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니세프, 성희롱의혹 사무총장 위해 '명예' 퇴임식 개최
2018년 04월 03일 19시 26분
지난해 8월 10일 내외경제TV는 웹사이트에 자사 임정혁 회장(당시 상임고문)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후원금 천만 원을 내고 감사패를 받았다는 미담 기사를 내보냈다.
임정혁 내외경제TV·내외뉴스통신 상임고문(법무법인 산우 대표 변호사)이 유니세프한국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이번 감사패는 임 상임고문이 지난 6월 26일 영양실조 어린이 구호를 위한 유니세프의 '생명을 구하는 선물'을 통해 1000만 원의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의미있는 성금에 따른 것이다.
변호사이자 인터넷언론사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아동구호 기관에 천만 원이란 거액을 쾌척한 이 미담의 이면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임 회장은 검사 출신으로 대검찰청 차장검사까지 지냈고 현재는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짧은 경력이 하나 있다. 바로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경력이다.
지난해 1월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내부에서 제기된 서대원 사무총장의 성희롱 의혹 등 각종 비위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조사위 위원장엔 외부 인사를 위촉했다. 당시 조사위원회는 2개로 나눠 구성됐다. 제1조사위원회는 서대원 총장의 성희롱 의혹, 제2조사위원회는 그 이외의 의혹 조사를 담당했다. 각 조사위원회는 외부에서 위촉된 위원장 1명과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이사 2명, 직원 2명으로 구성됐다. 임정혁 회장은 제2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천만 원을 후원하고, 감사패를 받은 시점은 조사위원장으로 활동할 때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이 두 조사위원회를 운영하는데 7천만 원 이상의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직원은 이 돈의 대부분이 임정혁 회장 등 외부에서 위촉된 위원장 2명에게 사례비로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뉴스타파에 밝혔다.
뉴스타파는 지난 3월 8일 성희롱 의혹 등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서대원 전 사무총장의 각종 비위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의혹을 내부 고발했던 김 모 팀장은 그 이후 해고됐다. 김 팀장이 당시 제기한 서 총장 관련 문제는 성희롱 의혹, 대출 과정에서 배임 미수 의혹, 부당 채용 추진 등 3가지였다.
내부고발 이후 구성된 2개의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조사활동을 벌였다. 제1조사위원회는 성희롱 의혹, 제2조사위원회는 배임 미수 의혹, 부당채용 추진 의혹 등을 맡았는데 두 위원회 모두 서대원 사무총장에게 잘못이 없다는 결론을 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당시 조사위원회 내부 위원으로 참여했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팀장들은 국장으로 영전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지난 4월 27일 서 총장의 성희롱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된다며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내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부실 또는 서 총장 봐주기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는 반증이다.
뉴스타파가 최근 입수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조사위원회 진행비' 명목으로 70,305,740원을 사용했다. 월 3만 원으로 어린이 29명에게 영양실조 치료식을 줄 수 있다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의 광고를 감안하면, 7만 명 가까운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구호하는데 쓸 수 있는 돈이 사무총장 비위 의혹을 조사하는데 허비된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조사위원회 보고서 요약본에는 1,2조사위원회 모두 팀장급 직원들을 내부위원으로, 이사들을 외부위원으로 하고,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무관한 외부 인사 1명을 위원장으로 위촉해 활동했다고 돼 있다. 제1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박정규 김앤장 변호사, 제2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임정혁 법무법인 산우 대표변호사였다.
취재진이 입수한 또 다른 내부문서에 따르면 서대원 전 총장의 성희롱 의혹을 조사했던 제1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월 23일부터 조사보고서를 제출한 9월 4일까지 8개월 동안 11차례 회의를 했다. 또 제2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월 19일부터 8월 26일까지 역시 11번의 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주로 조사 결과를 정리하거나 관련자와 참고인 면담으로 진행됐고, 한번에 2~3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팀장은 조사위 활동비를 별도로 지급받지는 않았다. 위원으로 참여한 이사들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정관상 임원으로 무보수 명예직이다. 진상조사위의 성격 상 순수 회의비에 많은 돈이 소요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조사위원회 진행비로 집행한 7천여 만 원 중 대부분은 외부에서 위원장으로 위촉된 박정규 변호사와 임정혁 변호사 2명에게 지급된 사례비로 추정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실제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조사위원장 측에 최소 천만 원 이상의 거액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먼저 박정규 김앤장 변호사에게 연락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진상조사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와 고액 활동비 수수 여부를 물었다. 박 변호사는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고액의 돈이 입금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박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1천만 원이 한 번 입금된 것은 기억이 나는데, 자세한 금액은 사무실 (김앤장 법률사무소) 계좌로 바로 입금돼서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니세프 일이라고 해서 처음에 무료 봉사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시간당 (자문료를) 과금을 하다보니 회사 (계좌)로 넣어준 사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또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송상현 회장과는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직접 조사위원장 요청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말이 맞다면 결국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내부 문제로 인해 시민들이 낸 후원금이 김앤장으로 흘러들어간 꼴이다.
취재진은 제2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임정혁 변호사에게도 연락해 조사위 활동비 또는 사례비를 얼마나 받았는지, 조사위원장 활동 중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후원한 천만 원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받은 돈을 다시 기부하는 성격이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그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어떤 기관 내부에 임시로 꾸려진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된 외부 인사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사례를 지급해야 하는 게 적절한지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다만 지난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소송을 수행하는 외부 변호사 선정과 운영 투명성 제고 방안’에서 제시한 모범적 사례를 보면 공공기관의 비상근 변호사는 전문성, 경력, 역량 등을 평가하는 법률자문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도 시간당 최고 50만 원을 넘지 않도록 했다.
뉴스타파는 조사위원회 위원장에게 고액의 사례비를 지급한 이유와 7천만 원 넘는 예산을 조사위원회 진행비로 사용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등을 지난 18일부터 여러차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측에 질의했지만, 사실 확인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취재: 김지윤
디자인: 하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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