대화여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 “개인적인 대화인데 이야기 할 수 없죠.”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하신 거예요?)

(김재철 사장과 관련해서 본부장님과 통화를 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통화 하셨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그 개인적인대화를 제가 이야기할 이유가 있나요.” (MBC 관련한 통화를 하신 게 아니세요?) “그런 일 없어요.”

[김충식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내가 아는 한 99% 사실입니다. 친박이든 친이든 지금 선거 와중에 (사장을 바꾸는 건) 미친 짓이다, 그렇게 유권해석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당시 박근혜 후보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이상돈 위원은 김재철 사장의 해임 부결은 박근혜후보의 뜻이 아니었다고 강조했지만

[이상돈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 (그렇다면 김무성 본부장이 지금 박근혜 후보님의 생각과 의중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독단적으로 결정을 해서...)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 공백이.. 모르니까 최근에 캠프에 들어왔잖아요.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흐름을 몰랐을 수도 있겠죠.”

김재철 사장의 해임 부결 이후 MBC의 여당 편향적인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박근혜 후보는 김재철 사장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후보님, 김재철 사장 해임 막겠다는 보고 김무성 전 의원에게 받으셨나요?)

(어디로 데리고 가세요?) “안쪽으로 끌어내. 안쪽으로...” (왜 끌어 당기세요!) “잠시만 나와 보시라고요. 나와 봐요. 문 닫아.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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