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잡은 모습은 문재인 정부 외교사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그러나 이후 남북 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한일 관계도 개선 모멘텀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역시 한국 외교에 큰 부담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9개월간 문재인 정부가 남긴 외교 성과와 한계를 남북, 한일, 미중 관계로 나눠 짚어본다. 또 대선후보들의 외교 정책도 살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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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 역대 정권별 남북관계 변화 현황.
문재인 정부 동안 남북 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위 그래프는 지난 4년 9개월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를 잘 보여준다. 뉴스타파가 ‘GDELT’(Global Database of Events, Language and Tone)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문가에게 자문해 그렸다.
분석에 사용한 ‘GDELT’ 데이터는 전 세계의 뉴스 기사를 100개 이상의 언어로 15분 마다 수집하는 빅데이터의 일종이다. 국가간 관계를 분석할 때는 상호 발생 사건에 일종의 ‘값’(골드스타인 척도)을 매겨 갈등/협력 정도를 평가한다. 즉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비난하면 ‘음의 값’, 반대로 긍정 반응을 보이면 ‘양의 값’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뉴스타파는 1988년부터 2021년까지의 ‘GDELT’ 데이터에서 남북한 사이에 발생한 사건 관련 기사 데이터 3,427,306건을 추출해서 연도별 평균값을 계산해 위 그래프를 만들었다.
파란색 선은 한국의 반응, 붉은색 선은 북한의 반응인데 숫자 ‘0’을 기준으로 높을수록 긍정, 낮을수록 부정을 나타낸다. 그래프를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0’ 이하로 최악 상태가 지속되던 남북 관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가 지나며 급속도로 좋아졌으나, 2019년 이후 다시 빠르게 악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의 백두산 천지 산책 (출처 :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문재인 정부 기간에 그래프 수치가 가장 낮았던 때는 출범 직후였던 2017년이었다. 이 시기 북한은 IRBM급(중거리탄도미사일), ICBM급(대륙간탄도미사일) 미사일까지 쐈고, 남북 긴장이 최고 수위로 올랐다. 하지만 2018년에 접어들자 남북 관계는 180도 바뀌어 지난 2006-7년 이후 10년만에 가장 우호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9년을 지나면서는 남북 관계가 악화됐고 최근에는 북한이 다시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른바 ‘평화의 봄’이 사라지고 다시 찾아온 남북 갈등과 대치는 뜻밖의 전개였다. 왜 이렇게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진전을 보지 못했을까.
중재가 한계에 부딪혔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2018년 이후 진척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어려운 문제다. 남북 교류와 협력은 대부분 ‘대북 제재’라는 높은 벽을 마주하고 있다. 비핵화가 되지 않으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풀리기 힘들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가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만났다. 사상 최초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한국은 북미 두 정상이 만나도록 견인하는 데 외교력을 쏟아부었다. 이때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문제는 6개월 뒤 열린 2번째 북미정상회담이었다. 2019년 2월, 북미 두 정상은 비핵화 방안을 두고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지만 결국 합의를 보지 못했다.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기에 더해 ‘플러스 알파’를 요구한 반면,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에 상응하는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회담은 결렬됐다. 이렇게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자 한국의 역할은 줄었다. 남북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한계에 부딪혔다.
▲사진 : 2019년 5월 10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및 한미워킹그룹 회의 후 외교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
2018년 11월부터 가동됐던 ‘한미워킹그룹’이 바로 그런 사례를 보여준다. 한미워킹그룹은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구성된 한미간 실무그룹이었다. 그러나 실효성에 여러 논란을 낳았다.
2019년 1월, 한국은 북한 측에 인도적 차원에서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지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미워킹그룹에서 타미플루를 싣고 갈 ‘트럭’이 대북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은 ‘트럭’은 타미플루를 싣고 갈 뿐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원 시기가 늦어지면서 결국 북한이 수령을 거부했다. 대북 제재 장벽 때문에 남북한이 인도적 차원의 지원도 하기 힘든 것이 남북 관계의 현실임을 보여준 사례다.
한국이 북미 협상을 견인한다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가동하고, 전에 없던 ‘남북미 채널’을 가동한 것까지는 문재인 정부가 거둔 성공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 협상 결렬의 틈을 비집고 남북 갈등은 다시 전개됐다. 이 구도에서 별다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남북관계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남북간 합의한 군축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은 북미협상 결렬과는 별개로 북한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군비 증강 정책은 남북 화해 국면과는 모순되게 실행됐다.
▲문재인 정부 국방예산 증가 현황과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
2018년 4월 27일, 남북은 첫번째 정상회담 성과인 ‘판문점 선언’에서 “상호 군사적 신뢰의 실질적 구축에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한다”고 합의했다. 이어 같은해 9월 19일, 남북은 세번째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을 제거하겠다”고 선언했다.
‘9.19군사합의’로 더 잘 알려진 이 선언에서 남북은 서로를 향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고 합의했다. ‘군축’에 대해서도 다양한 실행 대책을 계속 협의한다고 합의했다. 평창동계올림픽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 움직임을 재확인하는 합의였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한국은 군비 증강을 계속됐다. 국방 예산은 문재인 정부 들어 꾸준히 큰 폭으로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예산 평균 증가율(6.27%)은 이명박 정부(국방예산 평균 증가율 5.3%), 박근혜 정부(3.98%)와 비교해도 높다.
“정부는 지난 3년간 국방 예산을 대폭 확대해 올해 최초로 국방 예산 50조 원 시대를 열었고,세계 6위의 군사 강국으로 도약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2020.3.27.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2021.9.15. 국방과학연구소
어쩌면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외교안보통일 공약 중 첫번째로 ▲국방예산 증액과 효율화, ▲ ‘KAMD’나 ‘킬체인’ 등 핵심 전력 조기 전력화를 선언했다.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군사력은 세계 6위에 올랐다.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정부가 남북 군축 약속과 군비 증강이라는, 서로 상충된 행보를 보였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양립 가능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설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때문에 남북간에 신뢰가 쌓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초 8차 당대회에서 한국의 군사전력 증강을 비판하며 “계속되는 첨단 공격장비 반입 목적과 본심을 설득력있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해 11월에는 북한의 한 선전매체가 한국의 국방예산 증가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말하는 대화와 평화는 기만극에 불과한 것”이라며 “이중적 행태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동시에 북한 역시 핵미사일 성과를 과시하고 2020년 10월 열병식 때는 대전차 장갑차, 차륜형 자주포, 신형 주력 전차 등 각종 재래식 지상군 무기체계를 과시했다. 미사일 시험 발사 역시 수차례 이어졌다.
통일연구원 장철운 박사는 ‘한반도 군비경쟁과 평화정착’이라는 연구 논문에서 남북의 군비 경쟁을 지적하며 “한반도의 군비경쟁, 특히 남북한의 군비 증강 경쟁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남북 모두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2018년 체제’는 유효한가
결국 2018년의 평화 체제가 그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전 정부에서도 2018년의 판문점 선언과 같은 남북정상의 공동 선언이 있었지만 번번히 사문화 됐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추진했다. 번번히 남북 공동선언이 정권의 변화에 따라 사문화되고, 한반도 평화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앞선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 모두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회 비준도, 별도의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법제 정비도 이뤄지지 않았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의 경우 통일부가 2018년 8월,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비용추계서’에 소요 비용이 제대로 적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그뒤에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뀌면 남북관계가 공동 선언 체결 전으로 돌아가버리는 일이 또 되풀이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지속된 최악의 남북관계는 피하고 전쟁위험 등 안보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한 성과는 거뒀지만 화해 국면을 이어나가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20대 대선 주자들의 공약은?
임기를 2개월여 남겨놓은 지금,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차기 정부는 어떻게 한반도 평화 정책을 펴야 할까? 뉴스타파는 대선 주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 4인에게 질의서를 보내 외교안보 분야 관련 공약과 철학 등을 물었다.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답변을 보내왔으나 윤석열 후보만 답이 없었다.
이재명 후보는 비핵화 방법에 대해 ‘단계적 동시행동’을 제시했다. 북한이 일정한 비핵화 조치를 하면 그에 맞는 대북제재 완화 조치를 취하고, 만일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시 제재를 복원하는 방식(스냅백)의 동시 행동이다.
심상정 후보는 스냅백을 염두에 둔 비핵화-평화체제의 단계적 병행적 추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남북미중 4자 정상의 평화회담’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비 증강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국방력 강화는 필수”, 안철수 후보는 “북한의 도발로부터 한국을 지킬 수 있을만큼 안보태세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는 국방 예산에 비해 한국의 안보가 더 튼튼해졌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국방정책을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안보정책의 일환에서 평가하고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 정책의 원칙에 대해서는 이재명 후보는 “대화와 억제의 공존,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남북협력, 포괄적 대북 인도주의 협력, 품격있는 남북대화”를 언급했다. 안철수 후보는 “기존 북미, 남북간 합의는 존중되어 정부와 관계없이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의 기조는 남북 민족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에 관한 문제이므로 세계 민주 국가들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국가로 인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는 “남북미중 정상의 평화 선언”, “군비증강 대결 중지와 기후위기 극복 협력 등 그린 데탕트 실시”, “평화 공존 협력 제도화”, “남북기본협정-남북경제사회 협력 강화 협정 체결과 국회 비준 동의” 등을 언급했다.
윤석열 후보는 뉴스타파 질의에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1월 24일 발표한 외교안보 공약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남북간 평화 협정을 준비하고, 전폭적인 경제 지원과 협력을 실시하겠다”며 ‘선비핵화, 후 제재 해제’ 방침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