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리콜 기기…미국 "사망할 수도" VS 한국 "부작용 거의 없어"

2018년 11월 27일 08시 04분

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IMPLANT FILES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함께 지난 4월부터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제반 문제점을 파헤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뉴스타파 등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36개 국, 59개 언론기관은 11월 26일(한국 시간)부터 3일 연속 그 결과물을 집중 보도합니다.

11월 26일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1) : 연 450조 의료기기산업..결함 등으로 10년간 8만명 사망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2) : 늑장 리콜 통보에 쥐꼬리 보상...한국 환자 ‘하등민’ 취급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3) : 우리는 왜 글로벌 의료기기산업의 비밀을 파헤치는가?

11월 27일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4) : 볼모가 된 심장…심각한 이상사례 106건, 리콜은 없다?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5) : 같은 리콜기기…미국 "사망 가능" VS 한국 "부작용 거의 없어"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6) : 전세계 시민을 위해 ‘의료기기 DB’를 만든 이유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7) : ‘파열된 신뢰’ 인공유방...국내 이상사례 4천3백 건

11월 28일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8) : 식약처의 '업체 꼬리표' 걱정...정보 감추기 급급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9) : 의료기기업체-병원의 부당거래...피해는 환자에게


뉴스타파가 국내에서 시술된 인체이식 의료기기들의 리콜 정보를 미국 식품의약국(FDA) 정보와 대조해본 결과, 같은 리콜 제품에 대해 미국에서는 사망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거의 부작용이 없는 수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이처럼 동일 의료기기에 대해 위험성 관련 정보의 불일치가 나타나는 이유를 관리 기관인 식약처에 물었지만 식약처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리콜 기기 위해성 정도, 한-미 모두 3단계지만 내용상 차이

어떤 의료기기에 결함이 발견돼 리콜이 결정되면 인체에 미칠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급을 정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성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리콜 의료기기의 위해성 정도를 3단계로 나눈다. 1등급이 매겨진 리콜 기기는 ‘완치될 수 없는 부작용, 또는 사망’을 유발 가능성이 있는 기기다. 2등급은 완치 가능한 일시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기기, 그리고 3등급은 리콜 대상이긴 하지만 현행법 상으로 부작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기기라는 의미다.

미국도 리콜 의료기기의 위해성 정도를 3단계로 분류하는 건 우리나라와 같지만 단계 별 내용은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1등급 리콜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 또는 사망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결함의 경우이다. 2등급은 일시적 또는 가역적인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거나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 또는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이 있는 결함, 그리고 3등급은 건강 상의 문제 또는 부상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의 결함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위해성 정도 1등급에서만 고지하는 사망의 가능성을 미국에선 1등급과 2등급 리콜에서 모두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메드트로닉 보조심장장치, 한국 3등급 vs 미국 1·2등급

뉴스타파는 한국과 미국에서 공히 리콜이 실시된 심장 관련 기기들을 대상으로 실제 위험성이 어떻게 평가됐는지 분석해 봤다.

먼저 메드트로닉사가 유통하고 있는 하트웨어 보조심장장치의 경우, 한국에서는 지난 2016년과 지난해 두 차례 리콜이 실시됐다. 이때 위해성 정도는 모두 3등급으로 부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평가됐었다.

반면 이 제품은 미국에서 2012년 11월부터 최근까지 18차례나 리콜이 진행됐다. 펌프 드라이브 라인 균열, 전기적 결함, 배터리 조기방전 등 사유도 다양했다. 그런데 이 18번의 미국 리콜에서는 위해성 정도가 1등급 12차례, 2등급 6차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모든 리콜에서 환자의 사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결함이라고 고지했던 것이다.

뉴스타파는 메드트로닉코리아 측에 이 같은 위해성 정도의 차이가 왜 존재하는 것인지 설명을 요청했지만, “미국 본사가 국제 공조취재에 대한 응대를 통제하고 있어 대답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보스톤사이언티픽 인공심장판막, 한국 2·3등급 vs 미국 1등급

또 다른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보스톤사이언티픽이 판매한 생체재질 인공심장판막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기는 미국에선 2015년 3월까지 ‘사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단계’인 1등급 리콜이 진행됐다.

이후 국내에서도 결함이 확인돼 최소 세 차례 리콜이 실시됐는데, 위험성 정도는 2등급과 3등급으로 사망 유발 가능성은 없고 부작용도 거의 없는 정도라고 환자와 의료진에게 고지됐다.

이 기기의 국내 리콜 사유를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또 발견된다. “해외에서는 기기 결함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확인됐지만 국내에서는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기기를 사용하더라도 외국인에겐 사망 가능성이 있고 한국인에겐 가능성이 없다는, 황당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보스톤사이언티픽 코리아 측에 한국과 미국 리콜에서 위해성 등급이 달리 책정되는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식약처의 관련 규정을 따르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관리감독 기관인 식약처도 엉뚱한 대답만...한국인은 ‘하등민’?

뉴스타파는 추적관리대상 의료기기의 규제감독기관인 식약처에 왜 이 같은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이를 거부하고 서면 답변서를 보내왔다.

여기엔 “의료기기 리콜 정보가 미국 FDA 홈페이지에 공지되면 당일 또는 다음날 해당 정보를 인지하고 회수·폐기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고 있다”는 엉뚱한 답변이 적혀 있었다.

답변서 내용처럼 해외 리콜 정보를 상시적으로 꼼꼼하게 확인하는데도 미국에선 사망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 리콜 기기들이 왜 한국에서는 거의 부작용이 없는 기기로 느슨한 등급이 매겨졌는지 식약처의 책임있는 해명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취재 : 김성수, 홍우람, 김지윤, 연다혜
촬영 : 김기철, 정형민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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