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피즘, 협상 테이블 위에 멀리건은 없다
2024년 11월 15일 16시 00분
⬤ 러시아 마피아 출신 소유 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 지난해 말 경영난 이유로 폐업
⬤ 2007년 호텔 매입 당시 페이퍼컴퍼니, 차명계좌 동원 자금 세탁 흔적 확인
⬤ 귀화 시험지 빼돌려 불법 국적 취득… 법무부 “귀화 취소 검토”
⬤ 고의 적자 의혹...노조는 고용 승계 요구하며 농성중
⬤ 올해 3월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 노조 “위장 폐업, 레지던스 사업 공모”
부산 해운대 한복판,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해운대그랜드호텔. 8월 성수기임에도 피서객들을 맞아야할 호텔은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은 아니다. 철제 펜스가 호텔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외벽에는 이 건물을 사들인 부동산개발업체의 부동산 광고가 걸려 있다. 지상 22층, 지하 6층의 객실수가 300개가 넘는 5성급 최고 호텔이었다.
지하 3층에는 8개월 넘게 호텔 직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호텔 원년 멤버인 김옥경 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해 20여 명의 직원들이다. 300여 명의 직원들 중, 대다수는 사측의 압박 속에 희망퇴직했고, 지금은 노조 소속 20여 명의 노동자들만 남았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31일, 갑작스러운 폐업 결정에 반발해 농성을 시작했다. 호텔 경영진은 누구이며 이들은 왜, 갑자기 호텔 문을 닫게 했을까.
뉴스타파는 해운대그랜드호텔의 실질적인 소유주였던 러시아 출신 사업가 허 세르게이와 그의 부인이자 해운대그랜드호텔의 대표였던 손련화 씨를 추적했다. 취재 결과 허 세르게이는 러시아에서 수배를 받았던 밀수 조직의 일원이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007년 호텔 인수 과정에서는 홍콩의 페이퍼컴퍼니와 차명 계좌를 동원해 자금을 불법 세탁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와 함께 뉴스타파는 이들이 귀화 시험지를 미리 빼내는 방법으로 국적을 불법 취득했다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했다. 법무부 조사 결과 불법 국적 취득이 공식 확인될 경우, 세르게이 일당은 국내 재산을 강제 처분하고 국외로 추방당하게 된다.
세르게이 일당은 지난 2007년 12월에 호텔을 인수했다. 매입 대금은 1020억원.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랜드호텔의 새 주인은 러시아계 인물인 허 세르게이와 그의 부인 손련화, 그리고 동업자인 김 모씨였다. 당시 국내 언론은 허 세르게이를 러시아 극동의 조그만 항구인 나호트카지역 출신으로, 무역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인물로 소개했다.
뉴스타파는 러시아 언론 보도에서 허 세르게이 일당의 과거 행적을 찾아봤다. 2008년 4월,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의 밀수 범죄 단체 사건 기사에서 허 세르게이의 이름을 발견했다. 러시아 검찰 수사 결과를 보도한 이 기사에 따르면, 허 세르게이가 가담한 밀수 범죄 단체는 한국산과 중국산 제품 24억 루블 어치, 우리 돈으로 380억 원 어치를 밀수하다 러시아 검찰에 적발됐다. 허 세르게이는 현재 수배중이며, 밀수에 사용된 선박을 한국의 부산항과 러시아 나호트카항에서 직접 빌린, 주요 인물로 소개됐다.
허 세르게이 일당이 부산 해운대에 나타난 것은 이같은 밀수 범죄가 시작되기 3년 전인 2002년부터였다. (주)메르디안해운이라는 무역 회사를 설립한 뒤, 해운대 일대 땅과 건물, 아파트 등의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건물과 토지는 물론 해운대 주상복합 아파트의 펜트하우스까지 사들였고, 지난 2007년 12월, 마침내 그랜드 호텔까지 인수한 것이다.
세르게이 일당의 그랜드 호텔 매입 당시 수상한 러시아 자금이 대거 유입되자, 수사당국이 자금 출처를 살펴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루머 때문에, 당시 허 세르게이의 동업자였던 한국인 김 모 씨가 기자회견을 자처하기도 했다. “호텔 인수 자금은 러시아 마피아 자금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것.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후 수사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수사망을 벗어난 세르게이 일당은 부산의 최고급 펜트하우스에 살며 요트를 즐기는 등 호화 생활을 만끽했다. 호텔은 지난 2017년 최고등급인 5성급 인증을 받으면서 최고 호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해 말 세르게이 일당은 호텔을 갑작스럽게 폐업했고, 올해 3월에는 부동산 개발업체인 ‘엠디엠플러스’ 에 호텔 부동산을 매각했다. 매각 가격은 2,480억 원, 13년 동안의 투자 수익은 1,460억 원에 달한다. 길게는 20년 이상 호텔을 지켜오던 노동자 300명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뉴스타파는 허 세르게이 일당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2년 전의 ‘검은 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자필 진술서를 입수했다. 세르게이 일당이 호텔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차명 계좌를 동원해 해외에서 들어온 매입 자금을 세탁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들 일당의 동업자였던 김 모씨가 2014년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뉴스타파는 수소문 끝에 이 진술서를 작성한 주 모씨를 만났다. 과거 식품 수출회사 PGM 인터내셔널을 운영했던 주 씨는 러시아에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세르게이 일당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업상 파트너였던 세르게이 일당은 2007년 경 그에게 위험한 부탁을 해왔다. 주 씨가 운영하던 PGM 인터내셔널의 법인 통장을 통해 다른 명목으로 해외에서 호텔 매입 자금을 들여오게 해달라, 즉 돈 세탁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랜드호텔을 살려고 했는데, 돈이 좀 부족하니까 홍콩에 있는 허 세르게이 옵티마 회사에서 PGM 회사로 돈이 260억원이 들어올 것이다. 먼저 돼지고기를 사겠다는 선수금으로 주면 그 돈을 피지엠회사에 받아갔고 있다가 퍼시픽 인터내셔널 해운으로 들어가가지고 퍼시픽 인터내셔널에서, 그랜드 인수할 때 자금으로 들어간 거에요.”
- 주OO씨 / 전 PGM인터내셔날 대표
그는 뉴스타파에 법인 통장의 ‘예금거래 실적증명서’를 공개했다. 이 증명서에 따르면 2007년 12월 27일 오전 10시 19분, 홍콩에 있는 ‘OPTIMA GR’이라는 회사에서 268억원이 PGM 인터내셔널의 법인 통장으로 입금 됐다가, 7분 뒤에 그대로 빠져나갔다. 증명서에는 이 돈이 어디로 삐져나갔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주 씨는 이 돈이 그랜드호텔을 사들인 퍼시픽인터내셔널 해운이라는 회사의 통장으로 옮겨져 호텔 매입자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PGM 법인 명의 통장에 268억 원이 들어왔다 7분만에 빠져 나간 바로 다음 날인 2007년 12월 28일에 호텔 인수 계약이 이뤄졌다.
뉴스타파는 주 씨가 말한, PGM 법인 통장에 268억 원을 송금한 홍콩법인 ‘옵티마’를 찾기 위해 홍콩 법인 등기부를 살펴봤다. ‘옵티마’로 검색하니, 의문의 거래가 이뤄진 2007년에는 옵티마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회사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이름은 ‘옵티마 그룹 리미티드’. 회사 주식은 달랑 한 주로, 주가는 1홍콩달러로 돼있는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였다.
회사의 유일한 이사는 피아티고리츠 세르게이라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런데 2007년 그랜드 호텔을 사들인 퍼시픽 인터내셔널 해운의 등기 이사 가운데서도 같은 이름이 등장했다. 호텔 매입자금을 보낸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와 한국에서 호텔을 사들인 법인의 등기부 등본에서 같은 러시아인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게다가 이 인물이 홍콩 페이퍼 컴퍼니에 남긴 주소지는 러시아 극동지방의 나호트카항으로, 허 세르게이의 근거지와 같았다. 주 씨의 주장대로 홍콩에서 들어와 세탁된 자금이 호텔의 매입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뉴스타파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조세도피처에서도 이 러시아 인물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추가로 발견했다. 뉴스타파가 지난 2013년 ICIJ, 국제탐사보도언론인 협회와 함께 보도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조세도피처의 유출 자료에 따르면, 피아티고르치 세르게이는 2007년 ‘배스트 브라이트 그룹 리미티드’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여권에 찍힌 생년월일은 퍼시픽인터내셜해운에 이사로 등재한 피아티고리츠 세르게이의 생년월일과 일치했다. 결국 이 피아티고리츠 세르게이라는 인물은 호텔을 사들인 법인과, 홍콩에서 돈을 보낸 페이퍼 컴퍼니와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까지 세 차례 반복해서 등장하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보면, 2000년대 초반 러시아에서 밀수로 돈을 벌어들인 세르게이 일당은 2007년 조세도피처에 만든 페이퍼 컴퍼니로 자금을 옮겼고, 이후 홍콩에 설립한 법인을 통해 한국의 돼지고기 수출 회사 계좌로 다시 돈을 송금해 호텔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외환 관리법 위반 소지가 커 보이는 대목이다.
뉴스타파는 이와 함께 허 세르게이 씨의 부인인 손련화 씨가 법무부가 주관하는 귀화 시험지를 유출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진술과 물증을 확인했다. 취재에 응한 인물은 호텔 총괄 본부장을 지낸 조 모씨다. 조 씨는 뉴스타파 취재진을 만나, 러시아 수사 당국을 피해 나온 세르게이 일당에게는 새로운 국적이 필요했는데, 자신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이를 해결해주었다고 말했다.
“귀화를 신청하면 원하는 날짜에 시험을 보는 게 아니에요. 귀화 신청자가 많아서 대기를 한 1, 2년 해야 된다고 그러대요. 세르게이 일당은 지금 러시아에서 다 도망 나와야 되는 형편이니까 서둘러라달라고 요구했어요. 처음에는 빨리 시험치게 해달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시험지를 유출해달라고 하는 거에요. 근데 알아보는 과정에서 잘 하면 가능하겠더라고요. 결론적으로, 법무부에 아는 사람 통해서 시험지를 받아냈어요.”
- 조OO씨 / 해운대그랜드호텔 전 총괄본부장
그는 뉴스타파에 법무부 관계자로부터 빼돌렸다는 2006년 7월의 귀화 시험 문제지를 공개했다. 문제지는 ‘국적필기시험’ 이라는 제목에, 두 가지 유형로 나눠져 있다. 유형당 20문제씩, 우리나라의 역사와 맞춤범, 어휘 등을 묻는 문제가 들어 있었다. 그는 세르게이의 부인인 손련화 씨가 문제지를 건네 받은 뒤 정답을 미리 외워 시험에서 고득점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한 80점만 맞으라니까 너무 많이 맞힌 거예요. 귀화 시험 통과하는 정도로만 맞으면 되는데, 한 문제 틀리고 다 맞혔던가 그럴 거예요.”
- 조OO씨 / 해운대그랜드호텔 전 총괄본부장
손련화 씨가 소유한 부동산 등기부에 따르면, 손 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시점은 지난 2006년 9월 1일자로 확인됐다. 시험지를 빼돌려 국적 시험을 치른 게 2006년 7월이라고 했으니 국적취득 시점만 보면 앞뒤가 맞는 주장이다. 허 세르게이는 2006년 12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가족 중의 한 명이 귀화 시험을 통과해 국적을 취득할 경우 다른 가족은 보다 손쉽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뉴스타파는 법무부에 조 씨가 뉴스타파에 공개한 귀화 시험 문제지를 보내, 이 문제지가 2006년 7월의 시험지와 동일한지, 또, 손련화 씨가 이 시험을 통해 국적을 취득했는지 물었다. 며칠 뒤, 법무부는 “해당 시험지는 2006년 7월에 시행된 국적필기시험 내용과 유사한 것으로 확인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제3자에게 시험 응시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며 손련화 씨가 당시 시험을 봤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국적을 부정하게 취득한 게 확인되면 국적 취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14년 전 시험지라 실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실제로 시험을 치른 문제지를 스캔 본으로 가지고 있거든요. 100%로 동일하지는 않고, 유사하다는 겁니다.”
● (유사하다는 게 어떤 의미죠?)
○ “그 분의 자료를 확인했을 때 내용이 대동소이한 것 같아요.”
● (이게 14년 전 일인데 만약에 부당한 방법으로 시험 치른 게 확인이 되면 어떻게 되나요?)
○ “당연히 그 분이 부정하게 취득된 게 확인이 되면 취소 여부를 검토하게 되는 거죠.”
- 법무부 국적과 관계자
정리하면, 러시아에서 밀수에 가담한 세르게이 일당은 수사 당국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자금을 세탁했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도 불법이 있었다는 정황이 뉴스타파 취재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2008년과 2014년, 수사 당국은 두 차례에 걸쳐 세르게이 일당의 의혹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세르게이 일당은 번번이 수사망을 빠져나갔고, 부산 해운대 한복판에서 막대한 부를 누려왔다. 그리고 결국에는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긴 뒤 24년 전통의 특급호텔과 300명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돈 세탁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불법 국적 취득이 확인될 경우 국내 재산을 강제 처분하고 추방하는 게 원칙이다. 해운대 그랜드호텔 노조는 13년 만에 나타난 새로운 증언과 자료들에 근거해 세르게이 일당의 자금세탁과 불법 국적 취득 문제를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허 세르게이측은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리인을 통해 이메일로 답변을 보내왔다. 이들은 “해운대그랜드 호텔의 인수는 적법하게 이뤄졌으며, 자금 세탁이나 세금 탈루는 전혀 없었다”, “손련화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 과정에 어떠한 탈법행위도 전혀 없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보내왔다. 뉴스타파와의 대면 인터뷰는 현재 국내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뉴스타파는 세르게이 일당이 폐업의 이유로 내세운 호텔의 경영 적자가 사실인지도 따져봤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호텔의 당기 순이익은 5년치를 합쳐 60억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2019년 세르게이 일당은 78억원의 손실이 났다고 공시했지만 외부 감사 법인은 회계 자료를 받지 못했다며 감사 의견을 거절했다. 실제로 손실이 났는지, 손실의 규모는 얼마인지 공식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세르게이 일당은 호텔의 주요 수익사업인 예식을 비롯해 각종 행사들을 취소시켰다. 부산을 대표하는 행사인 부산국제영화제의 리셉션 등 주요 행사는 해마다 해운대그랜드호텔에서 열렸는데, 지난해 세르게이 일당은 노조 측과 쟁의중이라는 이유로 영화제 행사들마저 취소하고 손해배상금까지 물어줬다. 회사가 폐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적자를 낸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경영진들이 예약하신 분한테 전화를 하는 거죠. ‘해운대 그랜드호텔 관련 뉴스 보셨습니까?’하고 본 사람도 있고, 안 본 사람도 있겠죠. 뉴스를 본 사람은 ‘네, 봤습니다’, 그러면 ‘쟁의를 언제 할지 모르는데’, ‘연회 행사의 제일 꽃은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 ‘ ‘식사를 제공을 못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이러면 누가 호텔에서 행사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 최성호 / 해운대그랜드호텔 18년 근무
“지난해 10월, 호텔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어요. 노조가 쟁의 중이라는 이유였죠. 좀 늦게 얘기를 해서 당황을 했거든요. 부산국제영화제 리셉션 이틀 전이었거든요. 영화제 한참 이후에 호텔측이 예약 취소에 대해 손해배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
해운대그랜드호텔 노조는 폐업이 부당하고, 해고는 무효라며 세르게이 일당을 상대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부산지방노동위원회와 이어 중앙노동위원회는 세르게이 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호텔 폐업이 경영난에 따른 것이라는 허 세르게이 일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더구나, 호텔 건물을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체 엠디엠플러스측은 호텔 지하에서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중인 노조 조합원들에게 퇴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호텔의 제빵사로 9년 동안 일하던 양 모씨는 임신부의 몸으로 농성에 참여하다 지난달 13일 유산했다. 유산 전날 법원 집행관들과 엠디엠플러스측 인사들이 농성장에 내려왔다. 법원 집행관은 노조원들에게 “현재 이 건물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퇴거를 집행할 수밖에 없다, 경찰이 밖에서 대기중이다”며 퇴거를 압박했다. 당시는 퇴거 소송 절차 중 양측의 조정이 진행중이었다.
“그 사람들이 오고 나서 불안하더라고요. 그날 저녁부터 배가 아팠고, 다음날 새벽에는 피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병원 갔더니 유산이라고 했어요. 며칠씩 지하 노조 사무실에서 자느라,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있고요.”
- 양OO씨 /해운대그랜드호텔 9년 근무
노조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부당한 해고와 위장 폐업을 알리는 청원글을 올렸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MJN8yH
노조는 세르게이 일당과 엠디엠플러스측이 체결한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근거로 양측의 이면 합의 의혹을 제기했다. 두 회사 간의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제3조 3항에는 호텔은 부동산 내 “점유자가 없음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매매계약 체결 당시, 노조는 분명히 지하 3층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계약서 제6조를 보면, “호텔 측 잘못으로 계약이 해제되면 매매 대금의 10%인 248억원을 물어주고, 이와 별개로 엠디엠플러스측에 모든 손해를 배상한다”고 적혀 있다. 노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르게이 일당이 엠디엠플러스측에 피해를 전액 보상해야 하는, 불리한 내용이다. 노조는 이같은 일방적인 내용이 계약서에 들어간 것은 세르게이 일당과 엠디엠 측이 이후 사업을 함께 한다는 이면합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의심하는 근거는 또 있다. 세르게이 일당은 호텔을 폐업시킨 뒤 회사명을 (주)해운대그랜드호텔에서 (주)해운대그랜드로 변경했는데, (주)해운대그랜드 법인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사업 목적에서 호텔업종을 삭제하고 부동산 임대업을 추가했다. 그런데 엠디엠플러스 부동산 신탁 원부를 보면 호텔 자리에 2000여 세대가 넘는 생활형 숙박시설을 신축하겠다고 돼있다. 분양형 레지던스 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노조측은 세르게이 일당이 엠디엠플러스측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사업 목적을 호텔업에서 부동산 임대업으로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엠디엠플러스측과 세르게이 일당은 이면계약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여기는 세르게이 일당의 왕국 아닙니까?호텔 부지에 레지던스를 지으면 8천억원에서 1조억 원의 부가효과가 있습니다. 이 돈을 세르게이 일당이 버리겠습니까? 엠디엠플러스과 같이 갑니다. 보세요. 절대로 같이 갑니다. (폐업은)쇼입니다, 지금.”
- 김옥경 해운대그랜드호텔 노조 위원장
하지만 세르게이 일당과 엠디엠플러스는 이면 합의를 일체 부정하고 있다. 세르게이 측은 “부동산 매각 과정에 이면 합의이나 밀실 계약은 전혀 없었다”며 “저희는 부동산 매각 이후 부동산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엠디엠플러스가 부동산을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엠디엠플러스측도 “생활형 숙박시설 신축 계획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형식적 요건으로 기재된 것으로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며 “자신들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불법점거로, 완전한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있는 피해자”라고 밝혔다.
취재 | 강민수 |
촬영 | 신영철 정형민 |
편집 | 박서영 정지성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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