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기업과 공모해 관세 포탈한 한국지역난방공사

Oct. 16, 2024, 08:00 AM.

전국 아파트에 난방과 냉온수를 공급하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공사)가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파워주식회사(이하 미쓰비시)와 허위 계약서를 만들고 세금을 포탈했다가 뒤늦게 적발된 사실이 확인됐다. 2019년 공사는 미쓰비시가 일본에서 제작한 가스터빈 부품을 수입하면서 계약금 총액을 낮추는 일종의 다운 계약서를 만들고 관세 7억 4천만 원을 포탈했다. 관세청이 이런 사실을 뒤늦게 적발하면서 공사에 추가로 부과한 세금의 합계가 47억 원에 이른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최대 주주는 정부(34.55%)다. 이어 한국전력공사(19.55%), 한국에너지공단(10.53%), 서울특별시(10.36%) 순이다. 일반 주주도 20%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관세 포탈로 인한 국민 혈세 낭비는 물론, 개미 주주들에 대한 피해도 예상된다. 
뉴스타파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관세 포탈과 관련해 일본 전범기업과 사전 공모한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 3개월 동안 취재해왔다. 공사의 내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김원이 더불어민주당(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의 협조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공사가 미쓰비시와 맺은 공식 계약서 외에 또 다른 비밀 회의록이 존재한단 사실을 파악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탈세 사건 시간순 정리. (출처 : 뉴스타파)
한국지역난방공사 홍보 영상 갈무리. LNG 가스가 가스터빈과 발전기를 거쳐 전기와 냉온수를 생산한 뒤, 아파트나 빌딩으로 보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빨간 점선 테두리가 가스터빈이다. 
미쓰비시파워가 발행한 가스터빈 부품 인보이스. 수량 할인(Volume Discount) 항목에 기재된 엔화가 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148억 원이다. 공사는 이 148억 원에 대한 관세를 내지 않았다. 무늬만 '수량 할인'이었기 때문인데 이런 사실은 4년 뒤에야 적발됐다. 

공식 계약서에 없는 내용으로 가득한 비밀 회의록

한국지역난방공사는 LNG 가스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난방과 냉온수를 공급하는 동시에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아파트나 오피스텔 내부에 보일러가 없으면, 공사가 공급하는 온수와 난방을 쓰고 요금도 공사로 지불하게 된다. 공사는 연 매출 4조가 넘는 공공기관으로 전국에 총 19개의 지역 사업소를 두고 있다.
공사 본부는 2019년 3월 27일, 화성 지사에서 사용할 가스터빈 부품 계약을 미쓰비시와 맺었다. 계약서를 보면 공사가 수입할 부품 대금 총액은 470억 원. 이 중 '수량 할인(Volume Discount)'을 명목으로 148억 원을 공제 받으며 과세 대상 총액이 약 322억 원으로 줄었다. 이를 기준으로 공사는 관세와 부가세 등 총 50억 원을 세금으로 납부했다. 
그런데 '수량 할인', 즉 많이 사서 깎아준다는 명목으로 공제받은 금액 148억 원이 사실은 '수량 할인'이 아니었다. 뉴스타파는 공사와 미쓰시비가 공식 계약서 외에 별도로 논의한 내용이 담긴 '비밀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는 미쓰비시가 148억 원을 깎아주는 대신, 공사가 기존에 쓰던 중고 부품 및 미사용 부품을 미쓰비시에 건네기로 한 약속이 담겼다. 그러니까 대량 구매에 따른 '수량 할인'이 아니라, 148억 원 상당의 물품을 공사가 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할인을 빙자해서 물품을 제공할 경우, 관세법상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다.
비밀 회의록의 내용 대부분은 공식 계약서에 담기지 않았다. 
공식 계약서가 작성되기 전에 작성된 비밀 회의록 1쪽.  공사가 부품 수입을 할 때 관세청에 신고한 '수량 할인(Volume Discount)'이 사실은 공사가 보유한 기존 부품 반납(Buyback)이란 사실이 적혀 있다. 부품 반납을 통한 할인은 관세를 면제받지 못 한다. (자료 :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공식 계약서가 작성되기 전에 작성된 비밀 회의록 4쪽. 공사가 부품 수입을 할 때 관세청에 신고하고 세금을 면제 받은 '수량 할인(Volume Discount)'이 사실은 기존 부품 반납(Buyback)이란 사실이 적혀 있다. 공사가 보유한 부품 반납이 '수량 할인'으로 둔갑된 사실이 적혀 있다. (자료 :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세 포탈로 안 내도 될 세금 40억 원 더 냈다

서울세관은 지난해 4월 11일부터 공사에 대한 정기 관세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공사는 ▲관세 7억 4천만 원 ▲부가세 15억 6천만 원, 여기에 자진 수정 신고로 인한 ▲일반 가산세(10%) 10억 7천만 원 등 총 33억 7천만 원을 납부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올해 3월, 관세청은 서울세관을 감찰했다. 이 과정에서 관세청은 공사와 미쓰비시의 계약서에 있는 '수량 할인'이 실제 객관적 사실과 명백히 다르고, 서울세관의 과세 자료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 결과 관세청은 공사에 ▲관세 2억 2천 ▲부가세 4억 7천 ▲부정 가산세(40%) 6억 9천 등 총 13억 8천만 원을 추가로 부과했다. 
지난해 서울세관은 단순 실수라며 공사의 수정 신고를 받아줬지만, 올해 관세청이 고의적인 탈세였단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면서 이뤄진 조치다. 관세청이 현장 조사도 하지 않고 어떤게 '중대한 하자'를 확인했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어쨌든 두 차례 세관 조사로 공사가 추가로 납부한 세금은 총 47억 5천만 원(A)이다. 공사가 처음부터 '수량 할인' 같은 꼼수를 쓰지 않았다면 관세 7억 4천만 원(B)만 납부하면 됐다. 그러나 공사는 고의적 관세 탈루로 41억 1천만 원(A-B)을 더 납부하게 됐다. 
관세청의 공사에 대한 부정 가산세 처분 이유서. 올해 3월 관세청은 지난해 서울세관이 공사에 대한 관세 조사를 할 때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와 탈세 공모한 정황  

공사와 거래한 미쓰비시파워는 미쓰비시중공업이 100% 출자해 만든 자회사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 징용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이다. 지난 2018년 11월, 대법원은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각 8000~1억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대법원은 다른 징용 피해자들의 사건에서도 비슷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미쓰비시 측은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관련 소송이 잇따르자 일본 기업과 우리 정부는 '제 3자 변제안'을 내놓고, 손해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했다. 그러나 대다수 피해자와 유족들은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가해자인 미쓰비시가 직접 사과하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소송은 지금도 전국 법원에서 40건 넘게 진행 중이다. 
미쓰비시파워는 국내 LNG 가스터빈 발전 시장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NG 발전은 청정에너지로 분류돼 규모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점점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법원의 배상 판결도 이행하지 않는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국내 공공기관과 비밀 합의까지 맺어가며 탈세를 공모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공사와 미쓰비시의 부품 거래 계약서 작성일은 2019년 3월 27일. 미쓰비시 측이 수입신고서를 세관에 제출한 날짜는 이보다 하루 전인 2019년 3월 26일이다. 계약서가 작성되기도 전에 수입 신고부터 한 것이다. 더구나 수입자인 공사가 처리해야 하는 수입 신고를 미쓰비시 측이 대신 해준 것도 의문을 낳고 있다. 뉴스타파는 미쓰비시코리아 측에 공사의 관세 포탈을 알고 있었는지, 탈세를 위해 공사와 비밀 합의를 맺었는지 등 당사자 반론을 받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미쓰비시파워가 제작하는 가스터빈 부품 사진.(출처 : 미쓰비시파워) 

한국지역난방공사 반론 "관세 업무 처리 미숙일 뿐, 고의적 탈세 아니다" 

고의적인 관세 포탈 의혹에 대해 공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공사는 가스 터빈의 효율성 업그레이드를 위해 미쓰비시와 부품 수입 계약을 하면서 기존에 쓰던 부품을 반납하기로 했고, 반납 부품의 잔존 가치 만큼 할인을 받기로 '약속'했는데, 담당자가 이에 대한 관세법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세관이 정기 조사를 하는 도중에 공사가 자진해서 수정 신고를 하고 일반 가산세(10%)만 납부하게 된 것도 세관이 '단순 실수'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3월 관세청이 서울세관을 감찰한 뒤, 부정 가산세(40%)를 추가로 부과한 것에 대해선 "관세청의 일방적인 부정 가산세 고지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조세심판원에 불복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비밀 회의록에 대해선 "기존 부품을 반납하고 대금을 할인받기 위해 미쓰비시와 협의하는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일 뿐이고, 양측이 이면 계약서나 비밀 회의록를 만든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담당자의 단순한 실수로 불필요한 지출을 40억 원 이상 했다면, 당연히 내부 감찰을 거쳐 정확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하지만 공사는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내부 조사 결과 이면 계약이나 비밀 계약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수립했다. 추가적으로 감사가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사를 상대로 비밀 회의록 등의 자료를 받아낸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전범기업과 허위로 거래하고 세금 포탈까지 해가며 사업을 진행했다면, 이는 위법 행위일 뿐만 아니라 왜곡된 역사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면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할 수 있게 조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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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봉지욱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