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금은 독약이었다”

2013년 04월 26일 17시 57분

대기업 유통업체 등이 지역 상권에 진출할 때 현지 중소업체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자 간 자율조정을 통해 합의를 이끄는 제도가 있다. 사업조정제도이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상생을 논하는 사업조정 협의 과정에서 대기업이 사업조정 합의금 명목으로 이른바 ‘발전기금’을 건네 왔으며 이 돈이 상생은커녕 오히려 중소상인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기업이 건네는 이 발전기금은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에도 사업조정제도에도 그 근거가 없다. 사업조정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중기청 관계자는 발전기금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이 발전기금 액수뿐 아니라 발전기금 수수 사실도 비공개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업조정에서 결정된 합의사항조차 비공개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런 비공개주의는 기본적으로 지역상인 사회를 분열시킬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개점한  천안 이마트 터미널점과 관련된 사업조정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2010년 8월 천안시 상인연합회와 슈퍼마켓협동조합은 이마트 터미널점을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두 지역상인 조직의 대표는 이마트로부터 5억 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발전기금을 받게 된다. 이마트는 두 대표에게 발전기금의 액수 뿐 아니라 발전기금을 받은 사실조차 공개하지 말 것을 약속받았다.

상인 단체 대표들은 이마트와의 약속을 지키다 상인회 이사들과의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 대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거나 발전기금을 유용했다는 소문으로 인해 재선에 실패했다. 발전기금이 상생보다는 지역 중소상인 사회를 분열시키는 독약이 된 것이다.


<앵커 멘트>

대기업들이 기업형 수퍼마켓 을 만들어서 골목상권까지 잠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상인이 만나서 상생방안을 협의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이 협의과정에서 대기업이 중소상인에게 발전기금 명목의 돈을 주고 있어서 사실상 매수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새봄 피디가 취재했습니다.

<김새봄 PD>

천안시 남산 중앙시장. 30년 동안 이곳에서 노점을 해온 이선우씨. 

그는 지난 1월. 남산 중앙시장 상인회장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천안시 상인연합회 회장도 겸했던 그가 이마트 터미널역점로부터 받은 조정합의금, 일명 발전기금을 유용했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평화롭던 시장은 사분오열 됐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약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천안시 신부동에 신세계 백화점과 함께 이마트 터미널점이 들어 설 예정이었습니다. 2010년 8월, 이 씨가 회장으로 있는 상인연합회와 슈퍼마켓협동조합은 이마트 입점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합니다. 사업조정이란 대기업이 지역사회에 진출했을 때 현지 중소기업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자간 자율조정을 통한 합의를 이끄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당사자 간 자율조정이 실패할 경우,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심의회를 거쳐, 각 시도지사는 대기업의 사업진출시기, 매장면적 및 품목제한, 영업시간 제한 등의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업조정협의에는 중기청과 이마트 인사 그리고 슈퍼마켓협동조합 유임상 이사장, 상인연합회 이선우 회장 등이 참여했습니다.

슈퍼마켓협동조합 유임상 전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유임상 슈퍼마켓협동조합 전 이사장]

“그 때 당시로는 터미널에 그것이 들어옴으로써 상인들이 입는 피해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그걸 막아보려고 했는데...”

사업조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유임상 슈퍼마켓협동조합 전 이사장]

“이거 하나하고(대형마트) 두 개가 더 들어온다고 그랬구나. 하나를 포기해라, 그런데 그것도 안된다 하더라고. 상당히 상대하기 어려운 회사였어요. 야채 청과, 재래시장 때문에 그것도 팔지 않게끔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됐지요.”

[이선우 천안시상인연합회 전 회장]

“(우리는) 밤 10시까지만 하자 그랬고, 그쪽에서(이마트) 11시까지만 하자. 태도는 어렵다, 이거 안하면 안된다, 어렵다. 이런 얘기를 했었죠.”

5개월간의 긴 사업조정이 계속됐지만, 이마트측은 완강했고, 합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때 이른바 발전기금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임상 슈퍼마켓협동조합 전 이사장]

“그 때 당시는 합의를 보고 나서 서로 간에 20일 있다 (돈을)지불했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못 들어오게 하는 거지만, 그것이 안된다라면 차선책으로 가자. 막을 방법이 법적으로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이마트 측으로부터 5억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유임상 씨는 이 가운데 3억을 이선우 상인연합회 회장에게 주고 남은 돈을 자신이 속해 있는 슈퍼마켓협동조합 몫으로 돌렸습니다. 버텨봐야 결국 대형마트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이 얼마간의 돈이라도 받자는 쪽으로 상인들을 내몰았다고 합니다.

이선우 회장은 3억 원을 상인연합회의 7개 지부에게 나눠주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유임상 씨는 슈퍼마켓협동조합의 빚을 갚는데 나머지 돈을 사용했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 액수나 사용내역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꺼려했습니다.

이 발전기금은 결국 상인사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들이 발전기금의 구체적 규모와 합의내용을 유임상 이사장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임상 씨도 지난해 12월,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렇다면 사업조정과정에서 대형유통업체와 지역상인조직들 간에 ‘합의금’ 성격의 돈이 오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대기업이 주는 이른바 발전기금은 상생법에도, 사업조정제도상에도 그 근거가 없습니다. 사업조정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중기청에게 물었습니다.

[강지훈 중소기업청 사무관]

“2009년도에 그런 경우가 있어서 상인대표가 구속되고 이런 일이 있어서, 저희는 아예 이 논의를 금하고 있습니다. 발전기금문제는 법 자체에서도 허용할 수 없는 범위이고 불법이니까. 중기청은 불법이라 이야기를 해드리고...”

그러나 천안의 사례에서 보듯 협상장에서 발전기금 얘기가 오가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유임상 슈퍼마켓협동조합 전 이사장]

“공식적 협상 테이블에서 해요.”

( 발전기금 이야기를요?)

“네. 중기청이 한 두 번 나와서 같이 미팅을 하고 따로 나와서 이제 자주 따로 만나잖아요. 저희들 협조할 게 있으면 협조 하겠다는 식으로 나와서 교류를 한 것이죠.”

그런데 대형 유통업체들은 양자 간에 오간 돈의 액수, 구체적 합의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비공개를 요구합니다. 의혹과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임상 슈퍼마켓협동조합 전 이사장]

“(발전기금 뿐 아니라) 하다못해 협의서에 협의한 내용조차도 가급적 비공개. 그날 했던 애기도 비공개. 그것이 문제 됐을 시 책임을 묻겠다라고 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식으로 얘기가 되고...”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

“이제 일종의 폭력인데, 자기들이 돈도 줬고 일정한 부분에 합의를 해줬으니까 그런 부분을 나중에 이걸 공개하게 되면 또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 기준도 되고, 또 그 정도의 요구를 다른 상인들이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죠. 중소상인이 몰락하는데 입도 뻥끗 못하게 하는 독약이라고 생각해요.”

이마트측에 발전기금에 대한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마트 홍보실]

“인터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뭐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는 걸로...네”

2010년 당시 조정에 참여해 직접 돈을 건냈던 이마트 점포개발팀 직원에게도 물었습니다.

[이마트 점포개발팀 직원]

(5억 원 직접 주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화를 끊도록 하겠습니다.”

인구 60만의 천안시 내, 대형마트 9개, 기업형 수퍼마켓 즉 SSM 20개가 있습니다. 여기에 코스트코도 최근 건축허가를 받아 빠르면 올해 안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천안시 신방동에서 나들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운양씨. 대형마트의 피해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정운양 나들모임 회장]

“하루하루 살기 급급한 실정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될 지 잠이 안 와요. 고물상도 알아보고 별거 다 알아봤어요, 지금. 참, 오십 넘어서 뭘 막상 하겠어요. 직장을 다녀 뭘 해. 이게 천직인 줄 알고 다녔지만 매출이 자꾸 규모가 줄어드니까 의욕이 없어요.”

[유임상 슈퍼마켓협동조합 전 이사장]

“그때 당시에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최선은 아니었구나...”

대기업이 ‘상생’이란 명분으로 건네는 발전기금은 오히려 상인사회를 무력화 시키고 결과적으로 지역상권을 매수하는 행위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선우 남산 중앙시장 전 상인회장]

“정부로부터 (대형마트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우리 중소상인들이나 전통시장에서는 크게 힘이 없기 때문에 대항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통 중소상인들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당국의 실효성있는 정책이 필요할 때입니다.

뉴스타파 김새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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