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 무죄 판결에 일제히 군 복직

2023년 02월 21일 16시 30분

북한이탈여성을 성폭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군 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소속 성 모 중령과 김 모 상사가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판결에 앞서 이례적으로 '그루밍 범죄 특성상 입증이 어려워 무죄를 내린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남기는 등 여전히 사회적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지만, 정보사는 판결 이후 두 당사자의 복직을 허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2020년 7월 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을 통해 한서은(가명) 씨가 정보사 소속 김 상사와 성 중령으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재판부 "입증 어려운 그루밍 성범죄, 피의자 잘해서 무죄 아냐"

군 검찰은 뉴스타파 보도 이후 두 군인을 피감독자 간음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김 상사에게는 상습 피감독자 간음·준강간 등 8건, 성 중령에게는 피감독자 간음·강요 등 2건의 혐의로 각각 징역 10년, 7년을 구형했다.
1, 2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건에 '그루밍 성범죄'의 성격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여지를 남겼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 2부(재판장 백남준)는 지난해 1월 선고에 앞서 이례적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재판장은 "그루밍 성범죄는 입증이 어렵고, 그 부분에 대한 입증이 안 됐기 때문에 무죄가 나온 것"이라며 "피고인들이 잘해서 무죄가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소 내용에 따라 위력(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 · 무형적인 힘)에 의한 성범죄라는 사실이 입증돼야 하지만 증거가 부족해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다. 
법률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이 구태에 얽매여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변호를 맡은 양태정 변호사는 "국내 사정에 밝지 못한 여성을 상대로 감독자의 지위를 악용해 성폭행을 저지를 것을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판단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전근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성범죄 판결문에 등장한 '피해자다움'

실제 판결문 곳곳에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판단의 잣대로 삼은 흔적이 드러난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주고받은 SNS의 친밀한 대화 기록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피고 측 주장에 부합된다며 '피해자의 모습으로는 특이하고 이례적’이라고 판시했다.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피해자가 선택하는 대응 방법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2020.9.7.선고 2020도8016 판결 등)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판결문에 인용된 이 SNS 대화 기록은 사건 발생 직전이나 직후가 아닌, 무려 두 달이 지난 시점의 기록이다. 이에 대해 전수미 변호사는 “범죄의 성립 여부는 범행 당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라며 “피해자가 범죄 트라우마로 인하여 정보사 군인들에게 보인 친밀한 태도는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재판부는 성 중령의 범죄 혐의를 다루며 성관계 상황을 녹음한 음성파일을 무죄의 결정적 증거로 봤다. 녹음 파일에서 저항과 거부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전수미 변호사는 이 또한 법리적 오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피감독자 간음' 혐의로 기소된 사안인 만큼 가해자-피해자 사이의 위력 관계가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저항, 항거불능 상태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인 강간 혐의 사건의 기준으로 유무죄를 따졌다는 설명이다.    
성관계 당시 피해자 동의 없이 이뤄진 녹음파일의 증거 취득 과정의 문제도 지적됐다. 재판 과정에서 성 중령은 판사가 녹음을 한 이유에 대해 묻자 '실수할까 봐', '보호 대책으로 녹음했다'라는 식의 답변을 했다. 사실상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주장에 반하는 답변한 셈이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도 녹음파일 공개에 대한 2차 가해 논란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그대로 증거로 채택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관련기사 : “성폭행 음성파일 법정서 공개하겠다” 2차 가해 논란

법률전문가 "북한이탈주민의 상황, 위력 관계에 대한 판단 빠져"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보사 군인의 이른바 '포섭' 공작으로 인해 피해자는 사실상 이들에 정서적, 금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피해자는 성 중령을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진술했고, 성 중령 또한 ‘결혼할 때 (아버지 대신) 손잡고 들어가겠다 할 정도’ 로 신뢰하는 사이였음을 진술하기도 했다.
위력 관계에 의한 성범죄,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 입증 여부가 핵심이었지만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했다'라는 판결 전 발언을 덧붙였을 뿐 판결에 반영하지 않았다. 정보사 군인들이 '피해자를 금전적, 심리적 의존도를 심화시켜 조종 통제했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이른바 ‘한서은 보고서’, 피해자가 포섭됐다고 판단하고 위험한 업무까지 지시했다는 내용의 정보사 내부 보고서 등 위력 관계를 입증할 증거들이 나왔지만 역시 판결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 관련기사 : 파렴치한 '공작'...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  
▲ '한서은 보고서' 중 일부
2심 재판은 단 2번의 기일이 열린 뒤 곧바로 선고가 내려졌다. 지난해 10월 수원고등법원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의 무죄 선고를 유지했다. 2심 재판부 역시 가해자-피해자 간의 SNS 대화 내용을 언급하며  ‘피해자의 행동들이 강간 피해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이후 검찰과 피해자 쌍방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사건은 무죄가 확정됐다. 

성 중령과 김 상사, 일제히 군에 ‘복직’

여전히 사회적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큰 사안이었지만 군은 두 당사자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법원 판결 이후 성 중령과 김 상사는 군에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1심 선고 전 해임 징계 처분을 받았으나 최종 무죄 판결에 따라 군에 복직했다. 국방부는 이들의 거취를 묻는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해 성 중령은 육군 예하 다른 부대로 복직했고, 김 상사는 다시 정보사로 복직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들이 복직 후 중징계 처분을 받고 기존의 공작 업무에서는 배제됐다고 전했다. 어떤 징계를 어떤 사유로 받았는지 묻자,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사법적 판단을 떠나 업무상 알게 된 공작 대상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국방부는 해당 군인들을 공작업무에서 배제시켜야 할 뿐 아니라 별도의 징계를 내려 정보기관으로의 신뢰 회복을 위해 엄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국군정보사령부는 피해자에 대해 한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 선고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최종 선고가 내려진 이후, 취재진은 다시 한 번 정보사에게 피해자 사과여부에 대해 물었다. 정보사 측은 "사법기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며 "사고 예방 및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고, 성인지 교육 및 군법 교육을 강화하여 시행 중"이라고 답했다. 끝내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판결 이후 성 중령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피해자 한서은 씨는 조사를 앞두고 있다. 성 중령은 뉴스타파 측에 '기사로 인해 심적 외상을 입고 있다,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취재진은 판결 이후에도 제기되는 사회적 비판, 군 복직 결정 등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다시 연락을 취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정의를 찾는 일은…”

피해자 한서은 씨는 상고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보복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보사 군인들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 한 씨는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찾았다는 것이 너무 순수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한서은 씨가 취재진에 보내온 글 전문을 싣는다.
고소 시작부터 저는 늘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았어요. 그들에게 성폭행당한 것보다 몇백 배는 더 크게요. 왜냐면 유죄로 감옥 가게 되면 출소 후에도 보복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컸거든요. 중령은 충분히 그러고 남을 무서운 놈이에요. 제가 대법원까지 가지 않겠다고 한 이유도 같습니다. 

1심 때 무죄 판결 나와서 억장 무너지고 세상에 다시 한번 절망했지만 어쩌면 다행이라고, 감옥 안 갔으니 보복은 안 할 거라고, 저를 스스로 위로했어요. 그때 2심 가지 않고 그만두려고 했지만, 그동안 함께 싸워주신 변호사님과 많은 분들의 응원과 위로로 힘을 주셔서 2심까지 가게 됐어요. 

2심 결과도 저는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이 제가 당한 피해 사실을 덮을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이 뒤떨어져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죠. 때문에 정보사령부 군인들은 물론 위력으로 성폭력 하는 가해자가 많은 한국 아닐까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찾았다는 게 너무 순수했고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지금 저의 심경은 아무렇지 않아요. 담담해요.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저의 마음속을 송두리째 뒤집어 세상에 보여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피해자 한서은 씨가 무죄 선고 직후 밝힌 입장문 전문
제작진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