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한화의 고졸 채용
2014년 03월 25일 17시 17분
- 대법원 승소 후 두 번째 파기환송심 “한화증권 정리해고 부당” 판결
- 해고자들 “노동자들에게만 불리한 싸움...같은 일 반복돼선 안 돼”
- 한화투자증권 “법원 결정 존중... 상고 여부 등 향후 계획은 미정”
뉴스타파가 지난 2014년부터 보도해 온 ‘한화투자증권 정리해고’사건과 관련해 해고자들이 사측과의 법정 싸움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두 번의 파기환송심 끝에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재판장 이창형)는 지난 17일, 한화투자증권(이하 한화증권)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파기환송심에서 한화증권이 2014년 실시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두 번째 파기환송심의 결론이다. 앞서 고법은 첫 번째 파기환송심에서 “정리해고는 부당했다”는 취지의 대법 판단을 반박했으나, 이번에는 받아들였다. 첫 번째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3년 만의 결과다.
“1심을 취소한다. 원고(한화투자증권)의 청구를 기각한다.”
-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 이창형 판사
지난 17일 서울고등법원 별관 3층. 이곳에선 한화투자증권(이하 한화증권)이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파기환송심의 선고 공판이 있었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파기환송 재판 결과가 나오는 날.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이기고도 고법의 번복으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된 해고자들은 이날도 결과를 쉽게 낙관할 수 없었다. 10초도 채 걸리지 않은 판결 선고. 해고자들은 법정을 나와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진짜 이겼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 6년 4개월이나 걸렸네요.”
- 한화투자증권 해고자 양경일 씨
회사가 상고하지 않으면 법정싸움은 이번 판결로 종결된다. 사측에서 상고하더라도 대단한 증거가 새롭게 나오지 않는 한 대법원 판결이 번복될 일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리해고 6년 4개월 만에 복직의 길이 열린 것이다. 법원 판결만 6번 째, 노동위원회 결정까지 합치면 8번째 판결이다.
한화증권 정리해고 사건은 하급심과 상급심에서 판단을 엎치락뒤치락하며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한화증권은 2013년 12월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직원 35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희망퇴직 대상자를 선정하고 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노동자 7명이 2014년 2월 정리해고됐다. 정리해고자 7명은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선 노동자들이 패소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가 맞다”고 판정했다.
한화증권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017년 6월, 원심 법리가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고법은 대법원 판결을 반박하면서, 재차 정리해고가 적법했다고 판결했다.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온 사건은 2019년 11월, 또다시 파기환송됐다. 그리고 이날 두 번째 파기환송심에서 고법이 대법 판결을 받아들이고,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구분 | 선고일 | 결과(노동자) |
지방노동위원회 | 2014년 6월 | 패소 |
중앙노동위원회 | 2014년 11월 | 승소 |
행정법원 1심 | 2015년 11월 | 패소 |
고등법원 2심 | 2016년 8월 | 패소 |
대법원 | 2017년 6월 | 승소(파기환송) |
서울고등법원(파기환송심) | 2018년 4월 | 패소 |
대법원 | 2019년 11월 | 승소(파기환송) |
서울고등법원(파기환송심) | 2020년 6월 | 승소 |
재판부 “정리해고 와중에 임원 채용, 성과급 지급 등 불합리”
이번 판결의 핵심은 앞서 두 차례 대법원이 판단한 것과 같다. 한화증권이 정리해고 요건 중 하나인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대법 "한화투자증권, 해고 회피 노력 부족했다")
근로기준법 24조에 따르면 사측이 정리해고를 할 때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대표와의 성실한 협의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근로기준법 31조에 따르면, 이런 요건을 제대로 갖추어 해고했는지에 대한 입증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한화증권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고, 제대로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었는지 입증하지 못했다.
대법과 고법 판결문을 토대로 재판부가 한화증권이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한화증권이 △정리해고 전후로 정규직 직원을 비롯해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 다수를 신규채용한 점 △정리해고 직후 예년보다 많은 직원을 고액 임금을 받는 고위직으로 승진시킨 점 △정리해고 와중에 전년도(5억 원)보다 많은 17억 원을 임직원 경영성과급으로 지급한 점 △직원의 1/4을 감원한 상황에서도 예년과 동일한 23억 원의 교육비를 지출한 점 △근무시간 단축, 일시 휴직, 순환휴직 등을 통해 정리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이다.
재판 과정에서 사측은 “업무 성격상 신규채용이 불가피했으며, 구조조정 이후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한화증권)가 정리해고를 감수하고서라도 신규채용을 하는 것이 회사 경영상 불가피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그 비용 지출 규모가 정리해고로 절감되는 경제적 비용에 비해 훨씬 크다고 보인다”며 “원고가 해고 이외에 다른 경영상 조치를 취할 수 없어 부득이 정리해고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성과급 지급 건에 대해서도 고법은 “통상 성과급은 경영상 흑자가 나는 상황에서 지급하는 것인데 정리해고를 하는 와중에 굳이 사기진작을 위해 성과급을 지급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성과급을 감액했다면 상당 부분 정리해고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결했다. 앞서 대법원 역시 “성과급이나 교육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재원을 활용해 정리해고를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되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다른 쟁점은 한화증권이 정리해고 당시 노사 간에 협의된 최종 감원목표(350명)를 초과해 해고했는지 여부였다. 회사 측은 금융투자협회 등의 공시자료를 제시하며 감원한 인원이 350명을 초과하지 않아 목표 달성을 위해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측이 제시한 감원 숫자가 자료마다 달라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노사 간 협의된 최종 감원목표가 이미 달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로 정리해고를 한 것은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거나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결과적으로 판결문 내용을 종합하면, 정리해고는 회사가 적자를 만회할 수 있는 모든 경영상의 조치를 다 한 후에 최후의 수단으로만 실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두 번의 대법원 판결과 이번 환송심 판결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와 관련해 4가지의 해고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이는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화증권이 상고하지 않으면 이번 판결은 그대로 확정된다. 사측이 상고하더라도 판결을 뒤엎을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대법원에서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고 변호사는 “더 이상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 어려운 상태이고, 이미 두 번에 걸친 대법원 판결의 취지가 어제 고법 판결의 결론과 동일하므로 만일 상대방이 불복하는 경우에도 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이번 승소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승소하고도 3년이나 더 걸린 판결. 7명이 시작했던 소송은 5명이 도중에 포기하고, 양경일 씨와 윤택민 씨 두 명만 남아 싸움을 이어갔다. 양 씨와 윤 씨는 건물 경비원, 치킨집 서빙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난한 소송 기간을 버텼다.
이날 승소한 양경일 씨는 “이렇게 소송이 길어질 줄 몰랐다. 7명이 함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해서 보람 있다”며 “어렵게 얻은 결과인 만큼, 이번 판결이 기업이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고자 윤택민 씨도 “경영상 손해가 난 일에 경영에 책임이 없는 직원들을 해고한 거니까, 그건 부당한 일이니까 쉽게 이길 줄 알고 시작한 소송이었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며 “지금 방식의 재판은 너무도 재벌 편이다. 노동자들이 큰 회사하고 싸울 때는 내 목숨, 내 가족 생계까지 다 걸고 싸우는데, 회사는 손해가 없다. 재판에서 져도 밀린 봉급을 줄 뿐 아니냐”며 현 소송 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해고자 낙인이 찍힌 노동자는 복직도 동종업계 이직도 어렵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노동자만 지치고, 회사는 그걸 노리는 것”이라며 “노동 사건의 경우, 외국처럼 노동전문법원이나 국민배심원제 등을 도입해 재빠르게 판단을 받을 수 있게 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서 기업이 부당하게 사람을 해고하는 일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투자증권 측은 뉴스타파에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아직 판결문을 송달받기 전으로,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향후 대응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2014년 뉴스타파는 한화증권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고졸직원의 절반 가량을 채용한 지 1년 만에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해고하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을 모두 정리해고했다고 보도했다. 또 경영상 이유로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면서도 김승연 회장 가족이 100%지분을 보유한 총수일가 기업에는 1300억 원의 일감을 몰아주고, 홍보팀과 인사팀 등 일부 부서에 15억의 성과급을 지급, 경영상 위기가 맞는지 의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취재 | 홍여진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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