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입찰의 비밀...한수원과 업체의 ‘사전회의’
2014년 11월 11일 23시 48분
한국수력원자력이 용역사업 입찰 참가 예정 업체 간부들을 불러 사업 관련 사전 논의를 하고 사업 정보 등이 담긴 내부 문건까지 수시로 제공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드러났다. 국가 1급 보안 수준을 요구받는 한수원이 내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하는 행위는 엄격히 제한돼 있다.
뉴스타파가 한수원과 납품, 용역 계약을 맺은 민간업체 등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한수원 중앙연구원 황 모 연구원은 지난 2011년 9월 핵발전소 중대사고 대비 관련 용역의 발주 계획이 담긴 내부 문건을 이메일로 입찰 참여 예정 업체 3곳에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황 연구원이 업체에 전달한 내부 문건은 모두 6건, 정지저출력 PSA(확률론적 안전성 평가)와 중대사고 관리지침 개발 수립 관련 회의록 등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용역 예상 금액은 물론, 추진 방안과 추진 일정도 나온다. 또 23개 핵발전소 별 조치 계획까지 시기 별로 기재돼 있는 등 핵발전소 내 중대 사고에 대비한 용역 발주 계획이 상세히 담겨 있다.
이 내부 문건을 제공받은 업체는 <미래와도전>, <액트>, <에네시스> 등 3곳, 모두 핵발전소 중대사고와 관련한 안전 진단과 평가 전문 업체다. 관련 용역의 입찰 예정 업체들에게 한수원 내부 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유출된 내부 문건에는 안전 규제기관들의 내부 회의록도 포함됐다.
유출된 회의록에는 원자력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자력연구원, 한전기술, 한수원 연구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지저출력 PSA 개발 관련 수행 범위와 일정 등 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입찰 공고 6개월 전에는 관련 용역의 입찰 시방서까지 관련 업체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수원 내부 문건의 제공은 뉴스타파가 확인한 시기만 한정해서도 2011년 9월부터 2012년 3월 말까지 7개월 동안 계속됐다.
뉴스타파가 만난 원전업계의 한 임원은 익명을 전제로 “입찰 전에 시방서 같은 한수원 자료를 미리 제공받으면, 업체로서는 (입찰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해 기술 심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업체에겐 대단히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자료를 미리 전달받은 입찰 참여 예정 업체 입장에서는 입찰 관련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사실상 특혜를 받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특혜를 강력 부인했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 자신들 뿐이고, 입찰 관련 한수원 내부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밝혔다. 또 핵발전소 중대사고 관련 PSA 용역 등은 한수원이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오히려 한수원을 도와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한수원의 내부 문건이 입찰 참여 예정 기업에 아무런 통제 없이 수차례 제공됐다는 것이다. 국가 1급 보안시설인 한수원의 내부 자료는 외부 유출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뉴스타파는 사기업에 내부 문건을 제공한 경위가 무엇인지, 문건의 유출이 한수원 내부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한수원 담당자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처음에 “내부 문건을 업체에 제공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가 취재진이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자, “어떤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취재진은 한수원 중앙연구원을 찾아 거듭 확인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은 잘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수원이 일부 원전업체와 용역 사업 정보를 사전에 논의한 것은 물론 내부 문건까지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고 결과적으로 관련 업체들이 용역을 수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수원과 원전 업계의 유착 실태가 다시 확인됐다. 한 해 5조 원 대에 이르는 한수원 입찰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점검과 실태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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