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 자문계약의 비밀]① 월 천만 원 자문료...보고서도 대필해줘
2020년 08월 10일 08시 55분
한국가스공사 특혜 자문계약의 비밀 ① 월 천만 원 자문료...보고서도 대필해줘 |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외교부에서 퇴직한 박석환 전 차관을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내정한 순간부터, 한국가스공사와 박석환 전 외교부 차관 사이의 특혜 자문계약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박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8월 외교부에서 퇴직했다. 1년 뒤인 2014년 8월, 산업부는 박 전 차관을 한국가스연맹(이하 가스연맹) 사무총장에 내정했다. 그러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박 전 차관의 가스연맹 사무총장 취임에 대해 ‘취업제한’ 결정을 내렸다.
다시 1년 뒤인 2015년 8월, 산업부는 박 전 차관 가스연맹 사무총장 자리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가스연맹 사무총장이던 김 모 씨는 “자리에서 나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김 씨의 남은 임기는 6개월. 이 시기에 가스공사는 해외 자회사를 내세워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맺고 월 1천만 원씩을 줬다. 박석환 전 차관이 결국 가스연맹 사무총장 자리로 가기 전까지 6개월 동안 가스공사가 박 전 차관에게 지급한 자문료는 모두 5500만 원이었다. 여기까지가 가스공사와 박 전 차관이 맺은 자문 계약의 전말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8월 가스공사와 박석환 전 외교부 차관 사이의 특혜 자문계약 관련 3편의 연속 기사(‘가스公 자문계약의 비밀’)를 보도했다. 가스공사가 박 전 차관에게 자문 보고서까지 대신 써주며 월 1천만원 짜리 자문계약을 맺었다는 내용. 뉴스타파는 이 계약의 이면에 이호현 산업부 현 무역정책관(당시 산업부 가스산업과장·가스공사 주무 부서)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특혜 자문계약에 산업부의 입김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박석환은 전직 외교부 ‘차관’ 출신. 이호현 정책관은 당시 정부 부처 ‘과장’이었다. 그는 왜 자신보다 훨씬 직급이 높은 차관 출신을 챙겨주려고 했던 걸까. 이 정책관 윗선의 개입은 없었을까. 뉴스타파는 취재 과정에서 이 정책관이 했던 말과 가스공사 측이 보내온 서면 답변서 등을 통해 박 전 차관의 자문계약 배경을 더 들여다봤다.
이 정책관은 취재진에게 반복적으로 “박 전 차관이 가스연맹 사무총장에 이미 내정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스공사와 자문계약을 하도록 추천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가스공사에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체결하라고 한 건 맞지만, “어차피 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갈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가스공사의 입장 역시 이 정책관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가스공사는 뉴스타파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박석환 특혜 자문계약’ 배경에 대해 “산업부와 가스공사가 박 전 차관을 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영입했고 박 전 차관이 취임하기 전까지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한국가스연맹은 우리나라 가스산업 관련 기업이 회원사인 민간 단체다. 한국가스공사가 대표 회원사로 가스공사의 사장이 가스연맹의 당연직 회장이 된다. 물론, 박 전 차관이 가스연맹의 임원직에 내정됐다고 해서 가스공사가 박 전 차관과 아무런 목적 없는 자문 계약을 체결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질문은 이어진다. 가스 산업에 전문성이 없는 외교부 퇴직 관료가 어떻게, 왜 가스연맹의 사무총장 자리에 내정된 걸까.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가스연맹 사무총장이었던 김 모 씨의 말을 들어보자. 김 씨는 뉴스타파와 전화 통화에서 임기 3년 동안 두 차례 산업부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2014년 7~8월과 2015년 8월이다. 그는 “(처음 산업부에서 연락이 온 것은 임기를 시작하고) 1년 반 정도 됐을 때였다”며 “산업부에서 박석환 전 차관이 가스연맹 사무총장 자리에 와야 하니 (자리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협회 자리(가스연맹 사무총장)가 박석환 차관에게 맞다는 생각을 외교부나 산자부에서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씨에 따르면, 산업부는 당시 김 씨에게 나가는 대신 ‘다른 자리를 주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김 씨는 “(산업부에서) 나한테 다른 자리를 주려고 해서 (나가라는 요구에) 오케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기 박석환 전 차관의 가스연맹 행은 무산됐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에서 ‘취업제한’ 결정이 났던 것이다. 박 전 차관이 외교부 차관 재직 시절 가스연맹의 회원사 한 곳과 외교부 부속 건물 건설 계약을 맺었던 게 발목을 잡았다. 김 씨 역시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나는 (자리를 비켜주는 것을) 오케이 하고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그 당시 행안부에서 커트됐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임기를 채우고) 있으니까 또 나가라고 하더라고. 6개월 남기고.”
김 씨가 산업부에서 다시 연락을 받은 건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을 때다. 김 씨의 임기는 2016년 2월까지로, 역산하면 2015년 8월 무렵이다. 1년 전에는 ‘나간다’고 했던 김 씨는, 이번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내가 그때는 안 나가려고 했다”며 “산업부 측에 내가 임기가 6개월밖에 안 남았으니, 지금 나가는 것보다도 임기를 채우고 나가는 게 절차상 번거롭지 않고 순리적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했다.
2015년 8월은 가스공사가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체결한 시점이다. 이 시기 가스공사 본사는 캐나다LNG사업팀에 박 전 차관과 자문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했다. 캐나다LNG사업팀은 이를 다시 캐나다에 있는 가스공사의 자회사격 해외 법인, KCLNG 측에 부탁했다.
두 번째 낙하산 시도와 무산, 그리고 박석환 전 차관이 당시 사무총장 자리에 있던 김 씨의 임기 만료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 6개월. 가스연맹 임원의 연봉은 1억 2천만 원 수준, 박 전 차관이 가스공사에서 받은 금액은 6개월에 5500만 원이었다. 박 전 차관의 가스연맹 사무총장 취임이 늦춰지면서, 공백 기간인 6개월 간의 급여와 비슷한 금액을 박 전 차관 측에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산업부 실국장들이 외교부 대사로 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대사 자리가 외교부 몫인 대신에 외교부 출신의 퇴직 후 자리를 산자부에서 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의 자리를 산업부에서 마련해주려다 보니 내 자리를 짚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김 씨에게 당시에 연락했던 산업부 관계자는 누구였을까. 김 씨는 당시 산업부 차관이었던 이관섭 차관, 그리고 이호현 가스산업과장의 직속 상관이었던 채희봉 당시 에너지산업정책관을 지목했다.
김 씨는 특히 2015년 채희봉 정책관(현 가스공사 사장)과 식사를 함께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자리에서 안 나가려고 이관섭 차관한테 전화를 하니까 채희봉 당시 국장에게 전화가 왔다”며 “채희봉 국장이 ‘차관한테 전화받았다’면서 전화를 걸어 ‘왜 안 나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국장이 ‘식사 한 번 하자’고 했고, 식사를 하면서 내가 임기를 마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2014년 7월~8월 무렵, 즉 산업부가 박석환 전 차관에게 처음 가스연맹 사무총장 자리를 주려고 시도할 당시에는 ‘국장급’에게서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국장이 채희봉 국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채희봉이 에너지산업정책관으로 근무했던 기간은 2014년 2월부터 2016년 4월이다. 두 시기 모두 김 씨에게 ‘나가달라’는 연락을 한 인물은 채희봉 당시 산업부 정책관이었다는 말이다.
이관섭 차관은 뉴스타파 측에 “박 전 차관을 모르고, 김 씨는 알지만 통화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채희봉 당시 산업부 정책관은 현재 가스공사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가스공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정부 부처 공무원 출신이 해당 부처 산하 기관의 기관장으로 ‘낙하’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채희봉 사장 역시 산업부에서 에너지산업정책관,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거치고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역임한 뒤 가스공사 사장 자리를 꿰찼다.
가스공사의 특혜 자문계약 체결 시점은 2015년 8월, 그리고 가스공사 내부 감사에서 이 사건이 적발된 건 2018년 일이다. 하지만 채희봉 사장이 온 뒤에도 이 특혜 계약 사건은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언급됐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가스공사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스공사 연속보도 3편 : ③'황제 자문계약' 무혐의..."썩어빠진 검찰" 참고)
그러나 국감 지적 이후에도 가스공사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국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자 가스공사 내부에 특별조사단이 꾸려졌다. 특조단 조사 과정에서 자문계약 관련 내부 감사 당시 감사실 총책임자였던 ‘상임감사위원’은 특조단 측에 “자문계약 배경에는 산업부의 취업 청탁이 있었다”면서 “당시 취업 청탁을 한 산업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특조단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사를 마무리한 이후 특조단은 당시 가스공사 부사장이었던 임 모 씨가 검찰 수사를 축소하려고 한 정황이 있다며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유 모 씨도 포함됐다. 유 씨는 자문계약 당시 KCLNG(가스공사 캐나다 법인)의 법인장이었다. KCLNG는 가스공사 본사의 지시를 받고 자문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공사의 첫 검찰 고발 당시에도 고발장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다.
특조단이 산업부 관계자를 검찰에 고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취재진은 당시 특조단장이었던 이 모 씨에게 “자문계약의 배경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 씨는 “배경은 특조단의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며 “애초에 누가 자문계약을 지시했는지 등은 가스공사 감사실에서 앞서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답했다.
가스공사는 자체 특조단이 임 모 전 가스공사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는데도 임 씨의 임원 직(상임이사)은 유지시키며 올들어 현재까지 1억 원이 넘는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가 가스공사 특혜 자문계약 연속보도를 내보낸 뒤 취재진에게 몇 건의 익명 제보 메일이 왔다. “이호현 당시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의 직속 상관이 채희봉 사장이었다”, “그 당시 이호현 과장의 직속 상관이 현 가스공사 사장인 것 같은데 가스공사에서 (산업부 관계자들을) 고발할 수 있겠냐”는 내용 등이다.
채희봉 사장은 “에너지산업정책관 시절 당시 가스연맹 사무총장 김OO에게 ‘나가라’는 연락을 한 게 맞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서면 답변서를 통해 “당시 담당 국장으로서 김 씨에게 몇 차례 연락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배경에 대해 “당시 가스산업 관련 국제 행사(세계가스총회·WGC) 유치를 준비하고 있던 가스연맹과 가스공사에서 김 씨의 국제 네트워크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외교부 출신 인사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채 사장은 가스공사가 이후 박석환 전 차관과 맺은 자문계약에 대해서도 “가스공사 본부장에게 사장님과 논의해 검토해보라고 저도 연락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도 “자문계약의 집행과정은 전적으로 가스공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취재 | 강혜인 |
촬영 | 오준식 정형민 신영철 |
CG | 정동우 |
편집 | 김은 박서영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회원들의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월 1만원 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