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 ② '죄수-수사관-검사'의 부당거래
2019년 08월 12일 08시 00분
2017년 8월 23일 의정부교도소 앞. 한명숙 전 총리가 징역 2년을 마치고 만기출소했다.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교도소를 나온 뒤 한 전 총리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9년에 걸친 이른바 ‘한명숙 뇌물 사건’이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한명숙 뇌물 사건’은 2009년 검찰 수사로 시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다. 노 전 대통령 장례위원장이었던 한명숙 전 총리는 야권의 잠재적인 대권 후보였고,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었다.
2009년 말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첫번째로 기소한 내용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한 전 총리의 무죄가 유력했던 상황. 검찰은 ‘곽영욱 사건’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2010년 4월 8일 한 전 총리의 또 다른 혐의를 언론을 통해 공개한다. 이번에는 한신건영이라는 소형 건설사의 사장 한만호가 한 전 총리에게 수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내용이었다.
‘한만호 사건’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검찰이 기소한 뒤 진행된 두 번째 공판에서 한만호는 기존에 검찰에서 한 진술을 완전히 뒤집는다. 검찰이 횡령 등 자신의 추가 범죄를 수사할 것이 두려워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해줬다는 주장이었다.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2011년 10월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김우진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2013년 9월 2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6부, 정형식 부장판사)는 1심을 뒤집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여 원을 선고했다. 2015년 8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대로 유죄를 확정했다. 한 전 총리는 의원직을 상실했고, 수감됐다.
‘한명숙 사건’은 이렇게 법적으로 종결됐지만 대중의 뇌리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종종 소환된다.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 때가 대표적이다. 2018년 7월 31일 ‘대법원 사법행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196건의 문건에는 ‘한명숙 사건’이 포함돼 있다.
2015년 5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명숙 의원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으며,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경우 김무성 대표에게 상고법원안 처리를 설득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내용이다. 2018년 문건이 공개 된 뒤 더불어민주당은 “한명숙 전 총리는 억울하게 희생됐다”며 “의혹을 밝혀야한다”고 논평을 냈다.
최근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명숙’을 다시 소환했다. 채널A 기자가 구속 수감된 죄수를 상대로 유시민 이사장 관련 비위 사실을 말하라며 협박한 행태가 폭로되면서다. 채널A 기자와 모 검사장의 유착 의혹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유 이사장은 MBC 라디오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죄수가) 저한테 의자에 돈 놓고 나왔다고 말하던가 어디 도로에서 차 세우고 트렁크에 돈 실어줬다, 이렇게 말했으면 저는 한명숙 전 총리처럼 딱 엮여 들어간다.” 의자에 돈을 놓고 나왔다는 건 ‘곽영욱 사건’을, 도로에서 차 세우고 돈 실어줬다는 건 ‘한만호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검찰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죄수와 검사>를 연속 보도했다.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죄수(일명 제보자X)가 검찰 수사에 참여하면서 목격한 검찰 치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뉴스타파는 검찰이 죄수를 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죄수에게 불법적인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고 가석방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검찰이 특정한 수사를 덮기도 하고,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여러 정황과 증거들도 드러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검찰 스스로 ‘특수수사 기법’이라고 그럴 듯하게 이름 붙이기도 한다.
<죄수와 검사> 프로젝트 취재원 중에 ‘한명숙’이라는 이름을 꺼낸 사람이 몇몇 있었다. <죄수와 검사> 내용에 검찰이 ‘한명숙 뇌물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과 흡사한 대목이 있다는 말이었다.
1차 뇌물사건의 당사자인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비자금으로 먼저 구속돼 죄수가 된 뒤 검찰에 한명숙 전 총리의 이름을 불었다. 2차 뇌물사건 당사자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도 같은 순서로, 즉 사기 혐의로 죄수가 된 뒤 한 전 총리 관련 내용을 검찰에 진술했다. 두 사건 모두 한 전 총리의 혐의를 주장하는 근거가 ‘죄수’의 입이었다는 말이다. 또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는 복수의 또 다른 죄수들이 법정 증인으로 나서 검찰의 기소 내용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한명숙 사건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죄수와 검사>를 보면서 조건 반사적으로 ‘한명숙’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수 있다.
사법 판단이 끝난 사건을 다시 취재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한명숙 사건’은 수많은 검사와 변호사들이 정면 승부를 벌인 세기의 재판이었다. 하지만 빈 공간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뉴스타파는 한명숙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면서 비어있는 공백,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을 다시 들춰봤다.
방대한 재판 기록에는 사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 인물들의 행적을 쫓아가봤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충격적인 증언도 있었다. 뉴스타파는 언론기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새로운 이야기와 증언을 취재하고 검증했다. <죄수와 검사Ⅱ>는 뉴스타파가 한명숙 사건과 관련해 새롭게 밝혀낸 사실과 증언, 그리고 그것을 검증한 긴 과정을 다룬다.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취재 | 김경래 심인보 |
촬영 | 정형민 오준식 |
편집 | 박서영 조문찬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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