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녹음파일⑤ '정우택 돈봉투' 의혹 한 달 뭉갠 국민의힘

2024년 03월 21일 16시 30분

충북 청주 상당 지역에서 6선을 노리던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지난 20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른바 ‘돈봉투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여 만이다. 그동안 돈봉투 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총선 출마를 강행했던 정 부의장은 지난 18일 국민의힘 비대위가 ‘공천 취소’를 의결하자 이틀 만에 당 결정에 승복했다.  
한 달가량 돈봉투 의혹에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정 부의장을 감쌌던 국민의힘은 뉴스타파와 충북인뉴스가 돈봉투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우택 녹음파일’을 공개하자 그제야 ‘공천 취소’를 결정했다. 국민의힘의 후보자 부실 검증과 뒤늦은 공천 취소에 책임론이 제기된다.

‘돈봉투 의혹’부터 ‘공천 취소’까지…국민의힘의 무책임한 한 달 

정우택 부의장이 충북 지역 사업가 A씨에게 청탁과 함께 돈봉투를 받았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지난 2월 14일이다. 돈봉투가 오간 현장이 고스란히 기록된 CCTV 영상과 금품 수수 내역이 적힌 메모장, 돈봉투를 건넨 당사자의 증언 등이 쏟아졌다. 
의혹이 불거진 직후 국민의힘은 “돈봉투 의혹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지난 2월 16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부분(돈봉투 의혹)에서 중요한 건 사실관계다.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한 이후에 합당한 결론을 내야하는 것이다. (정우택 부의장이) 진짜 불법자금을 받았다? 민주당과 달리 우리당은 그런 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훈 /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2024.2.16.)
하지만 국민의힘은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돈봉투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정 부의장의 주장에 이해당사자 조사도 없이 의혹을 묵살했다. 경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고, 정우택 부의장을 지난 2월 25일 청주 상당지역 후보로 확정했다. 
지난 3월 5일 청주를 방문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다시 한번 정 부의장 손을 들어줬다. “애초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의 말이 바뀌고 있고, 말이 바뀐 사람의 말을 믿고 단정적으로 후보를 배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정 부의장 편을 들었다.  
한동훈 위원장은 정 부의장에게 돈봉투를 건넨 사업가 A씨가 당초 “돈봉투를 돌려받았다”고 인터뷰를 했다가, 열흘 뒤 “돈봉투 의혹은 사실”이라고 다시 말을 바꾼 것을 ‘공천 유지’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사업가 A씨가 입장을 번복한 건 정우택 부의장 보좌관의 회유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와 충북인뉴스가 공동 입수, 보도한 ‘정우택 녹음파일’로 확인됐다. 사업가 A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말을 딱 한 번 바꿨는데 그건 보좌관의 회유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국민의힘에서 내 말이 의심스러웠다면, 나를 불러서 직접 조사하면 될 일 아닌가. 그랬다면 (국민의힘에도) 여러 자료들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를 조사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5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청주 지역 육거리시장을 방문해 정우택 국회부의장 등 청주 지역 총선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출처:정우택 국회부의장 블로그)
한동훈 위원장이 정 부의장을 감싼 다음 날인 3월 6일, 사업가 A 씨는 경찰 조사 출석에 앞서 변호인을 통해 돈봉투 의혹은 모두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돈봉투 의혹은 물론 정우택 부의장에게 700만 원의 후원금과 현금을 건넨 사실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사업 관련 청탁 사실도 인정했다. 
202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직전 처음으로 정 의원에게 현금 2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줬고, 같은 해 9월 3일, 10월 1일에는 각각 현금 100만 원을 과일 상자와 돈봉투에 담아 건넸고, 이후에는 후원 계좌로 300만 원을 추가로 보낸 사실이 있다. 필요한 경우 의뢰인의 동의를 받아서 모든 증거를 공개하겠다.

김창환 / 사업가 A씨 변호인 (2023.3.6.)
이후 국민의힘에도 정 부의장에 대한 이의제기가 접수됐다. 그러자 국민의힘 장동혁 사무총장은 다소 달라진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나면 그 어떤 경우에도 밀양(에 출마했던 박일호 전 후보의 공천 취소 건)처럼 가차 없이 결단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 (2024.3.8.)
그러나 장 사무총장 발언 바로 다음 날, 국민의힘 입장은 또 달라졌다. 지난 3월 9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정 부의장 공천에 대한 이의제기를 기각했다. 정영환 공관위원장은 “공관위에서는 객관성이 없는, 부족한 것으로 봐서 이의를 기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돈봉투를 건넨 당사자, 사업가 A씨를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었다.
사업가 A씨가 직접 작성한 정우택 국회부의장과 보좌관 등에게 건넨 후원금과 현금 내역 메모
앞서 국민의힘은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박일호 전 후보(경남 밀양)의 경우엔, 뇌물을 제공한 사람까지 모두 불러 조사한 뒤 공천 취소를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정 부의장에게는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던 국민의힘의 약속이 무색해진 대목이다.

국민의힘, ‘정우택 녹음파일’ 공개 다음날 ‘공천 취소’ 결정

이해당사자 조사 없이 정 부의장을 한 달간이나 두둔했던 국민의힘은 뉴스타파와 충북인뉴스가 ‘정우택 녹음파일’을 공개한 뒤에야 정 부의장의 공천 취소를 결정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국민 눈높이 및 도덕성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안으로 판단했다”고 공천 취소 사유를 밝혔다. 국민의힘 비대위는 지난 18일 공관위 결정을 최종 의결했다. 한 달 넘게 총선 후보 자리를 지켰던 정우택 부의장은 지난 20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 부의장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고발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충북연대회의)는 국민의힘의 무책임한 공천 과정을 비판했다.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국민의힘 공관위의 후보 검증 절차의 허술함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국민의힘은 진상조사 노력 없이 (돈봉투 의혹을) 총선용 흑색선전으로 치부하는 등 유권자를 우롱한 책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정우택 국회부의장의 이른바 '돈봉투 의혹'을 지난 한 달간 사실관계 조사 없이 무시하다가 '정우택 녹음파일'이 보도되자 뒤늦게 공천을 취소했다.   

‘정우택 돈봉투’ 의혹, 국민의힘 차원의 조사와 조치 필요

정우택 부의장의 돈봉투 의혹은 공천 취소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현재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고발된 정우택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지로 선출된 여당 몫의 현직 국회부의장이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당 소속 국회의원의 중대한 윤리 사안이나 부정사건이 발생한 경우, ‘당무감사위원회’에서 조사하도록 돼 있다. 당무감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소속 의원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하거나, 윤리규칙 등을 위반해 민심을 이탈하게 했을 때, 당의 위신을 훼손한 경우 징계 대상이 된다.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와 별개로 당 차원의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을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소개한 사업가 A씨도 당 차원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당 차원의 조사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조사 결과에 따라 나도 (뇌물공여죄로) 처벌을 받겠지만, 처벌을 받더라도 진위여부는 가려져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뉴스타파는 국민의힘 측에 연락해 현재 정우택 부의장 돈봉투 의혹에 대해 당 차원에서 진행되는 당무감사나 윤리위 조사가 있는지, 지난 한 달간 당사자 조사 없이 돈봉투 의혹을 기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공천 검증 절차가 부실하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국민의힘은 답변하지 않았다.
제작진
취재홍여진 이명주 한상진 봉지욱 최윤원
영상취재김희주 정형민 오준식
CG정동우
편집 정지성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