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유령들 ②벼룩의 간

2018년 02월 05일 18시 45분

<도시의 유령들 ①살인노동> 편에 등장했던 청소노동자 김민수(가명) 씨의 2017년 11월 임금명세서다. 세전으로 305만 원을 받았다.

▲ 민간위탁업체 소속 환경미화원의 월급 명세서. 세전으로 305만 원을 받는다. 이 월급은 적정한 것일까.

청소노동자 김민수 씨의 월급 305만 원은 적정한 것일까. 김 씨는 토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6일 동안 밤샘 노동을 한다. 일요일 밤에는 15시간, 평일 밤에는 평균 12시간 노동한다. 그 노동은 언제 다칠 지 모르고,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살인노동’이다.

김 씨가 받는 월 305만 원의 임금은 마포구청에서 직접고용한 환경미화원 평균 임금의 67%에 해당한다. 직접고용된 환경미화원의 월 임금은 평균 450만 원이다. 지자체 직영 환경미화원은 거리 청소를 담당하고, 민간 위탁업체 소속 환경미화원은 생활폐기물을 수거, 운반하는 일을 한다. 이 같은 임금의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1단계 : 원가 500만 원

마포구청이 지난 2016년 11월, 한국지방경제경영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원가계산 용역’에 따르면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위탁업체 환경미화원들이 받아야 할 월 노임은 500만 원으로 책정돼있다. 이 원가는 실제 노동시간, 처리해야 할 쓰레기 양, 이동하는 거리까지 모두 고려해 계산된 것이다. 원가만 따져봤을 때 민간 위탁업체 소속 환경미화원의 월급은 구청 직영 환경미화원의 월급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 마포구청이 한국지방경제경영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폐기물 수집운반 처리 원가계산 용역 보고서’. 민간위탁업체 환경미화원 노임의 원가를 500만 원으로 산정했다.

2단계 : 원가의 70%

하지만 마포구청은 2017년 2월, 원가의 70%만을 반영해 용역 입찰공고를 낸다. 예산 부족이 이유였다. 이 단계에서 원가 500만 원이었던 환경미화원의 임금은 350만 원으로 깎인다.

3단계 : 담합?

마포구청은 구를 4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생활폐기물 처리 용역을 민간업체에 위탁을 주고 있다. 2017년 이전에는 모두 개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해왔다. 한 권역에 각각 한 개의 업체가 26년에서 11년 동안 생활폐기물 처리 용역을 도맡아 해왔다. 마포구청은 2017년 2월, 처음으로 생활폐기물 처리 용역을 공개 입찰했다. 업체들은 마포구의 용역예정금액에 불만을 가졌다. 용역예정금액이 원가의 70%가 되면, 노동자의 임금도 70%가 되지만, 업체의 이윤도 70%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 4개 업체가 모두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에는 생활 폐기물 위탁업체가 115개가 있다. 그런데 어떤 업체도 약속한 듯 모두 마포구청 입찰에 응하지 않았다. 기존에 사업을 하던 권역이 아닌 다른 권역에서는 폐기물을 수거, 운반하는 사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차의 동선, 쓰레기 수거 거점 등 대부분의 사업 노하우를 새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 경쟁 시장이지만 실제로는 진입장벽이 높은 독점 시장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2017년 서울 마포구는 쓰레기 대란까지 우려되는 상황이 됐다.

▲ 마포구 생활폐기물 위탁 현황. 4개의 업체가 4권역을 사이좋게 나눠서 장기간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이미 세팅이 100% 다 되어있단 말이에요. 서울시 115개의 대행사들이 자기 구역을 벌써 다 갖고 있어요 이미. 수십 년 동안 해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경쟁(입찰)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시장 현장과는 서로 상충된다는 것이 문제점이죠.

마포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

우린 기준대로 했을 뿐인데 대행업체가 독점이다 보니. 업체의 힘겨루기에 구청이 밀린 것 같아요.

마포구청 관계자

일주일 뒤 마포구는 다시 2차 공고를 낸다. 그런데 이번엔 4개 업체 모두 응찰했다. 기존 업체 4곳은 상대방의 권역에 사이좋게 경쟁상대자가 되어주었다. 다른 권역 입찰에는 용역예정금액의 100%를 살짝 초과하는 금액을 써내서 탈락했다. 자신의 권역에는 98.341%~99.999%라는 높은 낙찰률을 써냈다. 모두 원래 자기 권역에서 낙찰을 받았다. 용역비도 예정금액의 100% 가깝게 가져갈 수 있었다.

4단계 : 낙찰률 → 낙찰하한율

1차 때 무응찰했던 업체들이 왜 2차 공고 때는 일제히 입찰에 응했던 걸까. 1차 공고와 2차 공고의 차이는 단 한 단어. 마포구가 노동자 임금 규정을 “낙찰률 이상 지급”하라는 것에서 “낙찰하한율 이상”으로 하라고 변경해준 것이다.

‘낙찰률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하라’는 뜻은, 100%로 낙찰 받으면 임금도 100% 이상, 90%로 낙찰 받으면 임금도 90% 이상으로 지급해야한다는 말이다. 민간업체가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임금을 자의적으로 깎는 행위를 막아,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려는 취지의 규정이다. 2017년 낙찰하한율은 87.745%로 당시 낙찰률보다 12%p 이상 적다.

마포구청이 입찰 조건을 변경해주면서, 업체는 노동자의 임금 명목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이윤으로 챙겨갈 수 있게 됐다. 즉 민간업체는 구청으로부터 환경미화원의 임금에 해당하는 직접노무비를 낙찰률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받았지만, 실제 임금은 낙찰률보다 적은 낙찰하한율로 줄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위탁업체 소속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350만 원에서 다시 305만 원으로 깎이게 됐다.

‘벼룩의 간’은 이렇게 500만 원에서, 350만 원, 그리고 305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지자체는 예산을 아꼈고, 민간 위탁업체는 이윤이 감소한 부분을 노동자의 임금으로 충당했다. 이 과정은 과연 정의로운가.

▲ 위탁업체 소속 청소노동자 김민수 씨의 임금 결정 과정

마포구청은 입찰 조건을 변경한 것은 쓰레기 대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 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음 사업자를 빨리 선정하지 않으면 그게 다 주민 피해로 넘어가는데. 사업을 하기 위해선 입찰을 유효하게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근데 유효하게 입찰한 것을 그냥 정부 가이드라인만 갖고 우리가 그대로 밀고 나가면 그 사업이 얼마나 지연되겠어요.

마포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그게 법이에요? 의무가 아니죠 그건. 법률이 법이지 법률상에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100% 지키라는 건 아니라 봐요.

민간 위탁업체 관계자

하지만 노동부는 정부가 정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의 임금규정을 마포구청이 위반한 것으로 보고 근로감독관이 현장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취재 : 이정호, 김새봄, 오대양
촬영 : 신영철
편집 : 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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