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은행] ② 수상한 계약자들: 중미경제통합은행과 한국, 그 틈새를 노리다

2023년 11월 06일 18시 00분

중미경제통합은행(Central American Bank for Economic Integration·CABEI)은 중미 국가들의 자발적인 경제 발전과 역내 균형 개발을 표방하며 1960년대에 설립됐습니다. 오늘날 이 은행은 중미 지역 개발 재원의 절반 가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019년 국내 기업의 중미 진출을 지원할 목적으로 이 은행에 가입했습니다. 총 6억 3000만 달러를 출자해 영구이사국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한국이 출자하고 경영에도 참여하는 이 국제 개발 은행의 실태는 심각했습니다. 취재 결과,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부패한 관행에 자금을 전용하고, 중미 지역 권위주의 독재자들의 관심 사업에 돈을 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뉴스타파와 OCCRP, 중미 지역 매체들이 주축이 된 국제협업팀의 ‘독재자의 은행’ 프로젝트 취재 결과를 공개합니다. <편집자주>
[독재자의 은행]
① 중미의 개발은행이 부패와 권위주의를 조장한 방법 (영문기사)
수상한 계약자들: 중미경제통합은행과 한국, 그 틈새를 노리다 (영문기사)
지난 2021년 9월, 중앙 아메리카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 한복판에서 한국 전통무용에 맞춰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려 마련된 이 행사에서 중미경제통합은행 총회에 모인 각 회원국 대표단이 함께 어울렸다.
단테 모씨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는 이 행사 연설에서 “한국이 중미 지역을 어떻게 도왔는지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며 운을 뗐다. 그는 “한국은 가장 최근에 회원국이 된 나라이지만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은 우리 지역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무용단이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열린 2021년 중미경제통합은행 정기총회 행사에서 공연하고 있다. (출처: 중미경제통합은행 유튜브 채널)  
중미 지역 개발을 위한 유일한 국제금융기구인 중미경제통합은행이 한국의 가입을 설득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가입 제안을 받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가입은 매번 무산됐다. 한국은 2019년 마침내 이 은행의 역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국내 기업의 중미 현지 인프라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가입 당시 4억 5000만 달러 출자를 약속했다. 이후 2020년 6월 추가로 출자금을 내기로 결정해 총 6억 3000만 달러를 출자하게 됐다. 은행 지분의 9%를 보유하며 영구이사국이 됐다. 
중미경제통합은행의 역외 회원국 중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자금을 출자한 한국의 합류는 이 은행에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의 가입은 은행이 자본금을 50억 달러에서 70억 달러로 늘리고 국제 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상향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변화는 은행이 중미 지역 회원국에 대출할 자금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어 우리 정부는 이 은행 회원국 최초로 단일 기부자 신탁기금인 ‘한국-중미경제통합은행 파트너십 단일 기부자 신탁기금’(Korea-CABEI Single Donor Trust Fund·한국신탁기금)을 설립하고 2020~2024년 5년간 5000만 달러를 출연하기로 했다. 이 자금은 지분 확보, 수익 배분을 전제로 한 출자금과 달리 한국이 은행에 ‘기부’하는 출연금이다.
이러한 성격의 신탁기금 덕분에 중미경제통합은행이 지원하는 사업의 일정 비율은 공여국인 한국 국적의 기업이 우선 수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한국 정부도 출자금에 이어 수백억 원을 기부한 이유도 한국 기업이 중미에서 더 많은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홍보해 왔다. 한국신탁기금 2021년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기금의 55%까지 한국 기업의 몫으로 할당돼 있지만 실제로는 80%에 가까운 자금을 한국 기업들이 타갔다. 
중미경제통합은행은 2020년 초, 코로나19가 중미 지역에 확산되자 회원국인 한국에서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긴급히 사들였다며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한국 언론과 외교부도 이 소식을 타전했다.
그러나 OCCRP, 컬럼비아 저널리즘 인베스티게이션(CJI), 뉴스타파 협업취재팀 취재 결과, 은행은 전문성이 의심스러운 한국 컨설턴트와 계약을 맺었고 핵심 검사용품은 빠트린 채 유전자증폭(PCR) 진단 키트만을 주문해 중미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고 예산도 낭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팬데믹 초기, 한국산 진단키트 중미 수출 뒷이야기

협업취재팀은 중미경제통합은행 내부 감사 자료를 통해 은행 내부에서 어떻게 문제의 의사 결정 과정이 진행됐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2020년 3월 초 코스타리카에서 미국인 관광객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보고했고, 팬데믹은 중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중미 권역 대부분 국가의 의료 시스템은 취약한 상태였고, 주민의 약 3분의 1은 의료 인프라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병원을 순식간에 압도할 위기에 처하자 중미경제통합은행은 한국에 도움을 청했다. 
3월 중순, 은행 이사회는 감염자 조기 파악을 위해 210만 달러를 들여 한국 기업으로부터 PCR 진단 키트를 구매하기로 의결했다. 진단 키트는 4월 6일 은행 본부가 있는 온두라스에 도착해 각국으로 나눠 전달됐다. 
2020년 4월 초, 중미경제통합은행은 모씨 총재와 온두라스 보건 당국자들이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전달받는 사진을 공식 트위터에 게시했다. (출처: 중미경제통합은행 X 계정)
코스타리카도 진단 키트를 받았다. 그러나 도착한 진단 키트에는 환자의 검체를 채취할 때 사용하는 면봉이 포함된 ‘추출 키트’가 빠져 있었다.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오톤 솔리스 당시 중미경제통합은행 코스타리카 이사는 같은 해 4월 14일 모씨 총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역외 회원국이 관대함과 최선을 다해 우리 지역 회원국에게 기부한 코로나19 진단 키트는 불완전하다”며 “안타깝지만 사용할 수 없다”고 적었다.
당시 솔리스 이사는 “코스타리카 보건부 장관이 방금 ‘증폭 키트만 오고 추출 키트는 오지 않았다. 후자는 세계 시장에서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기부받은 것은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고 상황을 전했다.
모씨 총재는 이메일 답장에서 중미통합체제(SICA) 최고위 인사들의 요청과 중미보건장관협의회(COMISCA) 승인 아래 증폭 키트만 구매하도록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추출 키트가 포함되지 않은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진단 키트) 확보는 우선순위에 따라 먼저 진행됐을 뿐 나머지 키트도 (중미권역 밖 다른 국가에) 여전히 요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솔리스 이사는 “우리 보건부 장관은 지금 우리가 확보하지 못한 키트가 시장에 없다고 한다. 당신 말대로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라고 답했다.

- 단테 모씨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와 오톤 솔리스 당시 중미경제통합은행 코스타리카 이사의 대화 이메일 / 2020.4.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은행 내부에 알려진 뒤 실시된 감사에서 당시 중미경제통합은행 최고윤리감사관은 다르게 봤다. 모씨 총재가 진단 키트 구매 과정에서 전문성 기준과 윤리적 기준을 모두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보자가 입수한 감사 자료에 따르면 모씨 총재의 수석 고문인 한국계 미국인 제이슨 오가 진단 키트 구매 담당자로 조사를 받았다. 또 오 씨는 자신이 한국의 PCR 진단 키트 제조업체와 직접 협상했고, 은행 이사회와 중미보건장관협의회가 구매를 승인하기도 전에 업체에 구매를 타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은행 감사팀은 모씨 총재에 대해 “책임자의 업무 수행 능력 부족과 실수를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윤리 위반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최고윤리감사관은 감사 보고서에서 “(진단 키트 구매) 진행 과정 여러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 개념과 의견(간단히 말하자면 거짓말)이 구두 및 서면에 나타났다”며 윤리위원회에 사건을 접수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모씨 총재는 OCCRP와의 인터뷰에서 오 씨가 당시 다른 대안보다 훨씬 더 좋은 가격으로 한국 업체와 협상한 결과라며, 당시의 구매 결정을 옹호했다. 
모씨 총재는 중미경제통합은행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PCR 검사 키트를 구입한 이유가 당시 중미권역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진단 키트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중미 시장의 진단 키트 가격은 개당 100달러 수준이었는데 한국 제품은 개당 10달러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또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진단 키트 역시 면봉 등 검체 채취 부품이 빠진 채로 높은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팬데믹 초기 몇 달 동안 진단 키트를 거의 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은행의 한국 이사의 제안에 따라 한국 정부가 가격별로 구할 수 있는 진단 키트의 정보와 여러 업체의 이름을 제공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감사 결과, 어떠한 위법 행위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은행이 진단 키트 구매와 관련해 중미보건장관협의회와 상의했으며, 지역 보건 기관의 조언에 따라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여 구매를 결정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2020년 5월, 중미경제통합은행 이사회는 누락된 추출 키트와 기타 필요한 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최초 계획했던 예산보다 230만 달러를 추가로 의결해야 했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코로나19 조기 검사의 이점이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고 은행 감사팀은 지적했다.

‘총재 고문’이라 불린 의문의 한국계 미국인, 제이슨 오

제이슨 오(한국명 오재혁). 모씨 총재가 은행 직원들을 대신해 한국산 코로나19 PCR 진단 키트 제조업체와 구매 계약을 맺도록 지시한 인물이다. 
오 씨는 이 은행과 한국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러나 협업취재팀 취재 결과, 오 씨는 자신과 관련된 컨설팅 회사들이 은행과 한국 양측 사이에서 사익을 챙길 수 있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 씨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중미 개발 분야에서 수 년간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국제 개발정책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한국과 미국 민·관의 중미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오 씨가 공개적인 기록에 등장한 것은 2016년 무렵부터다. 당시 한국 정부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을 보면 한국 정부와 중미경제통합은행 고위 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에 그가 동석한 사실이 확인된다. 2016년 8월 모씨 총재의 전임인 닉 리쉬비쓰 총재가 방한해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만났을 때 오 씨는 미국과 한국에서 운영하는 미국 개발 컨설팅업체 ‘KORDA’(Korea Development Advisors·코다)의 대표이사로 소개됐다.
닉 리쉬비쓰 중미경제통합은행 당시 총재가 지난 2018년 8월 방한 중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만나고 있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제이슨 오(한국명 오재혁) 총재 수석 고문은 ‘KORDA 대표이사’로 소개돼 있다.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모씨 총재는 자신이 2018년 말 취임했던 시점에 오 씨가 이미 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과정을 돕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OCCRP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국가에 물리적으로 사무소가 없을 때 정부와의 관계를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게 되는데, 이건 정상적인 관행”이라며 “한국을 알아가려면 문자 그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모씨 총재의 설명처럼 중미경제통합은행 웹사이트에 공개된 2020년 은행 자체조달 협력업체 명단에는 오 씨가 등장한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 “대한민국과 관련된 모든 사항 및 사업에 대해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에게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자문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명된 사업을 7만 2000달러(약 9500만 원)에 수주했다. 
그런데 비즈니스 전문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의 오 씨 프로필에는 2019년 7월부터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Permanent Principal Advisor to Executive President)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지난 1월 한국-온두라스·도미니카공화국 의원친선협회 대표단이 모씨 총재와 온두라스 현지를 방문해 면담한 결과를 기록한 보고서를 보면 그가 이 은행의 “수석”으로 소개돼 있다. 모씨 총재도 오 씨가 현재까지 은행에서 함께 일하고 있으며 재무실과 전략부서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확인해줬다. 정리하면 2020년 한 해 동안 은행과 따로 자문 계약을 맺기 전부터 현재까지 은행에 채용돼 일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협업팀이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그는 중미경제통합은행에 채용돼 일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한국에서 여러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이 은행에서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오 씨는 2013년부터 미국에 본사를 둔 컨설팅 회사 코다의 대표였다. 2019년 7월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으로 취업한 이후에도 코다 대표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제이슨 오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은 자신의 링크드인 프로필에 2019년부터 은행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출처: 제이슨 오 링크드인 프로필)
은행의 계약업체 목록에 따르면 2020년부터 현재까지 오 씨의 측근이 운영하는 한국의 컨설팅 업체 세 곳은 이 은행에서 160만 달러(약 21억 원)가 넘는 규모의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한국 업체들은 오 씨의 코다 미국 본사의 임직원으로 일하던 가족과 지인들이 운영했다. 오 씨의 동료 컨설턴트 등이 고위직을 맡고 있는 컨설팅 회사도 이 은행과 계약을 맺은 사실이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직원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회사가 “어떻게 아무도 같은 사람이 운영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항상 궁금했다”고 말했다.

제이슨 오와 한국 소재 컨설팅 회사들의 긴밀한 연결

제이슨 오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이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해온 컨설팅 회사는 확인된 것만 모두 다섯 곳(한 곳은 폐업)이다. 이 가운데 가족·지인을 동원해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는 총 세 곳이다. 이렇게 오 수석이 간접적으로 운영하는 ▲로직스탠드 ▲이볼브컨설팅 ▲아이스트리트파트너스 등 3개 회사들은 2020년과 2021년 중미경제통합은행이 자체조달하는 사업의 타당성조사, 자문 용역 등 계약을 체결했다. 일부는 한국신탁기금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로직스탠드
로직스탠드는 법인이 설립된 해인 2020년, 중미경제통합은행이 자체조달한 ‘한-중미경제통합은행 신탁기금 행정 및 외부자문 서비스’ 사업을 120만 달러(약 15억 원)에 수주했다. 
취재팀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로직스탠드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직원은 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승열’ 씨라고 취재팀에 확인해줬다. 그러나 법인 등기부등본상에는 이 씨의 흔적이 없다. 대신 방윤정이라는 인물이 유일하게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취재팀이 로직스탠드 내부 자료를 검토해보니 이승열 씨는 로직스탠드 전무(Managing Director) 명함을 가졌고 이 회사의 이메일 계정도 사용했다. 이 씨가 직접 관리하는 링크드인 프로필에도 그가 2019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로직스탠드에서 전무로 일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즉, 대표가 아닌 전무 직급으로 이 회사에서 일한 것이다.
취재 결과, 이 씨는 과거부터 제이슨 오 중미경제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과 긴밀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여러 기록이 확인됐다.
이 씨의 링크드인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오 수석이 대표로 있는 미국 워싱턴DC 소재 컨설팅회사 코다에서 2011년부터 2019년 11월까지 일했다. 또 코다를 퇴사한 시점부터는 로직스탠드에서 근무한 것으로 적혀 있다.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워싱턴DC에서 제기된 법정 소송 2건에서도 이 씨와 오 수석은 DC지역에서 같은 주소지를 사용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중미경제통합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오 수석이 이미 이 은행에서 일하고 있던 2020년에 이 씨는 한국신탁기금의 ‘조정관’(Program Coordinator)으로 은행에 합류했다. 
취재팀이 입수한 한국신탁기금 운영규정에는 “조정관은 한국신탁기금 자금으로 중미경제통합은행이 고용”하며 “신탁기금 운영팀과 (은행 및 한국 정부, 다른 회원국 등) 여러 당사자에게 전문 기술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적혀있다. 또 규정에 따르면 조정관은 기금 사업 선정·평가 기준 설계, 공급업체 및 컨설턴트 활동 감독, 사업의 모니터링과 평가를 담당한다. 즉, 기금 사업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지면서 이해 충돌에 민감한 중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한국신탁기금의 조정관인 동시에 기금의 행정·자문 용역 계약을 수주한 컨설팅 회사에서도 전무(직원의 말로는 대표)로 겸직하고 있다.
중미경제통합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 출자·출연에 관한 주무부처인 한국 기획재정부도 이 같은 사실은 파악하고 있었다. 기재부는 이 씨가 “중미경제통합은행 직원이 아니며 이 은행과 계약한 적 있는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 알고 있다”고만 취재팀에 답했다.
코다
링크드인과 이 회사 내부 문서에 따르면 앞서 살펴본 로직스탠드 임원인 이승열 전무(한국신탁기금 조정관 겸직)와 방윤정 씨가 코다에서도 임원을 맡았던 기록이 확인된다.
서울 성동구 로직스탠드 사무실 위층에는 제이슨 오 수석이 현재도 대표로 있는 미국계 컨설팅 회사 코다의 한국 사무소가 있다. 두 회사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경비원은 “코다와 로직스탠드는 같은 회사”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지난 1월 로직스탠드코다는 동일한 내용의 구인 광고를 게재한 적도 있다. 취재팀이 입수한 기록에 따르면 코다 웹사이트의 도메인도 이 전무가 등록했다.
로지칼스탠다드
이 회사는 2014년 1월 한국에 설립됐다. 제이슨 오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과 방윤정 로직스탠드 이사는 모두 2015년부터 2021년 12월 회사가 해산할 때까지 이 회사 법인 등기부등본에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취재 결과 미국에도 동명의 회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 로지칼스탠다드는 2010년 설립돼 2011년과 2012년 미국 법원 기록상 제이슨 오 수석과 이승열 씨의 주소지에 등록돼 있었다. 법인 설립 기록에는 등록 대리인이 오 수석으로 적혀 있지만, 회사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표시돼 있지 않았다. 
로지칼스탠다드 법인이 등록된 직후, 회사의 워싱턴DC 주소는 ‘logicstand.com’ 웹사이트 도메인 등록에 활용됐다. 이 씨는 도메인 등록 시 자신을 미국 회사 코다 직원으로 기록했다. 로지칼스탠다드 미국 법인과 한국 법인 모두 현재는 해산한 상태다. 
이볼브컨설팅 
로직스탠드와 로지칼스탠다드의 임원으로 파악되는 방윤정 씨는 이볼브컨설팅에서도 근무했다. 2015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국내 법인 등기상으로는 ‘이보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방 씨는 이 법인 설립 시점부터 현재까지 등기이사로 등록돼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데이터베이스 오르비스에는 이 회사의 전 대표이사로 이승열 전무가 기록돼 있다.
2020년 중미경제통합은행 자체조달 계약자 목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중미경제통합은행 및 중미통합체제, 아시아태평양 간의 정치·경제적 유대 강화 서비스’라는 사업을 40만 달러(약 5억 2000만 원)에 수주했다.
이렇게 살펴본 회사들의 내부 자료들을 살펴보면, 제이슨 오 코다 대표와 이승열 로직스탠드 전무가 각각 중미경제통합은행 수석과 한국신탁기금 조정관으로 취업한 뒤에도 코다, 로직스탠드, 이볼브컨설팅은 사실상 같은 직원이 세 회사의 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며 긴밀하게 협업해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오 수석과 이 전무가) 이볼브컨설팅과 코다를 동시에, 한몸처럼 활용해서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업 입찰에 신청했는데 코다가 떨어지면 다른 회사 명의로 다시 입찰에 참여하면 된다. 코다가 항상 같은 사업을 수주할 수 없으니까 다른 회사 이름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보컨설팅은 2015년부터 3년간 한국 정부의 용역 사업도 3건 수주해 수행했다. 주로 중남미 지역 인프라 개발에 대한 정책 자문 사업이다. 2015년에는 당시 미래부가 발주한 중남미지역 ICT 인프라 구축 연구 사업을 수행했다. 이 연구 용역보고서에 로직스탠드 임원인 방윤정 씨는 이보컨설팅 소속 연구원으로, 이승열 전무는 코다의 선임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보컨설팅은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 개발사업 용역 연구 2건을 수행했다. 이 가운데 니카라과 통신환경 개선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이 연구에 로직스탠드의 이승열 전무와 방윤정 씨가 이보컨설팅 소속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들이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부 관계자도 의문을 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직원은 “방 씨는 금융이나 국제개발 분야,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지식이 없어 보였다”며 “제이슨 오 수석과 이 전무의 개인 비서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아이스트리트파트너스 
로직스탠드와 로지칼스탠다드, 두 법인 등기에서 이사로 확인되는 방윤정 씨는 서울 영등포구 한 공유오피스에 주소를 둔 아이스트리트파트너스 법인에도 감사로 이름을 올렸다.
중미경제통합은행의 계약자 목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이 은행의 한국신탁기금으로부터 2021년 ‘중미지역에서의 한국 기관투자자 지원을 위한 접근 전략 및 참여 자문 서비스’ 사업을 4만 달러(약 5000만 원)에 수주했다.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 대표이사 박수린 씨는 한국계 미국인이며 제이슨 오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 수석 고문의 친누나다. 남편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현재는 박 씨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박 씨의 링크드인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과거에 동생인 오 수석이 운영하는 코다의 인사 책임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박 씨의 자녀도 이곳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의 링크드인 프로필은 삭제된 상태다. 
취재팀이 확보한 자료를 검토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은행 관계자의 친인척이 은행과 사업과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한 중미경제통합은행의 내부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명백한 이해 상충이라고 지적했다. 
조달청이 발간한 중미경제통합은행 공공조달시장 입찰 가이드북에 따르면 은행의 자체조달정책은 “물품, 서비스 조달절차와 계약 수행 단계에서 … 벤더(납품업체 및 컨설턴트 등)의 뇌물, 사기, 결탁, 강압 행위를 금기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가이드북은 또 은행이 “특히, 벤더의 윤리적 의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고 안내한다.
자체조달 절차에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미경제통합은행은 아래 인력*의 직접적, 간접적 물품·서비스 공급을 제한함
*관련 인력(a) 개인: 현직 중미경제통합은행 직원 혹은 퇴사한지 2년이 지난 전 은행 직원, 그리고 전현직 은행 직원의 배우자, 가족 구성원 혹은 친인척 포함(b) 법인: (a)에 포함된 인물이 자본금의 25% 이상을 소유한 법인, 미화 1만불에 해당하는 금액 이상의 구매의 경우 (a)에 포함된 인물이 대표자/운영자의 직을 보유한 법인

중미경제통합은행은 자체조달 사업 계약자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다. 입찰 가이드북에 따르면 은행은 “벤더에 대한 회계감사 및 조사 절차를 시행할 법적 권한을 보유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일부에 대해 단기적 혹은 영구적으로 자체 조달절차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대상자 목록에 포함할 수” 있다.
취재팀은 제이슨 오 수석을 비롯해 그와 함께 한국에서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이승열, 방윤정, 박수린 씨에게 수 차례 여러 방법을 통해 접촉했지만 해명을 듣지 못했다. 이들의 국내·외 연락처를 통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했지만 이들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이들은 또 취재팀이 보낸 이메일은 여러 차례 열람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회신은 하지 않았다. 취재팀은 이 씨 등이 임원으로 근무하는 한국 소재 법인들의 사무실도 방문했으나, 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취재팀은 중미경제통합은행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주에 걸쳐 접촉했지만, 은행 대변인은 시한 안에 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만 답변했다. 
한국 기재부는 한국신탁기금의 관리 권한이 전적으로 중미경제통합은행에 있다고 취재팀에 해명했다. 기재부는 “한국 정부는 중미경제통합은행 신탁기금 관리자 선정 등에 관여한 바 없으며, 신탁기금 관리·운영, 관리자 선정, 계약 체결 등의 권한은 전적으로 은행에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미경제통합은행과 한국신탁기금의 관리 투명성에 대한 기재부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는 신탁기금이 한국의 강점·관심 분야에 쓰이도록 사업 승인을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모씨 중미경제통합은행 총재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은행의 한국 사무소가 개설됐기 때문에 오 수석과 은행과의 계약도 곧 만료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국 사무소가 오 수석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 사무소는 2022년 7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열었다.
협업취재팀은 지난달 말 오 수석과 컨설팅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인물들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이들이 운영하는 로직스탠드와 코다 사무실을 재방문했다. 이번에는 두 곳 모두 비어 있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이 회사들이 입주한 건물 관리업체에 따르면 아직 그들이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지만 지난달 초에 이미 임대 공고를 내놓은 상태다. 건물 관리자는 해당 사무실이 임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금융기구에 쏟는 돈, 출자·출연 단계부터 감시 허술

취재 결과, 한국 정부가 출자·출연한 중미경제통합은행의 자금이 한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 조달 해프닝처럼 허술하게 계획· 추진된 사업에 낭비되거나, 총재의 수석 고문과 그의 측근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사례가 드러났다. 더욱이 중미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쓰여야 할 은행 자금이 사실상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의 권위주의 정권과 독재자를 위해 대출되고 있는 실태도 재확인했다. (관련 기사: ① 중미의 개발은행이 부패와 권위주의를 조장한 방법)
이에 더해 한국 정부는 국회로부터 정부가 국제 개발은행에 출자·출연금 제공을 결정하는 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행 국제금융기구가입법에 따르면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개발은행에 출자·출연금을 내려면 국회에서 사전 의결을 거친 뒤 부처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행법은 정부 재정 여건이 어렵거나 급하게 출자를 결정해야 할 경우에는 기재부가 아니라 한국은행이 자금을 대납하고, 국회에는 사후 보고하도록 허용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에서 출자·출연금을 대납하게 된다.
2019년 9월, 제20대 국회에서 이 같은 예외규정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률개정안이 발의됐다. 한국은행의 출자·출연금 대납이 필요할 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고, 동의를 받을 때도 자세한 출자 계획을 제출하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국은행이 기재부 대신 국제금융기구 출자금을 내주는 예외규정 적용이 기재부가 국회의 예산 심의를 우회하기 위한 관행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법률개정안을 검토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을 통한 출자·출연금 납입의 사후보고 내용이 부실”하다며 “이러한 한국은행을 통한 출자필요성이 있는지와 그 금액은 적정한지 등에 대해 확인할 길이 없어 실질적인 재정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행을 통한 출자가 국회 예산 심의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강화된 재정통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국회 사후 보고 조항이 있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은 침해되지 않으며 긴급한 출자 수요가 있어 예산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법 개정을 반대했다. 결국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그리고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문제의 예외규정에 대한 비판과 법 개정 시도는 10여 년이 넘도록 국회를 맴돌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2019년 7월, 국회가 한국의 중미경제통합은행 가입을 비준한 뒤 국회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회의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당시 소위 회의에서 위원들은 국제금융기구가입법상 국제금융기구에 이 은행을 추가하는 법률개정안 처리를 다루고 있었다. 한 위원이 한국은행이 관행적으로 기재부 대신 출자금을 대납하면 “국회와 국민은 알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기재부 관계자들은 “출자금은 어차피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인 데다 한국의 지분”으로 남기 때문에 이 같은 관례를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또 출자금은 써서 없어지는 돈이 아니므로 “이 주머니에서 나가든 저 주머니에서 나가든 똑같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한국은행의 대납 예외규정 남용을 제어하려는 법 개정안은 2009년 제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역시 기재부가 반대했고 최종적으로 폐기됐다. 
그리고 지난달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이 다시 똑같은 문제 제기를 했다. 홍성국 의원실이 한국은행과 기재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10년 간 한국은행이 정부 대신 국제금융기구에 납입한 출자·출연금은 12조 6832억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정부가 직접 납입한 액수는 1조 947억 원이다. 전체 출자·출연금의 92%를 국회 사전 심의 없이 한국은행 외환보유고에서 충당한 것이다.
홍 의원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고 분담금이 투명하게 관리·집행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정부의 분담금이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한범 국제투명성기구 한국지부 대표는 “국내의 정부기금이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기금의 운영계획 및 결산, 회계 등이 국회에 보고되고 엄격한 통제를 받는 만큼 해외에서 진행되는 사업도 그에 준하여 국회에 보고하고 그에 따른 환수조치, 추가 출자제한 등의 지속가능하고 적절한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김지윤, 앤드류 리틀(컬럼비아 저널리즘 인베스티게이션), 일라이 모스코위츠(OCCRP)
리서치얀 얀(OCCRP)
디자인제임스 오브라이언, OCCRP, 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