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파괴는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전 세계 39개 언론사, 140여 명의 언론인들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삼림파괴 문제를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수개월간 진행한 국제협업 프로젝트 ‘삼림파괴 주식회사(Deforestation Inc.)’의 결과물을 세계 각국 언론사와 함께 차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삼림 파괴와 환경오염은 세계적인 문제다. 인도네시아는 브라질, 콩고와 함께 세계 3대 열대림이 있는 나라지만 빠른 속도로 숲이 사라지고 있다. 삼림 파괴는 기후 위기와 직결된다.
이 문제는 글로벌 차원의 산업 구조와 연관이 깊다. 선진국의 각종 수요에 따라 동남아의 삼림이 파괴되고, 대규모 농장 등으로 개발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팜유 나무 플랜테이션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이다. 팜유는 라면, 과자, 혹은 화장품 등의 원료다. 최근에는 화석 연료인 석유, 석탄 등을 대체하는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이런 수요를 배경으로 인도네시아 곳곳에서는 자연림을 벌채하고 대규모 팜유 농장을 개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이런 구조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동남아시아에서 환경을 파괴하며 나온 생산물이 한국으로 들어와 국내 발전공기업에 납품되고 있으며,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관련 취재 내용을 인도네시아 편, 베트남 편으로 나눠 싣는다.
연결 고리 : 팜유와 바이오 연료
삼림을 파괴하며 제조된 인도네시아의 팜 원료가 바이오중유 제조업체를 통해 발전공기업에 공급되는 과정
바이오에너지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재생에너지다. 다양한 재생에너지 중에서 태양광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다. 바이오에너지는 동식물 등 생물 유기체를 일컫는 말인 '바이오매스'를 활용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이 바이오에너지가 인도네시아와 연결되는 고리가 바로 '팜유'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팜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수출한다. 우리에게 팜유는 라면과 과자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식용기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팜유는 바이오에너지인 바이오중유의 주원료이기도 하다. 팜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팜부산물도 바이오중유의 원료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팜유는 이미 국제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팜유 생산 과정에서 불법 개간, 방화, 노동자 인권 침해, 마을 공동체와의 갈등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이 같은 팜유와 팜 부산물을 누군가는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등은 현지 기업 혹은 다국적 기업에게 팜유와 팜 부산물을 어디에서 공급받는지를, 즉’ 공급망’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뉴스타파는 인도네시아 삼림 파괴와 한국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공급망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물론 이 공급망을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공급망을 공개하는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팜유와 팜 부산물이 일단 수입되면 그때부터는 공급망을 따라가기가 더욱 어렵다.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자사의 공급망을 공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삼림 파괴의 산물이 한국 발전 공기업으로까지 흘러 들어가는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국회 산자위 소속 국회의원실을 통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발전공기업 5사(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의 바이오중유 조달 내역 자료를 입수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팜유 및 팜 부산물 수출 기업 무역 데이터를 공익법센터 ‘어필’을 통해 확보했다. 이를 통해 어떤 인도네시아아 현지 기업이, 어떤 한국 기업으로 팜유를 수출하는지 확인했다.
이 두 데이터를 연동해 인도네시아 기업과 한국 발전공기업 간의 공급망을 그렸다. 인도네시아의 무역 데이터는 2019년~2021년 9월까지만 확보돼, 데이터 분석 기간은 2019년~2021년까지 3년이다.
Step 1 : 발전공기업의 공급망 확인
발전공기업에 바이오중유를 납품하는 업체들
먼저 국내 발전공기업의 바이오중유 조달 내역을 살펴봤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5개 발전공기업은 단석산업과 제이씨케미칼 등 8개 기업에서 바이오중유를 총 163.6만 ㎘(킬로 리터) 공급받았다. 납품량이 많은 4개 기업-단석산업, 제이씨케미칼, SK에코프라임, 애경케미칼-은 발전용 바이오중유의 시범보급 사업부터 참여한, 국내 바이오중유 주요 생산업체다. 이 4개 기업은 발전공기업이 사용한 바이오중유 전체의 85%가량을 납품했다.
Step 2 : 수입 업체의 공급망 확인
바이오중유의 원료 대부분은 팜유와 팜 부산물이다. 한국바이오연료포럼에 따르면 팜유와 팜 부산물는 바이오중유 원료의 69%를 차지한다. 바이오중유 생산 업체들은 어디에서 원료를 수입해올까?
이번에는 인도네시아 팜유 및 팜 부산물 수출 기업의 무역 데이터에서 한국 발전공기업에 바이오중유를 납품하는 업체 내역을 살펴봤다. 2019년~2021년 9월 사이, ‘슬라고 막무르 플랜테이션’(Selago Makmur Plantation), ‘인탄 스자티 안달란’(Intan Sejati Andalan) 등이 수출 상위 업체로 조사됐다.
이 중 발전공기업 납품사들과 팜유와 팜 부산물을 거래한 인도네시아 현지 업체 42곳을 추려냈다.
Step 3: 현지 업체의 문제점 확인
다음으로 이 현지 업체 42곳을 들여다 보았다. 인도네시아 매체와 현지 및 글로벌 환경단체 등의 조사 보고서 등을 참조했다. ‘지속가능성’ 관련 해외 리서치 기관인 ‘체인 리액션 리서치’(Chain Reaction Research)도 조사를 도왔다. 조사 결과, 42개 업체 가운데 9개가 인도네시아 산림파괴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삼림파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업체들에서 수입한 팜 원료
‘슬라고 막무르 플랜테이션’(Selago Makmur Plantation)은 한국에 가장 많은 팜 원료를 수출한다. 이 농장이 있는 인도네시아 서부 수마트라 다르마스라야 지역의 삼림은 2000년부터 2014년 사이에 급격히 사라졌다. 이 가운데 인근 이차림(열대우림의 한 종류)은 67% 이상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팜유 한국 수출량 2위인 ‘무심 마스’(Musim Mas)는 세계 최대 팜유 취급업체다. 이곳은 국제 비영리단체인 ‘지속가능한 팜유 생산을 위한 협의회’(RSPO)의 인증을 받았지만, 삼림 벌채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추적한 바에 따르면 무심 마스는 인도네시아에서 보호 수준이 가장 높은 ‘보존림’ 1,466ha (헥타르)에서 팜유 농장을 운영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법적으로 ‘보존림' 구역을 지정해놓았다. 이곳에서는 삼림 훼손은 물론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개발은 허용되지 않는다.
보존림 다음 보호 등급의 삼림은 ‘보호림’으로 지정한다. 보호림 역시 농장 용도로 개간하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린피스 추적 결과, 한국으로 팜유 수출 5위 기업인 ‘스틸인도 와하나 페르카사’(Steelindo Wahana Perkasa)는 인도네시아 현지 지속가능(친환경) 팜유 인증제도인 ISPO를 받고도 451ha 규모의 보호림에서 팜유농장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의 60%가 숲인 인도네시아에는 삼림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인증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해당 지역 주지사의 권한 남용과 일자리 창출법 등을 활용하여 팜유 업체가 합법적으로 삼림 벌채를 자행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한국에 팜유와 팜 부산물을 수출하는 현지 업체인 ‘인탄 스자티 안달란’(Intan Sejati Andalan)과 ‘투나스 바루 람풍’(Tunas Baru Lampung)은 인도네시아 정부도 환경법을 어겼다고 판단할 정도다. 두 업체의 행태는 ‘친환경 연료 만든다며 동남아 환경 파괴..공급망 추적’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상위 5개 업체가 모두 인도네시아 삼림를 파괴한 기업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팜유와 팜 부산물을 많이 수출한 순서대로 나열하면, 슬라고 막무르 플랜테이션, 무심 마스, 인탄 스자티 안달란, 투나스 바루 람풍, 스틸인도 와하나 퍼르사카다.
이 현지 업체는 제이씨케미칼, SK에코프라임, 단석산업, 애경케미칼, KG ETS에 팜 원료를 수출했고, 이들 국내업체는 팜 원료를 바이오중유로 만들어 발전공기업에 납품했다.
복잡한 공급망 속 정제회사
팜 원료는 복잡한 공급망을 거쳐 발전공기업의 연료로 사용된다.
팜유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공급망이 복잡하다. 우선 플랜테이션에서 팜 열매를 수확한 다음, 착유공장(CPO Mill)에서 팜 열매를 압착하여 팜 원유를 생산한다. 팜 원유에는 부산물이 많이 섞여있어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정제공장(Refinery)에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앞서 거론한 인도네이사 현지 5개 기업은 농장을 만들며 삼림을 파괴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팜 원료 공급망에서 책임소재가 명확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팜 원료를 수출하는 건 정제회사다. 이 공급망을 추적하려면 정제회사가 팜 원유를 공급받은 착유공장과 그 착유공장에 팜 열매를 납품한 농장까지 파악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인도네시아 일부 정제회사는 자사의 공급망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정제회사 중 공급망 추적이 가능하면서, 현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을 추려봤다.
인도네시아 삼림파괴와 연계된 업체들에서 수입한 팜 원료.
단석산업과 제이씨케미칼, SK에코프라임 등 발전소에 바이오중유를 납품하는 주요기업에 팜 원료를 수출하는 ‘아그로 막무르 라야’(Agro Makmur Raya)와 ‘인티브누아 퍼르카사타마’(Intibenua Perkasatama)는 앞서 언급된 무심 마스의 정제 자회사다. 무심 마스 소유 농장에서 팜유가 이들 정제회사를 통해 한국으로 수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자사의 팜 부산물 대부분(93%)을 SK에코프라임에 수출한 ‘바타라 엘록 스므스타 터르파두’(Batara Elok Semesta Terpadu)는 인도네시아 보존림과 보호림에 총 6,749ha 규모의 팜 농장을 만든 ‘베스트 아르고 그룹’(Best Agro Plantation)의 정제 공장이다.
애경케미칼에만 3.9만톤의 팜유를 수출한 ‘쿠타이 리파이너리 누산타라’ (Kutai Refinery Nusantara)는 북부 칼리만탄 섬에서 2016년에서 2021년 7월까지 1,600ha의 삼림벌채를 한 플랜테이션으로부터 팜 열매를 공급받았다.
결론 : 발전공기업에 들어가는 환경파괴 산물
이렇게 인도네시아 문제 기업에서 수입된 팜유와 팜 부산물이 한국 수입업체를 거쳐 발전용 바이오중유로 바뀌고, 발전5사로 납품되는 공급망을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인도네시아 삼림 파괴에 책임이 있는 업체에서 수입한 팜 원료가 바이오중유로 제조되어 국내 발전공기업 5사에 남품된다.
위 그래프에서도 드러나듯, 인도네시아 문제 업체에서 팜유 등을 공급받는 한국 수입업체들은 발전공기업에 들어가는 바이오중유의 대부분을 납품하고 있다.
표 : 인도네시아 문제 업체에서 팜유 등을 수입한 기업들이 5개 발전공기업에 납품한 바이오중유의 양 (2019년~2021년)
그런데 이렇게 수입된 팜유와 팜 부산물은 단지 ‘바이오’ 연료, 즉 재생에너지에 속하는 연료라는 이유만으로 ‘친환경’ 연료로 포장된다.
현지의 문제 농장, 혹은 정제회사에서 팜유와 부산물을 수입한 업체들은 “우리는 탄소중립을 실현하여 지구의 환경을 보호합니다” (SK에코프라임), “단석산업의 바이오에너지는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 및 탄소저감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등의 문구로 친환경 업체임을 선전하고 있다.
바이오중유를 납품받아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공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와 탄소중립을 이행하고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통한 환경보전으로 깨끗한 에너지를 국민에게 공급하고 신뢰받는 공기업” (남부발전), “깨끗한 에너지로 국민이 신뢰하는 지속가능한 발전회사 구현” (중부발전) “에너지 전환 시대에 발맞춰 타 기관보다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을 앞서서 선도” (동서발전) 등으로 모두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허울뿐인 ‘친환경’ 메시지
오늘날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는 산업은 대부분 국경을 넘나든다. 삼림 파괴, 환경오염, 인권침해는 글로벌 차원에서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는 기후위기와 연관된 기업 활동과 생산품의 공급망을 실사(due diligence)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부족하다. 뉴스타파는 단석산업과 제이씨케미칼, SK에코프라임, 애경케미칼 등이 납품한 바이오중유가 인도네시아의 삼림을 훼손하면서 생산된 팜유 등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발전공기업들이 인지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동서발전은 “국내에 제품화된 바이오중유를 국내경쟁입찰을 통해 조달하여 해당 내용은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남부발전 역시 “공급사의 원료 수입에 대해서는 확인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현지 원료를 수입한 당사자인 국내 업체들에도 현지에서 벌어지는 환경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물었다.
일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한다는 입장을 밝힌 기업도 있었다. 애경케미칼은 “2022년 통관 기준 98%는 NDPE(No Deforestation·No Peat·No Exploitation) 정책 채택 업체에서 수입하고, 2%는 비채택 업체의 원료가 들어왔다”며 “‘NDPE 정책 채택 업체와 우선 거래’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판매상에도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제이씨케미칼은 문제 업체들과 직접 거래하지 않았고 “트레이딩 회사와만 계약”을 했으며 “처음에는 그 회사들을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 원산지 리스트에서 확인해 보니까 있었다”고 답했다. 또 “(팜유는) 트레이딩 회사를 통한 구매가 불가피하며, 거래하는 트레이딩 회사가 어떤 제조사의 제품을 납품하는지 사전에 인지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질의에 아예 답변하지 않은 기업도 있다. 발전공기업 바이오중유 납품 상위인 단석산업과 SK에코프라임, KG ETS다.
이처럼 국내에선 팜유와 팜 부산물의 공급망 검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를 아직 의무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데이터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불리는 바이오중유의 이면에 인도네시아의 삼림 파괴와 환경 오염, 지역 공동체 파괴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