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현대중공업 46년치 산재 전수조사...비정규직 사망이 압도

2020년 07월 03일 13시 48분

2005년부터 산재 사망 비정규직 압도… 46년간 467명 숨져

현대중공업에선 1974년 조선소 완공 이후 지금까지 46년 동안 46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한 달에 1명씩 죽었고, 2005년 이후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망자 수가 역전돼 위험의 외주화가 고착화됐다. 같은 유형의 사고도 재발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 5월 20일 1974년부터 최근까지 46년치 산재 사망자를 전수조사해 발표했다. 발표일은 지난 4월 16일과 21일 구조물에 끼여 노동자가 숨지는 산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뒤, 이와 관련해 시작된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이 끝나는 날이었다. 

발표 다음날인 5월 21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숨졌다.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자는 2017~2019년 해마다 1명에 그쳤으나 올해 들어선 벌써 5명이나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20분 현대중공업 내 14안벽 3126호선 LNG운반선에서 지름 80cm 파이프 용접작업하던 하청노동자 34살 김 모 씨가 파이프 안에서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최근 카타르에서 100척을 수주 받아 언론이 ‘잭팟’이 터졌다고 환호했던 바로 그 LNG운반선을 만들다 숨졌다. 

▲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21일 34살 하청노동자가 아르곤가스 질식사한 파이프 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소속 다른 노동자들 뒤섞인 현장서 시간 쫓기며 작업

숨진 김씨는 용접용 아르곤 가스를 파이프 안에 채우고 밖에서 용접한 뒤 점검차 파이프 안에 들어갔다가 산소 부족으로 질식했다. 8년 전에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일어났다. 그 때도 36살 하청 노동자가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2012년 5월 30일 오후 4시10분께 현대중공업 해양선박의장부 하청노동자 강모 씨가 용접 뒤 점검차 파이프 안에 들어갔다가 질식사 했다.

아르곤가스는 용접 때 산소를 차단하려고 사용하는 무색, 무취, 무독성인데 공기보다 무거워 밀폐공간에선 산소 부족에 의한 질식 위험이 있어 충분히 환기하고 산소농도를 측정하고 작업해야 하는데 작업속도에 떠밀려 이를 미루는 바람에 질식사의 요인이 된다. 

특히 이번 질식사고 땐 1개 작업에 2개 부서에 소속된 서로 다른 하청업체 작업자가 투입돼 안전관리가 더 소홀했다. 사고 현장을 다녀온 노조 간부는 “설치된 족장과 파이프 때문에 구조용 바스켓이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고, 작업자가 작업하던 파이프도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가 작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고 했다. 이 간부는 “아르곤가스 질식 사고는 현대중공업은 물론이고 몇 년 전 인근 현대미포조선에도 일어났는데 여러 하청업체 노동자가 뒤섞여 시간에 쫓기며 작업하다보면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고 했다. 

▲ 아르곤가스 질식사고는 현대중공업에서 반복되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가 2012년 5월 30일 36살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현장사진과 사고 경위 등을 노보에 밝혔다. 사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뉴스타파는 20년 넘게 조선업을 연구해온 박종식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의 도움으로 현대중공업노조가 발표한 46년치 산재 사망자 통계를 현대중공업 선박 건조량(생산량)과 비교해 분석했다. 

46년 동안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계속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면서도 특정 시기에 급격히 치솟았다. 대체로는 선박건조량이 늘수록 산재 사망자도 많아졌다. 

추락과 압착, 전체 사망사고의 절반 넘어

전체 467명의 산재 사망자 가운데 사고 원인이 정확히 파악된 201명을 사고 원인별로 분류하면 추락사가 30.3%(61명)로 가장 많았고, 기계나 구조물에 끼이거나 깔려 숨지는 압착(협착) 사고도 26.4%(53명)에 달해 둘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사고 원인별 분류

장시간 노동으로 현장에서 작업 도중 쓰러져 숨지는 과로사도 18.9%(38명)나 됐다. 그 다음으론 구조물이나 떨어지는 물체 부딪히거나 넘어져 숨지는 사고가 6.9%(14명)를 차지했다. 

산재 하향세 뚜렷하지만 선박건조량 따라 증감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자 수 추이는 조선소가 완공된 1974년부터 1986년 노조 설립 직전까지를 1기로, 1987~1997년 노조 설립 초기부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까지를 2기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를 3기로 모두 세 시기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였다. 

1기(1974~1986년)엔 한 해에 수십 명이 숨지는 등 현대중공업은 말 그대로 산재 왕국이었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를 완공한 1974년부터 1978년까진 해마다 20명 넘게 숨졌다. 1977년엔 32명이 숨지기도 했다. 당시엔 생산량(선박 건조량)도 적었는데 산재 사망사고는 빈발했다. 

1979~1980년엔 산재 사망자 10명 안팎으로 잠시 줄었다. 박종식 연구원은 이를 “70년대 말에 과잉 설비투자로 인한 현대중공업 경영 위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1979년엔 건조량이 30만톤에 그쳐 1976년 70만톤에서 반토막 날만큼 추락했고, 이 때문에 산재 사고도 잠시 주춤했다. 건조량을 회복한 1981년 이후부터 산재 사망자는 다시 20명 안팎으로 늘었다.

▲ 산재 사망자 수와 생산량(선박 건조량) 비교

노조 효과로 1987~1994년 산재사망 급감

2기(1987~1997년)에 들어와선 1987년 노조 결성 이후 1994년까지 산재 사망자가 급격히 줄었다. 산재 사망자는 1987년 7명, 1988년 6명, 1989년 3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특히 1987~1994년까지 8년 동안은 들쑥날쑥하긴 했어도 선박 건조량이 전체적으로 늘었는데도 산재 사망자는 연 평균 6.1명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줄었다. 노조 결성 직후라 노조가 산업재해에 적극 대응했던 ‘노조 효과’로 보인다. 하지만 1995~1997년엔 다시 산재 사망자가 늘어나 한 해에 18명이 숨질 만큼 폭증했다. 

3기(1998~2020년)엔 산재 사망자가 호황과 불황을 따라 주기적으로 오르내렸지만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1998~1999년 세계통화기금(IMF) 위기 때 산재 사망자가 한 해 5~6명으로 떨어졌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내내 꾸준한 조선업 호황으로 산재 사망사고도 해마다 10명대로 늘어났다.

2008년부터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선박 건조량이 줄면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건조량이 줄면서 연 평균 산재 사망자도 3.6명으로 줄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건조량이 주는데도 산재 사망자는 다소 늘었다. 현 정부 들어 3년간은 해마다 1명씩 숨질 정도로 산재 사망자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올 들어 벌써 5명이 숨져 빨간불이 켜졌다. 

올 들어 잇단 산재 사망사고에 현대중공업은 작업자가 현장에서 위험요소를 발견했을 땐 즉시 작업을 중지하도록 전 작업자에게 ‘안전개선 요구권’을 주는 등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그룹이 발표한 안전관리 종합대책은 12명의 산재 사망사고를 낸 2016년 대책의 재탕에 불과하다”고 했다. 

2005년부터 하청노동자 산재사망 월등히 많아져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망자 구분은 90년대에 와서야 이뤄진다. 아래 그림처럼 90년대까지 산재 사망자는 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IMF를 거치면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망자가 조금씩 늘기 시작해 2005년 역전이 일어났다. 2005년 산재로 숨진 5명 가운데 하청노동자가 3명을 차지해 처음 절반을 넘어섰다. 

▲ 원,하청 산재 사망자 비교

2005년부터 지금까지 원하청 산재 사망자를 비교하면 2009년(정규직 4명, 하청 3명)과 2018년(정규직 1명, 하청 0명) 딱 두 해를 제외하고 모든 기간에서 하청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정규직을 압도했다. 

2007년엔 전체 산재 사망자 11명 중에 하청노동자가 9명을 차지했고, 2014년엔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숨진 10명 모두가 하청노동자였다. 

민중공동행동과 416연대, 민주노총, 생명안전시민넷 등 136개 시민사회단체는지난 5월 27일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법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제작진
취재이정호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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