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2세들, 페이퍼컴퍼니 통해 경영권 승계 정황

2023년 11월 08일 14시 49분

'페이퍼컴퍼니'
페이퍼컴퍼니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말한다.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회사가 대표적인 페이퍼컴퍼니다.
하지만 국내에도 페이퍼컴퍼니를 쉽게 만들 수 있다. 특수목적법인(SPC)처럼 합법적인 형태의 페이퍼컴퍼니도 있지만, 실제 기업 활동은 하지 않으면서 마치 정상적인 회사인 것처럼 꾸며 사주 일가를 배불리기 위한 목적의 페이퍼컴퍼니도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호반그룹 김상열 회장의 2세들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경영권을 승계받은 여러 정황이 포착됐다.
호반그룹 김상열·우현희 회장 부부는 회사 지분 대부분을 세 자녀들에게 넘겨줬다. 사실상 증여를 한 셈이지만 관련 세금은 거의 내지 않았다. 부당 내부 거래를 통해 자녀들이 100% 지분을 소유한 기업에 이득을 몰아주고 덩치를 키운 뒤 호반건설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넘겨줬기 때문이다. 
장남 김대헌 씨는 2023년 5월 말 현재 호반건설을 통해 호반자산개발 등 23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고, 장녀 김윤혜 씨는 호반프라퍼티를 통해 주식회사 호반 등 5개 계열사를, 차남 김민성 씨는 호반산업을 통해 티에스주택 등 1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2세들은 각각 호반건설과 호반프라퍼티, 호반산업을 통해 호반그룹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김상열 회장은 이미 20년 전부터 경영권 승계작업을 추진해 왔다. 자녀들이 소유한 회사에 호반건설의 일감과 수익을 몰아주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장남 김대헌 씨가 소유한 호반건설주택의 2017년 매출은 2조 5,790억 원으로 3년 새 16배 증가했고, 차남 김민성 씨가 지배한 호반산업은 같은 기간 매출이 3,900억 원 늘었다.
호반건설주택은 2018년 주식회사 호반으로 이름을 바꾼 뒤 같은 해 12월 호반건설에 합병됐다. 이를 통해 김대헌 씨는 호반건설의 지분 54.7%를 차지했다. 

주식회사 호반의 뿌리는 페이퍼컴퍼니?

김대헌 씨를 호반건설의 새 주인으로 등극하게 한 주식회사 호반의 뿌리는 바로 비오토건설이다.
비오토건설은 지난 10월 '호반과 골프장, 그리고 탈세의혹'이라는 제목의 뉴스타파 보도에서 언급된 회사다. 비오토건설은 김대헌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인데, 2003년 12월 4일 설립된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김상열·우현희 회장 부부로부터 골프장 지분을 무상으로 증여받았다. 
이후 비오토건설은 급속도로 몸집을 불렸다. 2007년 말 현재 총자산은 446억 4,800만 원으로 회사 설립 당시보다 890배 증가했고, 창립 10년 만인 2012년에는 1,901억 원으로 3,800배 폭증했다.
비오토건설의 자산 총액은 2012년 말 현재 1,901억 원으로 회사 창립 10년만 에 3,804배 증가했다.  
반면, 회사의 부채는 거의 없었다. 2012년 총부채는 61억 원으로 부채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김상열 회장이 이른바 '돈이 되는 알짜배기' 사업만 비오토건설에 몰아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위 조사 결과, 2010년부터 3년간 비오토건설의 매출 중 내부 거래가 차지한 비율은 평균 94%였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비오토건설은 최소 2007년까지 페이퍼컴퍼니였다는 여러 정황이 발견됐다. 
우선 회사 설립 신고 때 지방자치단체와 법원 등기소에 신고한 대표자가 각각 달랐다. 2003년 12월 광주광역시 신설법인 현황에는 허남창 씨가 비오토건설의 대표로 돼 있다.
하지만 법인 등기부등본에는 허 씨가 대표이사가 아닌 감사로 등재됐다. 지자체와 법원에 각각 따로 신고하면서 발생한 단순 기재 실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허 씨에 이어 감사로 선임된 A씨는 자신이 비오토건설의 감사였다는 사실을 뉴스타파 취재진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 기자 : 감사로 등재된 적이 있더라고요, 비오토(건설) 주식회사에.
■ A씨 : 제가요?
□ 기자 : 네네. 그래서 비오토(건설) 주식회사에 대해 좀 여쭤보고 싶어서요.
■ A씨 : 사실은 저는 지금 비오토에 (감사로) 등재돼 있는 것도 오늘 지금 전화통화 통해서 처음 알았네요.

뉴스타파 취재진과 비오토건설의 감사로  등재됐던 A씨와의 대화에서 발췌
법인 등기부등본상 A씨가 감사로 재직한 기간은 2004년 12월말부터 2007년 3월말까지다. 비오토건설이 실체가 있는 회사라면 A씨가 감사를 맡았던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감사는 상법상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사하며, 이사회 의결사항이나 주주총회 준비사항, 회계 자료 등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오토건설의 감사로 등재된 사실도 몰랐다는 A씨는 이 회사가 어떤 회사였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비오토건설이 실제 업무를 했던 회사는 아니고, 호반건설과 협력업체 중간에서 이득을 챙긴 일종의 '도관회사'라고 말했다. 
■ A씨 : (아파트)분양할 때 비오토하고, 뭐를 이렇게 계약을 해서 하는 걸 저희가 알고 있었거든요.
□ 기자 : 분양하고 시행하고 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비오토가 한 건가요?
■ A씨 : 아니요. 비오토가 직접 시행을 한 게 있나 없나 그것은 제가 기억이 없고요, 분양 부분에 있어서는 비오토가 호반한테 분양을 받아서 다시 협력업체한테 분양을 해주는 그래서 호반과 협력업체 사이에 있는 회사라고...
□ 기자 : 도관회사로 일한다는 건가요?
■ A씨 : 예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비오토건설의 감사로 등재됐던 A씨와의 대화 발췌
도관회사는 기업 사주 일가들이 회사의 이익을 빼돌리기 위해 쓰는 전형적인 수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도관은 수도관이나 하수도관처럼 점토를 구워 만든 관을 뜻하는데, 도관회사란 기업간의 거래에서 이 도관을 중간에 끼워넣어 일종의 통행세를 받는 회사를 말한다. 
즉, 비오토건설은 호반건설과 외주 하청업체 사이에서 직접 일은 하지 않고, 분양대행 수수료 등 이권을 챙긴 도관회사, 일명 '빨대회사'였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비오토건설의 전 감사로 등재된 A씨는 비오토건설이 실제 업무를 한 것은 아니지만, 호반건설과 외주 하청업체 사이에서 분양대행 수수료 등의 이권을 챙긴 회사라고 밝혔다. 
비오토건설의 사무실이 실제 존재했는지도 의문이다. 설립 신고 당시 주소는 광주광역시 쌍촌동 985의 6번지. 
그런데 이 주소지에는 비오토건설보다 6개월 먼저 설립된 회사가 있었다. 지난 10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바와 같이 골프장 주식의 48.3%를 갖고 있다가 무상감자를 통해 전액 손실을 입은 태성산업이다. 
태성산업의 회계 감사 보고서에는 4명의 개인 주주가 각각 25%의 지분을 소유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김상열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회사로 의심받는 곳이다. 
태성산업은 영진산업(2004년)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05년 호반베르디움으로 바뀌면서 베르디움 주식회사의 100% 자회사로 편입된다.  
호반베르디움의 회계 감사 보고서를 보면 2006년 매출액은 1,021억 원, 임직원들의 급여로 10억 원을 지출하는 등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회사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비오토건설의 전 감사이자 2006년 당시 호반베르디움의 대표이사였던 A 씨는 호반베르디움이 페이퍼컴퍼니였다고 밝혔다. 
■ A씨 : (호반) 직원들이 대표이사로 등재가 된 경우에 회사에서 무슨 수당인가를 20만 원 정도 준 것 같아요. 월급에요. 그래서 '이게 뭐니?'라고 물었더니 '호반베르디움에 제가 대표로 등재가 돼 있습니다'라고 그 때 들은 것 같아요.
□ 기자 : 혹시 호반베르디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서 뭔가 결재를 한 게 있나요?
■ A씨 : 그것은 없습니다.
□ 기자 : 그러면 페이퍼컴퍼니 아닌가요? 왜냐면 실체는 없는 거죠. 그 회사 이름으로 임원이라든지 직원이 등재는 돼 있으나...
■ A씨 : 예. (임직원이) 등재는 돼 있고, 관리는 (호반건설)재무관리부에서 하고 있는 법인이죠. 호반토건과 호반하우징 이런 회사들이 있었는데, 그런 회사들이 호반베르디움과 비슷한 류의 (회사입니다). 직원들과 기술자들은 배치가 돼 있고, 실질적으로 업무는 호반건설이 중심으로 지원을 하는 (직원들이) 겸직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운영됐던 회사가 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비오토건설의 전 감사이자 호반베르디움의 전 대표이사였던 A씨와의 대화 발췌
호반그룹 계열사들이 별도의 사무공간과 직원을 두지 않고, 호반건설 직원들이 마치 이들 회사에 소속돼 일하는 것처럼 꾸몄다는 설명이다.
법인 등기부등본상 A씨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호반베르디움뿐 아니라 호반토건과 호반하우징 등 호반그룹 9개 계열사의 감사와 대표이사를 지냈다. 

호반프라퍼티의 뿌리 역시 페이퍼컴퍼니?

김상열 회장의 장녀 김윤혜 씨와 차남 김민성 씨가 공동 소유한 호반프라퍼티의 뿌리는 베르디움 주식회사다. 이 회사 역시 상당 기간 페이퍼컴퍼니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타파가 국회를 통해 확보한 베르디움의 고용보험 가입자 내역에는 2005년 5월 8명의 직원이 처음 고용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2003년 12월 4일 설립된 베르디움이 1년 넘게 정규직 직원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0월, 정부는 고용안정을 위해 한 명 이상 정규직 직원을 고용한 사업장은 반드시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호반건설 측은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주식회사는 정상적으로 영업 활동을 영위하며, 단계적으로 성장한 회사"라고 주장했다.
호반건설 측은 또 "규모가 작은 회사의 특성상 계열사간 오피스 기능을 공유하는 등 교류가 있을 수 있으나, 베르디움의 경우 유통사업을 독립적으로 영위했다"며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부인하고, 호반프라퍼티 법인 사업장 명의의 고용보험 가입 내역을 취재진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호반건설 측의 자료에는 고용보험 최초 가입 시점이 2005년 4월이다. 뉴스타파가 국회를 통해 입수한 자료와 한 달의 차이가 있을 뿐, 베르디움이 설립된 후 1년 넘게 정규직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베르디움주식회사는 호반그룹을 지탱하는 3개 축 가운데 하나인 호반프라퍼티의 전신이다. 그런데 베르디움의 고용보험 가입내역을 보면, 회사 설립 후 1년 넘게 정규직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는다. 

호반산업, 페이퍼컴퍼니 통해 고속 성장

차남 김민성 씨 소유의 호반산업은 2010년 12월 7일 설립된 베르디움건설에서 시작됐다. 2013년 호반티에스로 이름을 바꾼 뒤 2015년 호반건설산업으로, 2018년 호반산업으로 다시 상호명을 변경했다.
호반산업의 뿌리인 베르디움건설이 페이퍼컴퍼니였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다. 회계감사 보고서상 베르디움건설의 2011년 매출은 123억 원, 이 가운데 분양 수익이 120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같은 해 급여로 지출한 비용은 총 4,249만 원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2012년 매출은 1,275억 원을 10배 넘게 늘었는데, 임직원들의 급여로 쓴 비용은 9,509만 원에 그쳤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점에서 페이퍼컴퍼니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점은 2010년대 호반산업이 자회사로 페이퍼컴퍼니를 여러 개 만들고, 이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고속 성장했다는 점이다. 호반산업은 티에스주택, 티에스개발, 티에스건설, 티에스광교, 티에스리빙, 티에스자산개발 등 앞 글자가 티에스로 시작하는 계열사를 여럿 거느렸다.  
호반그룹 계열사의 전 관계자는 "앞 글자가 티에스로 시작하는 회사들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도 없었다. 직원들도 자기가 이들 회사에 등재돼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증언과 취재를 정리하면, 김상열 회장의 세 자녀들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또는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부모로부터 막대한 부를 넘겨 받았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실상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은 셈이지만, 관련 세금은 거의 내지 않았다.
김관형 세무사는 "기업의 복잡한 거래를 통해 우회적으로 증여세를 피하는 방법들이 많다. 과세 당국에서 이를 적절하게 잡아주지 않으면 조세 형평성이나 공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제작진
편집정지성
촬영김기철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CG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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