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선>측 반론에 대한 ‘빨간펜 체크’... 그리고 ‘본질적 질문’

지난 7월 24일과 8월 7일 김지영 감독이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잇달아 출연해 뉴스타파의 ‘영화 <유령선> 검증보도’(https://newstapa.org/article/yL3Xt)에 대한 반론을 내놨습니다.

두 차례 방송 직후 뉴스타파 유튜브 댓글창이 북적였습니다. '뉴스타파는 김지영 감독에게 사과하라'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김어준 씨가 제작한 영화 3편(<더 플랜>, <그날, 바다>, <유령선>)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책임을 지적했던 최승호 피디도 사과하라는 댓글도 적지 않았습니다.

김지영 감독의 반론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무엇보다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 거의 없어 당혹스러웠습니다. 뉴스타파 검증 보도를 합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사실상 새로운 음모론을 추가로 제기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황당한 반론이라 해도 이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 뉴스타파 보도와 김 감독의 반론을 모두 접한 시민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응답’이라기보단 ‘빨간펜’을 통한 팩트체크가 되겠습니다.

<유령선>의 주장과 뉴스타파의 검증보도

현재까지 논쟁의 흐름은 ‘<유령선> 주장 → 뉴스타파 검증보도 → 김 감독 반론 → 뉴스타파 재반론’입니다.

우선 <유령선>의 주장부터 요약해 봅니다.

● 세월호 침몰 당일 24시간 동안 제주VTS에 수집된 세월호 포함 수천 척의 선박 AIS 데이터들 가운데 선박 블랙박스에만 존재하는 형식의 데이터(GPRMC, AIVDO) 16만 개가 발견됐다.

● 문제 데이터를 송신한 선박 정보를 보니 식별번호(MMSI)가 265000000인 정체불명의 스웨덴 선박이었고, 위치는 중국 선전시 한복판이었다.

● 또한 참사 당일 제주VTS 수집 데이터들 중 AIS 메시지의 ‘통신정보’가 ‘000’인 비정상 데이터들이 무려 1천 척의 선박 메시지 속에서 발견됐다.

● 종합하면, 세월호 침몰 직후 누군가 제주VTS 데이터를 복사해 중국 선전시의 ‘AIS 조작범’에게 넘겨 조작을 의뢰했고, 조작범은 세월호 AIS 조작을 위해 세월호와 AIS메시지를 공유하는 주변 선박들 1천 척의 데이터들까지 모두 조작하려다가 실수로 GPRMC와 AIVDO, ‘통신정보 000’ 데이터 등을 미처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못한 채 의뢰인에게 돌려준 것으로 ‘추정된다’.

● 이런 조작을 기획하고 실행한 자가 누구인지는 검찰이 밝혀야 한다.

이에 대한 뉴스타파 검증보도 요약입니다.


● <유령선>이 문제삼은 GPRMC와 AIVDO 데이터는 세월호 침몰 당일만이 아니라 전후 3개월 동안(2014년 3~5월) 하루도 빠짐없이 제주VTS에 무려 1천만 개나 수집됐다. 영화의 논리대로면 3개월 내내 조작이 이뤄졌어야 한다.

● GPRMC와 AIVDO 데이터는 최근(2020년 5월 1일~6월 7일)에도 인천VTS와 부산VTS에 각각 230만 개, 3만 개가 수집돼 있다. 이 데이터 속 식별번호도 265000000이다. 영화의 논리대로면 지금도 조작이 진행 중이어야 한다.

● 최근 인천과 부산VTS의 GPRMC와 AIVDO 데이터들은 특정 기지국(인천 소무의도, 부산 조도)을 통해서만 수집됐는데, 두 기지국의 공통점은 SR162G라는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를 운용 중이라는 것이다.

● SR162G 수신기 제조업체는 중국 선전시에 있었고, 업체로부터 수신기를 직접 구매해 초기 설정값을 확인해보니 식별번호는 265000000, 위치정보는 중국 선전시로 확인됐다. 식별번호는 장비의 디폴트값, 위치정보는 업체 소재지였다.

● 해수부 내부 자료 확인 결과, 2014년 3월 24일~5월 21일까지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서 SR162G 수신기가 테스트 운용됐다.

● 따라서 <유령선>이 제기한 문제의 제주VTS 데이터들은 중국 선전시 조작범의 흔적이 아니라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 장착됐던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의 정보였다.

● 또한, 통신정보 ‘000’인 비정상 데이터들은 제주 이어도 기지국을 통해서만 수집됐는데, 정상 데이터 수신 뒤 몇 초가 지나 중복 생성된 것들이었다.

● 해수부 내부 자료 확인 결과, 이는 2011년부터 이어도 기지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오류 현상으로 조작과는 무관했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유령선>의 핵심 주장들이 모두 ‘사실 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지영 감독은 섣부르게 음모론을 제기하기보다 자신의 눈에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AIS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됐는지 꼼꼼이 따져봤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가 팩트를 차분하게 검증했다면 세오름 기지국에 설치된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테고, 있지도 않은 <유령선>을 만드는데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았을 겁니다. 뉴스타파 역시 <유령선> 검증보도에 시간과 인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김지영 감독은 다시 음모론의 불씨를 되살리려고 합니다.

김지영 감독의 <다스뵈이다> 반론... 핵심 비껴서서 또다른 ‘음모론’ 제기


▲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3회 (딴지방송국 캡쳐)

김지영 감독은 7월 24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 2014년 3월 24일~ 5월 21일 동안 제주 세오름 기지국 수신기가 클라스B 선박(소형 어선)의 24번 메시지(선박명 정보)를 수신하지 못하는 현상 때문에 중국산 수신기(SR162G)를 추가 설치해 테스트 운영했다는 해수부의 설명은 납득할 수 없다. 24번 메시지만 특정해 수신하지 않는 장비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설령 세오름 기지국 수신기 이상이 사실이었다 해도 ‘송수신기’를 쓰게 되어 있는 기지국에 ‘수신기’를 설치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매뉴얼에 따르면 SR162G는 AIS 수신기와 GPS 수신기를 결합해 조립한 제품이다. 따라서 ‘송신용 메시지’를 생성할 수 없어서 선박 AIS 메시지를 수신해 VTS로 보내줄 수가 없다.

● 또한 SR162G를 포함해 시판 중인 모든 결합형 수신기의 매뉴얼을 찾아보니 마지막 GPS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SR162G에도 제조사 위치인 중국 선전시 정보가 장비에 남겨질 수 없다. 그럼에도 뉴스타파가 중국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한 SR162G에서 식별정보가 265000000, 위치정보가 중국 선전시로 나왔다는 건, 누군가 이 장비의 내부 설정값을 미리 바꿔놓은 것이라 ‘추정할 수밖에 없다’.

● 뉴스타파가 분석한 최근 부산과 인천VTS 데이터들 속에서 GPS 시보 데이터를 봤더니, 데이터 수신날짜가 실제보다 19년 7개월 16일이나 앞선 것으로 기록돼 있다.

● 이는 중국산 수신기의 소프트웨어 오류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정상 송수신기가 장착된 부산신항 기지국 시보 데이터에서도 똑같이 19년 7개월 16일의 날짜 오차가 발견됐다. 그렇다면 인천 소무의도 기지국과 부산 조도 기지국, 그리고 부산신항 기지국 장비들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 그런데 부산신항 기지국 송수신기는 국내 업체인 장산IT가 납품한 국산 제품이다. 장산IT는 현재 GCSC로 이름이 바뀐 AIS 전문업체인데, 공교롭게도 이 업체 대표가 뉴스타파의 2014년 10월 ‘세월호 29초 누락 항적 복원’ 보도와 2018년 7월 ‘<그날, 바다> 검증보도’, 그리고 최근 ‘<유령선> 검증보도’에 잇달아 전문가 인터뷰이로 등장했다.

● 결국, SR162G 수신기의 중국 제조업체와 GCSC라는 국내 업체는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종의 관계’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GCSC 대표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잘못된 보도를 해온 것이다.


▲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125회 (딴지방송국 캡쳐)

이어 2주 뒤인 8월 7일에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추가했습니다.

● 2014년 3~5월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서 테스트 운용됐다는 중국산 SR162G 수신기의 최대 수신거리는 190km인데 455km 떨어진 인천항에서 2014년 4월 15일 밤 9시경 출항하던 세월호 메시지를 수신했다.

● 특히 당시 인천항에는 상당히 많은 선박이 있었음에도 유독 세월호 AIS 메시지만 수신했다.

● 반대로 4월 16일 새벽 0시부터 4시까지는 오로지 세월호 AIS 메시지만 못 받았다.

● 또한, 인천항의 세월호 AIS 메시지를 수집한 제주 세오름의 중국산 수신기가 그보다 거리가 짧은 부산 방향 선박들의 메시지는 전혀 수신하지 못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세월호 침몰 당시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 중국산 수신기가 테스트 운용됐다는 사실 자체가 미심쩍고, 설령 운용됐다 하더라도 뉴스타파 보도에서 제시된 세오름 기지국 수신 데이터들은 사후에 조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제부터 본격으로 빨간펜을 들어 보겠습니다.

[빨간펜1] ‘24번 메시지’만 골라서 수신 못하는 장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수신기는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해양대학교 학생들이 AIS 수신기를 지참하고 실습선 항해 수업을 하는 현장에 김지영 감독이 동행해보길 추천합니다. 딱 반나절만 타보면 일반 수신기에서 클라스B 선박(주로 소형 어선)의 정적정보(선박명)가 수신되지 않는 현상이 얼마나 빈번한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빨간펜2] SR162G는 마지막 위치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다?

김 감독이 구글링으로 찾았다는 SR162G 수신기의 매뉴얼이 뭔지 모르겠지만, 뉴스타파는 직접 제품을 구매했고, 동봉돼 있는 매뉴얼을 모두 읽어봤습니다. 어디에도 이 장비가 마지막 GPS 위치를 저장하지 않는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SR162G는 별도로 제공되는 GPS 안테나를 연결할 때만 위치정보를 수신합니다. 뉴스타파는 이 수신기를 구매한 뒤 안테나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 설정값을 확인했고, 그 결과 GPRMC 데이터 속에 중국 선전시 위치 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제품을 배송받는 시점부터 포장을 뜯는 장면, 내부 설정값을 확인하는 장면을 모두 촬영해 뒀습니다. 김 감독도 이 수신기를 주문한 상태라고 밝혔으니 모든 과정을 촬영하시면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뉴스타파가 구매한 SR162G 수신기와 GPS 안테나


▲ SR162G 매뉴얼 중 GPS 관련 설명 부분

[빨간펜3] SR162G는 ‘수신기’여서 ‘송신용 메시지’를 못 만든다?

VTS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허위 주장입니다. 선박이 쏜 AIS 메시지는 무선 VHF 전파를 통해 기지국에 수신됩니다. 기지국에 수집된 데이터들은 ‘송신용’으로 변환되는 게 아니라 기지국과 VTS 사이에 설치된 ‘전용회선’을 타고 그대로 VTS 서버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송수신기’를 쓰든 ‘수신기’를 쓰든 선박 AIS 메시지는 VTS로 동일하게 전달됩니다.

그럼 왜 일반적으로 기지국에 ‘수신기’가 아닌 ‘송수신기’를 쓸까요? 기지국용 ‘송수신기’의 ‘송신’ 기능은 수신된 선박 AIS 데이터를 VTS로 보내는 기능이 아니라, 관할 해역 모든 선박들에 일괄적으로 ‘문자메시지’를 쏴 주는 기능입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해난사고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등 관할 해역 선박 전체에 긴급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지국 송수신기의 문자메시지 송신 기능은 1년에 한 번 사용할까 말까합니다. 긴급 상황 발생시 각 VTS에서 VHF 무선통신을 통해 모든 선박에 ‘음성’으로 고지하는 게 더 빠르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문자메시지 송신’ 기능이 꼭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기지국에는 ‘송수신기’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빨간펜4] 중국 제조업체에서 직접 구매한 SR162G 수신기 내부 설정값이 사전 조작됐다?

뉴스타파는 검증보도를 위해 SR162G 수신기를 아마존 같은 상거래 사이트에서 구매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중고' 제품 하나만 거래되고 있을 뿐 ‘새' 제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선전시의 제조업체에 직접 연락했습니다. 언론사라는 사실도, <유령선>이라는 영화에 대한 검증을 위해서라는 목적도 일체 밝히지 않고 SR162G 수신기 구매를 요청했습니다.

이 업체는 “작년 말부터 이 수신기의 날짜 정보가 큰 오차를 내는 일종의 Y2K 현상이 발생해 시판한 제품을 모두 수거해 현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 중이라 한두 달 뒤에나 정상 판매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테스트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라 날짜 정보 오차는 큰 문제가 안 되니 혹시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면 구매하겠다”고 요청했습니다. 하루 뒤 업체 측에서 “재고가 있으니 판매하겠다”는 연락이 와서 국제배송을 통해 구매했습니다. 업체와 주고받은 통화 내용과 이메일 등은 모두 보관돼 있습니다.

뉴스타파가 구매한 SR162G 수신기는 최신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기 이전의 버전, 즉 세월호 침몰 당시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 사용된 것과 같은 버전입니다. <유령선> 개봉 이후 중국 업체가 서둘러 SR162G의 내부 설정값을 바꾼 뒤 뉴스타파에 판매한 것 같다는 김 감독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관적 추론에 불과합니다. 김 감독도 이 수신기를 주문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으니 조작한 흔적이 있다면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빨간펜5] 현재 중국산 수신기 쓰는 기지국 2곳과 정상 송수신기 쓰는 기지국 1곳에서 시보데이터 오차가 19년 7개월 16일로 똑같으므로 이들은 모두 같은 소프트웨어 사용?

GPS 기술의 원천적 한계에 대한 기본 상식에서 벗어난 황당한 주장입니다.

구형 GPS 장비는 예외 없이 19.7년(19년 7개월 16일)마다 날짜 정보가 제로세팅됩니다. 더 정확하게는, 구형 GPS의 날짜 정보는 1,024주(week)가 지나면 장비가 최초 작동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갑니다. 이건 1980년대에 최초 개발됐던 GPS 기술의 원천적 한계로, 큰 틀에서 Y2K 현상의 일종입니다.

이같은 날짜 정보 오류가 발생할 경우 통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중국 업체가 뉴스타파에 설명했던 것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포털사이트에서 ‘GPS, 19.7년’으로 검색하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구형 GPS의 기술적 한계에 따른 날짜 표시 오류 현상을 보도한 기사들

결국 중국산 SR162G 수신기가 장착된 인천 소무의도 기지국과 부산 조도 기지국, 그리고 정상 송수신기가 장착된 부산신항 기지국의 시보데이터 날짜 정보가 똑같이 19년 7개월 16일 오차가 있는 건, 모두가 구형 GPS 사용하면서 상당 기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생긴 문제일 뿐입니다.

실제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부산신항 기지국의 송수신기는 수년 전 단종돼 장기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해경은 조만간 다른 송수신기로 교체할 계획을 세워놨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빨간펜6] 부산신항 기지국 송수신기 납품업체와 중국 수신기 업체의 ‘조작 커넥션’?

부산신항 기지국 송수신기 납품 업체가 장산IT, 현재의 GCSC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장산IT가 납품한 송수신기는 자사 제품이 아니라 스웨덴 사브(SAAB)사의 R30 모델입니다. 사브는 자동차는 물론 전투기까지 만드는 세계적 방산업체입니다. 김 감독 주장대로라면 세계 굴지의 방산업체가 중국 영세 IT업체와 동일한 AIS 장비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며 국제적 AIS 조작에 가담했다는 비현실적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이미 19년 7개월 16일이라는 시보데이터 날짜 오차가 동일 소프트웨어 때문이 아니라 구형 GPS 장비의 일반적인 기술적 한계 때문임을 확인한 만큼, 김 감독의 ‘업체간 공모’ 주장은 애초부터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결국 김 감독은 ‘중국산 수신기와 정상 국산 송수신기가 동일한 소프트웨어 사용 → 정상 송수신기 납품 업체가 뉴스타파 보도에 자주 등장한 국내 회사 GCSC → 중국 업체와 GCSC는 모종의 관계 → 뉴스타파는 조작 공모 혐의자 말만 믿고 잘못된 보도’라는 논리로 새로운 음모론 제기와 뉴스타파 보도 흠집내기를 동시에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셈입니다.

[빨간펜7] 인천항 세월호만 포착하고 부산항 선박들은 포착 못하는 중국산 수신기?

이미 7월 24일 <다스뵈이다> 방송 내용이 허위로 가득했음에도 김 감독은 8월 7일 재차 출연해 중국산 SR162G 수신기에 관한 의혹을 추가 제기합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 중국산 수신기가 설치됐었다고 믿기 어렵고, 설령 설치됐다 해도 누군가 사후에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반복한 겁니다.

김 감독은 이를 위해 SR162G로 수신된 데이터들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SR162 수신기의 매뉴얼 상 유효 수신거리가 150km, 최대 수신거리가 190km인데 무려 455km 떨어진 인천항의 세월호 신호를 포착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제부터 이해시켜 드리겠습니다.


▲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서 인천항 세월호 AIS 수신?” (딴지방송국 캡쳐)

AIS 메시지는 VHF, 즉 초단파(30~300MHz)를 이용해 송수신됩니다. 초단파의 수신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다양한데, 가장 중요한 것이 대기 중의 ‘전리층’입니다. 전리층은 고도에 따라 D층(50~90km), E층(약 100km), F층(200~400km)으로 세분되는데, 이 가운데 초단파를 반사시킬 수 있는 전자밀도를 가진 층은 E층과 F층입니다.

그리고 초단파는 해수에 접하면 감쇄되지만 대지에 부딪치면 반사됩니다. 그래서 전파가 전리층과 대지에 반복적으로 반사되면서 퍼져가는 ‘다단 반사’ 현상이 일어나면 도달 거리는 훨씬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로 선박이 쏜 AIS 메시지 가운데 일부가 유효 수신거리를 크게 초과하는 기지국에 수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황사와 미세먼지도 영향도 미칩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황사 걱정 없는 봄철을 지나왔지만 우리나라는 해마다 중국에서 황해를 건너오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황사와 미세먼지도 전리층과 유사한 역할을 해 초단파를 반사시킵니다. 2014년 4월 15일 밤부터 4월 16일까지 우리나라의 중국발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초단파의 도달 거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김지영 감독이 제시한 세오름 기지국 수집 데이터들을 보면 유효 수신거리를 크게 초과한 서해상 선박들의 신호도 세오름 기지국에 포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AIS 메시지를 운송하는 초단파(VHF)의 이같은 특성들을 종합해 김지영 감독이 제기한 의혹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SR162G 수신기의 최대 수신거리는 190km임에도 455km 떨어진 인천항의 세월호를 포착했던 이유는 ‘다단 반사’로 해석 가능합니다. 세오름 기지국부터 인천항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서해안 일대 육상지역 대부분을 통과합니다. 따라서 전리층과 육지 사이의 ‘다단 반사’로 전파 진행이 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4월 16일 0시부터 4시경까지 세오름 기지국의 SR162G 수신기에 세월호 AIS 신호가 포착되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간대에 세월호는 태안 앞바다부터 변산반도 앞바다 구간을 지났는데, 세오름 기지국과 직선으로 연결하면 전남 신안군 일대 일부 섬들을 제외하곤 육상지역이 거의 없습니다. ‘다단 반사’ 현상이 일어나기 어려운 조건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전리층의 초단파 반사율은 야간 시간대에 감소하는 경향이 있어 전파 도달 거리 연장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김지영 감독은 인천항 세월호 신호도 포착한 세오름 기지국의 SR162G 수신기가 더 가까운 부산항 인근 선박들은 전혀 포착하지 못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세오름 기지국의 위치는 한라산 서쪽 중턱의 1100고지(해발 1,100m)입니다. 당연히 부산항 쪽 선박들의 AIS 메시지는 1,947m의 한라산에 가로막혀 세오름 기지국으로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동안 서해지역 대기권의 전리층 상황과 중국발 미세먼지 농도 같은 변수들은 시시각각 변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당시 세오름 기지국 SR162 수신기의 수신 가능 거리를 분초 단위로 검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초단파의 반사 특성에 따른 전파 거리 연장 조건들은 이미 과학적으로 정립되어 있어서, 김지영 감독이 제기한 모든 의문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엔 충분합니다.

[빨간펜 ‘종합’]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포착됐을 때 필요한 건 ‘추론’이 아니라 ‘취재’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 씨의 논리 전개 방식은 한결 같습니다.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포착되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취재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특정 방향을 설정해 추론을 펼치는 것입니다.

<유령선>의 경우, 제주VTS에서 이상한 형식의 데이터가 나왔다면 먼저 제주VTS를 관리하는 해수부와 해경을 대상으로 해명을 듣고, 그 해명이 타당한지를 가급적 복수의 전문가를 통해 검증하고, 그래도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다면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먼저 있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취재’입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AIS 국제규격이라는 ‘문헌 기준’에만 의존해 ‘존재할 수 없는 데이터’로 규정한 뒤 다른 모든 사안들을 ‘조작’이라는 틀에 꿰맞추어 추론했습니다. 당연히 사실관계와 논리에 구멍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은 뉴스타파 검증보도에 대한 반론 과정에서도 반복됐습니다.

탐사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가설’을 세우고 접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설의 신뢰 수준을 높이는 것은 ‘기발한 추론’이 아닌 ‘엄밀한 취재’입니다.

<그날, 바다> 검증보도에 대한 반론은 언제쯤?

김지영 감독의 <유령선>은 2년 전 세월호 AIS 항적 조작과 앵커침몰 의혹을 제기했던 <그날, 바다>의 후속작입니다. 뉴스타파는 이미 <그날, 바다>에 대해서도 검증보도를 했던 바 있습니다.


<그날, 바다>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 정부의 세월호 AIS 항적 데이터들 가운데 국제 규격에 안 맞는 것들이 많아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 더구나 레이더 항적과 수백 미터나 차이가 나고, 레이더 항적은 심한 지그재그 운항을 보여준다.

● 그런데 세월호에 처음 접근했던 두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이 해도에 표시한 ‘세월호 급변침 지점’은 레이더 항적과도 수백 미터 차이가 났다.

● 레이더 항적에서는 ‘지그재그 운항’만이 신뢰되고 실제 변침 지점은 문예식 선장 진술이 신뢰된다.

● 정부 항적을 끌어내렸더니 급변침 지점들이 해저 지형의 굴곡부와 일치한다.

● 세월호는 왼쪽 앵커를 고의로 내린 채 운항하다 해저 지형에 걸려 급격히 침몰했다.

● AIS 조작과 고의 침몰의 기획자와 실행자는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한다.


이 내용들은 뉴스타파 검증보도로 완벽히 반박 검증됐습니다.

(1) 정부, 두우패밀리호 블랙박스, 네덜란드 메이트 스마트 등 3곳에 저장된 세월호 AIS 항적을 비교해 봤더니 위경도, 속도, 코스, 뱃머리 방향 등의 동적정보들이 모두 일치했다. 정부 데이터가 조작됐다고 볼 수 없다.

(2) 최근(2018년 4월) 전남 해안과 제주도 사이를 운항했던 민간 여객선 두 척의 AIS 항적과 레이더 항적을 비교해 봤더니, 레이더 기지를 기준으로 할 때 항상 레이더 항적이 AIS 항적보다 수백 미터 왼쪽으로 떨어져 지그재그 운항을 하는 형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레이더가 물표를 포착하는 원리 상 발생하게 되는 현상이다. 세월호의 AIS 항적과 레이더 항적의 차이도 똑같이 설명된다.

(3) 문예식 선장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해도상의 ‘X 표시’는 영화의 주장처럼 세월호가 급변침했던 회전 반경의 중심이 아니라, 9시 10분 경 두라에이스가 세월호에 접근해 육안으로 확인했던 위치를 대략 해도에 표시한 것이었다. 김지영 감독은 문 선장의 설명을 왜곡해서 영화에 반영했다.

(4) 앵커를 내린 채 운항했다면 앵커가 선체 바닥을 계속해서 타격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앵커가 해저에 걸렸다면 선수의 앵커를 감는 윈치 등 선체 파손이 발생했어야 하는데 인양된 선체를 확인해 보니 멀쩡했다.

그런데 후속작인 <유령선>은 ‘정부 AIS 데이터 조작’은 근거가 없다는 뉴스타파의 (1)번 검증 내용만을 붙잡고 “또 다른 증거가 있다”고 집요하게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 주장들도 이번 뉴스타파 검증보도로 모두 기각됐습니다.

반면 <그날, 바다>에 대한 뉴스타파의 (2), (3), (4)번 검증 내용에 대해서는 2년이 넘도록 김지영 감독의 반론이 없습니다. 본인의 오류를 인정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반론을 준비 중인 건지, 이제는 대답을 해주시는 게 54만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뉴스타파가 <그날, 바다>와 <유령선>을 검증한 이유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뉴스타파가 <그날, 바다>와 <유령선> 등 김지영 감독의 영화 두 편을 잇달아 검증한 것을 놓고 “왜 스스로 세월호의 진실을 탐사하지 않고 다른 주장에 대한 검증만 하고 있냐”고 질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6년 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수많은 탐사보도를 통해 진상 규명에 기여해 왔습니다. 홈페이지의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에는 그간의 보도물 수백 건이 빼곡히 정리돼 있습니다.

또한 뉴스타파는 김지영 감독 영화에 대한 검증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미 2년 전 명확히 밝힌 바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온 영화 <그날, 바다>의 집념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렀고, 특히 다큐멘터리 형식을 표방하고 있어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일종의 기록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누구의 ‘인텐션’인가...세월호 항적조작과 앵커설 검증> / 2018. 7. 13)

‘진실’은 ‘사실’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맥락적 관계들에 대한 해석이 더해져 정립되는 것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구성되는 진실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진실을 찾는 일은 ‘사실’과 ‘허구’를 명확히 구분해 ‘사실’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월호 진실 찾기’를 표방한 영화 <그날, 바다>와 <유령선> 역시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기에 뉴스타파는 검증에 나섰던 것입니다.


▲ 2017년 3월 23일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뒤 4월 11일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김지영 감독이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세월호는 지그재그 운항을 했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이른바 ‘고의침몰설’을 처음 제기했던 것이 2014년 하반기였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에 관한 정보들을 극도로 통제하고 대다수 언론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죠. 그의 주장은 곧 AIS 항적 조작설과 앵커침몰설로 발전됐고, 이 가설들을 묶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며 시민들로부터 20억여 원의 기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2018년에 개봉한 <그날, 바다>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바다>가 만들어지는 3년여의 기간 동안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에 다가설 수 있는 여러 새로운 증거들이 나왔습니다. 2017년 3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돼 외부 충격의 흔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앵커가 해저지형에 걸렸다면 크게 파손됐어야 할 윈치(앵커 체인을 감아 올리는 장치)도 멀쩡했고요. 2017년 9월엔 세월호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들이 복원돼 세월호가 급변침과 급경사를 일으킨 정확한 시각이 확정되고 당시의 선체 거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18년 2월엔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확인되어 세월호 급변침의 최초 모멘텀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습니다. 이를 포함한 여러 조사들을 수행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2018년 8월 종합보고서에서 “세월호 AIS 항적 데이터에 대한 조작 흔적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초기 가설 단계에서는 알 수 없던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그 가설도 상응하는 변화가 있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무너진 뒤 활동한 선체조사위원회의 조사 결론을 무턱대고 의심하며 불복할 이유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 씨는 참사 초기인 2014년에 제기했던 세월호 지그재그 운항설, AIS 조작설, 앵커침몰설을 지금까지도 변함 없이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태도일까요.

특히 세월호 AIS 데이터는 침몰 원인 조사의 가장 기초 자료입니다. 이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한발한발 내딛었던 침몰 원인 조사 결과 전체를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요구이자, 어쩌면 침몰 원인을 영원히 찾을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토록 엄중한 주장이라면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객관적이고 치밀한 논거를 갖추어야 마땅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 씨의 주장은 수많은 사실관계 오류와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6년을 훌쩍 넘긴 지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2기 특별조사위원회)와 검찰 특별수사단이 공조해 세월호 진상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류가 입증된 무리한 가설과 의혹들을 계속해서 주장하며 조사와 수사에 혼선을 주는 건 도리어 세월호 진상 규명 작업을 방해하는 일로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는 지적을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 씨가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