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총선 때도 인터넷 여론 조작 있었다

2013년 03월 01일 10시 51분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 그룹이 활동한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지난 2012년 4월 총선 과정에서도 비슷한 여론 조작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오유'사이트에서 다중 아이디를 사용하는 아이피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자체 분석을 실시한 결과 김 씨 그룹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2개의 그룹이 왕성한 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가운데 한 그룹은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3월 하순부터 4월 초까지 여러 아이디를 바꿔가며 야당을 비난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무차별적으로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앵커 멘트>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불거졌던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의 실체가 석 달이 되도록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는 양상이지만, 뉴스타파가 자체 조사한 결과 인터넷 여론 조작을 시도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이번 대선 공간 뿐만 아니라 지난해 4월 총선 과정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수사, 확대 수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국정원 사건의 전말을 최기훈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최기훈 기자>

뉴스타파는 이번 사건의 실타래를 풀기위해 먼저 인터넷에 남아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의 흔적부터 찾아봤습니다.

김 씨는 오늘의유머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지난해 8월 27일 ‘좌좀 아웃’이라는 글에 추천을 클릭하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지 일주일 만입니다. 이후 백 여 일 동안 90여 차례에 걸쳐 게시글에 찬반표시를 하고 직접 90 여개의 글을 작성해 올립니다.

아이디 16개를 만들어 이 가운데 5개는 협조자로 밝혀진 이 모 씨와 공유합니다. 이 씨는 추가로 아이디 30여 개를 만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합니다. 글은 160여개 추천반대 표시는 2천 번이 넘습니다.

대부분 MB 정책을 찬양하거나 아니면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종북으로 매도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8월 29일 올린 ‘엠비 아웃하면 베스트냐?란 제목의 글입니다. 한 명이 글을 올리고는 다른 아이디를 이용해 추천을 눌렀습니다. 여러 명이 추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김 씨와 이 씨 그룹이 작당해 조작한 것입니다.

야당 대선후보도 공격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김 씨는 당시 문재인 후보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말한 다음날 이를 문제 삼는 내용을 올립니다. 대선 토론회 다음날에는 이정희 후보의 남쪽정부 발언에 대해 대통령 후보로 부적절하다고 비난합니다.

국정원법은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찬양 또는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직선거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박범계 국회의원 /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정원법은 국정원은 정보의 수집 분석 배포업무 국가기밀 사항에 대한 기관 보안업무 대공수사업무만 할 수 있습니다. 김 씨가 한 행동은 국정원법상 어떠한 업무행위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댓글하나 단적이 없다던 국정원은 언론보도로 김 씨의 활동사실이 드러나자 장문의 보도자료를 내고 정상적인 대북심리전 활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대남 사이버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국정원 대변인] “국가심리정보업무를 정당하게 한게 피의자입니까? 그게 범죄 범인입니까? 유죄 떨어질 턱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북심리전을 왜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김 씨가 소속된 국정원 심리정보국 산하 70 여명의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선원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한 명이 하나의 협조자를 데리고 지금까지 나타난 건 오유, 뽐뿌, 보배드림 3개 한 거 아닙니까? 나머지는 몇 개씩 했을까요? 그렇다면 그 숫자는 상당히 넓어지는 거구요. 승수효과가 있죠.”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미 밝혀진 국정원 직원 김 모씨 그룹과 비슷한 방식의 활동이 또 있었는지 오늘의유머 사이트를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사이트 이용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여론조작 의심아이디를 단초로 삼아 범위를 확대해가며 2천 여개의 아이디와 아이피를 대조했습니다.

그랬더니 김 씨 그룹과 똑같은 방식으로 활동한 또 다른 그룹 2개가 드러났습니다. 한 그룹은 아이디 40 여개 또 다른 그룹은 20 여개가 같은 무리로 파악됐습니다.

김 씨 그룹처럼 스마트폰을 이용한 테더링으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했고 일반이용자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든 것도 똑같습니다. 어디선가 만들어진 자료를 퍼나르거나 1,2초 간격으로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글을 올린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상당수 아이디가 이미 탈퇴하거나 글을 삭제해 전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남아 있는 아이디 35개와 880여개의 글을 확인한 결과입니다.

지난해 4월 총선 전에 A 그룹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6월부터는 B그룹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월부터는 이 두 그룹과 김씨 그룹이 동시에 매우 활발하게 활동을 벌입니다.

[오늘의유머 사이트 이용자] “4.11 총선을 즈음해서 60 여개 가량의 다중아이디를 가지고 야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글들을 지속해서 아주, 하루에도 14시간가량 오늘의유머 사이트에서 상주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거나...”

뉴스타파가 새롭게 파악한 이들 두 그룹이 국정원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직적인 여론 조작 세력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이런 작업이 대선 때만 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죠. 작년, 재작년부터 알바들 얘기는 나왔으니까, 선거 시기에는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정황이 되죠.”

이런 움직임이 오유와 비슷한 수십개의 사이트에서 동시에 진행됐다면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이 불가능 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정원이 얼마나 법 위에서 군림하고 있고, 국정원 스스로의 역할을 국민들에 대한 이데올로기 교육의 역할로 스스로를 위치 지우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측의 입장은 진실을 밝히기 보단 일단 덮고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 “실제로 그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느냐. 어떤 증거도 없다고 나왔지만...”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나서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도 이번 사건에 대해 단 한번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영방송 장악에 이어 이제는 젊은층이 여론을 주도하는 인터넷에까지 정치권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기에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면 여론을 먹고 사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타파 최기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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