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총장님, 사랑합니다"...'직원 폭행' 협성대 총장 응원 시위의 전말

2021년 10월 21일 11시 30분

저는 최근 협성대 박명래 총장의 폭언, 폭행 사건을 보도한 이후 협성대 교내에서 진행된 시위 사진 몇 장을 제보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13일, 교직원 출근 시간대에 찍힌 사진들이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협성대 일부 교직원과 학생들이 교문 앞 중앙계단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요. 시위대의 맨 앞줄에는 학생들이 4개의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뒤로는 교수와 직원들이 2개의 현수막을 들고 함께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상식적인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은 사진 속 학생과 교직원이 어떤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힌트를 드리기 위해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진설명 / 지난 6월 10일, 협성대 박명래 총장은 대학원 교학과 직원 A씨에게 그의 소관업무가 아닌 일을 묻고는 모른다고 질책하다가, 노조 관리, 인사 예절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20여 분간 폭언을 했다. 사진은 지난 9월 27일 뉴스타파 보도 내용 중 일부.
뉴스타파는 앞서 협성대 박명래 총장의 폭언, 폭행 정황이 담긴 음성파일과 CCTV를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여기에는 지난 6월 10일, 박 총장이 신학대 건물 로비에서 한 직원에게 수차례 막말과 욕설을 한 뒤, 멱살을 잡고 건물 밖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피해 직원이 주장하는 CCTV 사각지대에서의 폭행은 해당 장소에서 녹음된 음성파일을 전문가에 의뢰,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에 더 가깝다는 점을 검증해 보도했습니다.
이 같은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처음 진행된 학내 시위였던 건데요. 과연 어떤 내용으로 진행이 됐을까요?
시위 현수막에 적힌 문구만 먼저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총장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박명래 총장님! 우리가 지켜드립니다!”
“박명래 총장님! 학교를 개혁해주세요.”
“이제 반목은 그만!! 위기를 이겨냅시다”
“박명래 총장님, 힘내세요!”

협성대에서 진행된 한 시위 현수막에 적힌 문구 내용들
이번에는 사진도 한 번 보실까요?
사진설명 / 협성대 교문을 들어서면 제일 처음 보이는 중앙계단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박명래 총장 응원 시위를 진행 중인 모습. 맨 앞줄에는 학생들이, 뒷줄에는 신학대 교수와 총장 비서 등 교직원들이 박명래 총장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혹시, 예상했던 장면이 이게 아니었나요? 폭언과 폭행을 한 총장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심지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위라니요. 당황스러우실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현재 박명래 총장은 경찰 수사 결과, 폭행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상태인데요. 사진만 보면, 마치 박 총장이 폭행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오해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사진 속 현수막 문구만큼이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위대 제일 앞줄에 선 학생들의 얼굴이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현수막의 내용을 알리고 싶거나 보이고 싶어서였을 텐데요. 집회에 나온 학생 일부는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현수막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사진설명 / "총장님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은 신학대 교수들. 그 앞에 학생들이 박 총장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얼굴 높이까지 높게 들고 서 있다.
사진만 우연히 그렇게 찍힌 걸까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날 현수막 집회를 본 협성대의 한 학생은 “현수막을 든 학생들이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기에 그들도 저 자리에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건 아니었겠구나 생각했다"며 "시위 장소에 나와 있는 학생들이 불쌍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왜 시위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렸을까요? 이들은 과연 자발적으로 박 총장을 응원하기 위해 나왔을까요?
시위대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총장실 비서, 대외협력처장, 신학대학장 등 총장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보직 교수와 직원들입니다. 총장 측근 교직원들이 마련한 총장 격려 행사에 학생들을 구색 갖추기 용으로 동원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위에 나간 학생들을 접촉해봤습니다. 답변을 듣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일부 학생으로부터 어렵사리 시위 참여 경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총장 응원 시위에 참여했던 한 학생의 말입니다.
“학내에 박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학생들 의견이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쪽은 아니었어요.
박 총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니,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행동하자는 입장이었죠.
그 전까지는 중립을 지키자는 쪽이었고요.
그런데 한 교수님께서 총장님 격려하는 행사를 하는데 참여해달라고 제안을 하셨고,
고민 끝에 나가기로 결정했어요. 제가 스스로 선택해서 나간 건 맞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마치 북한에서 김정은 찬양하는 것처럼 현수막에 총장님 사랑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고...
모양새가 웃기다고는 생각했어요.”

박명래 총장 응원 시위에 참여했던 협성대 학생 A씨

신학대학 교수 제안으로 응원 시위 참여…학생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취재 결과, 총장 응원 시위는 신학대 일부 교수들이 기획한 행사였습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제안을 받고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참여한 학생마다 조금씩 의견 차는 있었지만 분명한 건 학생들이 박명래 총장을 응원하거나 지지해서 시위에 참여했던 건 아니라는 겁니다. 현수막 내용이 무엇이었지도 모른 채 집회에 참여했다가 후회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이런 황당한 시위에 참여하라고 제안한 교수는 누구일까요? 박 총장 응원 시위를 제안한 교수는 협성대 발전협력실장을 맡고 있는 김 모 신학대학 석좌교수였습니다. 김 교수는 서울 한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학내에선 박 총장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집회에 참여한 학생 대부분은 신학대학원 학생들이자, 김 교수가 수장으로 있는 발전협력실 소속 근로장학생 등이었습니다.
즉, 김 교수가 자신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학생들에게 주로 시위 참여를 제안한 건데요. 김 교수의 제안을 학생들이 쉽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이번 시위 준비 과정을 지켜 본 한 협성대 직원에 따르면, 김 교수는 학생들이 응원 시위대의 맨 앞줄에 서도록 자리 배치까지 직접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기획한 김 교수는 학생을 동원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학생들이 우연히 총장 응원 시위 소식을 접하고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겁니다. 
제가 어느 날 연구실에서 신학대학장님과 함께 총장님을 격려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행사를 생각하게 됐고, 연구실을 찾아온 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이지 절대로 제가 동원한 게 아닙니다.

협성대 신학대학 김 모 석좌교수(발전협력실장)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이번 응원 시위가 박명래 총장의 잘못을 두둔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박 총장이 "지은 죄보다 죗값을 많이 치르고 있는 것 같아 위로하려고 마련한 행사"라고 했습니다.
“여러 군데 사건이 보도되면서 총장님이 많이 위축돼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단순히 기운을 내게 해드릴 생각으로 기획한 행사였어요. 총장님의 폭언이 정당했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다만 '절망하고 낙심해 있는 총장님, 출근길에 응원을 한 번 해드리는 게 좋겠다' 단순히 그 생각이었어요.”

협성대 신학대학 김 모 석좌교수(발전협력실장)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하는 직장에서, 낙심하고 절망해 있는 가해자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출근길 응원 시위. 이 시위를 박 총장만 봤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피해자까지 봤습니다. 이 시위를 본 학생들은 “부끄럽고 민망했다”고 말했고, 피해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습니다.
좀, 입장 바꿔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직장에서 직장 대표로부터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했는데, 동료 직원들이 폭행의 가해자를 응원한다면, 심지어 응원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회사 입구에 서 있다면, 그런 직장으로 출근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 또한 피해자에게는 2차 폭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 황당한 시위 이후, 협성대에는 오히려 박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협성대 교수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부터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출근길 시위를 매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협성대 직원노조, 총동문회도 성명서를 내고 총장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협성대 교수노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교수들은 지난 18일부터 총장 응원 시위가 있었던 협성대 중앙계단에서 박명래 총장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조용하던 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건 발생 4개월 만의 변화입니다. 협성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설문조사를 통해 전체 학생 1/5이상이 동의하면 총장 사퇴 운동을 벌이기로 했는데, 지난 13일 그 숫자를 넘겼습니다. 올해 2학기 재학생 3878명 중 1070명(26.9%)이 총장 사퇴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서명한 겁니다. 이런 결과에 따라 총학생회 비대위는 지난 18일부터 박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포스트잇 부착 시위, 릴레이 일인 시위, SNS시위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설명 / 협성대 인문사회과학대학 1층 로비. 총학생회 성명서 옆에 학생들이 총장 사퇴를 촉구하며 작성한 포스트잇 메모가 여러장 부착돼 있다. (사진=협성대 학생 제공)
예비 목회자들인 신학대학원(4학기) 원우회도 지난 16일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협성대 신학대학원은 4학기, 6학기 두 개의 과정이 있고, 원우회도 두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협성대 신학대학원(4학기)의 원우회 한 간부는“처음에는 신학대 학생들 대부분이 총장 사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학생들이 총장의 폭언, 폭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며 “뉴스타파 보도를 보고 사건을 적나라하게 알게 됐고, 그 후 학생들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신학대학원 학생은 “예수님은 늘 약자의 편에 서셨던 분인데 총장 편에 선 교수와 직원들을 보며 기독교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총장 퇴진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불행 중 참 다행인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학마다 똑같은 패턴...'비리 발생'-'학생 동원'-'사건 무마 시도' 되풀이

사립대학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취재하다 보면 빠짐없이 보게 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들이 사건을 무마하는 데 꼭 학생을 이용하거나 동원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취재했던 경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의 학회 비리 의혹을 폭로했더니, 해당 교수가 대학원생들을 동원해 자신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각서를 받는 일이 있었고요. 과거 수원대에선 교비 횡령 의 비리가 밝혀진 이인수 총장의 처벌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서명운동을 보직교수들이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언제까지 총장과 교수 등 학교의 권력자들이 저지른 잘못을 은폐하는 일에 학생들이 이용되어야 할까요? 언제까지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을'의 입장에 있어야 할까요?
이번 협성대 사건을 취재하면서 떠오른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포신구화(抱薪救火)’. 땔감을 안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해를 막으려다가 도리어 일을 더 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총장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의 사생활을 사찰했던 협성대 대외협력부총장, 피해자에게 낙하산 인사라는 낙인을 찍으며 총장 구명용 탄원서를 작성했던 대외협력처장. 총장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행사에 학생을 동원한 신학대 석좌교수까지.
총장의 잘못을 감싸려다 피해자에게는 또 한 번의 상처를, 학생들에게는 부끄러움을 안긴 사람들. 이들은 모두 박 총장이 임명한 보직자이기 이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직원노조와 피해자가 학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외부로 알려 문제를 키웠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선생이라는 본분보다 교직원의 역할에 더 충실해 총장 구하기에 나섰던 이분들이야말로 잘못된 방법으로 사건을 축소하려다 오히려 일을 크게 키운 주역이 아니었을까요?
무려 4개월을 끌었던 박명래 총장에 대한 학교법인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오는 22일 발표됩니다. 과연 법인 조사위는 총장을 응원하는 시위와 규탄하는 시위, 어느 쪽에 더 귀를 기울였을까요. 학교법인이 오랜 시간 조사를 미뤄온 만큼, 부디 그 실책을 만회하고 긴 시간 상처받은 피해자와 학생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결론을 내렸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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