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공생법 Ⅱ] ①물어보셨나요: 누구 돈 받고 연구하세요?

2020년 06월 17일 19시 30분

뉴스타파 백신 프로젝트 <의, 약, 돈>
검은 공생법 Ⅱ: 혈관과 로비

① 물어보셨나요: 누구 돈 받고 연구하세요?
② 아주대병원 '스텐트 대리점'의 진짜 주인
③ 의사들의 속내를 읽다: '로비 노하우' 파일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업체가 의료인에게 제공한 금품과 향응은 고질병과 같았다. 결국 지난 2010년 일종의 납품 사례인 ‘리베이트’를 주는 업체 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의료인까지 처벌을 하는 이른바 ‘리베이트 쌍벌제'가 생겼다. 이후 관련 업계는 허용 가능한 금전적 지원의 기준을 정해 자율적으로 업계 규약을 제정·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규약이 제정되자 노골적인 리베이트는 점점 음성화 되고 수법 또한 고도화 돼 왔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 2018년부터 의료기기 업계의 리베이트 비리를 추적하고 있다. 이번에는 국내 관상동맥스텐트 제조업체 제노스의 사례를 통해 의료기기 업계의 고도화된 리베이트 수법을 파헤쳤다.

▲ 스텐트는 노폐물이 쌓여서 좁아진 혈관이나 장기를 넓혀 혈류가 정상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돕는 인체이식형 의료기기이다. 인체에 주는 영향이 큰 만큼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 위해성이 높아 4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연 매출이 270억 원 가량인 의료기기 업체 제노스는 의료기기 중에서도 위해성이 가장 높은 관상동맥 스텐트와 풍선 카테터, 커넥터와 같은 제품을 만든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 영업사원들은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은 자사 제품 임상시험을 병원에 의뢰하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수법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제노스가 이렇게 임상시험을 진행한 곳이 전국 주요 병원 40곳에 이른다. 제노스는 병원 측에 자사 제품을 시술받는 임상시험 참여 환자 1인당 40만~50만 원의 연구비를 지급했다.

임상시험, 고도화된 리베이트·영업수단…연구비 지급 구조도 문제

보통 식약처 허가 뒤 병원에서 사용되는 의료기기의 임상시험은 한 회사 제품만 하지 않고 여러 회사의 동종 제품을 비교하는 연구가 주를 이룬다. 이와 달리 제노스는 병원에 자사 스텐트만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의뢰했다. 전국 주요 병원 심장질환 전문의에게 일정량의 자사 스텐트를 환자들에게 시술하고, 경과를 관찰해 달라고 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자문을 구한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전문의와 의료기기 연구자는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라도 허가 후 임상시험을 진행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기기를 이식받은 환자들의 경과를 관찰하면서 개발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 했던 이상사례와 개선할 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국내 업체에게는 이 같은 관찰연구 외에는 허가 후 연구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 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는 자금력도 풍부하고 환자도 많아서 신뢰도 높은 임상시험을 할 수 있지만 국내 업체는 제품 효과나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단순한 관찰연구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 원칙을 지키며 제대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국내에선 매년 6만 명 가량이 관상동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데, 지난해에만 건강보험과 환자 주머니에서 1100억 원이 넘는 돈이 나갔다.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3사가 장악하고 있는 관상동맥스텐트 시장에서 국내 후발주자인 제노스가 판로를 개척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 그래서 제노스는 의료기기 국산화를 추진하던 보건복지부의 ‘국산 유망 의료기기 성능 개선 지원’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제노스는 전국 주요 병원의 심장질환 전문의에게 임상시험을 의뢰하고 자사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수법으로 연구를 판촉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의료기기 제조사는 자사 제품이 이미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해당 제품의 효과나 안전성을 추적 관찰하는 임상시험을 의료인에게 의뢰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업체는 연구비를 해당 의사가 소속된 병원을 통해 의사에게 전달한다.

병원 측이 임상시험에 참여시키는 환자를 늘릴수록 제노스에서 받는 연구비 규모도 커진다. 제노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의료진은 환자 1명당 최대 50만 원의 연구비를 받았다. 모집 환자 수에 따라 병원 한 곳이 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받은 연구비 총액은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까지 됐다.

연구비는 연구 진행 단계별로 지급됐다. 예를 들어 제노스의 의뢰로 지난 2016년부터 ‘관상동맥 질환 환자에서 제노스 약물방출 스텐트의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를 위한 전향적 다기관 관찰연구’를 진행한 전국 31개 대학병원은 참여 환자 25명을 모집할 때마다 1천만 원씩 업체의 연구비를 받았다. 환자 1명당 40만 원이다.

▲ 임상시험을 의뢰한 의료기기 제조사는 한 번에 연구비를 전달하지 않는다. 임상시험 참가 환자가 특정 목표치를 달성하는 시점 마다 일정 금액씩 지급한다.

특정 기간 안에 제노스 스텐트 이식 환자를 일정 규모로 모아야 하는 임상시험이므로 일종의 약정 계약인 셈이다. 특히 연구비가 한 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모집 환자 수가 늘어날 수록 연구비도 늘어나기 때문에 의료진으로서는 제노스 스텐트를 가급적 많이 늘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노스가 의뢰한 대다수 임상시험의 연구비 중 80% 가량은 의료진과 연구자의 인건비, 연구수당, 연구활동비에 책정됐다.

▲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내부 자료에 따르면 연구비 총액 중 참여 의료인과 연구진 인건비 조로 책정한 금액은 병원마다 다양했다.

임상시험의 적절성, 전적으로 병원 해석에 달려있어

제노스 스텐트처럼 이미 식약처 허가 받은 제품은 식약처의 추가 승인 없이 각 병원 임상시험윤리심의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의 승인만 받으면 진행할 수 있다. IRB는 비의료인 등 병원 외부 인사가 참여하도록 하고 있지만 사실상 병원 내부 의료인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내부 문서에 따르면 제노스가 신청한 임상시험 계획서를 그대로 승인해준 병원 IRB도 있고, 특정 스텐트만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리베이트성이 짙다고 계획서를 반려한 병원도 있었다.

2019년 3월 분당서울대병원 IRB는 제노스 임상시험 계획서 심의 의견서에서 “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스텐트들 중 연구자가 특정 스텐트를 선택해야만 하는 취약한 환경을 우려한다"며 “연구자가 리베이트 등의 이슈에서 독립적으로 어떻게 연구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임상시험 의뢰를 받은 교수 측은 “환자의 질환 및 병변 상태에 따라 시술의가 시술 시 독립적으로 스텐트를 선택한다"며 “어떤 시술자도 다른 시술자에게 스텐트 사용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본인의 임상 지식 및 경험에 의해 선택한다"고 답했다. 이 병원 IRB는 최종 심의 결과서에서 “리베이트성 이슈가 우려돼 본 과제는 반려로 결정함이 적절하다"며 제노스 연구를 반려했다.

그러나 이처럼 반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노스가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병원 40곳에 의뢰한 임상시험 72건 중 반려한 사례는 분당서울대병원 한 건에 불과하다.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전문의는 의료진 입장에서 이 같은 임상시험은 리베이트로서의 효용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구비 총액에서 의료진 인건비는 보통 30~40% 선이라며, 그 돈을 연구에 참여하는 여러 의료진과 나누다 보면 실제 한 명이 손에 쥐는 돈은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리베이트라 하기엔 너무도 적은 이 연구비를 위해 시험에 필요한 번거로운 추가 업무를 감내할 의사는 별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비가 집행되는 사정은 병원마다 다르다. 취재진이 확인한 한 대형 사립대학병원의 연구비 내역서에는 의료진 인건비로만 68%가 책정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이런 유명 대형병원은 여러 스텐트 업체의 임상시험 여러 건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시술비 외에 별도로 들어오는 임상시험 연구비가 제품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긴 어렵다.

리베이트성 임상연구에 의료보험 재정이 샌다

의료기기 업체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기관 임상시험 하나를 성사시키면 연구가 진행되는 몇 년 동안은 안정적인 매출을 누릴 수 있다.

취재진이 입수한 제노스 영업사원 ‘로비 노하우 파일’을 통해서도 업계가 임상시험을 영업 수단으로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노스 연구자 모임이나 기타 연구진행 참여를 유도하고, 향후 O 교수를 동시 공략해 스텐트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 목적.”
- 중앙대병원 담당 영업사원

“(병원 내) 연구소 재정 문제로 인해 DES 시술자에게 연구비 전달이 안 되고 있는 상황. 시술자 또한 연구 진행에 대한 동기부여 결여.”
- 부천세종병원 담당 영업사원

더 큰 문제는 의료기기 제조사 의뢰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인데도 업체가 스텐트를 무상으로 환자에게 제공하기는 커녕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 요양급여 적용 신청을 해서 돈을 받아간다는 점이다. 관상동맥스텐트는 건강보험 재정 지원을 받는 의료기기로 2020년 6월 현재 시술 1건 당 최대 197만5940원까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 제노스는 자사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의뢰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스텐트 비용은 부담하지 않았다. 이 업체는 국민건강보험에 스텐트 값을 청구해 급여액을 받아갔다.

제노스 내부 파일에 따르면 영업 담당 직원들은 요양급여 적용을 받는 임상시험을 설계하기 위해 사전에 전국 십여 개 병원 IRB에 문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의견 취합 결과, 제노스는 업체가 의뢰자가 되는 ‘의뢰자 주도 연구’가 아닌 의료인이 의뢰자가 되는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로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립보건연구원 임상연구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업체가 의뢰해서 진행하는 임상시험 중 희귀난치성 질환 등 공익적 목적이 뚜렷한 연구인 경우에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 주도 연구는 공익적 목적으로 진행한다면 쉽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지난 2019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반려됐던 제노스 임상시험은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으로 심사 의뢰서가 제출됐으나 이 병원 IRB는 “특정 업체 스텐트만 사용하기 때문에 업체가 의뢰하는 임상시험으로 분류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연구계획서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임상시험으로 의사, 병원, 업체는 이득보는데…환자만 몰라

환자의 의무기록을 임상시험에 활용한 덕에 업체와 의사, 병원은 이득을 보지만 환자는 정작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제노스 스텐트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한 유명 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환자에게 배포한 연구 동의 설명서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제조사에서 연구비를 받지만 오로지 학술적인 목적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체가 연구비를 제공했다는 정보를 제외하고는 연구비가 어떻게 집행되는지, 연구비에서 의사나 병원이 각각 얼마의 수익을 가져가는지 등의 내용은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

일부 업체에서는 이 같은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에게 정기 검진비와 교통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노스 연구를 수행한 교수들이 환자에게 배포한 동의서를 보면 이 회사는 임상시험 참여 환자에게 이런 지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의료기기 업계가 제정·운영하는 공정경쟁규약 제15조에 따르면 이미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의료기기로 시판 후 임상시험을 하더라도 매출 증대 목적으로는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식약처에서 승인을 받고 진행하는 ‘시판 후 조사’(PMS)에 대한 연구비는 시술 건당 최고 5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고, 희귀질환 등에 의해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경우에만 최대 30만 원까지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제노스가 대거 진행한 임상시험과 같이 시판 후 조사 외 임상활동에 집행되는 연구비에 대해서는 세부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업체 지원 임상시험 연구, 영업 수단 변질...해외에서도 논란

영업 수단으로 변질된 임상시험 논란은 해외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 1998년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은 연구를 의뢰하는 제약·의료기기 업체가 의료인과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선물(gift)이 연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를 소개했다. 설문에 응답한 의료인과 연구자 2천여 명 가운데 43%가 연구와 관련한 선물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66%가 선물이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2000년 출간된 또 다른 논문은 임상시험과 관련해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지원 행위에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 발생한다고 적었다.

국내에서도 임상시험 연구비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신동아는 한 대학병원 IRB에서 의료기기 임상시험 심의를 담당하던 의료인들로부터 임상시험이 리베이트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아 기사를 썼다. 스텐트 제조사가 주는 연구비가 의사들에게 사실상 리베이트로 전달된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업계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해 공정경쟁규약상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입장을 내기가 곤란하지만 나중에라도 고칠 부분이 드러나면 고치겠다고 알려왔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대외협력부장은 “보도가 계획돼 있는 부분은 저희가 모니터링하고, 협회나 산학계에 제안 사항이 있으면 저희가 홍보나 교육을 통해서 개선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내 연구비 감시체계 마련, 연구결과 공개해야

대학 내 국가 연구비 관리체계와 같이 병원에도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연구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있게 감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학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연구자는 “보통 정부에서 과제형식으로 어떤 연구가 진행되면 사전이든 진행 중에든 사후든 분명 감사라는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의료인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임상 관련 연구는 감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 의료기기 업계에서는 제노스 사례와 같이 업체가 의사 개인에게 의뢰하는 임상시험은 연구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감시할 장치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상시험을 매개로 의사나 병원이 챙기는 금전적 이득이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연구 결과도 ‘깜깜이’인 것을 마찬가지다. 제노스가 2016년부터 진행한 ‘관상동맥 질환 환자에서 제노스 약물방출 스텐트의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를 위한 전향적 다기관 관찰연구’도 결과가 공개돼 있지 않다.

식약처 승인 없이 각 병원 IRB 승인만으로 진행되는 임상연구 현황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을 등록하는 국립보건연구원 임상연구정보서비스 사이트에도 검색되는 관상동맥스텐트 관련 연구는 24건에 불과했다. 이 중 지금까지 제노스가 추진한 임상시험은 한 건 밖에 등록돼 있지 않다.

제작진
취재홍우람 김지윤
촬영오준식
연출박종화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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