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한국가스공사는 박석환 전 외교부 차관과 한 달에 천만 원 짜리 자문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박 전 차관이 써야 할 자문보고서는 전부 가스공사 직원들이 대신 써줬고, 결국 박 전 차관은 보고서 한 장 쓰지 않고 6개월 간 총 5천500만 원을 챙깁니다.

이 수상한 계약은 3년이 지난 2018년 가스공사 감사실의 내부 감사를 통해 드러납니다. 감사실은 당시 가스공사 최고경영자였던 이승훈 전임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내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끝에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립니다.

뉴스타파는 10일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공기업과 정부 부처, 검찰이 서로 얽혀 있는 이 ‘황제 자문계약’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박석환 전 차관과 가스공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검찰은 왜 내부 감사만도 못한 수사결과를 냈을까요? 사건을 취재한 강혜인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 2015년에 일어났던 사건을 지금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사에도 나왔지만, 가스공사 내부에서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내부감사를 시작한 2018년 말의 일이에요. 저도 2018년에서 2019년 초에 처음으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가스공사가 전임 사장을 고발했던 일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많이 보도됐었고요.

저는 이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산업부가 개입했는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시하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정부 부처 개입을 증명할 수 있는 핵심 자료가 입수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작년 국회에서 한 번 이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고, 올해 초까지 특별조사단 조사가 있었죠. 그 과정에서 보도에 필요한 자료들을 입수하게 되었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지금 보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Q : 보고서 대필, 산업부의 개입, 검찰의 봐주기 수사 등 여러 가지 쟁점이 있는 사건인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산업부의 개입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가스공사가 한국 굴지의 공기업이긴 하지만 결국 정부 주무부처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는 입장이에요. 저희도 직장 생활 하다 보면 선배나 상사가 슬쩍 지나가면서 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번에 보도한 일련의 사건들도 사실 산업부의 개입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봅니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 역시, 3편 기사에도 나오지만 가스공사가 감사실과 별개로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이중 플레이’를 하면서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한 결과가 아닌가 해요. 결국은 산업부의 개입 문제가 확실히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 왜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계약을 진행했을까요? 가스공사가 자문계약을 맺은 진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취재를 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에요. 사실 이 계약을 맺기까지의 과정이 좀 복잡한데, 먼저 한국가스연맹은 한국가스공사도 소속된, 우리나라의 가스 산업과 관련된 기업들 대다수가 소속되어 있는 거대한 연맹이에요. 그런데 외교부 차관이었던 박석환 씨가 퇴직 이후 이 연맹의 사무총장으로 내정이 되죠. 그래서 산업부는 박석환 씨가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에 취임하기 전 6개월 동안 회원사인 한국가스공사와의 자문계약을 추천합니다. 가스공사는 이 요구대로 박석환 씨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요.

이 과정에서 가스공사에 박석환 씨를 추천한 것은 이호현 당시 산업부 가스산업과장인데, 사실 정부 부처의 과장급이 자기보다 훨씬 높은 전직 차관급의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것은 직급으로 봤을 때 의문이 가는 점이 있죠. 여기서 남는 또 다른 의혹은 왜 가스 관련 전문성이 없는 박석환 씨가 한국가스연맹의 사무총장으로 내정되었느냐 하는 것인데, 산업부의 더 높은 선에서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 등은 앞으로 더 취재를 할 예정입니다.

Q : 보도 후에 ‘공기업들 다 저렇다’ 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다른 공기업들의 실태는 어떠한가요? 다른 공기업의 비리도 취재하실 계획이 있나요?

사실 이 보도를 준비하면서 다른 공기업도 취재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모든 공기업을 살펴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우선 산업부 산하의 공기업 및 공공기관을 조사해봤습니다. 산업부 산하에 있는 수십 개의 공기업과 공공기관 중, 자문계약을 맺거나 자문료가 지급된 기관에서 최근 5년간 자문료 지급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어요.

원래는 청구한 자료가 나오면 그 자료들까지 포함해서 보도를 할 계획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협조를 하지 않은 기관이 많았어요. 정보공개 청구를 한 기관들 중 절반 정도는 보안을 이유로 자문료가 누구에게 지급됐는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취합했을 때 미심쩍은 부분들은 많은데, 기관들의 협조가 부족한 탓에 더 이상 접근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공기업들 다 저렇다’라는 댓글을 저도 많이 봤고, 저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기초취재는 했지만 아직 보도할 만큼 취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취재가 되면 보도를 할 계획이에요.

Q : 올해 초 특별조사단 조사 이후 검찰 수사가 다시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엔 ‘봐주기 수사’ 없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요?

안타까운 건 이번에도 산업부는 고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산업부가 고발이 되었으면 산업부부터 조사를 할텐데, 지금은 이승훈 사장도 무혐의 처분이 난 상태여서 더 이상의 조사는 불가능하고, 이승훈 사장 밑에 있던 부사장과 캐나다 법인(KCLNG) 법인장을 고발한 상태에요. 사실 사건의 핵심이 아닌 사람들만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이죠.

물론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지금 대상에 오른 사람들을 수사하다가 그 윗선까지 닿을 수도 있겠지만, 수사 시작부터 산업부를 배제했다는 측면이 아쉬워요. 또 검찰이 항상 모든 사건을 열정적으로 수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연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 수사 이외의 방법으로 산업부를 조사하려면 가스공사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현재로써는 가스공사가 산업부에 대해서 감사를 청구할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