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이대론 막을 수 없다

2024년 07월 29일 10시 00분

참여정부 시절 신행정수도 건설과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추진한 지 20년이 됐습니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2004년 10월)으로 무산됐지만,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가 만들어졌고 혁신도시가 선정됐습니다. 서울에 있던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했습니다. 균형발전특별회계가 생겨 지방에 대한 예산지원이 강화됐습니다. 당시 5조 원이던 균형발전특별회계 규모는 올해 13조 원 규모로 늘어났습니다.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수도권 집중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더 심화했습니다. 인구 과반과 취업자 과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72%, 경제성장률의 70%를 수도권이 담당합니다. 수도권 집중은 극심한 일자리 경쟁, 부동산 가격 폭등을 낳았고 세계 최저 출산율, 지방소멸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균형발전 정책을 통해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합니다. 기회발전특구, 지방소멸대응기금 같은 사업이 수도권 집중 완화 정책의 핵심입니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수도권 집중의 흐름을 되돌려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요? 뉴스타파가 점검했습니다. <편집자 주>

논산 황산대교 야간조명과 전남 화순군 음악분수

금강을 가로질러 충남 논산과 부여를 연결하는 황산대교에는 해가 지면 알록달록 조명이 들어온다. 지난해 가을 논산시가 금강변의 야경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며 15억 원을 들여 야간조명을 설치한 덕분이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대교 야경. 야간조명 설치에 지방소멸대응기금 15억 원이 투입됐다.
전남 화순군 화순천변 꽃강길 한켠에는 지난해 가을 음악분수가 설치됐다. 음악 소리에 맞춰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화려한 레이저 조명 쇼가 저녁마다 펼쳐진다. 이 음악분수를 만드는 데 59억 원이 들었다.
전남 화순군 꽃강길 음악분수. 지방소멸대응기금 59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황산대교 야간조명과 화순군 음악분수의 공통점은 모두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지방소멸대응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정부가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22년부터 31년까지 10년 동안 매년 1조 원씩 89개 인구감소지역을 포함한 10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돈이다.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또는 인구소멸로 생기는 지역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돈으로 지자체마다 한 해에 적게는 60억여 원, 많게는 110억여 원을 받아 쓸 수 있다.
뉴스타파가 최근 3년 치(2022년~2024년) 기금 사용내역을 국회로부터 입수해 분석해 보니, 지방소멸대응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역 자치단체장의 공약사업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마다 1조원 지원…옆길로 새는 지방소멸대응기금 곳곳

인구 6만 명의 경남 창녕군은 현재 군내에 있는 2개의 파크골프장 외에 추가로 4개의 파크골프장을 더 만들 계획이다. 파크골프는 경기 규칙은 골프와 비슷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어서 노년층을 중심으로 이용자가 늘고 있는 스포츠다. 그런데 새로 만드는 4곳 가운데 창녕군 대합면에 만들고 있는 27홀짜리 파크골프장에는 지방소멸대응기금 45억 원이 들어간다. 
경남 창녕군의 한 파크골프장. 창녕군 대합면에도 이런 파크골프장이 들어설 예정인데 지방소멸대응기금 45억 원이 투입된다.
창녕군 담당자는 “군 외 지역의 동호인들을 유치하면 경제적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창녕군 주변 대구 달성군과 함안군, 창원시에도 이미 각각 2~3개의 파크골프장이 성업 중이고, 그 숫자도 계속 늘고 있다.
충남 논산시는 ‘육군 병장의 길’ 조성 사업에 올해 지방소멸대응기금 20억 원을 사용한다. 논산IC에서 신병훈련소까지의 약 5km 구간 곳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논산시의 대표농산물 브랜드인 육군 병장 조형물을 세우는 가로수길 조성 사업이다.
충남 논산시의 농산물브랜드 '육군 병장' 캐릭터 조형물. 
이렇게 자체 군 예산이나 시 예산으로 해도 될 사업에 지방소멸대응기금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금 심사를 맡았던 한 심사위원은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지자체의 단체장들이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자신들의 공약사업을 기금 사업으로 포장해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거치고 7월에 (심사를) 했는데 서류 대부분이 ‘지자체장 관심 사항 아니냐, 이거 공약 사항에 있었던 거 아니냐’라는 생각이 드는 사업들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사실 어떻게 보면 지자체 단체장의 성과가 금방금방 드러나는 거잖아요.

임성규 / 전 지방소멸대응기금 심사위원, 전 주택관리공단 사장
기금 운영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기금 취지에 맞지 않는 사업은 심사과정에서 걸러내겠다는 방침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오는 31년까지 앞으로 매년 1조씩, 7년이라는 기간이 남아있는 사업이다. 7월부터 내년도 기금에 대한 심사를 시작했다.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기초자치단체의 고군분투 무력화하는 수도권 집중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낸 지자체들도 있다. 문제는 지자체 노력만으로 지방소멸의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데 있다. 
전남 화순군이 '청년 만 원 아파트' 임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화순읍내의 부영아파트 전경.
전남 화순군은 전국적인 히트상품인 ‘청년 만 원 임대아파트’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공실로 남아도는 20평짜리 공공임대아파트의 임대료를 군이 부담하고 청년들에게 만 원에 재임대해주는 사업이다. 1년에 100호씩 사업 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올해 이 사업에 지방소멸대응기금 33억 원을 사용했다. 
이 사업으로 청년들은 주거비를 아낄 수 있어 좋고, 지역에선 청년들을 붙잡아 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남 강진군은 지난 22년 10월부터 신생아가 태어나면 육아수당 6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만 7세까지 지급하는데 출생률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어 지역 출산율이 1.7까지 올랐다. 강진군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했던 이 정책은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남 강진군의 2022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월별 출생아 수  
그렇다면 이 두 지자체의 인구는 늘었을까? 
안타깝게도 인구 감소의 흐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줄어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청년인구라는 사실에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전남 화순군의 인구수 변화. '만 원 아파트' 제도 시행 후에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남 강진군의 출생아는 육아수당 시행 이후 크게 늘었지만 인구 감소세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점점 빨라지는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기금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전북 남원시는 갈수록 빨라지는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기 위해 지역소멸대응기금 150억 원을 들여 공립학원을 세울 예정이다. 중·고등학생 250명을 선발해 방과 후에 서울 유명 강사를 초빙해 무상으로 학원 수업을 받게 해준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를 마치고 난 뒤 인근 전주나 광주 등 큰 도시로 떠나는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마련한 특단의 대책이다. 
전북 남원시가 지방소멸대응기금 150억 원을 들여 세울 예정인 공립학원의 조감도 모습.
하지만 이미 2003년부터 공립학원을 운영했던 인근 순창군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순창군의 경우 공립학원을 만든 이후 10대 청소년들의 유출을 어느 정도 유예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2~30대 청년의 유출을 막지는 못했다.
대한민국의 수도권 집중도는 이미 개별 기초자치단체가 대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수도권 집중의 상징, 100만 인구 ‘화성시’

경기도 화성시는 최근 인구 100만 명을 돌파했다. 다른 비수도권 지역에서 지방소멸을 걱정할 때 화성시는 최근 10년 사이 인구 40만 명이 늘었다.
경기도 화성시 전경.
삼성전자와 현대, 기아차를 포함해 반도체와 바이오, 제약 등 첨단 산업 분야에만 4천8백여 개 기업이 화성시에 입주해 있다. 일자리가 많으니 청년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다시 기업들이 들어서고 주택단지가 생겨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식서비스산업은 인적 자원의 집적이 필요한 산업인데, 우리의 산업구조가 기존 제조업에서 지식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고급 인적자원이 몰려있는 수도권의 집중이 더욱 가속화됐다”고 설명한다.
인구가 밀집하다 보니 GTX 같은 광역교통망사업에 천문학적인 자금(134조 원)을 투입해 교통망을 더욱 확충한다. 지방소멸 대응에 투입하는 10년 10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큰 금액이 수도권에 다시 투자된다.
부산과 대구, 광주 같은 비수도권 대도시도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 6만 명의 화순군이나 3만 명의 강진군에서 아무리 좋은 지방소멸대책을 시행한다 해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디에, 어떻게 수도권의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수도권 대항마 못 키우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말한다. 그 핵심으로 내놓고 있는 기회발전특구와 교육특구 같은 사업을 보면, 지역 어디에서나 수도권 못지않은 일자리와 교육, 문화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서 기회발전특구에 기업을 유치하면 상속세와 법인세 감면 등 세제혜택을 주는 사업이 기회발전특구 사업이다. 윤석열 정부가 1차로 선정한 기회발전특구를 보면, 부산과 대구, 대전 같은 광역시뿐 아니라 포항과 상주, 구미, 안동, 전주, 익산, 김제, 목포, 순천, 여수, 경남 고성 등 전국의 중소도시가 골고루 분포돼 있다.
정부가 1차 선정한 기회발전특구 현황.
수십억 원의 지방교부세를 지원하는 교육발전특구에도 6개 광역지자체 외에 43개 기초자치단체가 골고루 선정됐다. 얼핏 보면 지역별로 균형발전할 수 있도록 공평하게 배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도권 집중 완화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지역소멸대응기금을 잘 활용해 쓴 기초지자체들이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인구 유출을 막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박진 KDI 국제정책개발원 교수는 “지식서비스 산업은 대도시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수도권과 맞설 수 있는 대도시를 지역 광역권 안에 키우지 못하고 여러 도시를 균형감 있게 키우려고 하면 대도시 집적효과가 사라진다”면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을 막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연구 결과도 곱씹어볼 만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 비수도권 중소도시 3곳의 생산율을 각각 1%씩 올렸을 때 전국적인 GDP 상승효과는 비수도권 대도시의 생산율을 1% 올렸을 때가 가장 컸다는 것이다.
정민수 한국은행 지역연구지원팀장은 “중소도시에는 재정지출을 많이 해도 수도권 집중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조금씩 여러 곳에 지원하기보다는 집적의 효과가 생길 수 있도록 소수 거점도시에 집중해야 좋은 일자리도 생기고 서울이나 수도권 말고도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면 윤석열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회발전특구 같은 사업도,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도 지금처럼 모든 중소도시가 서로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인구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식이 되어서는 성과를 보기 힘들다.
부산이나 대구, 대전, 광주 같은 지역 거점도시조차 수도권에 청년들을 빼앗기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  
제작진
취재최기훈 김새봄 조원일
촬영이상찬 오준식 신영철
편집박서영
그래픽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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