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대장동 의혹의 핵심 멤버인 남욱 씨의 재산을 가압류하고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저축은행 사태의 피해 자금 환수에 나서야 할 예보가 대장동 일당의 채무 문제를 부실하게 관리했다는 뉴스타파의 보도가 나온 지 7개월 만이다.
예보가 뒤늦게 대응에 나서면서 소송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채권 소멸시효 문제 등으로 인해 예보가 패소한다면 오히려 대장동 일당에게 합법적으로 채무를 탕감 받게 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환수돼야 할 남 씨의 저축은행 관련 채무는 현재 2,700억 원이 넘는다.
지금도 늘고 있는 대장동 빚 2,731억 원
부산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들은 2009~2010년 1,805억 원 규모의 자금을 대장동 사업에 투입했다. 당시 이 돈을 끌어온 곳은 (주)씨세븐, 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대장PFV), (주)나인하우스 등 3개 법인이다. 이 법인들의 실소유주이자 채무 연대보증인은 이강길 씨였다.
이후 남욱을 비롯한 일당들은 천화동인 등의 법인을 세워 대장동 사업을 이어 나갔고, 성남시와의 민관 공동 개발이 성사되면서 2019~2021년 사이 막대한 수익을 손에 쥐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남욱은 1,007억 원의 배당 수익을 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남욱이 인수하기로 계약한 저축은행 대출금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2012년 이 자금을 대출했던 부산저축은행 등이 최종 파산하면서 해당 채권은 예보로 넘어갔다. 예보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의 손실 일정 금액을 보상했는데, 이때 지출된 자금 회수를 위해 파산 저축은행들의 파산관재인 자격으로 저축은행들의 자산과 채권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예보에 따르면, 초기 대장동 사업에 투입된 1,805억 원 가운데 645억 원은 저축은행들이 가지고 있던 씨세븐 등 개발업체의 자산을 처분해 회수했다. 그리고 530억 원 상당의 채권은 다른 시중 은행들에 넘겼다. 그러나 383억 원에 달하는 원금은 아직도 되찾지 못한 상태다. 이 원금에 붙은 이자만 2,349억 원이고, 전체 채무의 규모는 2023년 1월 말 기준 2,731억 원으로 불어났다.
예금보험공사의 ‘방관’과 뒤늦은 소송
이러한 채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남욱이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예금보험공사의 ‘방관’이 있었다. 뉴스타파는 2021년 11월 취재 당시 저축은행 채무 상환 의무에 대해 질의했지만 예금보험공사 측은 “남욱 씨가 연대보증으로 입보되지 않았다”라며 남욱에게는 빚을 갚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인 인수 과정과 채무 인수를 명시한 계약 내용을 파악조차 못한 상태에서 최초의 연대보증인이었던 이강길 씨가 여전히 연대보증인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뉴스타파의 취재를 통해 남욱과 김 씨의 연대보증 약정 내용이 확인되면서 예금보험공사의 대응은 완전히 달라졌다. 취재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뉴스타파 보도가 나가자 법률 자문을 거쳐 2022년 2월 연대보증인을 이강길 씨에서 남욱 씨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지난해 6월에는 남욱 개인 명의로 확인된 재산 45억 원에 대해 가압류 조치를 하고, 법원에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예금보험공사는 뒤늦게 소송에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대장동 사건이 논란이 되기 전까지는) 남욱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라며 “(논란 이후)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환수 소송에 나서게 됐다”라고 밝혔다. 과거 씨세븐 등 3개 업체의 대표를 맡았던 이강길 씨 등이 지분과 연대보증 의무를 남욱에게 이전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는 취지이다.
예금보험공사는 현재까지 남욱의 개인 재산으로 확인된 규모가 45억 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가압류와 소송을 제기하게 됐으며, 승소할 경우 나머지 재산도 파악되는 데로 추가 소송을 통해 환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대장동 빚 앞에 놓인 법적 장애물
하지만 예금보험공사가 뒤늦게 대응에 나서면서 소송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채권의 소멸시효 및 연대보증인 변경 절차, 그리고 남욱의 압류 재산 범위 등을 놓고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먼저 예금보험공사는 남욱에게 빚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 남아 있는지 법정에서 다퉈야 한다. 민법 162조 1항은 민사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규정한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1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채무자는 그 빚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남욱은 2011년 7월 연대보증 의무를 인수했지만, 예금보험공사는 뉴스타파의 보도 이전만 해도 남욱이 아닌 이강길 씨가 빚을 갚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금보험공사가 남욱 개인에 대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한다고 해도, 대장동 개발 사업 수익금 상당 부분은 천화동인 4호(NSJ홀딩스) 등의 법인에 귀속되어 있어서 이들로부터 빚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러한 주요 법적 쟁점에서 예금보험공사가 재판부를 설득하는데 실패할 경우, 소송은 당초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패소로 남욱이 2,700억 원이 넘는 대장동 빚을 합법적으로 회피하는 ‘탈출구’를 얻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욱 측은 뉴스타파에 "지금에 와서야 연대보증인이 이강길에서 남욱으로 바뀌었다는 예보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라며 "대장동 사건이 아니었으면 예보 측이 문제 삼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예보의 석연치 않은 해명
그동안 남욱의 존재를 몰랐다는 예금보험공사의 해명은 석연치 않은 지점이 많다. 남욱 등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저축은행 자금과 관련해 예금보험공사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대응했던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의 일부분.
특히 앞서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 전문에는 대장동 일당들이 예금보험공사를 언급한 대목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일례로 2013년 4월 남욱은 대장동 사업의 ‘설계자’로 알려진 정영학과의 통화에서 “남욱은 지주들 문제라든가 법적인 문제, 예금보험공사 관련 등 업무를 맡아서 한다”라고 밝힌다. 수차례 예금보험공사를 언급하며 자신이 담당한다고 밝혔던 남욱의 증언과 ‘남욱을 몰랐다’는 예금보험공사의 해명은 양립하기 어렵다. 나아가 거액의 저축은행 빚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대장동 개발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예금보험공사가 특혜를 준 사실은 없는지도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대장동 사건을 지속적으로 취재해 왔던 뉴스타파는 대장동 일당이 저축은행 채무를 회피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같은 기간 예금보험공사의 대응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취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