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면 누가 군대 보낼까요”

2015년 05월 28일 22시 28분

베트남전 참전 군인 출신인 윤우걸(75) 씨는 최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6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던 윤 씨는 올해 4월 ‘무등급’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3월 쓰러진 그는 1년 넘도록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엽제후유의증(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병) 환자는 장애등급에 따라 월 80만2천 원(고도), 59만2천 원(중등도), 38만8천 원(경도)의 국가지원을 받는다. 윤 씨의 아내 김신복(70) 씨는 “고도 등급이 나올 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등급이 없다는 말을 듣고 너무 실망했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씨는 2003년 뇌경색,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진단을 받았다가 다시 회복했는데 지난해 쓰러진 이후에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동은 물론 손도 전혀 쓸 수가 없어 아내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1969년 백마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된 윤 씨는 1년 6개월 동안 베트남에 있었다. 36개월 복무해야 하던 당시 베트남전에 다녀오느라 5개월을 더 복무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등급 기준 미달자'라는 통보였다.

▲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윤우걸 씨가 아내 김신복 씨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하고 있다.
▲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윤우걸 씨가 아내 김신복 씨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하고 있다.

누워서 꼼짝 못하는데 ‘무등급'

윤 씨와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백봉선(71) 씨 역시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다. 백 씨는 2011년부터 이 병원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고엽제후유의증을 앓고 있는 백 씨는 “정신이 몽롱하고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백 씨는 2003년 상이등급 7급과 고엽제후유의증 중등도 판정을 받았다. 상이등급은 1급에서 7급으로 나뉘는데 7급은 가장 낮은 등급이다. 백 씨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은 월 59만 원 남짓. 최근 전립선까지 이상이 생겨 수술해야 할 상황이지만 월 59만 원으로는 간병인을 쓸 엄두도 낼 수 없다.

제대로 걷지 못해도 상이등급 7급

여수에 사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임동운(67) 씨 역시 무등급 상태로 평생 국가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는 만성심근경색, 만성심부전, 승모판협착, 대동맥판협착, 뇌경색, 심방세동, 고혈압까지 몸 전체가 종합병동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임 씨는 2009년 고엽제후유의증 환자로는 인정받았지만, 장애등급에서는 ‘미달' 판정을 받아 어떠한 지원도 못 받고 있다. 다시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광주보훈병원에 가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재검도 받지 못했다.

그에게 얼마 전 순천보훈지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만 65세인 참전유공자에게 지급하는 명예수당을 신청하라는 안내문이었다. 전쟁 후유증으로 평생 병마에 시달려온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작 월 18만 원의 참전명예수당이다.

▲ 베트남전에 참전해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 받은 임동운 씨에게 국가가 보상해주는 것은 월 18만 원의 참전명예수당이 전부다.
▲ 베트남전에 참전해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 받은 임동운 씨에게 국가가 보상해주는 것은 월 18만 원의 참전명예수당이 전부다.

평생 병마와 싸운 참전 군인에게 돌아온 것은 ‘월 18만 원'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 씨의 아들인 성주(30) 씨도 군대에 갔다가 훈련소에서 허리를 다쳐 의병제대했다. 부상 초기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성주 씨는 입대 후 8개월 만에 육군병원에 입원해 요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고 3개월 동안 치료하다 제대했다.

성주 씨도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등급 기준 미달’ 통보를 받았다. 허리가 아파 남들처럼 힘쓰는 일을 하지 못하는 성주 씨는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다쳤는데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줘야 할 것 아니냐”며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절대 군대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급 올리러 갔다가 등급 박탈, 날벼락

베트남전 참전 군인인 허연(68) 씨는 원래 고엽제 고도, 상이등급 7급을 갖고 있었다. 2008년 대장암, 2012년 위암 수술까지 한 허 씨는 보훈처에 상이등급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가 도리어 상이등급을 박탈당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당뇨 검사 결과 검사 수치가 규정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허 씨는 “고엽제 등급은 본인까지만 혜택이 있고 상이등급은 가족까지 의료혜택이 있는데 상이등급을 박탈당했다”며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도 못 했다”고 말했다.

참전 군인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2002년 발생한 제2연평해전이나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전상자들도 마찬가지다.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제2연평해전 전상 군인 전역자 14명 중 상당수가 6급(3명)이나 7급(6명)으로 낮은 등급을 받았다. 그중 2명은 재심 끝에 전쟁 발발 7년 만인 2009년에서야 가장 낮은 등급인 7급을 받았다.

한 연평도 포격사건 부상자의 어머니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온갖 곳 다 찾아다녔다"며 “지금은 포기할 사람은 포기했고 더 이상 언론 취재에도 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칼럼 :  6.25 참전 노병의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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