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안전

원전입찰의 비밀...한수원과 업체의 ‘사전회의’

2014년 11월 11일 23시 48분

한국수력원자력이 특정 민간업체들과 수차례 사전 회의를 하면서 입찰에 필요한 내부 정보를 흘려주고, 이후 업체들이 관련 용역을 따낸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용역의 발주 및 수주와 관련해 한수원과 원전 업체 사이에 유착 실태가 확인된 것이다.

뉴스타파가 원전업체를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한수원 중앙연구원 신뢰도기술팀 황 모 연구원은 2011년 9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원전 업체들과 수차례에 걸쳐 용역 발주 관련 사전 회의를 해왔고, 이메일을 보내 입찰 관련 정보도 수시로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수원과 사전 회의를 하면서 자료를 제공받은 업체는 <미래와도전>, <액트>, <에네시스> 등 3곳이다. 모두 핵발전소 내 중대사고 관련 전문 용역업체다. 실제 뉴스타파가 입수한 황 연구원이 보낸 이메일의 수신자 목록을 보면, 이들 3개 업체의 간부들 명단이 포함돼 있었다. 또 이들 민간 업체 3곳 외에도 한전기술, 원자력연구원 등도 입찰 관련 사전 회의에 참여했다

황 연구원이 업체에 보낸 이메일은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유선상으로 말씀드린바와 같이 다음주에 각 기관별로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시길 바란다 용역 상세 Scope 등 기관별 용역 발주 서류 협의를 위해 회의를 하고자 한다

또 첨부파일에는 주로 정지저출력 PSA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 개발과 관련한 각종 자료가 담겨 있었다. 여기에는 한수원 내부자료도 들어 있다. 황 연구원이 업체들에 보낸 이메일 은 취재팀이 확인한 것만 10 건에 이른다.

이같은 정보 제공과 사전 모임은 용역 발주가 진행되기 직전까지 1년 정도 계속됐다. 또 이들 민간 업체 3곳 외에도 한전기술, 원자력연구원 등도 입찰 관련 사전 회의에 참여했다.

2012년 10월 해당 용역사업 발주 공고 일주일 전, 한수원 담당자는 용역 발주 예정을 알리는 메일을 업체들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늦어도 다음 주에는 발주가 될 것 같다', ‘용역 1,2가 함께 발주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또 전출력 분야는 원자력연구원과 중앙연구원이 준비하고 정지저출력은 한전기술이 준비하는 등 구체적인 역할분담도 정해 놓는 등 연구용역 관련해 치밀하게 사전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주일 뒤인 2012년 10월 19일 한수원은 “정지저출력 PSA 개발”의 입찰 공고를 낸다. 그리고 입찰 결과, 월성과 울진 원전의 PSA 개발은 128억 원에 원자력연구원이, 고리와 영광 원전은 205억 원에 한전기술이 각각 단독 낙찰 받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표면상으로만 단독 낙찰이었다.

실제 낙찰 내역을 보니 월성과 울진의 경우, 원자력연구원 단독이 아닌 같이 회의에 참여했던 민간업체 <액트>와 공동 용역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원자력연구원과 <액트>는 용역금액 128억 원을 50대 50으로 나눴고, 고리와 영광의 205억 원짜리 계약도 한전기술과 <미래와 도전>이 각각 절반 정도 지분으로 공동 용역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2개의 사기업이 공기업과 정부 연구기관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핵발전소 두 개씩에 대해 사이좋게 용역사업을 나눠가진 셈이다.

결국 용역 발주 1년 전부터 한수원과 사기업을 포함한 입찰 업체 사이에 수차례 사전 회의가 진행됐고, 결국 관련 업체들이 용역을 나란히 수주 받은 사실이 뉴스타파의 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더구나 핵발전소 2개씩 나눠 할당된 용역 사업은 모두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 계약 방식으로 낙찰자가 정해졌다. 사전 논의를 통한 담합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담합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PSA 평가를 할 수 있는 곳은 자신들뿐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 ‘나눠먹기’나 ‘담합’이 아닌 ‘역할 분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수원 내부 규정은 입찰과 관련해 업체와의 모든 사전 논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다음은 한수원 ‘입찰 유의서’ 23조 2항 <청렴계약 및 공정거래 준수 의무> 조항이다.

입찰과 관련해 입찰가격 또는 특정인의 낙찰을 위한 담함 등 어떠한 사항에 대해서도 경쟁자들과 사전에 협의, 연락, 합의, 조정 등을 한 사실이 없음을 서약함과 동시에 이후에도 자유경쟁을 부당하게 저해하는 일체의 불공정한 행위를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경쟁업체 사이의 사전 협의, 연락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입찰 업체가 이를 위반해 담합 사실이 인정될 경우, 입찰 무효는 물론 검찰 고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오히려 입찰 예정 업체들을 여러 차례 불러 입찰과 관련한 사전 논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수원 스스로 이같은 내부 규정을 어긴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주민 변호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입찰은 국가 계약법에 따라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특정업체에게 사전에 정보를 준다든지 또는 특정업체에 형성될 가격을 미리 알려줘서는 안된다. 그런데 지금 진행됐던 것을 보면 계약의 내용이나 취지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형성될 가격에 대한 정보도 제공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진짜 그렇게 됐다면 당연히 국가 계약법이라든지 관련된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 업체들이 그런(용역 수행) 능력을 가졌는지도 공정한 입찰과정에서 판단이 돼야 하는 것이다. ‘사전에 이 업체들밖에 할 수 없다'하고 판단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종의 담합이 형성됐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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