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피즘, 협상 테이블 위에 멀리건은 없다
2024년 11월 15일 16시 00분
지난달 27일, 정부는 전세난을 해결하겠다며 ‘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후속조치로 이뤄진 이번 방안에는 이른바 ‘고액 전세’에 대한 정부의 보증 지원을 제한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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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설정한 ‘고액 전세’의 기준은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4억 원, 지방의 경우 2억 원이다. 전세금이 이 금액을 넘으면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서가 발급되지 않는다. 지난해 제한 기준을 논의할 때만 해도 상한액이 6억 원 선에서 논의됐지만 결국 훨씬 낮게 책정된 것이다.
연 3.3%의 낮은 이율인 국민주택기금의 전세 지원 자금도 보증금 3억원 이하로 제한된다. 전세금 3억원 이상이 대출 불이익을 받을 만큼 고액 전세인가에 대한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 이세훈 과장은 이러한 결정이 전국의 전세 평균 가격을 조사해보고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정부의 설명과는 달라 보인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지난달 27일 전세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은평, 마포, 강남구 지역의 중개업소 십여 군데를 찾았다. 3억 원이 넘지 않는 전세 아파트를 구한다고 했지만 대부분 전세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드물게 나온 전세는 대부분 3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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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민간 부동산 조사업체의 통계 역시 뉴스타파 취재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월 KB국민은행이 발표한 2014년 2월 주택시장 동향 조사를 보면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전용면적 84제곱미터의 경우 3억25만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정부가 말하는 고액전세금액보다 높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4억 원 이상의 전세 가구가 전체의 10%에 불과해 전세대출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4억을 한도로 할 경우 10% 정도가 재정에 의한 혜택을 못 받게 된다” 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이 10%란 수치는 2년 전 작성된 ‘2012년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계산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여 동안 전세 가격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폭등했다. 4억 원 이상 전세 가구의 비율도 당연히 높아졌을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사실상 3억 원 이상의 전세 세입자에게는 징벌적인 정책을,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시혜적인 금융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전세 세입자들에게 집을 사라고 강권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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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연소득 5천만 원인 사람이 5억원짜리 집을 사면서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린다면 연 이율은 최저 3% 초반으로, 한 해 300여 만 원의 이자를 내면 된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거나 5년이상 무주택자라면 공유형 모기지 적용 대상이 돼 연 대출 금리는 1.5%까지 내려간다. 연 이자는 150만원 가량이다.
그러나 3억 5천만 원짜리 전세 아파트를 구하면서 1억원을 대출 받는다면, 금리는 4% 초반대로 연 400만원 정도의 이자를 내야 한다. 공유형 모기지와 비교하면 3배 가량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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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세입자와 주택 소유자간에 불평등한 금융정책을 펴면서도 ,이를 친서민정책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참여연대 이강훈 변호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주택 수요자가 정부의 강요된 선택으로 집을 사게 돼서, 이후 집 값이 하락한다면 정부가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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