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공생법 Ⅱ] ③의사들의 속내를 읽다: '로비 노하우' 파일

2020년 06월 17일 19시 30분

뉴스타파 백신 프로젝트 <의, 약, 돈>
검은 공생법 Ⅱ: 혈관과 로비

① 물어보셨나요: 누구 돈 받고 연구하세요?
② 아주대병원 '스텐트 대리점'의 진짜 주인
③ 의사들의 속내를 읽다: '로비 노하우' 파일

뉴스타파는 심장혈관 의료기기 제조업체 ‘제노스’(Genoss)사의 영업 실태를 취재하면서 확인한 ‘로비 노하우 파일’의 일부를 공개한다. 의료계와 의료기기업계에 다시 경각심을 부르기 위해서다. 취재팀이 입수한 문건에는 의료인 수십 명의 실명이 적혀 있다. 그들의 태도와 성향, 원내 영향력에 관한 정보까지 생생히 담고 있다. 영업사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의료진을 꾸준히 만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이다.

영업사원들의 눈으로 본 몇몇 의사들은 향응·금품, 로비 관행에 절어 있었다. 회사는 그들을 잡으려 맞춤형 영업 전략을 짜냈다. 뉴스타파는 ‘로비 노하우 파일’ 가운데 의료관계법령과 공정거래법, 의료기기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에 근거해 불법 리베이트 성격이 짙은 내용만 선별해 정리했다.

‘그 병원, 그 의사’는 대리점이 공략하라

제노스는 관상동맥 스텐트, 카테터 매출을 늘리기 위해 주요 거래 병원에서 이른바 “공략 교수”를 고르고 “공략 방향”을 계획했다. 입수한 문건에는 “사용분(을) 지원”한다는 구상이 적혀 있다. 이는 의사들에게 자사 의료기기 사용분, 즉 사용량만큼 모종의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로비의 창구로 병원별 전담 대리점을 활용했다. 쉽게 말해, 대리점이 로비 비용을 대도록 한 것이다. 의국 회식, 골프 모임을 추진한 계획도 확인된다.

▲ 제노스의 영업계획 관련 문서를 재구성했다. 병원과 의사, 대리점은 익명 처리했다.

‘무언가’를 받으면 의사들 생각이 달라진다

영업사원들은 담당병원을 드나들며 수집한 정보를 인수인계 문서로 남겼다. 이 문서 내용을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다. ‘금품·향응 로비는 의사들의 선택과 의료행위에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 G대학병원 L 교수

- ‘용건만 간단히’를 강조하심, 무언가를 전달받을 때도 마찬가지.
- 무언가 전달 시에 외래를 주로 이용, 거절하지 않으시며 그에 대한 피드백은 확실.
- 대리점과 모든 이야기가 되었으며 무언가 전달 시 대리점이 구입, 본사에서 전달하기로.
-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시술 참관을 하지 않아도 꾸준한 사용 유도 가능.

● G대학 S병원 H 교수
- 술을 매우 매우 좋아하며 영업사원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편.
- 해외 학회를 나갈 시에도 많은 지원을 요청하신 편. 피드백은 확실.
- 시기가 되면 학회 지원 또는 어떠한 이벤트로 부르며 대부분 술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 말하면 모두 들어줌.
- 현재 벌룬(기자 주: 좁아진 혈관을 확장하는 풍선형 의료기기) 20~30개 내외로 사용중이며 종종 제품 퀄리티가 떨어져 불만을 제기하시나 그래도 사용하는 편.

● G대학 S병원 M 교수
- 주니어이나 시술량이 제일 많음. 매우 조용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나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돌변,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부분 언급하기도 함.

● 부천 S대병원 C 교수
- 처남이 대리점을 하는 탓에 밀어주고 있는 현황. 병원에서 가장 시술 건수가 많음.

● E대학병원 P 교수
- 과거 C 대리점의 B 사장과 백마진(기자 주: back margin, 매출의 일정 비율을 리베이트로 전달하는 수법) 관계가 있었으며 해당 업체 벌룬 사용.

● 서울 S병원 L 교수
- 벌룬의 경우 월 10~15개 사용 중이며 E 대리점을 통해 영업, L 교수만 사용.
- 벌룬 사용분에 대해 E 대리점에서 (매출의) 일정 부분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
- DES(약물방출형 스텐트)의 경우 교수 개인적인 친분으로 별도 대리점 지정.

● K대학병원 P 교수
- P 교수 주관 학회 후원 지속적으로 하여 줄 것. 부스, 홈페이지 광고
- 최근 덴티움(기자 주: 제노스 대표이사가 최대주주인 의료기기 업체. 제노스와 특수관계 회사) 주식 매매하였고, 향후 제노스 주식 구매하고 싶어 함.

● 경기 I병원 J 교수
- 원래 제노스 스텐트는 P 교수만 사용. 최근 명절 선물 전달 이후 J 교수 사용량이 생김.


임상연구에 끌어들이면 우리 제품을 쓴다

제노스는 의사들과 스텐트 임상연구 계약을 맺고 수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연구비를 대줬다. 영업사원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 목적은 뚜렷해 보인다.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예 연구를 조기 종결하는 방안도 고려하자고 한다. 업계 공정경쟁규약은 매출 증대 목적, 즉 리베이트성 임상연구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른 셈이다.

● 서울 S병원 C 교수
- 스텐트 사용량 활성화를 위해서는 모임 주도, 지원 등의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학술적 성과, 연구 진행 요청이 효과 있을 것으로 판단.

● C대학병원 K 교수
- 제노스 연구자 모임이나 기타 연구진행 참여를 유도하고, 향후 O 교수를 동시 공략해 스텐트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 목적.

● 경기 S병원 K 과장
- 신규 연구 제안은 관계 유지, 연구업적 외 영업 이점을 갖기 힘들고 시술자 또한 연구진행에 대한 동기 부여 결여.
- 임상연구 진행 현재까지 100명 중 29명 등록, K 과장 영업을 통해 50 증례 조기종료 시키고, 다른 흥미로운 신규 연구 제안함으로써 지속적 사용 유도.

● 경기 I병원 J 교수, P 교수
- J 교수가 책임연구자이지만 P 교수가 제노스 연구 진행. 연구 진행에 따른 진행비가 J 교수로부터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량 유도를 위해 E 대리점에서 사용량에 따른 일정 부분 별도 지원.

로비가 통하지 않는 의사들

어떤 의사들은 로비, 리베이트성 영업 시도를 피하기도 했다. 영업사원들이 ‘공략’하기 까다로운 의사들이다. 영업사원들은 이런 의사들의 모습도 기록했다.

● G대학 S병원 J교수
- 심혈관중재학회에 차량 픽업 경험이 있음. 하지만 이렇게 영업사원과 근접하게 이벤트를 형성하는 것(리베이트 및 모든 것)을 선호하는 것 같지 않았음.

● D대학병원 N 교수
- 개인적인 연락을 통해 회식 지원(송년회)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음. 업체 지원을 통한 회식 전례가 없고 부정적 인식이 있기 때문에 지연.

의료계 수백명에게 와인 선물…금지된 금품 로비 여전

설명절이 다가오면 제노스가 눈여겨본 의사들에게 와인이 배송된다. 제노스는 매년 의료 관계자 670여 명의 명단을 뽑아 도매가 5~15만 원 상당의 와인을 선물했다. 영업상 중요도에 따라 ‘A급’ 의사와 ‘B급’ 의사가 받는 와인이 달랐다.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복수의 전직 사원들은 ‘병원 외래진료실 등을 찾아가 직접 와인을 선물하거나, 택배로 배송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와인 선물을 기피한 의료인들도 있다. 전직 사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국립대병원 교수, 서울 G대학 S병원 교수 등이 와인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당연히 고가 와인 선물 같은 금품 로비는 의료기기 업계 공정경쟁규약에서도 금지하는 불공정 영업 행위다.

제작진
취재홍우람 김지윤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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