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윤석열의 법과 원칙, 그리고 이중잣대
2020년 02월 19일 20시 20분
⬤ 소문만 무성했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거대 언론사 사주의 비밀 회동
⬤ 박상기 전 장관, “윤 총장 측근 법무부 간부 통해 소문 확인...어이 없었다”
⬤ ‘윤석열-방상훈 회동’ 당시 서울중앙지검서 ‘조선일보 사주’ 관련 여러 건 수사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비밀 회동을 가진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로 확인됐다. 윤 총장이 방 사장과 만났을 때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일가와 관련된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돼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달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언론사 사주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어 이를 윤 총장의 최측근인 법무부 간부에게 확인했고, 그 간부로부터 ‘한 언론사 사주와 과거 인연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진 것은 사실’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박 전 장관의 증언을 추가 확인하는 과정에서 당시 박 전 장관에게 윤 총장과 언론사 사주의 비밀 회동을 보고한 법무부 간부가 윤대진 검찰국장(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며 윤 총장이 만난 언론사 사주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전 장관은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윤석열 총장과 언론사 사주의 회동 사실을 보고받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윤대진 검사장과 대검찰청은 뉴스타파의 취재요청에 “아는 바 없다,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지난해 9월, 경향신문에 눈에 띄는 칼럼이 하나 실렸다. 제목은 ‘윤석열의 나라’. 오랫동안 법조기자로 활동했고 경향신문 편집국장도 지낸 박래용 논설위원의 글이었다.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보수언론 사주를 잇따라 만난 적이 있다. 그를 만나고 온 한 사주는 “저 친구, (검찰)총장 이상을 꿈꾸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윤 총장 임기는 2021년 8월(2년)까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총선, 대선에서도 이러한 정치행위는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정치행위의 동기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윤 총장과 검찰에는 그런 막강한 힘이 있다는 점이다.”
- 박래용 칼럼 ‘윤석열의 나라’ (2019.9.9)
한 달여 뒤인 10월 15일, 이번엔 한겨레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이제는 윤석열의 시간’. 역시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낸 김이택 대기자의 칼럼이었다.
“윤 총장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그가 보수 언론 사주들을 잇달아 만난 사실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잖다. 특히 <조선일보>는 사법농단 사건에서 법원행정처와의 의심스러운 돈거래에다 칼럼 대필의 당사자로, 공개 문건에만 9차례나 등장하는데도 아무 탈 없이 넘어갔다. 편집국 책임자까지 배석한 당시 만남을 이번 수사와 연관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국회 검증 국면에 생뚱맞게 ‘수사’를 촉구해온 보수 언론·야당 주장에 장단 맞춘 결과가 된 것은 여전히 꺼림칙하다.”
- 김이택 칼럼 ‘이제는 윤석열의 시간’ (2019.10.15)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내용의 기사였다. 법조계와 정치권의 눈밝은 독자들은 이 두 기사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검찰을 취재해 온 한 일간지의 국장급 기자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검찰 기관장이 언론사 편집국장이나 사회부장을 만나는 일은 종종 있었죠. 하지만 언론사 사주를 만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랫동안 법조기자로 일했지만, 검찰 내 어느 누구도 언론사 사주와 만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기관장이 조중동 사주 만났다는 것은 눈에 띄는 일이죠.”
- 모 일간지 국장급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언론사 사주를 만났다는 소문은 지난해 12월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국회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미애 후보자에게 물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위원) ‘윤석열 검찰총장이 거대언론 사주와 만났다’라는 항간의 문제 제기가 있습니다. 관련된 내용, 정치인 이외에 다른 루트를 통해서 들은 적 있으십니까?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들은 바 없습니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019.12.)
추미애 후보자는 ‘만약 사실이라면 부적절한 일’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소문의 진위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고, 논란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이 소문을 확인해 주는 증언을 뉴스타파가 확보했다.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과의 인터뷰에서다. 박 전 장관은 지난 6월 초 뉴스타파와 가진 5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윤석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언론사 사주들과 사적으로 만났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윤 총장의 측근인 검찰출신 법무부 고위 간부에게 사실관계를 물었고, 그 간부에게서 소문이 사실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괄호는 기자의 질문)
○ (윤석열 씨가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에 언론사 사주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적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 “네,네.”
○ (보고받으신 바 있으세요?)
●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내가 확인을 했죠.”
○ (맞던가요? 사실이던가요?)
● “네, 사실이라고 그랬어요.”
○ (그런데 왜 만났대요? 서울중앙지검장이 언론사 사주를 만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 아니에요? 생각할 수도 없는...)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봤죠.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이 안 되잖아요.”
- 박상기 전 법무장관 인터뷰 (2020.6.)
그렇다면 윤석열 총장이 만났다는 언론사 사주, 그리고 두 사람의 회동을 박 전 장관에게 확인해 준 법무부 간부는 대체 누굴까. 뉴스타파는 박상기 전 장관의 증언 내용을 다각도로 확인 취재한 끝에, 당시 박 전 장관에게 윤석열 총장과 한 언론사 사주가 만난 사실을 확인해 준 사람은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인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검사장, 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며, 윤 총장과 비밀 회동을 가진 언론사 사주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 전 장관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총장과 해당 언론사 사주의 만남은 ‘과거 윤 총장의 변호사 시절 인연 때문에 이뤄졌다’고 당시 법무부 간부가 보고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보고를 받은 시점은 언론에 처음 관련 의혹이 제기되기 전인 지난해 9월 이전이었다고 증언했다.
박 전 장관은 본인이 법무부 간부에게 ‘윤석열-언론사주’ 비밀회동을 확인한 시기를 “윤석열 총장의 정계 진출설이 나오고 있을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고를 받을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괄호는 기자의 질문)
○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언론사 사주를 사적으로 만났다는 보고를 받고 어떠셨어요?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은데…)
● “화가 났다기보다는 좀 어이가 없었죠.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 (2020.6.)
박 전 장관은 또 이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총장이 직접 자신에게 보고나 해명을 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수장, 특히 주요 정치 및 언론 관련 사건을 많이 다루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언론사 사주과 사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부적절하다. 검찰과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 수사기관과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총장과 방상훈 사장의 만남은 단순히 ‘부적절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두 사람이 비밀회동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윤석열 총장이 수장으로 있던 서울중앙지검장이 조선일보, 특히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관련된 여러 건의 고소⋅고발 사건을 접수해 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비밀 회동, 혹은 사적인 만남은 결국 ‘수사기관의 수장이 피고발인을 몰래 만난 꼴’이었던 것이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5월부터 2019년 7월 사이 서울중앙지검이 담당하던 조선일보와 관련된 고소·고발, 그리고 수사가 진행 중이던 사건 목록을 확인해 봤다.
2018년 3월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4개 단체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무마를 위한 불법거래 의혹’을 수사해 달라며 TV조선 간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건을 시작으로, 2019년 2월 민생경제연구소 등이 고발한 방상훈 사장의 아들 방정오 씨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 2019년 3월 뉴스타파 보도로 알려진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 관련 형사 고발 사건, 2019년 6월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이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경영진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확인됐다.
고발 사건과는 별도로 2018년 초부터 서울중앙지검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고 장자연 씨 사건과 관련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와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고 있었다.
결국 윤석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기 내내 조선일보, 특히 방상훈 사장 일가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대상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최고 수사 책임자가 고발인도 아니고 심지어 더 문제가 되는 피고발인, 주요 피의자, 혐의자를 만났다? 그것도 독대해 가지고 무슨 말을 나눴는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심각한 직무윤리 위반에다 중대한 직무유기 범죄에 해당합니다. 검찰의 신뢰를 완전히 뿌리 끝까지 흔드는, 국기문란 못지않은 검찰의 기강문란, 검기문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죠.”
-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조선일보 일가의 횡령, 배임 의혹 등과 관련해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진행해 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다음과 같은 의혹도 제기했다.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6월달까지 총 다섯 번의 방씨 일가와 관련된, 또 조선일보와 TV조선 최고위층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정말 다양한 형태의 불법 비리 혐의들인데요. 결과적으로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되도록 기소도 하나도 안 하는 거 보면서... ‘만약에 사주를 독대해서 뭔가 둘이 꿍꿍이가 있었다면 이건 명백하게 아예 그 사주의 입장을 또는 사주의 범죄 혐의나 비리 혐의를 덮어주는 계기가 됐겠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사나 기소가 안 된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중앙지검장이 조선일보 사주나 거대 언론사 사주를 만난 것에 영향을 받은 거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취재진은 박상기 전 장관에게 ‘윤석열-방상훈 사적 회동’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윤대진 검사장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 당시 상황을 물었다. 하지만 윤 검사장은 문자메시지로 ‘본인은 잘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전해 왔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검찰청에도 질의서를 보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만난 사실에 대한 윤석열 총장의 입장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대검은 서면으로 “공개된 일정 외에는 윤석열 총장의 일정과 관련된 사항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취재 | 한상진 조원일 |
촬영 | 최형석 이상찬 오준식 |
편집 | 김은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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