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업체-의사 부당거래 증거...애보트 내부 자료 무더기 입수
2019년 01월 22일 19시 27분
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후속보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36개국, 59개 언론기관과 함께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점을 공동취재하면서 의료기기 업체와 의료인들이 불법적인 유착 관계를 맺어 온 실태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후 후속 취재 과정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한 의료기기 업체의 비리 관련 공익신고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그 업체는 바로 지난 보도에서도 등장한 국내 심혈관 스텐트 시장 점유율 1위 한국애보트였습니다. 뉴스타파는 애보트가 수 년 간 의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여 온 내막을 1월 22~23일 이틀 연속 보도합니다. 1월 22일 1월 23일 |
현행 의료법과 의료기기법은 의료기기 업계가 의사들에게 국내외 학술대회 참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과거 음성적으로 벌어졌던 로비 관행을 일부 양성화하려는 취지인데, 학술대회 등록비부터 항공편(이코노미 등급)과 숙박비(1박 국내 20만 원·해외 35만 원 이내), 식비(1식 최대 10만 원, 1일 총 15만 원 이내), 현지교통비까지 적지 않은 자금을 한꺼번에 지급할 수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분기별로 공개하는 ‘해외 학술대회 참가 지원 현황’에 따르면 의사들은 해외 학술대회에 한 번 참가할 때마다 업체 측이 낸 지원금 수 백만 원을 받아간다. 이 때문에 의료기기협회가 신고·심의 절차를 운영하고 있으며, 의사들이 소속된 학회와 의료기기협회가 중간 창구 역할을 해서 학술대회 참가비를 사후 정산, 무기명 간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업체와 의료인이 직접 접촉해 불법적인 유착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입수한 국민권익위원회 공익신고 자료에는 세계 최대 의료기기 업체 중 한 곳인 애보트(Abbott)가 현행법을 무시한 채 의사들을 불법 지원하고, 의사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실상이 담겨 있다. 애보트는 2013년에도 이런 부당 영업 행위를 적발당해 이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런데 취재팀이 입수한 내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애보트 한국지사(이하 한국애보트)는 공정위 조사와 시정명령을 받던 바로 그 시기부터 최근까지도 법망을 피해 불법적인 로비를 계속해 왔다. 로비 대상은 주 영업 대상인 심장내과 분야 의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내부 이메일 기록과 전현직 임직원, 업계 관계자를 상대로 추가 확인한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애보트는 일본의 심혈관치료분야 학회 ‘Complex Catheter Therapeutics’(이하 CCT)와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 받으며 수 년 간 특정 심장내과 의사 그룹들을 위해 학술대회 세션을 마련해줬다.
2014년 3월, 한국애보트 직원과 일본 CCT 사무국 직원은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매년 10월경 일본 고베에서 열리는 CCT의 해외 학술대회와 관련된 업무 연락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업체와 학회 사무국 사이에 오갈 만한 내용이 아니다.
의료기기 업체인 애보트가 특정 의사를 대신해서, 이 의사가 참가할 세션을 마련해달라고 해외 학회 측과 프로그램을 사전 조율한 이메일 기록이다. 이 같은 이메일 기록과 CCT의 학술대회 프로그램북을 교차로 확인한 결과, 애보트가 특정 한국 의사들을 위해 수년 간 은밀히 마련해 온 일본 CCT 학술대회 세션은 일명 ‘코리아 세션’으로 불린다.
애보트와 CCT 사이 업무 연락에 등장하는 김모 교수는 주로 코리아 세션의 좌장으로 초청받았다. 김 교수는 대구가톨릭대 의료원 소속으로 현재 대한심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와 함께 코리아 세션의 연사로 참가한 인물들은 주로 대구·경상 지역 심장내과 의사들이다.
공정경쟁규약은 “사업자는 자신이 지원하는 학술대회의 주제, 진행방식, 참가자 및 관련 자료의 결정 등에 관여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기기 업체가 학술대회 개최를 지원할 때 프로그램의 구성에 관여하는 건 공정경쟁규약 위반이다. 또 비용 지원 대상 의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선별하는 것도 금지된 행위다. 업체의 지원금을 대신 받아 학회 측에 전달하는 의료기기산업협회도 공정경쟁규약에서 스스로 “학술대회 참가자 개인을 지정하여서는 안된다”고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접촉한 한 한국애보트 전 직원은 애보트가 학술대회 프로그램을 사전 조율하고, 참가 비용을 지원할 의사를 업체 영업에 유리한 인물로 선별하는 행위를 계속해 왔다고 밝혔다.
(회사에서) CCT 학회를 올해도 할 테니까 ‘일본 가고 싶어하는 선생님들 리스트를 올려라’ 이렇게 세일즈(팀)에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면 세일즈에서 그 김○○ 교수님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해서…"
이 전 직원의 증언은 뉴스타파가 입수한 자료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2015년 한국애보트 조모 상무와 직원이 주고 받은 이메일에는 ‘김○○ 교수 요청 리스트’라는 첨부파일이 확인된다. 이 명단에는 김 교수가 학술대회에 함께 데려 가려고 애보트 측에 미리 알려준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경상 지역 병원 의사 9명과, 대전 소재 의료기관 의사 1명의 이름이 나온다.
애보트는 이렇게 학술대회 참가비를 대줄 의사들을 미리 선별해서, 해외학회의 초청장을 받을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벌였다.
(참가 의사) 리스트를 주면 애보트 측이 (의사) 선생님들 이력서를 일본(학회)에 보내줘요. 그러면 (학회 측은) 그걸 바탕으로 (학술대회) 초청장을 애보트에 전달해요. 그래서 그 초청장을 (애보트가) 선생님들한테 다시 보내드리는 거죠.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 초청장을 갖고 심장학회에다 (학술대회 참가 지원) 신고를 하죠. 나 이렇게 초대 받았으니까 너네 나 지원해줘, 이렇게 얘기를 해요.
뉴스타파 취재팀은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심혈관중재학회 동계 국제 학술대회 현장에서 문제의 김 교수를 만났다. 취재팀은 일본 CCT 학술대회 프로그램 세션 내용과 참가 의사 명단을 한국애보트와 사전 조율한 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김 교수는 부인했다. 본인이 직접 “일본 CCT 학회와 프로그램을 논의했고, 한국애보트와는 연락한 적이 없다”는 취지다.
뉴스타파 입수 자료에 담긴 한국애보트 내부 상황은 김 교수의 해명과 달랐다. 김 교수와 일행이 일본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석 달 전인 2014년 7월 한국애보트 심혈관사업부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애보트 사장은 김 교수 등을 위한 일본 학술대회 세션을 들키지 않게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공식적으로는 김 교수가 직접 일본 학회 측과 논의한 것으로 하고, 한국애보트가 학술대회 프로그램과 참가 명단을 조율한 뒷사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한국애보트의 요청을 받고 학술대회 세션을 짜준 것으로 나타나 있는 일본 CCT 학회 사무국 측은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특별히 애보트의 한국분과 무언가 연락을 직접해서, 올해 2019년 CCT의 세션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는 현 시점에서 저희들은 아무것도 여쭤 본 것이 없다”며 불확실한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취재팀이 입수한 기록에 따르면 일본 CCT와 한국애보트는 사실상 한 팀처럼 움직였다. 최근까지도 특정 의사들을 위해 세션을 준비하면서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한 기록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CCT 학술대회(2018년 10월 25~27일)를 이틀 앞둔 10월 23일 애보트 직원들에게 전달된 한 이메일 자료를 보면, 일본 CCT 학회 측에서 학술대회 참가 의사들이 숙지해야 할 발표 준비 사항을 의사들이 아닌 애보트에 전달한 기록이 확인된다. 더욱이 한국애보트 측은 일본 학회의 공지사항을 “(의사) 선생님들께 거듭 전달 부탁 드리겠다”며 영업직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또 2014년 8월 한국애보트와 CCT 사무국 사이에 오간 이메일 기록을 보면, CCT 사무국은 김 교수가 좌장을 맡을 코리아 세션의 확정 일시 및 장소, 규모, 초청장 발행 여부 등을 애보트 김모 이사와 논의한다. 김 이사는 김 교수 등 참가자 6명의 영문 실명을 CCT 사무국에 전달하면서 “한국애보트가 대한심장학회를 통해 코리아 세션 참가자를 포함해 이 6명의 의사들의 비용을 지원할 것이다(Of course AV Korea will provide funding of these 6 MDs including Korea session participants to Korea Heart Congress)”라고 밝히기도 했다.
애보트의 로비 대상은 김 교수를 중심으로 한 대구 경상 지역 심장내과 의사들뿐만이 아니다. 국내 심혈관 분야 특정 학회의 고위 임원 등에게도 각별히 공을 들였다. 2014년 2월, 애보트 임직원 21명이 모인 온라인 메신저 대화 기록을 보면, 당시 김모 이사와 영업직원들은 특정 학회 임원진 의사들이 참가할 중국 학술대회 준비 사항을 최종 점검한다.
권○○, 김○○, 장○○, 안○○ 교수님 중국 CIT 학회 스케줄, 비행기 일정 앙코르(학회)와 협의 중입니다. 각자 담당하시는 분들도 체크해주시고, 그룹 저녁식사 사장님 동행하여 진행할 예정이오니 참고 바랍니다. 학회에서 차량이 제공 안 되면 저희가 해야겠지요. 세일즈팀에서 학회 동행을 누가 할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애보트 임직원들이 중국 학술대회 현장까지 동행해 깍듯하게 챙기려 한 의사 4명은 ‘앙코르’라고 불리는 국내 심혈관 치료 연구 학회의 최고위 임원진 4명과 일치한다.
취재팀은 이들 가운데 앙코르 학회의 회장인 가천대 길병원 안모 교수와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모 교수를 찾아가 의료기기 업체와 학술대회 참가 및 지원 여부를 사전 조율하는지 물었지만, 안 교수는 “잘 모르겠다”며 정확한 해명을 피했다. 또 장 교수는 “그러지 못할 것“이라며 (학술대회 참가 비용을 지원받을 때에는) 공정경쟁규약에 맞춰서 해야 된다”는 원칙적인 대답을 내놨다. 그러나 장 교수 역시 2014년 2월 애보트 임직원들의 대화에서 로비 대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당시는 공정경쟁규약이 시행된 지 이미 3년이 흐른 때다.
또 “잘 모르겠다”며 해명을 피한 앙코르 학회장 안 교수의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2015년 앙코르 사무국과 애보트 측이 주고 받은 이메일을 보면 앙코르 사무국은 중국 학술대회 참가 예정인 의사 6명의 비용 지원을 애보트에 요청하면서, 항공편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지까지 문의한 기록이 남아 있다. 앙코르 사무국 직원은 당시 문제의 이메일에서 “오늘 안○○ 교수님 뵙고 말씀을 전달 드렸다”, “안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이라고 언급하며 ‘스폰서 요청’이 안 교수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학회 임원인 의사가 학회 사무국을 중간다리 삼아 의료기기 업체에 공정경쟁규약에 금지하는 로비 행위를 종용한 셈이다.
공정경쟁규약에서는 업체가 의사에게 제공할 수 없는 ‘금품류’에 ‘교통, 숙박, 학회 등록 등의 편의’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해외 학술대회 참가와 지원 계획을 애보트 측과 미리 공유한 의사들은 공정경쟁규약이 금지한 각종 편의를 제공 받았다. 일부 의사들은 학술대회 참가 신청도 아예 영업직원에게 맡겼다. A4 용지 48페이지 분량의 2015년 애보트 임직원 21명이 참여한 온라인 대화 자료에는 한 영업직원이 “이○○ 교수님은 어제 저랑 직접 (학술대회 참가) 신청해서 제출까지 확인했습니다”라고 보고한 기록이 확인된다. 이같은 보고를 받은 애보트 조모 상무는 “하여튼 후원 문제 없게 해주세요”라는 당부 메시지를 남겼다.
취재팀 입수 자료 중에는 애보트 직원들이 주거래 여행사를 통해 의사들이 이용할 항공편과 호텔 예약을 대신해주고, 예약 내역을 취합한 엑셀 파일들도 존재한다. 이 파일들에는 해외 학술대회 참가비 지원을 미리 약정한 의사들의 이름 옆에 항공편명과 시간, 숙박 장소, 담당 영업직원, 담당 대리점 등이 함께 기록돼 있다. 또 영업직원들은 ‘직원별 케어 그룹(Care Group)’이라는 형태로 담당의사 2~3명을 나눠 맡고, 학술대회 현장에 동행해 비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애보트 임직원들이 의사들의 중국 비자 발급 심부름까지 해준 기록도 확인된다. 영업직원들이 담당 의사들에게 여권을 받아와 주거래 여행사에 비자 발급을 대신 의뢰하는 것이다. 한 전직 직원은 “애보트에 가면 (의사) 선생님 여권 사본 책이 따로 있다”며 “영업직원들이 각 지역 의사들 여권을 다 모아서 서울 사무실로 보내요. 그럼 서울에서 □□ 여행사에서 비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애보트와 거래한 기록이 파악되는 여행사 2곳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의료기기 업체 직원들이 의사들을 위해 항공편·숙박 예약, 비자 발급을 대신해 온 관행을 일부 인정했다.
나는 이제 학회에서 돈을 받고 그 중간에 업체들이 도와준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뭐 이번에 어디 가신다든지, 의사하고. 그러다가 비자는 이렇고 저렇고, 그러면 (우리가) ‘됩니다’ (말하고). 아 그럼 또 당연히 하겠지. 뭐 정보제공이라든지 뭐 여러 의미도 있고.
나이가 많은 분들은 못 하니까 (업체 직원이) 통화해서 저한테 몇 시 (비행기) 스케줄 물어보시고 하죠. (옆에서) 통화하는 게 보여요. ‘이거 몇 시, 몇 시 있다고 합니다’ 하고. … 이게 뭐 얘네(업체) 문제겠어요? (의사) 선생님들 인식이 바뀌어야죠. 하긴 나이 드신 분들이 (직접) 찾으시겠어요?
이처럼 권익위 공익신고 자료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애보트 임직원들은 2013년 불법적인 영업 행위가 적발된 뒤에도 꾸준히 자사 제품의 주요 고객인 전국의 심장내과 의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여 온 관행을 지속했다. 이사급 직원들은 물론,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사장까지 직원들에게 현행법과 업계 규약에 어긋나는 영업 행위를 직접 지시해 왔다는 것이 기록과 증언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은 한국애보트와 미국 본사에 동시에 질의서를 보내 입수된 자료의 내용과 취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애보트 본사는 지난 19일 “애보트의 교육 프로그램 및 학술대회 지원은 한국의 의료기기법과 공정경쟁규약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답변서를 보내왔다. 또 “만약 회사 규정을 위반할 경우, 해고를 포함한 즉각적인 징계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애보트에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제시하며 확인을 요청했지만, 보도 시점까지 별도의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지난 달 국민권익위가 공식 의결 절차를 거쳐 한국애보트 관련 공익신고 자료를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이첩한 사실을 확인했다. 신속한 수사와 감독당국의 엄정한 조치가 시작돼야 할 때다.
취재 : 홍우람, 김성수, 김지윤, 연다혜
촬영 : 김기철, 정형민, 최형석, 오준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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