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비리'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화려한 혼맥

2018년 07월 04일 20시 29분

조양호(趙亮鎬·69) 한진그룹 회장에게 횡령, 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영장실질심사가 7월 5일 열린다. 이에 앞서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李明姬·69;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게는 두 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모두 기각된 바 있어 법원이 이번엔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우리나라 재벌그룹 창업주나 2-3세들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나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된 경우는 많지만, 재벌그룹 현직 회장의 부인이 ‘갑질’이라는 용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행태로 잇달아 구속영장이 두 번씩이나 청구되기는 이 씨가 처음이다. 필리핀 여성을 가정부로 불법 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씨는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검찰은 폭력행위 등의 혐의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주)한진이나 계열사의 직책을 갖고 있지 않은 이 씨가 건설공사 현장에 나와 직원들에게 발길질과 폭력을 행사하고 설계도면으로 추정되는 서류뭉치를 집어던지는 영상을 본 시민들은 ‘어떻게 저럴 수가’하는 탄식과 함께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왼쪽)와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 씨

조양호 한진그룹 대주주 가족의 갑질 행위는 이씨가 처음이 아니다.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趙顯娥·44; 전 대한한공 부사장)씨가 2014년 12월 5일 뉴욕에서 서울로 출발하기 위해 이륙 준비 중이던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데 이어,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하기시킨 사건이 벌어져 국내외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뉴욕발 대한항공 1등석에서 마카다미아를 봉지 째 가져다준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다음,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인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키면서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250여 명의 승객들은 출발이 20분가량 연착되는 불편을 겪었다. 조용히 무마되는 것으로 보였던 이 사건은 12월 8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재벌가 갑질 논란을 촉발시켰다. 특히 게이트를 떠난 항공기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오는 램프리턴에 대한 항공법 저촉 여부 등으로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 대한항공은 조 부사장을 옹호하는 것은 물론 책임을 승무원에게 떠넘기는 사과문을 발표해 논란을 불을 붙였다. 여론이 악화하자, 조 전 부사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주요 보직은 모두 유지하는 것으로 드러나 또 다시 논란이 됐고, 결국 12월 10일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아버지 조 회장도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증거 인멸 시도 등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계속 확산됐다.

이후 참여연대가 조 전 부사장을 항공법 및 항공보안법 위반 등으로 고발하면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서부지검의 조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국토부 조사 결과는 봐주기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거짓 진술 강요 등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계속됐다. 2014년 12월 30일 조 전 부사장은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죄, 형법상 강요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2015년 2월 1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만 무죄로 인정되고 나머지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 씨는 항소했고, 2015년 4월 1일 ‘항로’의 의미를 두고 검찰과 조 씨의 변호인 측이 재공방을 벌였다. 이후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였지만, 5월 22일 항소심 법원은 조 전 부사장의 회항 장소가 ‘계류장’이었기 때문에 항로변경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이 사건과 별개로, 조씨 등은 세관검사를 받지 않고 수입 생활용품을 오랫동안 대량으로 반입한 것으로 드러나 밀수·탈세 혐의까지 불거져 지난 6월 5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 씨

 지난 3월 16일에는 조 회장의 차녀이자 셋째인 조현민(趙顯玟·35) 전 대한항공 전무가 대한항공 본사에서 광고업체 A사 팀장 B씨가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소리를 지르며 유리컵을 던지고 종이컵에 든 매실 음료를 참석자들을 향해 뿌리는 난동을 부려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한진그룹 창업주의 3세들인 조현아, 조현민 자매가 차례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가운데 조현아의 남동생이자 조현민의 오빠인 조원태(趙源泰·42) 대한항공 사장의 ‘만행’까지 알려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조 사장은 교통법규를 위반한 뒤 이를 적발한 경찰관을 차량으로 치고 그대로 도주한 이력이 있다. 당시 시민들에 의해 붙잡혀 경찰에 입건됐으나 4시간 만에 풀려나면서 세간의 비난을 산 바 있다. 조 사장은 1999년에도 뺑소니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경찰의 축소 수사 의혹까지 불거졌다.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조 사장이 70대 할머니를 폭행하고 폭언을 가하는 등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약식 기소돼 벌금 100만원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진그룹 창업주 3세’들의 갖가지 유형의 막말과 폭행 등을 보여주는 녹음녹취와 영상들이 잇따라 공개되고, 어머니인 이명희씨 갑질 의혹까지 불거지자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해 1945년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참다못한 대한항공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을 포함한 직원들은 조 회장 일가의 각종 불법행위와 갑질 사례들에 대한 내부고발을 받는 블로그까지 개설하고,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열어 ‘조씨 일가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거나 논란이 된 다른 재벌 창업주나 주주가족들의 갑질과 내부거래 등과는 차원이 다른 한진그룹 조 회장 일가의 ‘충동적이며 일상화’된 폭언·폭행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들의 진단과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분노조절장애라는 것은 본인은 조절하고 싶지만 조절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경우에는 ‘조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적인 판단과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며, “본인들의 의지로 폭행을 가하는 것이지 장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비정상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환경에서 성장하고, 여태껏 그렇게 살아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점차 강화된 것이어서 조절장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이토록 ‘안하무인’으로 만든 ‘환경’이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한진그룹의 기업사와 가족들의 혼맥 등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한진그룹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인천 해안동의 한 허름한 창고에 25살 ‘청년’ 조중훈(趙重勳: 1920-2002)이 ‘한진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낡은 트럭 한 대로 화물운송사업을 시작해 70년이 지난 2015년(4월 기준)에 매출 23조 원, 총자산 38조 원이 넘는 기업집단군(재벌)으로 성장했다. 이로써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거창한 포부를 담은 두 단어에서 한 글자씩 따온 ‘한진(韓進)’은 창업주(조중훈)의 원대한 꿈을 오롯이 이룬 것일까?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의 맏며느리이자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씨와 세 자녀들이 자초한 ‘오너 리스크’는 국가든 기업이든 위기는 밖에서 보다 내부에서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창업주 조중훈 씨는 서울에서 지주로 직물도매상을 하던 부친 조명희(趙命熙: 1895-1971) 씨와 모친 태천즙(太天楫) 씨 사이에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중훈 창업주의 부친은 ‘중헌거사(重軒居士)’라 불리는 불자였고, 조부 조병규(趙秉圭: 1851-1909) 씨는 구한말 중추원 의관(議官)을 지냈다. 고 조 회장은 밑으로 남동생 2명과 여동생 4명이 있다. 고 조 회장은 평범한 가정의 김정일(金貞一·95)과 결혼하여 슬하에 4남1녀를 두었다. 장남이 조양호 현 회장이다.

중앙정보부장, 외무장관, 상공장관, 교통차관 등과 혼맥...정부 구성 가능할 정도

 지금은 대부분 작고한 재벌 창업주들이 자녀 혼사를 맺을 때 눈에 띄는 패턴이나 경향이 있다. 사위를 맞아들일 때는 거의 예외 없이 법조인을 선택하고, 며느리는 (정치)권력자나 다른 재벌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가문도 예외가 아니다.

고 조 회장의 유일한 사위이자, 조양호 회장의 누나 현숙(賢淑·73) 씨의 남편인 이태희(李泰熙·78) 변호사는 고등고시 사법과 14회 출신으로 서울지법 판사를 거쳐 법무법인 광장(Lee & Ko) 대표변호사로 소공동 한진그룹 본사에 사무실을 두고, 대한한공의 법률상임고문으로 법률문제를 총괄해 왔다. 이 변호사의 부친 이흥묵(李興默)씨는 흥아타이어(현 넥센타이어) 감사를 지냈고,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한봉세(韓鳳世: 1915-2013) 전 대법원 판사와 사돈이다.

▲ 이재철 전 교통부차관(오른쪽 두번째)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의 부친은 이재철(李在澈:1923-1999) 전 교통부차관이다. 대구 출신인 이 전 차관은 1942년 일본 제7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교토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해방되던 해 2년 수료하고 귀국하여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제1회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뒤 외무부 조약국에서 근무하다, 대구대(현 영남대)로 자리를 옮겨 교수 및 학생처장으로 15년 동안 근무한다.

이 차관은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 교수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년 동안 박정희가 5·16군사구데타 성공 후 설치한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 전문위원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이 차관을 박정희에 연결시켜 준 사람이 당시 대구대에서 형법을 가르치며 대학원장까지 지내다 공화당 국회의원과 공화당 의장을 지낸 백남억(1914-2001) 씨다. 대구에 있는 백남억 교수 집에서 마작판이 벌어지면 10년 가까운 후배교수인 이재철 씨도 함께 했다고 한다. 백남억 씨의 손아래 처남이 국회의장을 세차례(13-15대)나 지낸 9선 국회의원 박준규(朴浚圭: 1925-2014)씨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다선인 9선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세 사람으로, 나머지 두 사람은 최근 작고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조양호 회장의 장인 이재철 씨는 고등고시 사법시험 위원과 감사원 감사위원을 거쳐 1967년 초대 과학기술처 차관을 거쳐 1971년부터 6년 동안 교통부차관을 지낸다. 교통부차관을 지낼 때인 1973년 장녀인 이명희 씨가 조양호 회장과 결혼식을 올린다. 대한항공의 관리감독 기관이자 인허가 기관인 교통부의 차관과 대한항공 사주(조중훈)가 사돈을 맺은 것이다. 이재철 씨는 교통부차관에서 물러나자마자 인하대 총장을 거쳐 국민대와 중앙대 총장까지 지낸다. 한진그룹 조중훈 당시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과도 ‘특수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돈인 이재철 차관을 통해 TK 핵심인사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조양호 회장의 장녀 조현아씨는 경기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성형외과 의사인 박종주(44) 씨와 2010년 결혼했다. 조 회장의 외아들 조원태 씨는 충북대 정보통계학과 교수를 지낸 김태호(金台浩·68) 씨의 외동딸 김미연(金美姸·39) 씨와 2006년 결혼했다. 김태호 교수의 부친은 3대 중앙정보부장과 국회의원(8-9대)을 지낸 김재춘(金在春: 1927-2014)씨다.

작고한 3남 조수호(趙秀鎬: 1954-2006) 전 한진해운 회장의 결혼은 조중훈 가문 혼맥의 또 다른 중심축이 된다. 고 조수호 회장의 부인 최은영(崔恩英·56) 씨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여동생 신정숙(辛貞淑·81)씨의 장녀로 부친은 엔케이(NK)그룹 회장을 지낸 최현열(崔鉉烈·84) 씨다. 조수호 전 회장의 동서가 정주영(鄭周永: 1915-2001)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 정상영(鄭相永·82) 전 KCC 회장의 차남인 정몽익(鄭夢翼·56) KCC 대표이사 사장이다.

4남1녀의 막내인 조정호(趙正鎬·60) 메리츠종금증권 회장은 구인회(具仁會: 1907-1969) LG그룹 창업주의 3남 구자학(具滋學·88) 아워홈 회장의 차녀 구명진(具明珍·54)씨와 결혼해 삼성그룹 이병철(李秉喆: 1910-1987) 창업주 가문과 연결된다. 구자학 회장의 부인이 이병철 회장의 차녀인 이숙희(李淑熙·83) 씨다.

한진그룹 가문의 혼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중훈 창업주의 형인 고 조중열(趙重烈) 전 한일개발 회장의 장남 조지호(趙志鎬·70)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병호(李丙虎) 전 상공부장관의 장녀 이숙희(李淑熙·69) 씨와 결혼했다. 고 이병호 전 상공부장관은 일제 때 동양척식회사에서 근무하다 정부 수립 후 재무부를 거쳐 상공부차관과 내무부차관을 차례로 지냈다. 차남 조건호(趙建鎬·66) 씨는 재미동포인 윤주덕 내과의사의 딸 윤영태(尹榮台·64) 씨를 아내로 맞았으며, 장녀인 조인숙(조인숙·72)씨는 문영호(文永鎬·79) 전 동부제일병원 내과과장과 혼인했다. 문영호 씨의 부친은 제일은행 이사를 지낸 문재관 씨다.

조중훈의 동생 조중건(趙重建·86)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이영학(李英鶴·81)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장남인 조진호(趙珍鎬·56) 씨는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종남(李鍾南·82) 전 감사원장의 장녀인 이경아(48)씨와 결혼했고, 장녀인 조윤정(趙允偵·54) 씨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쳐 외무부장관을 지낸 이동원(李東元: 1926-2006) 씨의 장남 이정훈(李政勳·57) 연세대 교수와 결혼했다. 3녀인 조주연(趙珠娟·51) 씨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낸 김태효(金泰孝·51)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와 결혼했다.

한진그룹 일가 2명,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

뉴스타파가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프로젝트를 통해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것으로 확인된 한진그룹 일가는 모두 2명이다. 창업주 조중훈 회장의 동생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 씨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이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 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든 시기는 2008년 6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유령회사의 이름은 ‘카피올라니 홀딩스’였다.

조중건 전 부회장 부부가 유령회사를 만든 비슷한 시기에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고급 아파트를 수차례 거래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조 씨 부부가 2007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 카피올라니에 있는 모아나 퍼시픽 콘도 4703호를 사들인 것이다. 당시 공시된 매입가액은 미화 195만 달러, 우리 돈으로 20억 원이 넘는다. 카피올라니 지역은 고급 아파트가 밀집된 곳으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점은 조 씨 부부의 유령회사 이름과 하와이 부동산을 구입했던 지역의 이름이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유령회사 설립은 해외 부동산 거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당시 한진그룹 측은 ‘조 전 부회장 부부가 하와이에 자주 다녔기에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뉴스타파 취재진은 조 씨 부부에게 수차례 연락해 해명을 요청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조세도피처에 등장하는 또 다른 한진그룹 일가 중 한 명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남편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작고한 뒤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2008년 12월 최은영 회장은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법인 이름은 ‘와이드 게이트 그룹’이다. 스위스 투자 은행인 UBS 홍콩 지점의 소개로 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항공 고문 부인도... 수상한 해외부동산 거래 포착(2013.05.21)

당시 뉴스타파는 최은영 회장이 유령회사를 설립한 시점에 주목했다. 한진해운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일년 전, 그리고 자신이 지주회사인 한진해운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직전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한진해운 측은 최은영 회장이 버진아일랜드의 유령회사를 실제 소유한 것은 회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유령회사가 한진해운과 무관하다면 도대체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거듭 확인을 요구했지만 최은영 회장 측은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제 수백억 원 규모의 탈세와 횡령 혐의로 15시간이 넘도록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은 조양호 회장은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조양호 회장과 부인, 그리고 두 딸 등 온 식구가 이토록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온갖 행태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배경과 뿌리’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업주 조중훈 전 회장 가족이 정계와 관계 고위층들을 비롯, 다른 재벌 오너들과 맺은 광범위한 혼맥이 될 것이고, 뿌리는 창업주 조중훈과 박정희 대통령 사이의 ‘특수관계’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때 국영기업 대한항공 불하...재벌 도약 결정적 계기

조중훈과 한진그룹은 박정희 정권 때 받은 특혜를 통해 재벌로 도약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진그룹이 박정희 정권 당시 국영기업인 대한한공을 불하받을 수 있었던 것이 도약의 결정적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조중훈 창업주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특혜만 받았던 게 아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었다는 뜻이다. 조중훈 당시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에 많은 정지차금을 제공했고, 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나 재계의 실력자들, 그리고 자신의 만주군관학교 시절 은사 등에게 선물이나 정치자금을 제공할 때 자금을 보태거나 돈 심부름을 자주 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계·관계·재계를 비롯한 유력 가문들로 얽히고설킨 화려한 혼맥을 배경으로 나고 자란 조양호 회장과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는 ‘갑질’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취재: 신학림 뉴스타파 전문위원, 박중석 기자
인터랙티브 그래픽 :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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