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카이스트 공익신고자 동료는 왜 '해킹범'으로 몰렸나?
2019년 07월 03일 12시 00분
지난 1월 뉴스타파 보도(‘가짜출근에 대리출근’... 카이스트 병역특례 난맥상)로 한국과학기술원, 즉 카이스트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하고 있는 전문연구요원들의 복무관리가 엉망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취재진이 3개월간 단 세 차례 현장 취재로 확인한 복무위반 사례는 대리출석과 가짜출근 등 수십 건에 달했습니다. 그만큼 그동안 전문연구요원들의 복무위반이 일상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병무청은 이후 뉴스타파 보도를 바탕으로 특별점검을 벌여 2명을 형사 고발하고 24명에 대해 복무연장조치를 내리는 등 42건을 적발해 조치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병무청 자료를 보면 2019년 뉴스타파 보도로 적발한 42건을 제외하면 지난 5년간 적발 건수는 2018년 단 1건에 불과합니다.
이 1건도 공익신고자 A씨가 병무청에 신고해 적발된 것입니다. 공익신고자 A씨의 이야기는 뉴스타파에서 지난 6월 보도(카이스트 수석이 공익신고자가 되면서 생긴 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병무청은 매년 1회 이상 불시점검을 실시하고 있는데 병무청이 카이스트에서 최근 5년간 자체 적발한 복무위반 행위는 단 1건도 없습니다.
이 통계는 내부구성원의 공익신고나 언론의 보도가 복무위반행위를 바로 잡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만약 공익신고나 언론보도가 없었다면 전문연구요원들의 복무위반행위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5일 국민권익위는 공익신고자 A씨가 요청한 신분보호조치 요구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A씨의 신고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른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고 부패행위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부패방지법’)에 따른 부패행위 신고도 아니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는 284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서만 공익신고를 인정하고 있는데 병역법 위반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며 전문연구요원은 공직자가 아니므로 부패방지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카이스트 전문연구요원들의 복무 위반이 사실로 보여지지만 학교직원들이 이를 은폐함으로써 해당직원이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인식이나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부패방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공익신고자 A씨는 신분보호조치 대상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권익위의 이런 결정이 나오자 국내의 대표적인 공익신고자 지원 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은 성명을 내고 권익위의 이번 결정이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병역법에는 전문연구요원이 8일 이상 무단결근할 경우 편입을 취소하고 현역입대하도록 돼 있습니다. 또 3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중대한 병역법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익위는 이런 중대한 범법행위를 위반하는 것을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리출석’ 등의 행위가 도덕적 해이에 불과할 뿐 부패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호루라기 재단은 “권익위가 자의적인 법해석을 내리고 있다”며 “부패행위에 대해 얼마나 관대하게 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공익신고자 A씨의 부모와 동료에게 가해진 학과 교수들의 ‘신고 취하 압박’과 ‘실험실 출입 통제’ 조치는 명백한 불이익조치로 봐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은 권익위를 비판했습니다. A씨가 공익신고를 위해 다른 학생의 연구자료와 복무자료를 열람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빌미로 학생에게 가해진 학교측의 불이익 조치를 정당하다고 권익위가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호루라기 재단은 “권익위가 공익제보자를 탄압하는데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사업자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데 이르러서는 실로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며 “권익위의 존재 의의를 몰각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결정”이라고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공익신고자 A씨는 지난 1월 권익위에 부패방지법 위반 신고를 했습니다. 4월에는 신분보호조치 요청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권익위의 결정이 나오는데 무려 각각 8개월과 4개월이 걸렸습니다.
특히 신고자 A씨는 아버지와 동료가 교수들로부터 협박성 발언을 듣고 난 뒤, 그리고 연구실 PC를 압수당하고 실험실 출입을 금지당하고 난 뒤 절박한 심정으로 권익위에 신분보호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권익위 조사관과의 첫 대면조사가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두어달이 더 지난 다음에 나온 결정은 보호조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민권익위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권익위의 홍보 문구가 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권익위의 결정을 보면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병역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권익위에 신고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연구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 사회복무요원 등 병역특례의 복무위반에 대해선 공익신고 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신고해봤자 신고한 사람만 손해라는 것입니다. 국민의 4대 의무라는 병역의 의무가 아무리 부실하게 이뤄지고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권익위에 신고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권익위는 복무위반을 단지 ‘도덕적 해이’로 해석하고 있고 복무관리 책임자들의 부실한 관리를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익신고자 A씨는 권익위 신고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습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기 힘든 일반 공익신고자라면 더더욱 권익위에 신고할 지 여부를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공익신고자법이 인정하는 공익신고의 대상이 너무 좁아서 법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 부터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개정안도 여러 건이 국회에 상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법 개정 이전에 권익위가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민들의 부패신고를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게 최선인지 되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취재:최기훈
그래픽:이도현
취재 | 최기훈 |
그래픽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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