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대통령이 부정선거 영웅? 야당 대표 체포하고 '불출마 각서'까지

2024년 12월 24일 17시 59분

2024년 12월 24일 17시 59분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즈공화국 대통령과 양국 수교 32년 만에 첫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국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이 만남을 두고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척결의 아이콘'을 만났다고 극찬했다. 자파로프 대통령이 자국의 부정선거가 한국산 개표기 때문에 발생한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파로프 대통령을 민주주의 수호자로 칭송하는 글귀들이 소셜미디어와 단체 대화방을 통해 퍼지고 있다. 한-키르기스스탄 정상회담과 12.3 비상계엄이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을 페이스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직적인 퍼나르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일부 인터넷 언론들까지 가세했다. 아무런 검증 없이 쓴 기사들은 부정선거 괴담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 바른언론시민행동 트루스가디언, 더 퍼블릭과 같은 매체들은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을 계기로 대통령이 된 인물"이라 규정했다. 
파이낸스투데이는 뉴스타파의 12월 19일 자 보도(관련기사: 윤석열이 믿은 해외 '부정선거' ...현지 언론과 협업해 팩트체크)를 반박하며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은 누구보다 부정선거에 대한 이해도와 경각심이 높음은 자명하다"면서 자파로프를 영웅화하기도 했다.

부정선거 영웅? 실제는 야당 정치인 체포하고, 정보기관 동원해 '불출마 각서' 

뉴스타파가 이 정체 모를 기사들이 사실인지 팩트체크해봤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올해 11월 17일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그런데 선거 3일 전, 수도 비슈케크 지역 지방의회 의원으로 출마한 키르기스스탄 사회민주당 대표와 부대표, 선거캠프 당직자 등이 경찰에 강제로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뉴스타파는 당시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카디르 아탐바에브 키르기스스탄 사회민주당 부대표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뉴스타파에 밝힌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경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 즉 '투표 매수'였다. 어떠한 증거도 없었지만,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고 구금했다. 이들은 결국 선거에 나가지 못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 대표를 선거 직전에 체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키르기스스탄의 상황이 어떤지 짐작이 간다.   
우리는 선거 3일 전에 간단하게 투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난 이것이 정치적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치적 목적은 우리 당 대표를 투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도시 건설 마피아 문제는 물론, 세금 개혁 등 많은 정부 정책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우리 당에 매표 행위 혐의를 추궁하려 했습니다.

카디르 아탐바예브 / 키르기스스탄 사회민주당 부대표 인터뷰 중(2024.12.17.)
또 다른 도시에서는 구금과 체포에 더해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쓰게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같은 정보기관이 동원됐다고 한다. 
다른 도시에서는 우리 당 후보자들이 심문 받은 또 다른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키르기스 정보기관에 의해 심문을 받았고,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는 각서를 문서로 받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일부 키르기스스탄 언론이 썼듯, 키르기스 당국이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선거 제도를 파괴했는지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저는 키르기스스탄의 민주주의 제도가 일천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실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익숙할 만큼 오래되지 않았고, 다당제는 키르기스 국민에게 새로운 탓이죠. 그러니 키르기스 당국이 실제로 벌어지는 투표 매수에는 눈을 감고, (야당에 대한) 복수로 (매표 혐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별일이 아닌 거죠.

카디르 아탐바예브 / 키르기스스탄 사회민주당 부대표 인터뷰 중(2024.12.17.)
중앙아시아 지역 정치를 연구해온 김태연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는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은 실제로는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파괴하는 독재자에 가깝다"고 말했다.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파괴하고, 야당에 대한 정치적인 억압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자파로프가 부정선거를 파헤친 민주주의자라는 말은 너무나 사실에 어긋나죠. 그 당시의 상황과 이 이후의 자파로프의 행동을 봤을 때. 그 사람은(자파로프는) 오히려 그나마 중앙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 수준이 높다고 키르기스스탄의 민주주의 수준을 후퇴시키고 있거든요 지금.

김태연,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2023.12.23.)
앞서 뉴스타파는 키르기스스탄에서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 두 번의 부정선거가 있었지만, 그 내용은 '선거인 명부 유출'과 '매표 행위'였다고 보도했다. 2015년부터 선거에 도입된 한국산 전자개표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국 언론은 한국산 전자개표기가 부정선거 원인이라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포털 등을 통해 유포했다. 이는 다시 유튜버들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그러다 이제는 선거에 출마한 야당 정치인을 체포하는 사디르 자파로브 대통령을 부정선거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사디르 자파로브 대통령을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
취재봉지욱 이슬기
영상취재최형석
편집박서영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