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교과서’ 대해부
2013년 09월 13일 07시 29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게재된 ‘학도병 이우근’ 사진에 등장하는 소년은 이우근이 아닌 신원미상의 인물. 262쪽에 실린 동아일보 초대 주필인 장덕수의 기사는 다른 독립 운동가 ‘조우’의 글로 확인.
이처럼 이번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지적된 오류는 400여 건. 다른 교과서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서 최종 검정에 통과했지만, 한국역사연구회 등 4개 학술단체는 교학사 교과서 최종본도 오류가 298건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고종 독살설’과 ‘김성수의 행적’ 등은 시민참여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어미 등만 살짝 고쳐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교학사 교과서의 참고 자료의 출처를 보 니 58%가 인터넷 사이트로 집계됐다.
교학서 교과서는 이승만과 박정희 등 특정 정치인들에 대해 편향된 기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을 다룬 35쪽 분량을 분석해 보니 이승만은 36번 등장하는데 김구의 경우 8번, 안창호는 본문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해산되는 과정에서는 역사적인 사실 관계도 무시하고 이승만의 입장을 두둔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정희의 5.16쿠데타도 그 정당성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최근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로도 이어져 이명박 대통령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반면 4.3, 4.19, 5.18 등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민간인의 희생을 축소 기술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교학사 교과서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반공의 관점에서 기술한 반면 민주화나 통일 등의 가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뤘기 때문에 이런 편향성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과정에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전현수 경북대 교수는 ‘밀실 검정’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연구위원으로서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했지만 제대로 수정되지 않은 채 최종 검정에 통과했다는 것이다. 수정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않은 것은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전 교수는 말했다.
역사 교과서 검정의 책임자인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교학사 교과서에 오류가 많은 것은 인정하지만 검정위원이 투명하게 심사한 뒤 절차에 맞게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뉴라이트 교과서 봐주기’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은 교수 2명과 현직 교사 등 모두 6명이며 이 가운데 대표 집필을 맡은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각각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초대회장과 현재 회장이다. 이명희 교수는 9월 11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역사교실’에 초청연사로 참여해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편파, 부실 논란이 확산되자 교학사측은 해당 교과서의 발행 취소를 검토하고 있고, 교육부는 교과서 검정 과정과 관련해 전반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 한국사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시대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담긴 게 전부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박규원 / 서초고 1학년] “전문가들이 검증된 자료를 통해서 진실만 이렇게 꽉 알차게 담아 놓은···”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의 교과서 검정심의를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입니다. 이 가운데 6.25 전쟁 당시 학도병을 다룬 부분. 소총을 멘 앳된 소년병의 사진. 사진의 주인공은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해 그해 8월에 전사한 학도병 이우근으로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 속 인물은 학도병 이우근이 아닙니다. 전쟁이 발발했던 그해 8월 한여름에 전사한 이우근이 두꺼운 털모자와 두꺼운 외투 복장으로 총을 메고 사진을 찍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사진자료실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원은 미상. 엉뚱한 사진을 게재한 것입니다. 이 교과서의 262쪽. 조선청년 연합회의 결성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동아일보 초대 주필인 장덕수가 동아일보에 쓴 글이 소개됩니다. 하지만 실제 이 글이 실린 1920년 7월 20일에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보니 글쓴이는 장덕수가 아닌 북창 조우라고 나옵니다. [이준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장덕수가 쓴 글이라 옮겨 놓은 겁니다. 조우라는 사람이 무명인사도 아닙니다. 당시 신문을 검색해보면 꽤 많이 나오는 함경도 북창이라는 데에서 청년 운동, 노동 운동, 신간회 운동을 벌이고 1933년에 일제경찰에 잡혀서 고문을 받은 끝에 옥중에서 돌아가시는 순국하시는 분입니다. 순국입니다. 이런 분 글을 장덕수 글이라 버젓하게 왜곡해 올려놓는 작태가...” 엉뚱한 사람을 사진의 주인공으로 쓰고, 글쓴이의 이름까지 바꿔버린 이 교과서. 그런데도 지난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교과서는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교수 2명이 집필을 주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명희 교수는 3달 전 한 종편 채널에 출연해 자신의 집필기준을 이렇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가능하면 우리 민족사의 큰 흐름과 관련된 주요한 팩트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그러나 그가 주도한 교과서엔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2-3일 분석을 하던 끝에 전문가 집단들이 취합을 해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너무 많이 나왔어요. 중대한 사실 오류, 왜곡, 과장, 축소, 누락, 심각한 편파해석, 표현이 부적절한 것들...” 먼저 수치 오류. 332쪽,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81년에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목표를 세웠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1972년 11월 7일 <월간경제동향보고>. 여기에는 198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1천 달러 수준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는 문구가 발견됩니다. 결국 당시 국민소득 목표는 1000달러. 그런데 집필진은 이를 무려 10배나 부풀린 겁니다. 중요 사건의 연도를 틀리게 표기한 것도 문젭니다. 이 교과서 354쪽. '카이로선언에서 발표된 사항들은 1945년 2월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의해 발표된 포츠담선언을 통하여 재확인'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지만, 하지만 포츠담 선언을 한 시점은 1945년 7월, 1945년 2월엔 얄타회담이 열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오류입니다.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 “1945년 2월은 얄타회담이고요. 포츠담선언은 1945년 7월입니다. 중, 고등학교 시험 문제 낼 때 제일 만만한 게 다음 선언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라고 하면 이것 전부 다 틀립니다. 이것 교과서 문제 못냅니다.” 네티즌들이 만드는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그대로 베낀 대목도 자주 보입니다. 교과서 292페이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규정된 김성수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키피디아 김성수에 관한 설명과 대부분 일치합니다. 252페이지의 고종독살설에 관한 설명도 위키피디아를 그대로 베끼면서 ‘했다’를 ‘했으며’, ‘했으니’ 등 어미만 살짝 바꿔 실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베껴온 것으로 추정되는 교과서 내용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 교과서의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를 살펴보면, 위키피디아, 구글, 네이버, 네이트 등 인터넷 검색 사이트의 이름이 수두룩 합니다. 교학사 교과서가 제공하는 561건의 자료 가운데 무려 327건의 출처가 인터넷 검색사이트입니다. 절반이 넘습니다. 반면 다른 한국사 교과서는 아예 인용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30곳 미만입니다. [전현수 경북대 교수 / 한국사 교과서 연구위원] “놀라운거죠. 위키피디아는 오류가 많은 거거든요 미국에서는 대학 교수들이 레포트 학생들한테 낼 때 위키피디아 인용하면 백퍼센트 F입니다.” 위키피디아 스스로도 위키피디아에 실린 내용은 관련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작성한 것이 많고, 저급하거나 논쟁거리가 될 만한 편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교과서에 위키디피아에서 베껴온 글이 많다는 것을 본 학생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신희수 / 서초고 2학년] “처음 들은 건데 되게 황당해요. 사실 배우는 학생으로선 가장 정확하고 사실에 기반 한 걸 배우는 게 맞잖아요.” 심지어 교과서 293쪽의 ‘이승만의 단파방송’이라는 글의 출처는 네티즌들이 패러디물을 자주 올리는 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갤러리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검정을 책임지는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도 오류가 많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그 사람(심사위원)이 주어진 집필기간에 일을 하다보니까 날짜를 착각한다든지 그럴 수가 있는데, 우리가 선정해서 맡긴 심사위원들도 주어진 기간이 너무 짧고, 이런 데서 그런 걸 일일이 하나하나 못 잡아냈을 수도 있죠." 그러면서 책임은 검정위원들에게 떠넘깁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최종 감독권한은 위원장님께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게 심사위원들 점수에 80점 이상 받았는데 어떡합니까 그걸 어떻게 탈락시킵니까” 국사편찬위원회가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를 위해 봐주기식 심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습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가 뉴라이트 전혀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오해” 국사편찬위원회는 그러나 문제의 교학사 교과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뉴스타파 홍여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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