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30분을 예상했던 대화는 1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마른 체형, 꼭 다문 얇은 입술, 꼼꼼한 인상, 60대 초반인 그는 한수원과 원자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리는 정말 국가를 위해서, 국가의 경제를 위해서, 전력사업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죠. 우리나라 전력 사업에 기여한다는 보람 같은 게 있잖아요. 밤낮으로 고생 많이 했어요. 공기업 직원들이 전부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 00원전기업 임원 (한수원 1급 출신)
1970년대 후반 고리 1호기 핵발전소를 막 운영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선 약간 쉰 듯한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원전 산업”이 아닌 “한국 전력사업”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한수원 퇴직자들의 재취업 논란, 당사자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참아야 했다.
2014년 8월 말부터 한수원 간부 출신들의 원전기업 재취업 실태를 취재했다.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한수원 퇴직 직원들의 재취업 통계는 확보했다. 관건은 당사자들을 만나는 것, 해당 기업에 전화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익명을 전제로 만나자 해도 소용없었다.
취재팀은 지난 9월, 한수원 1급 퇴직간부를 만났다. - 출처 한수원
직접 부딪쳐보기로 했다. 아직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던 9월 중순 오후였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원전 관련 회사를 예고 없이 찾아갔다. 카메라 기자와 동행한데다, 한수원 직원의 재취업 실태를 취재하러 왔다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는데도 의외로 살갑게 대했다. 그는 한수원 고위 간부인 1급 출신이다. 한수원 본부장을 지낸 뒤 2011년 퇴사했는데, 퇴직 당일 원전 기업에 재취업했다. 퇴직 몇 개월 전부터 영입 제의가 왔다고 했다. 원전업체 상임고문 자리였다.
그를 영입한 기업은 2009년부터 원전 사업에 본격 진출했는데, 이 무렵 그를 포함해 한수원 간부 출신 3명을 잇따라 영입했다. 영입 당시 3명의 직책은 고문이었다. 그는 영입 된지 3년 만에 원자력 부문 고위 임원으로 승진했다. 한수원 협력업체에 고문으로 영입될 경우, 전관예우를 따져도 3년 정도 지나면 통상 ‘용도폐기’ 된다고 하는데, 승진까지 했으니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는 한수원 퇴직자들이 주축이 된 단체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기도 했다. 이래저래 그는 원전업계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통했다.
안내받아 그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3평 남짓, 별다른 장식 없이 화분 두 개가 전부일 정도로 소박했다. 응접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70년대 후반 한전에 입사해 고생했던 이야기, 중수로와 경수로의 차이점,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전 기술을 이전받던 경험담을 경청했다. 그는 좀처럼 대화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껄끄러운 사안인 재취업 논란을 당사자에게 묻기에는 뜸이 더 필요했다.
몇 번 찻잔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처음에는 눈 여겨 보지 않았다. 응접 테이블 유리 밑에 부착해 놓은 두 장의 조직도였다. 당연히 그의 회사 조직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수원 내부 직원들의 비상연락망이었다. 한수원이 만든 것으로 A3 용지 2장의 조직도에는 최근 작성된 한수원 2직급 이상 간부들의 비상연락망이 담겨 있었다. 한수원 간부들의 직책, 전화번호가 빼곡히 기재돼 있었다.
응접 테이블 밑에 부착돼 있는 한수원 직원 비상연락망이 발견됐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한수원을 퇴사한지 3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최근에 만든 한수원 조직도를 가지고 있을까? 입수 경로가 궁금했다. “아직도 한수원 전화번호를 갖고 계시네요?”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스스럼없이 답했다. “저희가 (원전 납품) 일을 하면서 그 쪽에 관련된 (한수원) 부서 사람들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 이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갖고 있는 거죠.”
나중에 한수원 홍보실에 연락해 ‘직원 비상연락망’은 보안 문서로 관리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홍보실 직원은 끝까지 답변을 주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최근 사이버 해킹으로 의심되는 한수원 내부 문서의 유출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유출된 문서의 하나가 한수원 2급 이상 직원들의 전화번호였다.
한수원 직원들의 조직도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재취업 문제로 이어졌다. 그를 만나기전, 이 업체의 한수원 납품계약 내역을 찾아봤다. 그를 포함해 한수원 간부 출신을 잇따라 영입한 이후 회사 사정이 확 바뀌었다. 2008년 7천 2백만 원, 2009년 단 한 건도 없던 한수원 납품계약 실적이 2010년에는 39억 원, 2014년에는 181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런 현상은 그가 속한 기업만이 아니었다. 취재팀은 한수원 퇴직 직원을 영입한 시점을 전후로 해당 기업의 한수원 납품 계약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지난 7년 동안 단 한 건이라도 한수원 납품 계약 실적이 있는 원전 업체는 4,394개, 이 가운데 한수원 퇴직 직원을 한 명 이상 영입한 46개 기업이 분석 대상이었다.
대상 기업 46곳 가운데 36곳(78%)의 한수원 납품 계약 실적이 영입 전년도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계약 건수와 금액이 줄어든 업체는 4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6개 기업은 별 변동이 없었다. 표본의 규모가 작고 제한적이지만, 78%에 이르는 원전기업이 한수원 퇴직자 영입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재취업과 납품계약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저 회사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말했다. 자신은 “기술 자문과 원전 운영 노하우”가 있기에 재취업했고, 한수원에 정당하게 입찰했으며,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계약을 따냈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관예우와 로비 등의 방법으로 입찰을 딴 적은 전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한수원 부하 직원들을 종종 만나 식사와 술자리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입찰 등 정보를 ‘어간 중에’ 얻는다고 했다.
모든 일을 원활하게 하려면, 모든 일은 사람 안면이잖아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한수원에 얘기할 수 있습니까? 얘기 못하죠. 얼굴 아는 사람이 가서 얘기도 할 수 있고, 얘기하다보면 어간 중에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고 그런 것이죠. - 00원전기업 임원 (한수원 1급 출신)
술자리에서 한수원 옛 부하직원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 궁금했다. 그는 웃으며 ‘본부장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금 일하는 회사의 ‘000사장’이라는 호칭보다는 ‘한수원 본부장’으로 불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한수원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한수원 본부장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2시간 남짓 이어졌다. 헤어질 무렵, 애초 하고 싶었던 질문, 그러니까 “한수원 고위 간부 출신으로 원전 기업의 재취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물었다. 그는 “기자들이 너무 부정적인 면만 부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직답을 피했다. 대신 ‘고령화 사회’, ‘봉사’ ‘경험의 전수’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낙하산이 뭡니까. 그 사람들의 힘을 이용해서 뭔가 하려는 거잖아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 같은 경우는 제가 평생 동안 살아 온 거니까 우리 교육원에 가서 강의도 합니다. 원자력 발전 계통 시스템 이런 강의를 하는데 사실 그런 거 해줄만한 사람이 없거든요. 저는 머릿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직원 교육도 하고 그렇죠. 고령화 사회 아닙니까? 오랫동안 일 했는데, 내가 평생 동안 쌓아온 지식 같은 것을 민간에 와서 필요한 부분들을 전수도 하고 - 00원전기업 임원 (한수원 1급 출신)
2008년 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한수원과 한전기술 등 원전 관련 공기업과 산업부 등 원전 주무부처 관료 출신이 원전 사기업에 재취업한 사람은 모두 72명이다. 한수원 1직급 고위 간부 출신은 49명으로 68%를 차지했다. 해당 기업은 순수한 기술자문을 위해 영입했다고 주장하지만, 한수원과 협력업체 사이의 유착으로 인한 원전 비리의 온상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며칠 전, 한수원은 1급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한수원 1급은 대략 180명 정도다. 올해도 한수원 간부들은 퇴직할 것이고, 한수원 윤리행동강령으로 금지해놨지만, 일부는 어떤 식으로든 원전 기업에 재취업할 것이다. 어쩌면 재취업한 이들은 퇴직 전 한수원 간부 직함으로 불리면서, 그의 사무실에는 한수원 조직도가 부착돼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봐야 할까? 문득 오래전 그림이 떠올랐다.
1888년 독일에서 인쇄된 엽서가 원작이라고 하는데 1915년 영국 만화가 윌리엄 힐이 ‘내 아내와 장모’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