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도 색깔이 있다. 모델은 카메라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여성 모델들이 기억하는 카메라는 폭력적이었다. 특히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에게 더욱 잔인했다고 여성 모델들은 기억하고 있다.

빨간색이요.
지옥 같았고,
피 흘리는 느낌이었어요.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그런 느낌,
질질 끌려가는 느낌,
온몸에 상처가 나는 것 같은…

-박미진(가명) / 5년 차 모델

촬영 현장에서 여성 모델에 대한 성추행은 일상적이었다. 이른바 ‘스폰 제안’이나 ‘성상납 요구’도 드물지 않았다. 직업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델들은 현장에서 절대적인 약자다. 무리한 요구를 감내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까탈스러운 모델이라는 평가는 치명적이다.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의 경계. 모델들은 참고 참고 참아야 한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

까만색.
어두운 색, 절망, 충격,
그리고 분노가 공존하는 색.
셔터가 내려지고,
진짜 자기 세계 속으로
어둠이 내려온 듯한 그런 기분… 공포.

-정다솜(가명) / 누드 모델

예술과 작품을 빙자해 진행되는 성폭력. 맥심 잡지 전속 모델 박무비(모델, 6년 차) 씨는 뉴스타파 카메라 앞에서 모델계에 만연한 각종 성폭력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성폭력은 촬영을 위한 미팅자리에서부터 시작됐다. 광고주, 고용주는 맥심 모델이면 아무 말이나 아무 행동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박무비는 말했다.

광고주 분들이나
저를 고용하려는 분들이
‘에이 뭐 맥심 모델이잖아~’
섹드립도 아니고 희롱이죠.
제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면...
‘이 정도도 못 받아쳐?’

-박무비 / 6년 차 맥심 모델

촬영 현장에서 사진 작가들에게 당하는 성폭력이 전부가 아니다. ‘야한 사진’을 찍는 모델들은 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폭력적인 시선과 말, 그리고 ‘범죄’를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박무비는 말했다.

섹슈얼한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저 건드려도 좋아요,
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닌데, 아닌데.
야하게 입었다고
다 그렇게 해도 되나요?

-박무비 / 6년 차 맥심 모델

한국일보가 한국리처시에 의뢰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응답자의 절반 정도(46.3%)가 동의했다. (관련기사 : 2030 남성 33%, “성폭력, 피해자 책임” 또래 여성과 인식차 커)

남성은 50.8%, 여성은 41.9%가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20대는 24%, 30대는 27.9%, 40대는 46.4%, 50대는 58%, 60대 이상은 64.9%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피해자 책임론이 강했다.

자, 당신도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이 성폭력 범죄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자가 섹슈얼한 사진을 찍는다고,
섹시한 옷을 입는다고,
그 어떠한 이유로든
범죄적 발상이
당연하게 치부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발.

-박무비 / 6년 차 맥심 모델

취재 : 김새봄
촬영 : 김남범
편집 : 윤석민
디자인 : 하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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