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타파][현장에서] “협력사 없으면 우리도 죽어요” 현대중공업의 황당한 하소연
2019년 12월 13일 08시 0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18년부터 독립PD와 독립다큐감독을 대상으로 제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사측의 폭언과 갑질에 맞서 7년 동안 싸워온 레이테크 코리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취재와 연출을 맡은 문정현 독립감독은 <용산>, <할매꽃>, <경계> 등을 제작했습니다. - 편집자 주 |
우리는 국내 최대 견출지 제조회사 레이테크 코리아의 포장부 노동자입니다. 사무용품과 아이들의 문구용 스티커를 포장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포장부 노동자 대부분은 주부 사원입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았지만 보람있게 일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젊은 사장이 경영을 시작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그해 4월, 회사는 경영상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우리에게 비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자, 이번엔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이른바 “시간제 알바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포장부 55명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어 맞섰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은 임00입니다. 2013년, 28살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아 2세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입니다.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 임 사장이 수시로 하는 말입니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이니 도려내야’ 한다는 겁니다. 임 사장은 “감히”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감히 내가 사장인데 너는 내가 앉아 그러면 앉아야 되고, 일어서 그러면 일어서야 되는 그런 사람이다’라는 식입니다.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 노동자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50먹은 아줌마들이 뭐 할게 있느냐”
“내 앞에서 숨도 크게 쉬면 안돼”
“여러분들이 하는 일은 시간당 7,500원이 아니라 1,000원 가치 밖에 없는 일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단순한 단순노동하고 있으면서 뭘 잘 났다고 이렇게 땍땍대나”
“산수는 할 줄 아나? 초등학교는 나왔지?”
우리가 들어야 했던 임 사장의 막말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노동의 존엄은 물론 인간에 대한 모욕과 멸시였습니다. 처음에는 어이없고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답답해졌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작업장은 정말 열악했습니다. 제대로 된 환풍 시설이 없었습니다. 작업 공간은 종이가 많아 먼지가 늘 쌓였고, 스티커 본드 냄새도 심했습니다. 화학 본드와 종이 먼지가 가득한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웅크린 채 일했습니다. 퇴근 무렵이 되면 눈의 실핏줄이 빨갛게 터지기 일쑤였습니다. 머리가 아파 진통제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할 공간이 없어 복도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습니다. 노사 교섭을 통해 휴게실을 겨우 얻어냈고, 그 곳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발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건 우리에겐 정말 큰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휴게실과 탈의실 등에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사측의 직장폐쇄와 징계로 인해 2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임 사장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빌면 징계를 철회하겠다며 순응서약서를 쓸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2019년 4월 임 사장은 길거리에서 해고통지서를 전달했습니다. 이날 임 시장은 조롱하듯 ‘흩어지면 죽는다’ 파업가를 부르며 사무실에서 내려왔고, 우리는 길거리에서 해고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임 사장은 늘 법대로 하자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10원 한 장 주는 것도 아깝지만 변호사, 노무사에게 주는 돈은 아깝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시정조치해달라고 수차례 고용노동청을 찾아가 진정을 냈습니다. 임 사장의 조사도 촉구했습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2018년 10월과 2019년 8월, 각각 폭행. 대체인력채용(하도급), 부당노동행위, 단체협약 위반 등으로 임 사장을 조사했고 그 결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검찰은 노동청에 보강 조사를 지시했으며 지금까지 임 사장에 대한 기소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노조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겠다는 전근대적인 기업문화와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사측의 태도에 노동자들의 존엄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과 행정의 무책임함과 무관심한 언론에 절망해야했습니다.
촛불 혁명으로 정부가 바뀌었지만, 우리의 현실은 7년째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노조를 만들어 왜 고생을 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7년 동안 배운 게 있습니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폐업으로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보다 더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식과 후배에게는 우리같은 노동 현실을 물려줄 수 없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7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이름이 불려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시 받지 않고, 어린 사장에게 막말 듣지 않고,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고, 우리의 노동을 존중 받고, 일한 만큼 정당하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이고 싶습니다. 임 사장은 지금도 우리를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진짜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암적인 존재인가요? 진짜 암적인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취재, 연출 : 문정현 독립다큐 감독
취재, 연출 | 문정현 독립다큐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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