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언젠가 ‘꼰대’가 될까?

2015년 01월 29일 21시 13분

20대들은 <꼰대 vs 선배>를 어떻게 봤을까. 88만원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지난 21일 올라온 뉴스타파 ‘김진혁의 미니다큐 <꼰대 vs 선배>’가 화제다. 28일 현재 유투브 조회수는 만 오천 여 건을 기록했고, 영상은 SNS를 통해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 많은 의견이 오갔다. 영상을 본 중장년층들은 자신들이 혹시 꼰대는 아닌지 되돌아봤다고 했다. 반대로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버릇없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20대들은 <꼰대 vs 선배>를 어떻게 봤을까.

지난 27일, 종로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4명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익명을 요구한 이들을 위해 닉네임으로 대화 내용을 소개한다. (허니칩, 취준생, 나한테 왜그래, 알바하는 햄토리)

뉴스타파 <꼰대 vs 선배>의 한장면. 선배 세대들은 20대들에게 저마다 한 마디씩 충고한다.

▲ 뉴스타파 <꼰대 vs 선배>의 한장면. 선배 세대들은 20대들에게 저마다 한 마디씩 충고한다.

산업화세대 - "너희는 왜 우리처럼 닥치는 대로 일하지 않나?"...닥치는 대로 일했더니 내가 바로 ‘장그래’

산업화세대들은 정규직 일자리만 찾는 젊은이들이 불만이다. 가난을 극복하기위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던 자신들과 달리 요즘 세대들은 편한 일만 찾는 것 같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20대는 ‘노력하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때였다. 비록 가난했지만 열심히 하면 기회가 주어졌고, 보상이 따랐다.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정재영(이하 정)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예전에 학생들에게 "청년들이 눈을 낮추면 일자리는 많다"고 했었죠.
취준생 : 자기는 대기업 다녔으면서 우리한테 눈 낮추래.
허니칩 : 우리도 중소기업가면 좋지. 좁은 구멍에 서로 들어가려고 안 싸워도 되고.
알바하는 햄토리 : 근데 그러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냐는 거지. 대기업에 눌려서 없어지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많은데.
정 : 얼마 전 정부가 이른바 ‘장그래법’을 내놨죠? 2년 계약직을 4년으로 늘려주는 게 주요 내용이었고요.
취준생 : 장그래가 좋아할까?
알바하는 햄토리 : 저거 만든 사람 <미생> 안 봤다에 한 표.

얼마 전 종영한 tvN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대기업 계약직 사원이다. 그는 계약기간 동안 선배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회사에서 크고 작은 공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정규직 전환은 꿈같은 이야기다. 재계약의 기회도 그에겐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 회사는 그에게 단 2년간의 시간만을 허락해 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비용절감, 고용 유연화’의 이름 아래 파견근로, 인턴, 계약직 등 질 낮은 일자리들을 양산해왔다. 그리고 상당수 20대 청춘들은 이곳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다. 현실 ‘장그래’인 이들에게 ‘언젠가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너무나 달콤하다. 하지만 기회의 문은 너무나 좁고,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열정페이’를 강요받는다.

386세대 - "너희는 왜 우리처럼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나?"…부당함을 말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허니칩 : 저기서 그러잖아. 민주화세대 때는 불의에 맞서면 연대를 했다고. 근데 지금은 "걔가 뭘 잘못했겠지.", "부러워서 그러는 거 아니냐"그러면서 개인한테 화살이 집중되는 거야.
취준생 : 내가 어떤 글을 읽었는데 요즘은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거야. 아니면 열폭인거지.

인터넷에서 종종 ‘열폭녀’, ‘열폭하지마’ 등의 댓글을 발견하게 된다. ‘열폭’은 열등감 폭발의 준말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글에 "열폭녀"라는 댓글이 달리면 그는 ‘못생겨서 예쁜 애들이 부러운’ 사람이 된다.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를 비정규직이 말하면 열폭이 되지만, 정규직이 말하면 그는 자애로운 사람이 된다. 이렇게 ‘열폭’은 그와 관련된 모든 복잡한 이야기들을 ‘자격지심’으로 결론지어버린다. 따라서 ‘열폭’을 뛰어 넘어 진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예쁘고 잘생겨야하며, 비정규직의 문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이어야 한다. 부당함을 말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이끈 386세대는 20대들에게 "왜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선 피해자는 흠이 없어야 하고, 문제를 지적하려면 자격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과정과 결과는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298 세대 - "너희는 왜 우리처럼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보나?"... 을의 자기검열

알바하는 햄토리 : 내가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지나가다가 어떤 아버님이 계시길래 힘드시죠? 그랬어. 그랬더니 들어와보래, 고맙다고. 그래서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하시는 말씀이 ‘왜 요즘 대학생들은 이렇게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거리로 나오지 않느냐’는 거야. 근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죄송하고 부끄럽긴 한데, 난 망설여지는 거야. 요즘은 나서면 이상한 사람 되잖아. ‘시간 많나?’, ‘운동권이네?’이렇게.

페이스북에 내 사진을 올리면 애들이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아. 근데 사회 문제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면 아무도 반응을 안 해. 누가 거기에 댓글을 달면 걔도 ‘그런 애’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SNS에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되게 용기가 필요하게 되는 거지. 거리로 나가는 건 더 어렵고.

허니칩 : 기업들이 입사할 때 SNS를 검열할지도 모르니까.
나한테 왜그래 : 진짜?
취준생 : 그래서 난 아무 것도 안 올려.
알바하는 햄토리 : 내 주위에 이런 이슈에 대해 얘기 많이 하던 선배들도 취직하니까 탈퇴하거나 계정 새로 만들더라. 예전에 나랑 정치 얘기 많이 하던 사람이었는데 친구도 안받고. 인간관계 정리하는 거지.
취준생 : 요즘 대학생들이 특히 자기 검열이 심한 것 같아. 나도 그렇고.

IMF 외환위기 이전에 대학을 다녔던 298세대(386세대-88세대)들은 요즘 20대를 두고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취업사관학교가 되어 버린 대학에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기업 맞춤형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꼬투리 잡히지 않기기 위해 자신을 단속한다. 을은 스스로 검열한다.

지난 21일 종로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대학생들을 만났다. ©정재영

▲지난 21일 종로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대학생들을 만났다. ©정재영

우리도 언젠가 꼰대가 될까

정 : 우리도 언젠가 꼰대가 될까요?
나한테 왜그래 : 그러겠지?
취준생 : 아 안 돼! 싫어.
알바하는 햄토리 : 난 안 될 거야. 절대.
허니칩 : 글쎄.

호기심이 없어질 때 우리는 꼰대가 된다.

나한테 왜그래 : 명절에 친척들 만나면 다들 한 마디씩 하잖아. 들어보면 정말 나를 정말 생각해서 해 주는 조언이 있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뽐내려고 하는 게 있고. 근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어 하는 지를 궁금해 하지 않아.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래야 너는 성공할 수 있다."이렇게 말해.

우리는 언제 꼰대가 될까. 지난 18일 방영된 JTBC <속사정쌀롱>에서 진행자 윤종신은 "호기심이 없어지면서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경험한 것이 세상의 전부 같아서 ‘세상은 이런 거다’라고 단정지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꼰대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고,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어질 때 사람은 자신이 겪은 것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그래서 위험하다. 세상이 변했음을 인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해봤기 때문에 너는 내 말대로 하면 돼'라고 강요하게 된다. 이른바 ‘꼰대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뉴스타파 2015 동계연수생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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