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 계열의 남도문화재단이 문화 예술 발전에 써야 할 기부금 461억 원을 호반그룹의 본사 사옥 부지 매입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단은 또 호반그룹 본사 사옥이 들어선 해당 토지와 건물의 임대료를 정기예금 금리보다 훨씬 낮게 받아 호반그룹 계열사에 이득을 제공했다.
이와 함께 재단은 보유 중이던 부동산을 장부가액 기준으로 20억 원, 공시지가보다 10억 원 싼 가격에 호반그룹 계열사에 매각하는 등 호반그룹과 호반그룹 대주인 김상열 회장 일가에 특혜를 제공했다.
재단 재산에 손실을 입힌 남도문화재단 이사진뿐 아니라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에 대한 업무상 배임과 탈세 의혹을 규명하는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낌없이 나눠주고 사라진' 남도문화재단
호반그룹은 사회공헌 활동을 위해 장학재단과 문화재단을 운영 중이다. 김상열 회장은 지난 1999년 호반장학재단을 설립한 당시부터 지금까지 재단 이사장을 내리 맡고 있고, 김 회장의 아내 우현희 씨는 20년째 호반문화재단 이사장에 등재돼 있다.
특이한 점은 재단 법인에 대표권 제한 규정을 두고, 김상열 회장 부부 외에는 대표 권한이 없음을 명시했다.
그런데 이들 재단과 같은 호반그룹 계열인데도 김상열 회장 부부가 단 한번도 이사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재단이 있었다.
2013년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된 남도문화재단이다. 남도문화재단은 2021년 재단의 모든 자산을 호반문화재단에 기증한 뒤 해산했다. 해산 당시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재단의 순자산은 757억 원에 달했다.
700억 원대 부자 문화재단...그러나 문화 발전에 쓴 돈은 쥐꼬리만 해
남도문화재단의 감사보고서에는 재단의 설립 목적이 '남도 문화 발전을 위해 문화 예술품을 수집, 보존하고 인재 양성을 통해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남도문화재단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그리 크다고 보기 어렵다. 재단 설립 후 4년간 문화 예술 발전이라는 고유목적사업에 지출한 돈은 연간 3,000~4,000만 원에 불과했다. 2021년 재단이 해체될 때까지 9년간 고유목적사업에 지출한 전체 금액은 10억 9,000만 원이다.
재단이 보유한 순자산 대비 목적 사업비 지출 비율은 연평균 0.18%에 불과했다. 재단의 순자산을 1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문화 예술 발전에 쓴 돈은 고작 18만 원인 셈이다.
▲ 남도문화재단이 고유 목적사업에 사용한 돈은 순자산 대비 평균 0.18%에 불과했다
오히려 인건비 등 재단 운영 경비로 지출한 돈이 훨씬 많았다. 2014년 1억 2,000만 원이던 운영경비는 2016년 5억 원으로 늘었고, 2020년에는 8억 원에 육박했다. 운영 경비가 고유목적사업에 지출한 돈보다 평균 5배 많았다.
남도문화재단의 재산 중 문화 예술 사업에 쓸 현금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재단 설립 이후 해산 때까지 기부받은 전체 출연액은 649억 원. 이 가운데 현금으로 기부받은 것은 538억 원으로 전체의 82.8%를 차지했다.
재단은 이 많은 현금을 대체 어디에 사용한 걸까.
기부받은 현금 대부분을 호반그룹 사옥 부지 마련에 사용
뉴스타파가 입수한 재단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재단은 2014년 토지를 구입하는데 461억 원, 건설공사비 명목으로 3억 8,000만 원을 사용했다.
이듬해인 2015년 재단은 우방이엔씨라는 회사에 우면동 땅을 40년간 임대하고, 우방이엔씨는 지하 4층, 지상 10층 규모의 업무 시설을 신축한 뒤, 40년 후 재단에 무상 기부하는 약정을 체결했다. 우방이엔씨는 2015년 4월 호반건설에 매각됐고, 2018년 호반자산개발로 이름을 바꿨다.
재단이 매입한 토지 주소는 서울 우면동 786번지. 이 땅에는 현재 호반파크 2관이 들어서 있고, 호반건설과 그룹 계열사들이 사옥으로 사용 중이다. 즉, 남도문화재단이 기부받은 돈을 호반그룹 본사 사옥을 짓는데 사용한 것이다.
재단 이사들 업무상 배임에도 불구하고 호반그룹에 특혜 제공
게다가 재단은 임대료를 낮게 매겨 사실상 호반그룹에 특혜를 제공했다. 2014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는 임대 계약 당시, 재단이 약정받은 월 임대료는 1억 3,500만원. 이를 연 단위로 환산하면, 16억 원이 넘는다. 재단과 우방이엔씨는 2년 마다 임대료를 재평가해 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5년 뒤인 2019년 재단이 우면동 토지와 상가의 임대료로 거둔 수입은 연간 4억 9,000만원. 당초 약정한 임대료보다 11억 원 적었다.
재단이 우면동 토지 매입에 쓴 461억 원과 비교하면, 임대 수익률은 당초 3.53%에서 1.06%로 축소됐다.
2019년 당시 시중 은행의 1년 만기 정기 예금 금리는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연 1.61%에서 2.14%였다. 재단이 토지 매입 대금을 정기예금에 묻어둔 것보다 2억 5,000만원에서 최대 5억 원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이에 대해 호반측은 2021년 재단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하면서 과거 임차료 부족분을 정산했다고 주장했다. 호반 측이 정산했다고 주장하는 금액은 10억 원에 불과하다.
2019년 한 해만 따져 봐도, 재단은 당초 약정한 임대료보다 11억 원 적게 받았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임대료를 싸게 받은 만큼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호반 측에 법인세를 과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반그룹 계열사에 낮은 임대료로 땅을 임대해 준 남도문화재단 이사들은 업무상 배임 소지가 다분하다. 재단의 이사들이 형사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토지를 매입해 호반 측에 싸게 임대해 준 것은 김상열 회장의 입김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상열 회장은 남도문화재단 이사에 등재된 사실이 없어 배임 등 형사적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다.
당시 재단 이사장은 김상열 회장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조청환 씨가 맡았다. 뉴스타파는 조 씨의 자택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통화를 했지만 조 씨는 답변을 거부했다.
재단 소유 부동산도 호반 계열사에 싸게 매각
남도문화재단이 호반그룹에 특혜를 제공한 의혹은 또 있다. 뉴스타파가 지난 10월 보도한 바 있는 호반스카이골프장 매각과 관련돼 있다. 김상열 회장은 2020년 12월, 호반스카이밸리 골프장을 엔지니어링공제조합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 2580억 원에는 골프장뿐 아니라 골프장에 연접해 있는 경기도 여주시 운촌리 임야 57만 제곱미터도 포함돼 있다.
당초 운촌리 임야는 남도문화재단이 2017년 기부받아 소유했던 땅이다. 그런데 골프장이 매각되기 한 달 전, 호반그룹의 계열사인 호반스카이밸리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매각 대금은 27억 7,000만원. 재단의 감사보고서상 장부가액인 47억7,000만 원보다 20억 원, 공시지가(37억 8,000만원)보다 10억 원 낮은 가격이다.
이 때문에 남도문화재단이 특수관계자나 마찬가지인 호반스카이밸리에 땅을 싸게 팔아 김상열 회장 측에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에 대해 호반 측은 "2020년 4월과 5월 두 차례 매각 공고를 내고 땅을 팔려고 했으나 최종 유찰됐고, 이후 남도문화재단과 호반스카이밸리가 각각 공인감정기관을 통해 감정가를 산정한 평균값으로 매매가를 정했다"며 저가 매각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도문화재단은 2019년 말 현재 674억 원의 순자산을 갖고 있었고, 1억 5,000만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운촌리 땅을 공시지가보다 싸게 팔아야 할 필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재단이 땅을 팔기 위해 매각 공고를 내고, 감정가를 산정한 것 자체가 저가 매각에 따른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닌지 의심된다.
김성순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언론미디어위원장)는 "(토지의) 과거 소유자가 45억 원에 구입해서 재단에 증여했고, 재단에서 평가한 가치는 47억 원인데 이를 20억 원 가량 싸게 매각했다"며 "재단이 특별하게 이 재산을 처분할 필요가 있다거나 현금이 필요했다거나 한 사유가 없고, 시세대로 팔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면 재단에 손해가 가해진 것으로 배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2014년 재단이 서울 우면동 땅을 매입하기 직전 465억 원의 뭉칫돈이 재단에 기부됐다. 이 돈 중 461억 원은 호반 사옥 부지 구입에 사용됐고, 재단은 당초 우방이엔씨와 약정한 임대료보다 더 싼 값에 토지를 빌려줬다.
남도문화재단은 또 호반그룹 계열사인 호반스카이밸리에 경기도 여주시 운촌리 땅을 공시지가보다 싸게 팔았다.
남도문화재단과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챙긴 우방이엔씨(나중에 호반자산개발로 상호 변경)와 호반스카이밸리 주식회사의 지분은 대부분 김상열 회장 일가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남도문화재단 이사진뿐 아니라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에 대해 업무상 배임과 탈세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