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외교 평가]③미중 갈등 대응...전략적 모호성 vs 일관성 부재

2022년 02월 21일 17시 39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잡은 모습은 문재인 정부 외교사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그러나 이후 남북 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한일 관계도 개선 모멘텀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역시 한국 외교에 큰 부담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9개월간 문재인 정부가 남긴 외교 성과와 한계를 남북, 한일, 미중 관계로 나눠 짚어본다. 또 대선후보들의 외교 정책도 살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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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기본 기조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한민국은 종종 “어느 나라 편에 설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 선택은 결코 간단치 않다. 한국은 미국과 70년 이상의 안보 동맹을 통해 북한의 위협 등에 대응해 왔다. 지정학적, 경제적 이유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중국은 수출·수입에서 모두 우리의 최대 무역국이다. 미중 경쟁 구도에서 안보 동맹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제적 이익도 보장할 수 있는 치밀한 외교 전략이 한국에 요구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중의 패권 경쟁 구도에 대응해 온 외교 방침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중국과의 소통을 지속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일까? 실제 현안마다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가 취한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의 현안 대응 자세를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 미중 경쟁 현안 별 한국의 입장. 
즉 미국과의 동맹이 기본이기는 해도 미국에 무작정 편승해 중국을 자극하는 식의 외교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현안에서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크게 자극하지 않기 위한 외교를 폈다. 
미국이 주도한 중국 견제용 다자 네트워크인 쿼드(QUAD) 가입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유보적이었다. 2020년 9월,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강경화 전 장관은 쿼드 참여 문제에 대해 “다른 국가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탄압 문제나 홍콩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는 ‘홍콩보안법’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라는 한국의 정체성과 맞지 않게 중국 눈치를 봤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는 별도의 발언을 자제해 왔다. 중국의 문화 공정이나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국내에서 반중 감정이 커질 때도 별도의 메시지는 없었다.  
그 결과 한중 관계에서는 사드 배치 이후 경제 보복으로 크게 악화됐던 박근혜 정부 때와는 달리 한중 양국간 심각한 갈등이 표출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외교 방침은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부여당에서는 ‘모호성’ 보다는 ‘유연성’을 더 강조했다. 일각에서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 결국 미국과 중국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어렵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입장을 이어갔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변화

그런데 지난해 5월 기존의 이런 자세와는 다른 입장이 나왔다. 2021년 5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국과 미국은 중국 견제용 입장을 공동성명에 적시했다. 공동성명에는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등의 내용이 실렸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는 데다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을 자국의 오랜 과제로 설정해놓은 상태고, 미국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과의 통일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중국이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 미중 갈등이 심화됐을 때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곳으로 꼽히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대만이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중요하다”는 미국의 입장은 이런 중국을 견제하는 맥락이다. 대만 문제가 미중간 첨예한 대립 사안인 만큼 한국은 그동안 별도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서 이같은 내용이 적시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이고 공동선언문에 중국이 적시된 것은 아니라며 과도한 의미부여를 경계했지만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에 대해)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서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하고 불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한미정상회담 성명에 담긴 대만 관련 내용을 비판했다. 
대만 문제가 미중 간의 안보 현안이라면 경제 현안으로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문제가 있다. 미국은 중국을 제외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 공급망을 재편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역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삼성과 SK는 미국에 반도체 배터리 공장 설립에 합의했다. 
이밖에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협력한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미국이 이민자 행렬을 억제하기 위해 재정 지원 정책을 펴고 있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3개국에 대해 한국이 “2021년부터 2024년 중미 북부 삼각지대 국가와의 개발 협력에 대한 재정적 기여를 2.2억불로 증가시킬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이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결과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가 협력을 강화한다는 의미였다. 현재 한미 관계는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

지난 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이 전략이 옳은 전략일까? 이는 전문가들마다 판단이 다르고 미중 간의 경쟁이 끝나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는 어느 편에 서는 게 더 나을지 쉽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다만 정부 정책의 일관성은 문제로 지적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중 경쟁이 기존의 무역 경쟁에서 가치 전쟁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한국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위치 잡기가 굉장히 어려워진 면이 있고,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대외 정책 역량의 대부분을 대북 정책에 집중하다보니 미중 경쟁의 진정한 구도를 보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보다 주도적으로 미중 경쟁에 대해 국제사회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꾸준히 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 국익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미중 패권 경쟁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지 않도록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세종연구소 정재흥 연구위원은 “한국은 유엔이나 아세안(ASEAN·동남아 국가연합) 등 국제사회와 함께 두 강대국의 경쟁이 심화되지 않고 평화 공존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한국이 이야기를 한다고 두 강대국이 듣지는 않겠지만, 예를 들어 아세안 10개국이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면 미국과 중국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요소수 파동의 교훈

한국 내부적으로는 중국에 치우친 전략 자원의 공급망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자원의 무기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주요 국가들은 자국 공급망 취약성을 분석하고 대비하고 있다. 
한국은 요소수 파동 때 대체 수입처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이 요소 수입의 97%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하자 직격탄을 맞았다. 그 결과 디젤차와 화물차 등에 쓰이는 요소수의 가격이 10배까지 치솟으면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은 미중 전략경쟁 심화라는 큰 틀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중국은  요소의 원료 중 하나인 석탄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요소 수출을 제한했다. 중국은 호주와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호주산 석탄 수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과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호주는 코로나19 발원지 문제 등에서 대립해왔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말 작성한 ‘한국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 및 파급경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요소, 리튬 등 한국이 중국에 50% 이상 의존해 취약성이 관측된 품목은 1088개, 중국에 70% 이상 의존하고 있는 품목은 653개에 이른다. 이중 리튬은 화학, 2차전지, 미래차,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마그네슘은 철강,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미래차 등의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어 2차 피해 가능성이 높은 품목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요소수 파동을 겪은 이후에야 “전반적인 공급망 점검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은?

뉴스타파는 대선 주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 4인에게 질의서를 보내 외교안보 분야 관련 공약과 철학 등을 물었다.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답변을 보내왔으나 윤석열 후보만 답이 없었다.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한 대응 원칙으로는 이재명 후보는 ‘실용’, 안철수 후보는 ‘초격차 과학기술’, 심상정 후보는 ‘평화와 공생’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의 ‘실용’은 “사안과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대처하겠다”는 의미로 문재인 정부의 대응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안 후보의 초격차 과학기술은 “우리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과학기술 중심국가’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심 후보는 '평화와 공생'이라는 원칙 하에 “미중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전쟁 불사의 강경책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연루되지 않도록 한미간 사전합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으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객관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단체나 전문가들에 의한 조사를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만 한국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선도하는 국가인데 주요 인권 문제에 침묵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 보다는 “유능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후보는 “중국과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되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한 외교안보 공약에 따르면 나머지 세 후보에 비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윤 후보는 외교안보 공약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눈감아선 안 된다”, “북한 뿐 아니라 인류 존엄과 가치 훼손하는 반인권적 탄압에 대해서는 지구촌 어디든 외면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한미동맹 재건”, “동맹 우방국들과 긴밀히 협력”, “쿼드 산하 백신·기후변화·신기술 워킹그룹에 참여해 역내 관련국들과 공동이익을 확대하는 열린 협력 추구” 등을 공약으로 제기했다. 
제작진
그래픽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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