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교과서’, 일본 우익에게 기회를 주다
2013년 09월 27일 07시 15분
해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친원전’ 내용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곳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원자력 홍보 공공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다. 재단은 매년 초중고 교과서를 모니터링해 핵 발전과 관련된 내용을 교과서 출판사에 수정 요구하기 위해 연구 용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해 200~300 건을 고쳐 달라고 요구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원전 수출을 교과서에 넣어 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요구 가운데 19%(2008~2012년 분석 결과)는 실제 교과서에 반영된다.
※ 관련 기사 :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를 어떻게 바꿨나-데이터분석
“해수욕장 사진을 원전이 보이는 해수욕장 사진으로 교체해 달라”-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사회과탐구 - 수정 이유 : “해안지역에서 자연을 이용하는 모습으로 여름철 휴양지일 뿐 아니라 원자력발전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음”
“우리 고장을 대표할 수 있는 자랑거리로 고리 원자력발전소 사진을 넣어 달라”-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사회 -수정 이유 : “우리나라는 국내 총 전기 생산량의 약 36% 정도를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세계 6위의 원자력 발전국이다. 이러한 위상을 살펴볼 때 원자력발전소는 그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진을 삭제해 달라”-2013년 성림출판사 중1 기술가정 -수정 이유 : “기술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내용인데 원전 폭발 사진을 넣음으로써 원자력 발전의 부정적인 면만 지나치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대기 오염을 막는 방법으로 풍력 사진 대신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 달라”-2011년 교학사 고등학교 화학 -수정 이유 : “원자력 발전은 대기 오염 물질을 전혀 내어 놓지 않으므로 대기 오염 방지에 기여하는 바가 큰 발전 방식”
출판사 측은 수정 요구가 들어오면 저자와 협의해 수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저자들은 취재진에게 자신의 동의 없이 내용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법문사에서 2008년에 발행된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경우 원자력 발전의 폐기물이 환경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의미로 동그라미 표시가 돼 있었지만, 2009년에는 세모 표시로 바뀌었다. 당시 원자력문화재단이 “방사성 폐기물은 철저히 격리되므로 환경에 영향을 줄 염려가 없다”며 동그라미 표시를 아예 ‘X’로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을 일부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교과서의 저자인 김재한 청주대 교수는 “당시 교과서 수정과 관련해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며 “일종의 공공기관, 정책 당국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저자가 수정을 거부했는데 수정된 사례도 있다. 교학사가 2010년 발행한 고등학교 경제지리 교과서에는 “제1차 석유 파동 이후에는 원자력 발전이 급증하고 있다”고 적혀 있던 구절이 2011년 교과서에는 “제1차 석유 파동 이후에는 에너지 효율이 높고 환경오염이 적은 원자력 발전이 급증하고 있다”고 바뀌었다.
저자인 김혁제 잠실여고 교사는 “당시 전화가 왔던 기억이 있는데 거절했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어떻게 된 일인지 출판사 측에 확인해봤지만 두 출판사 모두 당시 편집을 담당했던 직원들이 퇴사해 확인이 어려웠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부장은 “원자력계는 원자력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이유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며 “장기적으로 교육을 시키면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교과서 수정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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