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 검사는 왜 삼성 법무팀과 상의했을까

2018년 09월 13일 13시 31분

지난 8월 22일, 수원지법 210호 법정에서는 기술 유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이 모 전무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저는 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법정에서 정말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기술유출 혐의 뒤집어 쓴 삼성전자 전무

저는 지난 5월 기술 유출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이 전무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이 전무는 지난 2016년 8월, 재직 중이던 삼성전자로부터 형사 고소를 당했습니다. 병가 중에 사무실에 들러 업무자료를 출력한 뒤 자택으로 유출한 혐의였습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이 전무는 9월 22일 구속돼 6개월 반 동안 구치소에 갇혀있어야 했습니다. 이 전무가 구속될 당시 많은 언론들이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뻔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법원은 1심에서 이 전무의 기술유출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016년 당시 많은 언론들은 이 전무의 기술 유출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뒤 저는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검찰이 그를 기소한 근거들을 하나 하나 뜯어봤습니다. 근거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이 전무가 중국으로 기술을 빼돌리려했다는 것은 아예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이 전무가 헤드헌터와 접촉한 사실을 기소의 핵심 근거로 들었으면서 정작 헤드헌터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무가 유출한 문서들이 전부 핵심 기술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전무가 유출했다는 문서들은 그가 언제든 회사에서 지급한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 볼 수 있는 문서들이었습니다.

이 전무가 유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휴대전화나 노트북에 문서를 띄워놓고 사진을 찍으면 훨씬 더 간단하게 빼돌릴 수 있는데 왜 굳이 문서를 프린트해 집으로 가져가는 위험한 방법을 택했는지, 검찰은 전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전무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직원들로 하여금 허위 증언을 하도록 했고, 심지어 법정에 나오기로 한 증인이 출석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뉴스타파 보도 허위라던 검찰...기자가 증인 출석하자 증거 철회

기사가 보도된 뒤 이 전무의 변호인 측은 뉴스타파의 기사를 2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검사는 이에 맞서, 뉴스타파의 기사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며 보도 화면 몇 장면을 캡쳐해 반대 증거로 제출했죠. 그러자 변호인 측은 저를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검사의 증거를 탄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형사재판의 증인으로 소환되었으니 저는 당연히 공판에 참석을 했습니다. 저는 증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출석해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 중 일부가 허위라는 검찰의 주장을 반박할 예정이었습니다(검찰이 사실과 다르다며 증거로 제출한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과 이에 대한 뉴스타파의 반박은 기사 하단 상자에 따로 실었습니다).

증인 신문을 앞두고 재판장은 검사에게 본인이 제출했던 증거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검사가 증거 제출을 철회할 경우 증인 신문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 그러자 검사는 증인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검사, 법정에서 삼성 법무팀 직원과 증거 철회 상의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이었습니다. 수원지검의 송민하 검사는 증거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을 받더니 “해당 증거는 고소인 측에서 분석한 것이므로 고소인 측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재판장은 10분 동안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송 검사가 말한 ‘고소인 측’은 다름아닌 삼성전자입니다. 재판이 휴정되고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법정 바깥으로 나가자, 송 검사는 직접 검사석에서 방청석으로 걸어나와 삼성전자의 법무팀 직원 2명을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방청석에 선채로 5분 가량 대화를 나눴습니다. 검사가 재판 중에, 증거 채택 여부에 대해서 고소인인 삼성전자와 상의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재판이 재개되자, 송 검사는 판사에게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이므로 증거를 철회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증거 철회의 이유라면 애초에 왜 증거를 제출했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삼성 측의 주장에 따라 증거를 제출했다가, 막상 해당 증거를 반박하기 위해 제가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재판이 삼성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게 될 것으로 보이자, 삼성 측의 의사를 물어보고 증거를 철회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한 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검사와 삼성전자 법무팀 직원들이 상의하는 모습이었던 겁니다.

“압수물 분석도 삼성전자가 해줬다.”

이 날 결심공판 과정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 또 하나 드러났습니다. 검사는 이 전무의 자택에서 압수한 문건들이 국가적으로 보호하는 핵심적인 기술 자료라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압수물 분석을 실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검사는 그 압수물 분석을 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삼성전자의 직원들이었다는 것을 털어놨습니다. 물론 검사가 기소나 재판 과정에서 고소인을 불러 조사할 수는 있습니다. 사건 내용을 고소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압수물 분석 자체를 고소인에게 맡겼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수사와 기소의 주체가 검사인지, 삼성전자인지 헛갈릴 지경입니다.

변호사들 “불법은 아니지만 매우 이례적”

뉴스타파는 검사가 재판정에서 고소인측과 증거 채택 여부를 상의하는 것이 통상적인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복수의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법정에서 그같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신인수 변호사는 “고소인이 있는 형사 사건에서 검사가 고소인과 상의를 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상의를 피고인이 앉아있는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0년 이상 판사와 변호사 등 법조 생활을 했지만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 이 모 씨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수사와 기소의 주체는 엄연히 검찰이다. 수사 과정에서 고소인을 조사할 수는 있겠지만 재판정에서까지 고소인과 증거 채택 여부를 상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삼성을 대리해 수사하고 고소하는 모양새다. 매우 부적절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변호사 홍 모 씨는, “검사가 그만큼 습관적으로 삼성 측과 상의를 해왔기 때문에 법정에서도 방심하고 같은 행동을 한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검사가 미숙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이 아니었다면...

이 전무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LKB의 유지원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이상한 사건입니다. 여러 정황상 기술 유출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증거들을 보면 수사기관도 이 사건이 기술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사건의 고소인이 삼성전자가 아니었다면 과연 피고를 구속시켰을지, 그리고 사건이 여기까지 왔을 것인지에 대해 저는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의 기술유출 사건은 항상 상대방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전무 사건은, 이 전무가 기술 문서를 집으로 가져갔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그 문서를 누구에게 넘기려고 했는지조차 전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삼성의 뜻대로 기소를 강행했습니다. 수많은 반대 증거와 정황들을 무시하고서 말이죠. 그리고 이 전무의 인생과 가정생활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대체 검찰은 왜 그랬을까요? 제가 항소심 법정에서 목격한 부적절한 장면이 그 이유를 암시하고 있지 않을까요?


፠검찰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던 뉴스타파 보도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심 재판에서 삼성전자는, 이 전무가 비록 자료를 타사에 넘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회사 규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규정상 자료를 가지고 나갈 때는 모든 임직원이 반출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 전무는 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전무는 임원에 대해서는 사실상 보안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임원들은 보안의 관리자이고 결재자인만큼 스스로 자료의 반출 여부를 결정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임원들은 대개 회사가 제공한 차량을 타고 회사를 출입하는데, 이때 차량 안을 정밀검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임원의 차량을 제대로 검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임원에게는 보안 규정이 사실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삼성은 이에 맞서 일반직원 뿐 아니라 임원들이 타고 있는 차량도 30% 가량은 정밀 검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지난 5월 취재 당시, 어느 쪽의 증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 반도체 사업부를 찾아가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뉴스타파는 5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의 현장 취재를 통해, 보안 직원들이 일반 직원들의 차량은 차량 내부까지 금속탐지기로 검사하지만 임원들의 차량은 트렁크만 열어볼 뿐 내부는 아예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보도했습니다. 임원들의 차량도 30% 가량은 정밀 검사를 실시했다는 삼성의 주장은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검사는 보도 영상 가운데 정밀 검색을 받는 차량 한대를 지목하며 해당 차량은 임원 차량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임원 차량이 정밀 검색을 받지 않는다”는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차량은 임원 차량이기는 하지만 임원이 타고 있지 않은, 즉 운전 기사만 타고 있는 차량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해당 차량이 출입문에다 출입증을 접촉하는 장면으로 확인이 됩니다. 똑같은 임원 차량이라고 해도 임원이 타고 있는 경우는 출입증을 대지 않고 그냥 게이트를 통과하지만, 임원이 타고 있지 않은 경우는 출입증을 대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파는 이같은 사실을 최근까지 삼성전자에서 임원차의 운전을 맡았던 운전기사 모 씨의 증언을 통해 재차 확인했습니다.

뉴스타파의 현장 취재 외에도, 삼성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추가적인 근거는 많습니다. 첫 번째는,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직 보안직원 김 모씨가 “임원 차량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정밀 검색을 실시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사실조회 결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임원들의 자료 반출 신고가 2016년 6월 한달 동안 단 1건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임원들은 외부 회의가 많고 그때마다 필요한 자료를 들고 가는데 반출 신고가 단 1건 뿐이라는 것은 사실상 반출 신고 규정이 임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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