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542일 암 환자들의 투쟁...'공룡' 삼성생명을 움직였다

2021년 07월 12일 13시 15분

암 입원 급여금 부지급 문제를 둘러싼 환자들과 삼성생명의 협상이 지난 9일 타결됐다.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한 암 환자들의 농성 투쟁도 542일 만에 중단됐다. 뉴스타파가 삼성생명의 암 입원 급여금 부지급 문제를 보도한지 3년 3개월 만이다.
암 입원 급여금은 계약 내용에 따라 입원일 수만큼 일정액을 지급하는 방식의 보험금이다. 일부 보험사가 이 보험금과 관련된 모호한 약관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보험사-소비자 간 갈등이 촉발됐다. 보험사는 '암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입원'에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의 내용을 이용해 요양병원에서 이뤄진 입원 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 왔다. 요양병원에서 이뤄진 입원 치료는 '암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입원'은 아니라는 게 보험사의 논리였다.
▲ 뉴스타파는 보험사가 계약 당시 암 입원 급여금 부지급 조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8년 3월 보도에서, 정확한 정보 전달이나 정당한 약관 변경 없이 보험사의 손실을 보험소비자에 떠넘기려는 보험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했다. 취재를 통해 보험사가 계약 당시에는 이 같은 부지급 조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보험사가 △ 약관 변경 대신 보험 소비자와의 소송을 통해 자신에 유리한 판례를 만들어 왔고 △ 자사 손해사정회사를 이용하며 소비자 동의 없이 의료 정보를 위변조하는 등 불법적·탈법적 운영을 해온 정황도 확인됐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보험업계에 암 보험 약관을 개선하고 부지급한 암 입원 급여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감독당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삼성생명에 기관경고 제재를 결정한 바 있다. 이 제재는 금융위원회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되어야 하지만 금융위는 의결을 7개월 넘게 미루고 있다. 
▲ 2018년 3월, 금융감독원 앞에서 시위 중인 보암모 회원들.
감독당국의 권고와 제재 결정에도 삼성생명이 움직이지 않자, 피해 암 환자들은 지난해 1월부터 삼성생명 서초동 사옥 2층과 본사 앞에서 점거 농성을 진행했다. 보험금 부지급 피해를 입은 암 환자들이 결성한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 환우 모임'(보암모)이 그 주체였다. 이번에 '보암모'와 삼성생명 간 협상이 타결되며 이 농성은 542일 만에 종료됐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양자간 합의에 따라 비공개로 결정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암 환자 일부에 대한 보험금 지급과 농성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고소·고발 건에 대한 상호 취하가 합의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생명은 이번 합의 과정에서 암 환자들에게 사태의 재발 방지와 소비자 보호 강화 조치에 대해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사회적 갈등 해소 차원에서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자생적인 운동으로 대형 보험사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지만 여전히 미완의 합의라는 말이 나온다. 한 '보암모' 관계자는 "부지급 피해자 전원이 아니라 일부 제한된 인원에 대한 지급만 합의되어 오히려 무거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암 환자들이 검진까지 미뤄가며 투쟁을 해 건강이 악화되었다"라며 "암 환자 대신 정치권과 언론이 나서 근본적인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 달라"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